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예행 연습 (2)
* * *
사마염의 설명을 들으며 다들 흥분하고 기뻐했지만, 강한월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사부의 소식을 접하니 남들보다 훨씬 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던 것이다.
“사부님은 그런 활동을 하고 계시면서 어째서 저에게는 연락이 없으셨던 걸까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말거라.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다른 이유가 있겠나? 우리 주변의 누가 회귀자일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했던 거지. 어쨌든 이런 중요한 정보를 결국 너에게 전해주지 않느냐?”
사마염은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어 강한월에게 건넸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한월은 이해하려고 애쓰며 봉투를 열었다.
“단장. 무슨 내용이예요?”
여러 장의 종이 중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진가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혈승 무리가 비술 괴인들을 제조하는 장소들에 대한 정보다.”
“우와, 그럼 엄청 중요한 정보네요. 역시 신주의협은 대단하셔요.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아내셨데요?”
이 질문에 답한 건 사마염이었다.
천궁의 좌호법에게 설명을 들었으니까.
“내 사제, 그러니까 신주의협이 조직한 천궁이라는 비밀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이 몇 년간 애써서 알아낸 정보라는 구나.”
“신주의협만 대단한 게 아니고 그 천궁이란 조직도 만만치 않네요. 혈승 무리의 정보를 캐낸 것도 그렇지만, 몇 년간 이런 활동을 하면서 우리 문무대나 하오문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건 그들이 천룡사나 만검산장의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일 거야. 아무도 그들이 신주의협의 조직에 속해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아… 그랬던 거군요.”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진가린은 가슴이 뜨끔했다.
천룡사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이었고, 시간의 돌을 빼앗기 위해 흑수방을 앞세워 청송문을 겁박하던 고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리 천룡사의 무공을 쓰던 고수들.
설마…?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강한월을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에이, 내가 무슨 생각을. 당연히 아니겠지.
“제갈윤. 이 종이를 가져가서 민 소저와 함께 분석하고 계획을 짜도록 해.”
“당연히 분석을 해야죠. 저… 그런데 무슨 계획을 짜라는 말씀이세요?”
“적의 비밀 기지를 습격할 계획.”
* * *
회의가 끝나자 강한월은 사마염에게 붙들렸다.
어디서 무얼 하다 왔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간단히 들어보려는 것이었지만 술이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가족이 없는 강한월은 사마염의 이런 관심이 나쁘지 않았다.
사부 신주의협은 언제나 큰 사랑을 베풀어왔지만, 이런 소소하면서도 살가운 관심을 표한 적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민 소저와 제갈윤이 작전을 수립하면 네가 직접 출동할 생각이냐?”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네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무공을 새로 익히는 중인데 문제없겠느냐?”
“그렇기에 더더욱 제가 가야 합니다. 이번 일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거든요.”
“새로운 무공을 안정시킬 기회 말이냐?”
“네. 그리고 새로운 무공으로 혈교의 비술에 대항하는 연습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예전에 익히고 있던 금강부동신공과 마공으로는 피의 비술에 저항하는 것이 익숙했는데, 현재의 무공으로도 가능한지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일종의 예행연습이로구나. 고위 혈승들과 싸우기 위해 사전에 몸을 풀어보는.”
“말하자면 그렇지요. 예행연습.”
“그래. 최후의 결전 이전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지. 어쨌든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야. 잊지 말아라.”
대화는 끝났고, 사마염이 진심 어린 충고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가 된 강한월은 다시 술잔을 들었다.
병에는 아직 반 정도의 술이 남아있었다.
잠들기 전 마시기에는 딱 적당한 양.
술 한 잔을 비우고 강한월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마염이 가져온 봉투 안에 들어있던 종이였다.
혈승들의 비밀 기지에 관한 것들은 제갈윤에게 넘겼지만, 요 몇 장은 따로 품속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사부 신주의협이 정성껏 한 자 한 자 적어 보낸 것.
바로 어떤 무공의 심결이었다.
사부는 지금 이것이 필요한 것을 어찌 안 것일까?
내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까는 보는 눈이 많아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처음 봉투를 열고 이 종이들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종이에 적혀 있는 구결들은 하나의 무공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지만 앞의 몇 줄만 읽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심검에 입문하기 위한 것임을.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우선 천룡사가 사부를 위해 일하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천룡사의 이름이 튀어나와 진가린의 표정이 변했을 때, 실은 그도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어야 했다.
옥룡은… 사부의 명을 받고 시간을 돌을 빼앗으러 왔던 것일까?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일.
그리고… 역시 사부는 심검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분명했다.
소림사에서 깨어나는 직전 꿈속에서 본 인물. 심검을 수련하던 것은 정말 사부의 뒷모습이었을까?
그런데 어찌 그리 생생하게 그 모습이 보였던 것이지?
꿈속에서 이루어진 상상의 모습이라 하기엔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반복해서 꿈을 꿨으니 자신이 혼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침 자신에게 전달된 이 편지.
오늘 밤 편히 잠을 이루기는 틀린 것 같았다.
강한월은 술을 더 얻기 위해 방을 나섰다.
* * *
다음 날, 대청에서 회의가 열렸다.
밤새 신주의협에게서 온 정보를 분석한 민정화와 제갈윤이 소집한 회의였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아주 중요한 회의이니까요.”
“제갈.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럼 너무 성급하게 회의를 하는 거 아니야? 정보를 분석할 시간이 얼마나 있었다고?”
광군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분석하고 검증할 시간이 많으면 당연히 좋지요. 하지만 지금 꼼꼼한 검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라는 게 저와 민 소저의 판단이에요.”
“그래? 늦으면 안 되는 사정이 있는 건가?”
“그렇다니까요. 일단 들어보세요.”
제갈윤이 커다란 지도를 펴 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중원의 핵심적인 지역 십여 곳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는데, 바로 신주의협이 알려준 적들의 비밀 장소.
이곳에서 비술을 써서 각종 괴인들을 제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몇 곳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괴인 제조시설이지만, 나머지는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 후 새롭게 만들어진 시설.
신주의협이 준 정보, 그리고 민정화와 제갈윤의 분석에 따르면 신규 시설에서는 아직 괴인의 제조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비술의 막바지 단계라 생각되는데 만약 빨리 급습한다면 제조가 끝나기 전에 시설을 파괴할 수 있고, 만약 이 시기를 놓친다면 시설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수의 괴인들을 맞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는 거구나.”
“맞아요. 비술 제조가 끝나기 전이라면 소수의 적들만 상대하면 될 테지만, 만약 늦으면 수백 수천의 괴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거죠.”
제갈윤이 설명을 계속했다.
십여 곳의 제조시설 중 가장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곳은 세 곳이었다.
각각 황실과 흑사련, 그리고 남궁세가에서 만든 것인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시설 중 최근 가장 많은 물자가 흘러 들어가고 있는 곳이고… 따라서 가장 위험하고 거대한 비술이 펼쳐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 곳들이었다.
“그 세 곳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지? 두 곳은 강남이고 한 곳은 하북… 좀 멀 군.”
“그래요. 지금부터 그걸 상의하려고요. 우리 인원도 제한적이고 거리 문제도 있고… 어떻게 인원을 나눠서 작전을 시작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에요.”
소요자와 위무진 맹주를 비롯한 원로고수들은 현재 외부에서 각자 일을 보는 중.
그들을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그럼 여기 모인 인력들로 시행해야 한다는 말인데, 기존 문무대 대원들 외에는 사마염 한 명만 거들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중 믿을 만한 고수는 단장과 광 선배, 그리고 사마염 원주님 이렇게 셋이잖아요. 그러니 세 분이 각각 한 곳씩 맡으시고 나머지 대원들을 적절히 분배해서….”
위청보가 매우 타당한 의견을 제시했다.
어찌 보면 다른 의견은 있을 수 없는 정답에 가까운 것.
하지만 제갈윤, 민정화는 물론 강한월까지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 그게 제 일 안이기는 한데… 좀 더 고민을 해봤으면 해. 우리가 가진 힘을 정확히 삼등분할 경우 셋 다 충분히 강하지 못할까 우려가 되거든.”
“그럼 어떡해요? 우리 인원이 이게 다인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혈승들처럼 비술을 써서 고수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뾰족한 다른 수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원을 추가하지 않고도 힘을 셋으로 분산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있긴 있었다.
“세 곳의 기지를 습격해야 한다고 인원을 셋으로 나눌 필요는 없어. 마침 두 곳은 위치가 가까우니 하나로 묶으면 된다. 그러니 습격대는 두 개로 구성하자.”
의견을 낸 것은 강한월.
그리고 그 의견은 제갈윤과 민정화의 생각과 꼭 들어맞았다.
“단장의 말이 맞아요. 그럼 우리 인원을 둘로 나눌 방법을 논의….”
“아니, 굳이 논의할 필요 없어. 내가 강남의 두 곳을 맡겠다. 나머지는 사마염 사백님과 광군영 등이 모두 함께 가서 처리하는 것으로 하자.”
“안 돼요!”
“단장, 미쳤어요?”
여기저기서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강한월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가장 고수임은 분명하지만, 그것도 소림사의 일이 있기 전 이야기.
죽을 뻔한 부상에서 회복된 후 지금 어떤 상태인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강한월 본인조차도.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두 곳이 모두 강남에 있다고 해도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한 곳을 습격하고 신속하게 이동해서 두 번째 곳을 치려면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
“안 된다니까요!”
“그리고 하북의 시설은 분명 뱀 혈승이 만든 것일 텐데… 비술에 가장 능한 데다 황실의 자원을 마음대로 써서 만든 시설일 테니 보통 위험하지 않을 거야. 사백님과 광군영 등 모두 함께 가야 그나마 승산이 있어.”
“하지만 이들은 흑룡강의 혈랑대 같은 어설픈 적들이 아니라고요. 단장… 혼자 가능하겠어요?”
진가린의 질문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과연 혼자서 성공시킬 자신이 있는가?
조금 전부터 강한월 본인이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던 질문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내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임무를 맡아야 해. 만약 이 정도도 처리하지 못한다면… 나는 척혈단 단장의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
“무슨 그런 말이….”
진가린이 반박하려고 했지만, 민정화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녀와 제갈윤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떻게 인원을 나눠야 할지.
“어차피 만족스러운 인원 구성은 할 수 없어요. 우리가 가진 힘이 이게 다이니까요. 우리 형편에서 짤 수 있는 최상의 조합으로 가야죠.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민정화가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의견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이.
“우선 하북의 시설을 습격할 제일 조는 사마염 원로원주님이 맡아 주십니다. 일 조에 함께할 대원은 광군영, 소영영, 곽철, 위청보입니다.”
휴우. 진가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 조가 어떻게 구성될지는 듣지 않아도 뻔하니까.
“강남의 두 곳을 처리할 제 이조는 강한월 단주와 진가린 대원이 맡습니다. 어쨌든 단장을 혼자 보낼 수는 없고, 나머지 대원 중 경공이 가장 빠른 건 진가린 대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