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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44화 (121/210)

144화. 예행 연습 (5)

* * *

콰아아앙!

남궁율적과 율성 형제의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큰 굉음.

하지만 그들은 알았다. 이건 폭탄이 아니라 내공을 응축시켰다 터뜨릴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침입자다! 게다가 엄청난 고수야. 빨리 비상종을 울려!”

댕, 댕, 댕~

건물들 사이의 광장에서 종소리를 듣는 진가린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단장! 혹시 소림사에서 부상당한 부위가 머리였던 거예요? 지금 제정신이냐고요!”

기껏 경비 무사들을 제거하며 은밀히 침투했는데, 막상 비밀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강한월이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을 터뜨린 것이다.

“필요해서 한 일이다.”

“필요하긴 뭐가 필요해요? 은신술을 써서 최대한 은밀히 움직이기로 한 거잖아요! 비술 제조장을 찾아서 가져온 천뢰 몇 개 던져주고 우리는 냅다 내빼면 되는 건데!”

생각 같아서는 밤이 새도록 잔소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

각 건물들의 문이 열리며 적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 정말… 사서 고생도 정도 것이지….”

진가린은 강한월을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그저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적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고수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표정을 보니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너희는 누구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이백 명의 무사들이 집결을 끝내자 남궁율적이 앞으로 나섰다.

좀 전에 당황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안심한 표정이었는데, 보아하니 침입자는 젊은 남녀 단 두 명이었던 것이다.

비상종을 울려 모든 무사들을 끌어낸 것이 괜한 짓으로 느껴져 짜증이 날 뿐.

“우리가 누구인지 밝힐 생각은 없소. 하지만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제대로 알고 왔지.”

“무어라? 네놈이 알긴 뭘 안다고?”

“여기는 혈교의 괴인 제조시설이지.”

“혈… 교? 그건 또 뭐 하는 집단이냐?”

남궁율적과 남궁율성이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괴인 제조시설을 들킨 것에 당황하면서도, 혈교라는 단어는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

그걸 유심히 살피던 강한월이 낮게 읊조렸다.

“몰랐던 거요? 흠… 뭐, 좋소. 방금 그 표정이 당신의 목숨을 살렸소.”

“건방진 자식! 이제 보니 제대로 미친놈이었구나. 얘들아, 뭐 하냐? 어서 저것들을 잡아 오지 않고?”

남궁율적이 손을 쳐들자 열 명의 무사가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이 기지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는 오대세가의 정예 무사들이었다.

“단장. 알아서 하세요. 무공을 시험하겠다고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단장 혼자 정리해요. 난 손가락 하나 꼼짝 않을 테니!”

“이런 상대들로 무슨 평가가 된다고. 이들은 네가 처리해라. 난 나중에 고수들이 나오면 그때….”

“싫어요. 단장이 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너도 네 몫은 해야지.”

기세등등하게 쇄도하던 오대세가 무사들은 한 걸음을 남겨둔 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 연놈들이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남궁율적 말 대로 제대로 미친 것 같아 오히려 손을 쓰기 머쓱했다.

“이것들이 천지 분간을 못 하는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먼저 정신을 차린 하북팽가의 무사가 거칠게 도를 휘둘렀다.

도가 향하는 방향은 진가린의 목.

싸늘한 예기가 날아오는데도 진가린은 막을 생각은 안 하고 강한월을 노려볼 뿐이었다.

어… 어… 이런 미친!

오히려 당황한 것은 팽가의 무사.

남궁율적의 명령은 죽이라는 게 아니고 잡아 오라는 것이었으니 이대로 목을 벨 수는 없었다.

이익!

휘두를 때보다 몇 배는 더 힘을 써서 도를 멈춰 세웠다.

“야! 이 미친 것아!”

고함을 빽 질러봤지만 진가린은 여전히 본 척도 안 했고, 오대세가의 무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는데.

“목숨만 붙여 놓으면 된다. 팔다리 한두 개쯤 잘라도 좋으니 그것들을 제압해!”

보다 못한 남궁율적이 구체적인 명령을 내렸다.

이제야 봉인이 풀린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했다.

강한월의 노리는 세 명, 진가린을 공격하는 두 명.

이번에도 검, 도, 암기가 몸에 박히기 직전까지 둘 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는데….

타타타타탕~

결국 마지막 순간 진가린이 백학을 뽑아 아름다운 호선을 그렸고, 다섯 무사의 다섯 가지 무기가 동시에 두 동강이 났다.

“정말! 진짜로 이럴 거예요!”

진가린은 정말로 열 받고 서운한 것 같았는데, 강한월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

시험해보고 싶은 무공이 있어 좀 전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것이다.

지금 손을 써서 오대세가 무사들을 상대하게 되면 어렵사리 심상을 떠올려 놓은 그 무공이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강한월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한 것을 보고 그제야 진가린도 눈치를 챘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럼 진작 말씀을 하시지. 알았어요. 잔챙이들은 제가 처리할게요.”

당당한 오대세가의 정예 무사에서 순식간에 잔챙이로 전락한 자들은 분노했지만, 화를 낼 틈도 없이 재앙을 맞이해야 했다.

무영보를 극성으로 펼친 진가린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백학의 서늘한 예기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흐억.”

“아악. 이년이 사술을 쓴다!”

먼저 나섰던 다섯 무사를 단숨에 쓰러트린 진가린이 이백 명이 몰려 있는 곳으로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혼자서 이백 명을 상대하겠다는 듯 설치는 그녀의 모습이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필요한 명령을 잊을 만큼 남궁율적은 어설프지 않았다.

“세가 연합 무사들은 그년을 잡아! 죽여도 상관없다! 그리고 술법사들은 뭐 하는 거요? 어서 붉은 무사들을 투입하지 않고?”

남궁율적이 뒤에 서 있는 붉은 바람막이를 걸친 사내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들은 아직 전투에 투입할 준비가 되지 않았소. 게다가 겨우 두 명의 적 때문에 그들을 투입하는 건….”

“닥치시오! 이곳의 책임자는 나요! 어서 그들을 투입하시오!”

붉은 바람막이 사내는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는 무술의 고수는 아니라서 침입자들이 어느 수준의 고수인지 알아볼 눈이 없었던 것.

천하제패를 위한 교의 귀중한 자원을 고작 새파랗게 어린 적 둘을 잡는 데 투입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책임자가 남궁율적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

“흥, 모든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할 거요.”

피이이익~

바람막이 사내가 호각을 꺼내어 길게 불었다.

순간 기지 내에 음산한 기운이 감돌며, 주변에 깔려 있던 안개마저 들썩거렸다.

뭐지?

뭔가 불길한 느낌에 움찔한 것은 오대세가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진가린을 둘러싸고 격전을 펼치던 무사들이 순간 손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 기지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지만 실제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였던 것이다.

“어… 저… 저것은…?”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지하로 연결된 창고의 문이 열리고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 연기를 헤치고 수십의 괴인들이 튀어나왔다.

봉두난발한 머리,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빨간 눈동자, 구역질 나는 역한 혈향.

“가… 강시다!”

누군가가 외쳤다.

괴인들의 모습은 강시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당황한 오대세가 무사들 입장에선 당장 떠오르는 단어가 그것밖에 없었다.

“강시고 나발이고… 지금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요?”

대열이 흐트러진 무사들 사이로 진가린이 뛰어들었다.

오대세가에서 차출된 무사들은 대부분 일류 고수이고 몇몇은 절정.

절대로 약하지 않았지만 괴인들의 등장에 당황했고, 무엇보다 진가린이 너무 강했다.

들개들 사이를 누비는 호랑이처럼 그녀가 날뛰자 강시고 괴인이고 더 이상 신경을 쓸 수가 없었고, 한 명 한 명씩 무기를 떨구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잘하는군.

거칠게 날뛰는 진가린을 지켜본 강한월의 짧은 평가였다.

이제 어디 내놔도 한 몫은 하는 그녀.

이번에 동행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세가의 무사들을 묶어준 덕에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강한월은 담담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그르릉 소리를 내며 자신을 포위해오는 서른여섯의 괴인들.

지금까지 겪어왔던 혈교의 괴인들과는 다른 종류. 하지만 아예 모를 것은 아니었는데, 꿈속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삼십육 혈주대(血蛛隊).

끈적한 핏덩이를 거미줄처럼 쏘아 대는 괴인. 각각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서른여섯 명의 감각이 공유되어 연수 합공을 펼치는데 특화된 집단.

꿈속에서 보았던 것은, 척혈단을 돕기 위해 파견된 마교의 장로급 고수들이 이 혈주대의 거미줄에 걸려 한 줌 혈수로 녹아버리는 장면이었다.

그걸 보면 마공을 누르는 뭔가 특수한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천마신교를 상대하기 위해 제조한 무기구나.

딱 좋군.

이제 막 시도해보는 무공을 오대세가의 무사들을 상대로 펼치는 건 꺼려졌던 것이다. 통제가 되지 않아 불필요한 살생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이 괴인들이라면… 말 그대로 자신의 무공을 시험하기에 딱 좋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어느새 혈주들이 삼 장 거리로 좁혀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하려는 순간, 때맞춰 바람막이 사내가 다시 호각을 불었다.

피이이익~

혈주들에게도, 그리고 강한월에게도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혈주들이 속도를 높여 달려들었고, 강한월의 오른손 장심에서 금빛의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강기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과는 어딘지 조금 다른… 여하튼 공력이 응축되고 유형화된 검 모양의 그것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촤아아악~

선두에 선 혈주들이 끈적한 핏물을 토했다.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핏줄기들이 강한월의 몸을 관통하려는 그때, 공중에 떠 있던 투명한 검이 벼락처럼 쇄도했다.

공기의 저항을 받지 않는지, 파공음도 없이 유령처럼 움직인 검은 핏줄기를 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혈주의 목을 사악 베었다.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구르는 머리.

“어… 어찌 이런 일이? 저놈이… 저놈이 악독한 사술을 쓴다!”

경악한 남궁율적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악독한 사술을 쓴 건 그들 자신이었지만, 남궁율적의 눈엔 강한월의 무공이 더 강력한 사술로 보였다.

그의 수준에서는 이 무공을 절대 알아볼 수 없었으니까.

이기어검에서 심검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심검의 오의에 접근하기 위한 방안으로 강한월이 처음 시도하는 무공이었다.

촤아악, 촤아아악~

툭, 데구루루.

혈주들이 미친 듯이 핏줄을 쏴대는 소리와 투명한 검이 목을 베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고함을 치는 남궁율적, 쉬지 않고 호각을 부는 바람막이 술사… 소리 없이 하늘을 가르는 투명검.

비현실적인 광경에 오대세가 무사들도 그리고 심지어 진가린마저도 싸움을 멈추고 멍하니 지켜봤다.

그리고 혈주의 목이 십여 개쯤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 혈주가 쏜 핏줄기 하나가 날아와 강한월의 어깨에 박혔다.

혈주들이 동시에 쏜 핏줄기 중 하나를 투명한 검이 막지 못하고 놓친 것이다.

크윽.

강한월이 이를 악물었다.

혈주의 핏줄기가 끈끈한 아교풀처럼 피부에 달라붙어 기력을 뽑아가고 있었다.

검을 뽑아 휘두르면 베어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기운을 분산하면 애써 시도하고 있는 투명검이 통제력을 잃고 실패로 끝나게 될 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만 참고 있는데, 어느새 달려온 진가린이 백학을 휘둘렀다.

샤악.

동방선도의 선기를 담은 검을 이겨내지 못하고 싹둑 베어지는 핏줄기.

“단장. 제가 지켜줄 테니 하던 거 계속해요.”

역시 같이 오길 잘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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