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추적-134화 (111/210)

134화. 원로 회합 (2)

* * *

지금부터가 오늘 모임의 주목적이었다.

회귀한 혈승들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소림사가 공격당하고 무림맹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을 길게 설명한 것은 바로 이것을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했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건 민정화지만 위무진이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림 맹주의 권위를 빌어야 할 만큼 믿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

실제로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불신에 가득 찬 질문이 날아드는 통에 몇 번이고 설명을 멈춰야 했다.

마침내 긴 설명이 끝났을 때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것 참… 무슨 기담 소설을 읽는 기분이군. 손오공이 요괴들과 싸우는 서유기도 이보다 황당하진 않은 것 같소.”

“믿기 힘드시다는 건 압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을 설명할 다른 길도 없고… 무엇보다 맹주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다들 고민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인정한 것은 천산 백응신장.

시간의 돌을 탈취당한 경험이 있기에 그 역시 일련의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었다.

“난 위 맹주의 말을 믿소. 게다가 신주의협이 천산까지 찾아와 제자를 도와 달라 부탁했으니 강한월을 도울 생각이오.”

“백응신장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야… 그런데 소요자 선배께선 어찌 보시는지…?”

무공으로 보나 배분으로 보나 명망으로 보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큰 어른은 소요자.

그가 결정을 내리면 사람들이 따를 확률이 높았고, 의외로 소요자는 쉽게 말했다.

“고민할 게 무어 있겠소? 신주의협이 부탁했고, 위 맹주가 증언했으니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다만 고민이 되는 것은 황실, 무림맹, 흑사련을 장악한 거대한 적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가 그것뿐이오.”

소요자의 말은 결론과 같았고, 이야기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강력한 적에 맞서 싸울 방법.

여기서부터는 민정화가 주도했다.

“주지하시는 것처럼 적들은 황실, 흑사련, 무림맹을 장악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무림 역사에 처음 있는 최강의 연합이지요.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혈승들이 몇 더 있으니까요.”

“의심되는 곳은 어디요? 혹시 천마신교?”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민정화 입장에선 대답하기 쉬운 질문.

“다행히 천마신교는 안전합니다.”

“안전하다고? 아니, 어떻게 확신하는 거요?”

“사실은…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천마신교는 처음부터 우리와 한편이었습니다.”

“마교와 한편?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항상 미소를 잃지 않던 수월 사태의 표정이 변했다.

아미파는 대대로 천마신교와 악연이 많았던 탓이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천마신교는 처음부터 강한월 소협의 문무대를 지원했습니다. 유일한 지원군이었죠.”

“위 맹주. 이 말이 사실이오? 무림맹의 부대가 마교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고요?”

위무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창피하지만 어쩌랴… 사실인걸.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실제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차분히 설명했지만 수월 사태의 냉랭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다른 원로들도 영 마땅치 않은 분위기이고.

이번에도 시선은 소요자에게 쏠렸다.

그의 판단을 기다린다는 듯이.

“나는 전부터 알고 있었소. 강 소협과 문무대 대원들이 십만대산을 찾아갈 때 함께했었지. 감사하게도 천마가 좋은 대원들을 보내줬더군.”

“아니… 선배님!”

“수월 사태. 마교와 친구가 되자는 게 아니오. 다만 지금은 그들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 사실이지. 만약 천마가 돕지 않겠다면 나라도 찾아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싶을 만큼.”

수월 사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라고 모르지 않았다.

만약 천마신교마저 혈승에게 장악되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 혼란을 틈타 마교가 침공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휴우.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겠지요.”

민정화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마신교의 건까지 별 탈 없이 넘어갔으니 이제 어려운 이야기는 끝난 것이다.

남은 것은 적들을 상대할 작전을 짜는 일.

물론 이것도 만만치 않은 내용이지만 적어도 눈치를 보거나 원로들의 반응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간의 경과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 이제 앞으로의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혈교에 맞서 싸울 척혈단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던 참이요. 민 소저가 보기엔 어떻소? 적들과 우리의 전력 차이가.”

“원로 선배님들이 도와주신다 하더라도 저희가 현격히 밀립니다. 양과 질 모두에서요.”

“그들이 황실까지 장악했으니 머릿수에서는 당연히 밀리겠지만 고수의 질은 밀리지 않을 텐데? 여기 소요자 선배님도 계시고, 막말로 천마도 한 팔 거들 것 아니요?”

곤륜일검이 이런 의문을 갖는 건 당연했다.

여기 모인 모두는 한때 천하 십대고수에 이름을 올렸던 강자들. 특히 소요자는 신주의협 이전에는 천하제일이라 불렸던 최강자.

힘에서 누구한테 밀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원로님들의 실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적들도 고수가 많습니다. 특히 비술로 만들어낸 괴인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흥, 비술로 만든 괴인 따위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 별것 아닌 괴인에게 소림사 송목 대사가 패할 뻔했습니다.”

방금 콧방귀를 꼈던 혼천도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송목 대사는 강호 활동을 한 적이 없어 실력도 알려진 바가 없지만, 조금 전 소요자가 말하기를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혼천도 본인이었다면 괴인에게 패했을 거라는 뜻.

물론 송목 대사가 음양혈인에게 밀렸던 건 아니다.

만약 소림 제자들을 지켜야 하는 부담만 없었으면 음양혈인 둘이 동시에 덤볐어도 송목 대사는 끄떡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정화는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송목 대사에겐 미안하지만, 원로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으니까.

“적들에겐 군대가 있고, 괴인들이 있으며, 막강한 고수들이 많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요. 이제부터 서둘러 보강을 해야 합니다.”

“민 소저의 계획을 말해 보시오. 우리 늙은이들은 지시에 따를 테니.”

“아직 완성된 계획은 없습니다만 우선 조직을 보강해야 하는 건 확실합니다. 저희 편에 설 문파들을 확보해야 하죠. 예를 들면 화산파 같은.”

이 이야기가 나올 것을 홍진 장문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형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자신을 여기까지 부르진 않았을 것.

당연히 척혈단에 합류해 싸우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척혈단이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세상이 믿어주지 않을 테니 척혈단에 합류한다는 건 곧 황실에 대항하는 역적이 되고 무림맹에 반기를 드는 무림 공적이 된다는 뜻이겠구려?”

“그럴 겁니다, 장문인님. 아마 마교와 손을 잡았다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요.”

“이것 참… 다른 문파 장문들이 먼저 결정하는 것을 보고 쫓아가면 좋을 텐데, 하필 내가 첫 순번이라니.”

홍진 장문은 쓴웃음을 지었고,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위무진 맹주도 입을 다물고 딴 곳을 볼 뿐이었다.

아무리 사형이라지만 이런 결정엔 끼어들 수 없었다. 화산파 모든 제자와 가족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 괴롭더라도 장문인 스스로가 판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민 소저. 화산이 합류하면 다른 문파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겠소?”

“물론입니다. 비록 봉문 중이지만 소림은 이미 저희 편입니다. 화산이 결심을 해주시면 최소한 무당은 따라올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여기 소요자 대선배도 계시니까.

소림, 무당, 화산이 어느 편에 서느냐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도 전력이지만 절대적인 상징성을 가지니까.

그래, 당연한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 없지.

홍진 장문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면서 말했다.

“사실 쉬운 문제요. 적들이 위 사형을 공격하고 누명을 씌웠으니 우리 화산 단독으로라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한 일. 화산은 척혈단의 선봉에 서서 혈교와 싸우겠소.”

위무진 맹주와 민정화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러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졌으니 다른 문파들의 합류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

“홍 장문인의 결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소요자 대선배님과 수월 사태님께 부탁드립니다. 이 회합이 끝나면 조속히 무당과 아미의 장문인을 만나 척혈단 합류를 설득해주십시오.”

“당연히 그렇게 하겠소. 이제는 척혈단이 곧 무림맹이나 마찬가지이니.”

“마교 이야기를 하면 아미파는 경기를 일으킬 거예요.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득하겠어요. 현 장문인이 내 사손이니 정 안되면 몽둥이를 들어서라도.”

혼천도, 백응신장, 곤륜일검 등도 각자 친분이 깊은 문파를 찾아가 척혈단에 합류시키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민정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안.

회귀자에 관한 것이든 척혈단에 관한 것이든 절대로 정보가 새어 나가서는 안 되었다.

“잊지 마세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 계신 분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전달되면 안 됩니다. 보안이 깨지면 척혈단은 자리를 잡기도 전에 깨지고 말 거예요. 꼭 부탁드립니다.”

* * *

홍진 장문과 육지성이 탄 배가 나룻터에 닿았다.

섬으로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배에서 내리는 홍진 장문의 표정이 밝았다.

“사부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좋다.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고, 위험 속에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위 사형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지.”

“정말 다행입니다. 하루빨리 적들을 소탕하고 위 사백님이 맹주로 복귀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꼭 그렇게 되어야지.”

나루터를 벗어난 그들은 우선 가까운 객잔을 찾았다.

마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진 장문은 피곤한 것 같았다.

자하신공을 대성한 그가 육체의 피로를 느낄 리는 없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일들을 겪은 날 정신의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

홍진 장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육지성은 홀로 산책을 나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잠시 홀로 걷는 시간이 그에게는 무척 소중했다.

장문인을 수행하는 임무는 무척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한편으론 개인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휘적휘적 걷다 보니 인적이 없는 숲이었다.

주위를 휘휘 돌아본 육지성이 품속에서 휴대용 지필묵을 꺼냈다.

그리고는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적어갔는데….

휘리릭~

적기를 마친 육지성이 입술을 모아 새 소리를 냈고, 잠시 후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

육지성은 종이를 돌돌 말아 비둘기 다리에 달린 통 속에 넣었다.

퍼드드득.

비둘기가 숲 건너편 쪽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다시 한번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육지성은 느긋하게 객잔으로 돌아갔다.

* * *

막 숲을 벗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일어난 돌개바람이 비둘기를 덮쳤다.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벗어나려 했지만 돌개바람의 흡인력을 이길 수가 없었다.

푸득, 푸드득….

비둘기는 추락하기 시작했고, 누군가 엄청난 높이로 도약하더니 비둘기를 낚아챘다.

돌개바람 형태의 흡입 장력을 쏘았던 사내였다.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한 사내 옆으로 다른 사내 한 명이 다가왔다.

“예측을 벗어나지 않아 좋진 좋은데… 그래도 마음이 좀 쓰리군.”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일단 뭐라고 썼는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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