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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28화 (105/210)

128화. 개와 원숭이 (1)

* * *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당연히 늦은 시간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곽철과 진가린은 강한월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었는지 궁금했으나,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는 게 정답.

“새로운 무기를 얻었는데, 아직 손에 익지 않고 정확한 사용법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상태야.”

“그래도 그 무기가 강력하다는 건 분명하겠죠?”

“글쎄다. 아마 예전 무공에 비해 가능성은 더 열려 있는 듯한데… 너희가 보기엔 어땠는데?”

투전장의 싸움꾼이나 혈랑대를 상대한 걸 가지고 평가를 할 순 없었다.

격이 너무 떨어지는 상대들이었으니까.

“어쨌건 조금 신기하긴 했소. 내공을 끌어올려 기감을 펼친 것도 아닌데 철질려를 피하는 걸 보고.”

“맞아요. 저도 심안(心眼)을 쓰긴 하지만 선도의 내력을 쓰지 않으면 보이는 게 없거든요.”

“그래. 나도 아직 정확한 원리를 모르겠으니까. ‘조금 신기한 정도’ 그게 딱 지금 내 상태일 거야. 그건 그렇고… 이제 무명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들 무사하겠지?”

진가린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갔다.

소영영 혼자 소림에서 복귀한 후 급하게 낙양에서 도망친 것에서부터 현재 하오문의 기루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과 맹주가 척혈단에 합류한 것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자신이 부상을 입은 데다가 무림맹 소속임을 들켜버리는 바람에 대원들을 도피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갈윤과 민정화가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다는 건데… 사실 이제껏 홀로 수련행을 다닐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잘 이끌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맹주님의 상황이 안타깝군. 적들이 그토록 빠르게 행동에 나설 줄이야.”

“맹주님은 그나마 다행이죠 뭐. 황제와 흑사련주에 비하면. 어쨌든 조금 확실해지긴 했어요. 황실, 흑사련, 무림맹 내에서 누가 회귀자인지는 밝혀진 거니까요.”

그렇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반대로 문무대의 존재도 드러났으니까.

무림맹이라는 든든한 배경도 사라졌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천마신교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거냐?”

“거기 갈 시간이 어디 있어요? 대장 찾기도 바빴는데.”

진가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마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듯.

“천마신교에도 경고를 해줘야 해. 적들이 본거지를 장악했으니 분명 십만대산에 대해 뭔가 수작을 시작할 거야.”

* * *

북경에서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

무척 멀고 험한 여정이지만, 다들 무공을 익힌 데다 최고급 숙소와 음식이 제공되었으니 그다지 피곤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정신은 또 다른 문제.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휴식을 취하던 동창 백호 종취랑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종 백호님. 벌써 주무시는 건 아니시죠?”

“어, 양 대원. 들어오게.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사실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굳이 이 늦은 시간에 사적으로 찾아와 할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저도 자꾸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 특명 어사님 말입니다….”

역시 그 이야기군.

종 백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양 대원은 특수 훈련을 받은 동창의 정예이니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는 거겠지.

“특명 어사님이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알면서 뭘 그러십니까? 그… 기행 때문에 그러지요. 이것 참, 입에 담기도 민망해서. 어쨌든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려 다섯 명입니다. 매일 밤 그 시체들을 처리하는 건….”

이해했다. 충분히 이해하고 말고.

하지만 양 대원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멈춰줘야 했다.

“그만! 우리는 동창이다.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우리 일이야. 그 일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판단하려고 하지 말게!”

“하지만… 어린아이들도 있단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동창이라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도저히….”

콰앙!

종 백호가 탁자를 내려쳤다.

정말로 화가 난 것인데, 양 대원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닥쳐라! 네가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이번 임무의 최고 지휘관은 특명 어사님이시다!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까라면 무조건 까!”

양 대원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종 백호를 뻔히 바라봤을 뿐이다.

힘없이 뒤돌아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종 백호는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양 대원. 자네는 신혼 아닌가.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잘 버티게. 이번 임무만 끝나면 다른 곳에 배치를 해줄 테니까. 장준검 천호님과 조철상 선배에게 생긴 일을 잊지 말라고.”

한편… 원숭이는 정원 건너편 귀빈실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일천살 수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공력이 급격히 늘었고, 그에 따라 귀도 밝아진 것이다.

놀고들 있네.

이것이 원숭이의 짧은 감상평.

뒤에서 욕하는 양 대원이 얄밉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예전 살수 시절에는 포졸만 만나도 껄끄러웠는데… 지금은 동창마저 자신 앞에서 쩔쩔매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볼 일.

황제가 자신의 혈노로 있는 한 부귀영화는 끝이 없을 텐데….

하지만 왠지 속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최근 좋게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뱀은 믿으면 안 된다.

분명 자신의 혈노 비술을 깨고 황제를 독차지할 방법을 찾고 있을 거고, 뱀의 능력이라면 머지않아 성과를 만들어낼 게 분명했다.

넋 놓고 있으면 양자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건 뻔한 일.

그러니 이번 천마신교의 일이 중요한 것이다.

십만대산에 웅크리고 있는 게 누굴까?

설마 그 중요한 곳에 동료 혈승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니겠지?

양일까? 설마… 쥐?

그게 누구든 이번 기회에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게 아니면 적어도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여 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천일살 비술을 완성하는 것!

그러면 원숙한 절대경의 힘을 갖게 된다.

물론 무공으로만 놓고 보면 호랑이나 용의 상대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장기인 비술을 결합할 경우?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냐? 동창의 개들아.

그러니 니들이 뒤에서 뭐라고 수군덕거려도 나는 천인살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벌써 얼추 오백 명.

십만대산까지 남은 일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흐흐흐, 이제 오늘의 수행을 마무리해볼까?

원숭이가 고개를 돌렸다.

방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제물들을 향해.

* * *

크으윽.

날카로운 칼날로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으스러져라 이빨을 깨물었지만 그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포기해라. 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가 심령을 강타했다.

육체의 고통에 더해 정신까지 공격을 당하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하지만 유선은 버텼다.

“죽음을 구걸하는군. 살려 달라고 빌어. 차라리 비명을 질러라. 그러면 최소한 고통은 감소할 테니.”

“제발 그 입 좀 닥치십시오!”

유선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나니 속이 좀 시원했다.

고통이 그 정도로 컸던 것이다.

자신이 감히 누구에게 고함을 친 것인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네가 죽여 달라고 떼를 쓰는구나.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없다.”

기분이 나빴던 걸까?

천마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유선이 받는 고통 또한 두 배가 되었다.

크으윽.

눈과 코와 입에서 동시에 핏물이 흘렀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뇌는 깨질 것 같았다.

이제 진짜 죽는구나.

순간 지금까지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콰아아앙!

몸 안에서 벽력탄이 터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삼십육 대혈의 역혈(易穴)을 해냈구나. 흥, 영 바보는 아니었군.”

저 양반은 칭찬도 저런 식으로!

뭐라고 쏘아 부쳐주고 싶었지만 입을 열 힘조차 없으니….

“내일부터 다음 단계를 시작하겠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천마가 인사도 받지 않고 수련실을 나갔다.

“흥… 후후… 푸하하하.”

수련실 바닥에 대자로 누운 유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행복해서 웃는 건 아니었고… 그냥 웃음이 나왔다.

죽으려고 신교로 돌아왔는데, 죽지는 않고 천마의 제자가 되었고… 천마의 제자가 되었더니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상황.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배가 고팠다.

유선이 향한 곳은 신녀궁.

이젠 더 이상 신녀 후보가 아니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녀궁에 머물렀다.

죄송하고 민망해서 몹시 불편했지만, 신녀가 강력히 원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유선아. 너 안색이 그게 뭐니? 천마께서 또 심하게 하신 거구나?”

궁 입구에서 마주친 신녀가 고운 눈썹을 찌푸렸다.

자식이 밖에서 다치고 왔을 때 엄마가 지을 법한 표정.

전생에서도, 그리고 현생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만약 어머니가 있다면 저런 표정을 지으셨겠지?

“저는 괜찮아요. 나름 성과도 있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가 천마신공을 익히는 속도는 이미 충분히 빠르니까.”

“제가… 빠르다고요?”

“천마께서 칭찬하시더구나. 무공을 모두 잃었던 네가 천마신공을 익히는 속도가 놀랍다고.”

유선이 피식 웃었다.

천마가 누굴 칭찬할 리가 없었다.

마음 착한 신녀가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겠지.

“혹시 본인 이야기는 안 하시던가요?”

천마는 꾸준히 마신강림을 수련 중이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본인이 도무지 말을 안 하니 성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천마께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겠니? 다만… 요즘 좀 달라 보이시기는 하더구나.”

“그래요? 그럼 성과가 있으신가 보네요.”

“그럴지도. 혹은 새로운 제자 가르치는 게 즐거워서 그러실 수도 있고.”

유선은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천마가 만약 가학적인 변태라면.

자기는 진짜 죽을 지경이니까.

“그런데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아, 마군사가 지도부 회의를 소집했거든. 잠깐 다녀오려고.”

신녀까지 참석하는 회의라고?

그런 건 진짜 드문 일인데…?

“교에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음… 비밀인 것 같다만 넌 알아도 상관없겠지. 조만간 손님이 방문한다는구나.”

“손님이요? 도대체 누구길래 신녀님까지…?”

“황실의 특명 어사라는 것 같던데.”

* * *

“…이와 같은 이유로 황실 특사는 대공자가 상대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마군사 뇌탈리가 깊게 허리를 굽히며 의견을 말했다.

앞 단의 설명은 길었지만, 요지는 천마가 직접 나설 필요 없다는 것.

“저도 마군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황제가 직접 온다면 모를까 고작 특명 어사 정도를 만나주실 필요 없으십니다.”

부교주마저 이리 말하니 사실 결론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의 행정과 운영에 관해서라면, 천마는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의견을 따랐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꼭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특명 어사가 누군지는 알아냈나?”

“그것이… 갑자기 정일품으로 임명된 자인데, 직급 외에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는 자입니다.”

천마가 거대한 태사의에 반쯤 눕듯 기대어 앉았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할 때의 자세.

아무래도 황실의 손님이라 신경이 쓰이시는 건가 하고 마군사가 생각할 때, 천마가 허리를 펴며 명을 내렸다.

“대공자에게 전하라. 오늘부터 백일 간 폐관 수련을 시작하라고.”

“네? 외람됩니다만… 그러면 황실의 특사는 누가…? 설마 천마께서 직접 만나시려는 것인지요?”

“그자는 유선이 맡도록 한다. 나도 만나볼 필요가 있을지는 추후 유선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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