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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25화 (102/210)

125화. 투전장의 맹인무사 (2)

* * *

투전장 앞은 아침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큰 행사여서 평소 투전장을 찾던 꾼들 외에도 장춘의 일반 주민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도박꾼, 구경꾼, 노점상… 게다가 낯선 타지인들도 부지기수였는데, 대회에 흑룡강성과 요녕성의 싸움꾼들도 참가하다 보니 그들을 응원하러 온 것으로 보였다.

곽철과 진가린은 맨 앞줄에 자리잡았다.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지만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왜 없을까요? 설마… 혹시 참가를 포기하고 튄 거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야. 인기 있는 참가자는 저기 저 천막 안에서 대기하는 것 같아. 특별 대우를 받는 거지.”

“어머, 곽철 오라버니는 홀대를 받는 거였네요.”

“어쩔 수 없지. 나야 뒷문으로 들어온 거니까. 하지만 반대로 좋은 점도 있잖아?”

곽철과 진가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한월을 찾으러 온 거지만, 굳이 돈벌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자리잡고 앉기 전에 벌써 판돈을 걸었는데, 당연히 곽철이 승리한다는 쪽이었다.

이름 없는 신인이니 당연히 배당금은 엄청 높았고.

“하하하, 자네들 여기 있었구만. 어젯밤에 좋은 꿈 꾸셨는가?”

인파를 헤치고 규태 노인이 다가왔다.

손에 주전부리를 잔뜩 들고 있는 것이 오늘 하루 제대로 즐기려는 모양.

“호호호, 어르신.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좋지, 좋고 말고. 큰 대회가 열리는 날인 데다가 자네들 덕분에 판돈도 넉넉하거든. 하하하.”

“역시 어르신도 돈을 거셨군요. 선수들을 꿰고 계시니까 승률이 좋으시겠어요?”

“당연하지. 내 오늘 제대로 보여줌세.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도박이 어떤 것인지를. 하하하.”

땅콩을 까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사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투전장의 주인과 지역 유지 몇몇의 지루한 인사말이 있었고, 드디어 진행자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길게 이야기하면 욕을 먹을 테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조의 첫판은 전통의 강자와 떠오르는 샛별의 대결입니다. 이백십이 전 백구십 승에 빛나는 구환도, 그의 상대는 오늘 첫선을 보이는 흑신성!”

와아아~

구환도는 꽤 인기가 좋은 듯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내 차례네. 얼른 다녀올게.”

“적당히 하고 와요. 아침부터 힘 빼지 말고요.”

“그래도 너무 빨리 끝내면 재미없잖아. 관중들을 생각해서라도 한 삼십 초 정도는 끌어 줘야지.”

곽철이 기지개를 펴며 비무대로 올라갔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태규 노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구환도 저자는 오늘 출전자 중에서도 상위 고수라고.”

“아, 그래요? 어쩐지 저희 오라버니 배당금이 무지 높더라고요.”

“돈을… 걸었나?”

“당연하죠. 어르신도 거셨죠? 설마… 구환도에 거신 건 아니죠? 에이, 아니겠죠. 오라버니 출전을 도와주신 게 어르신인데.”

“무, 물론… 나, 나도 흑신성에 걸었다.”

“호호호, 잘하셨어요. 축하드려요. 첫판부터 목돈 만지게 되셨네요.”

그 순간,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군데군데 탄식과 욕설도 섞여 있었지만 환호와 박수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뭐지? 갑자기 무슨 일이…?”

“뭐긴 뭐예요. 저희 오라버니가 이긴 거죠. 삼십 초 이야기하더니 십 초 만에 끝냈네. 호호호.”

“말도 안 돼! 흑신성의 발차기가 빠르다지만 이런 실전에서는….”

“말이 안 되기는 뭐가 안 돼요. 구환도가 방금 그 발차기에 맞고 뻗었다고요.”

노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제 받은 돈 오백 냥의 절반을 구환도에게 걸었던 것이다.

가장 안전한 승부라 자신했던 건데… 망했다.

경기가 계속 치러졌다.

규태 노인이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니어서, 이후의 경기는 대부분 승패를 맞췄다.

곽철과 진가린은 노인의 해설을 들으며 재밌게 경기를 관전했다.

“역시 어르신 대단하세요. 완전 점쟁이처럼 다 맞추시네요. 이번 경기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제삼 조 경기가 시작되자 진가린이 물었다.

비무대에 올라온 선수들은 왜국의 무사인 덕천신수와 흑견치라는 신인.

“볼 것도 없이 덕천신수의 승리다. 그가 익힌 동영 인자술은 무시무시하지. 이런 투전장에서 구를 친구가 아니야. 살수계로 나갔으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을 거야.”

“우와, 그 정도라고요? 하지만 저 흑견치라는 사람도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요?”

“흥, 그래 봐야 신인이다. 덕천신수는 분위기 따위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노인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렇기에 이번 판에 백 냥이나 건 것이다. 비록 배당은 형편없이 낮지만, 대신 완벽히 안전한….

우와아아!

경기 시작과 동시에 투전장이 뒤집어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단 일 초 만에 덕천신수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엄청난 쾌검이었고, 잔인하고 무자비한 수법이었다.

“말도… 안 돼…!”

넋이 나간 노인은 위로라도 받고 싶었지만, 곽철과 진가린은 자기들끼리 바빴다.

—이번 건 좀 놀랐는데요. 오라버니 보기엔 어때요?

—빠르네. 저 정도 속도면 절정은 되는 거잖아?

—그렇죠. 근데 문제는 첫판부터 진짜 실력을 보여줬을 리 없다는 거예요. 아마 실제로는 저것보다 두 배는 빠르다고 봐야 할 거예요.

—재밌어지네. 이대로라면 흑견치 저자가 대장이랑 붙게 될 텐데.

곽철에 이어 흑견치까지. 이변이 속출하자 투전장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박사들은 전략을 수정하느라 바빴고 사람들은 온통 흑견치가 누구냐는 추측에 열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몇몇 경기가 진행됐고, 드디어 제사 조 선수들 차례가 되었다.

우와아아아~

진행자가 입을 열기 전부터 울려 퍼지는 함성.

드디어 장춘 투전장의 최고 인기인이 등장한 것이다.

“하하하, 다들 기다리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불굴의 의지로 꼭대기에 오르려는 자. 장춘의 아들! 우리의 자랑! 하지만 오늘은 만만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흑신성과 흑견치 등 의외의 고수들이 등장했으니까요.”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자의 소개가 제법 길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지루한 티 없이 목이 터져라 호응했다.

“과연 우리 기대대로 그는 무서운 신인들의 돌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다 같이 확인하시죠. 소개합니다. 장춘이 낳은 불패의 싸움꾼! 맹전사!”

천막 안에서 맹전사가 걸어 나왔다.

우와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

“맞네요.”

“그렇구나.”

넓은 천으로 둘둘 말아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진가린과 곽철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최근 몇 달만 놓고 보자면 혈승보다 더 속을 썩인 인물, 바로 자신들의 대장이라는 것을.

“후후후, 어떤가? 맹전사를 직접 본 소감이?”

판돈을 날린 덕에 의기소침해 있던 규태 노인이 간만에 활기를 띄며 물었다.

맹전사에게 건 돈만큼은 안전할 거라 믿으면서.

“흥, 말썽 잘 피우게 생겼네요. 이번에 흠씬 두들겨 맞고 정신 좀 차리면 좋겠어요.”

“자, 자네 무슨 그런 말을? 상대인 흑선풍이 강자이긴 하지만 아무렴 맹전사가….”

노인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지만 진가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대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진가린은 단 한 동작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대장, 어서 보여줘요.

이런 고행이 과연 성과가 있는지를….

흑선풍 삼규는 두 자루 도끼를 귀신같이 썼다.

북로원정군에서 십 년 넘게 군 생활을 해서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

군대 동료에게 얻어 배운 심법에 더해 수년 전 장백산 상단의 산삼을 훔쳐먹은 덕에 내공도 일류급이었다.

그러니 관중들이 맹전사에게만 환호를 보내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흥, 영악한 자식.

눈을 가리고 있는 저 천 쪼가리에도 분명 뭔가 수작이 있을 거야.

내가 네놈의 얄팍한 본색을 드러내 주지!

깡, 깡, 깡.

도끼를 맞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흑선풍이 돌진했다.

눈을 가렸으니 맹전사는 청력에 의지할 거라 생각했고, 그것을 방해하려는 의도.

과연 코앞까지 다가설 때까지 맹전사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방향을 못 잡는 듯했다.

휙, 샤악.

한 자루는 이마를 내리찍었고 다른 한 자루는 옆구리를 쓸어갔다.

흐흐, 이겼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도끼가 이마를 찍기 직전 고개가 뒤로 밀려났고, 다른 도끼의 궤적에 맞춰 허리가 빙글 돌았다.

마치 경극단의 배우들이 합을 맞춰 연기하는 듯한 모습에 관중의 함성이 터졌다.

설마… 고작 저런 걸 하려고 우리 속을 태웠다고…?

지켜보던 진가린이 눈썹을 찌푸렸다.

관중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자신이 보기엔 애들 장난 같은 모습.

두 눈뿐만 아니라 귀까지 막는다 하더라도 저런 도끼질을 피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좀 더 지켜보자고. 어쨌든 내공을 전혀 안 쓰면서 저러기는 쉬운 건 아니야.”

진가린의 마음을 아는지 곽철이 한마디 건넸다.

어? 그건 그렇네.

곽철의 말이 맞았다.

진가린도 내공과 심법의 도움이 없다면 도끼의 길을 읽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으아악! 제발 좀 맞아라!”

그 순간 흑선풍은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온갖 변화를 다 써가며 도끼를 휘둘렀지만, 맹전사는 도끼날에 스치기 직전에 어김없이 회피를 한 것이다.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끊이질 않았는데, 그의 귀에는 야유로 들렸다.

흑선풍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가다간 나만 지친다.

욕 좀 먹겠지만… 그 방법을 쓸 수밖에.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든 흑선풍은 관중들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그대로 맹전사의 주변에 뿌렸다.

“앗, 이런 비겁한!”

“맹전사, 조심하시오! 저 악독한 놈이 독질려를 사방에 뿌렸소!”

관중들은 난리가 났다.

독이 발렸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사방에 가시가 돋은 철질려 백여 개가 맹전사 발 주변에 뿌려진 것은 사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발바닥을 꿰뚫리게 생긴 것이다.

관중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원래 투전장은 암기의 사용도 허용되기 때문.

진가린과 곽철도 바짝 긴장했다.

내공을 사용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철질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데….

소리도, 공기의 움직임도 없으니까.

“흐흐흐, 맹전사. 너도 이제 끝이닷!”

마치 풍차를 돌리듯 맹렬히 도끼를 회전시키며 흑선풍이 쇄도했다.

강력한 공격, 하지만 피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다만 그 순간 반드시 철질려를 밟게 되겠지. 흐흐흐.

휘익, 휙.

맹전사가 도끼의 궤적을 벗어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철질려를 피해 발을 디뎠다.

운이 좋군.

흑선풍이 발차기까지 곁들어가며 맹전사를 왼쪽으로 몰았다. 그쪽에 철질려가 특히 많았으니까.

휙. 샤악. 휘익….

십여 번의 공격, 십여 번의 물러섬.

하지만 단 한 번도 철질려를 밟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피해 갔다.

시끄럽게 하면 방해가 될까 봐 관중들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하지만 맹전사의 발걸음 수가 오십을 넘어가자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오라버니 생각은 어때요?”

“철질려를 피하는 거? 글쎄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죽어도 못 한다는 거지.”

그건 진가린도 마찬가지.

나날이 무공이 발전해 이제는 검기의 발출도 식은 죽 먹기이지만, 내공의 도움 없이 눈을 감고 철질려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광 형도 못 할걸. 이건 무공이 아니라 마술 같은데? 가린이 네 사부님 정도 되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진가린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강한월이 눈을 가리고 투전장 싸움꾼과 투닥거리는 이 모습.

민망하고 비웃음 사기 딱 좋은 모습이지만….

이게 사부님 정도 되어야 가능한 거라고?

관중들은 그저 신기해할 뿐이고, 무공 좀 안다는 사람들은 맹전사가 속임수를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진가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초월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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