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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46화 (123/210)

146화. 하북 비밀기지 (1)

* * *

하북성 보정시 백석산(白石山).

제국의 수도인 북경과 불과 오백 리 거리의 명산이라 유람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지만, 팔십일 개 봉우리와 아홉 개의 계곡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고봉인 불광정에서 조금 떨어진 두 봉우리 사이의 깊은 계곡은 특히나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이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경관도 없을뿐더러 이어지는 길을 찾기도 어려웠기 때문.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

몇 개의 검은 그림자가 빼곡한 나무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날랜 산짐승보다도 더 빨리 달리면서도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것을 보니 모두들 상당한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 같았다.

“잠깐. 이제 목적지가 멀지 않았어요. 여기부터는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선두에 선 소영영이 달리기를 멈추며 말했다.

“지금까지도 소리 안 나게 달리느라 극도로 조심했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조심하라고?”

약간 툴툴대는 말투로 대꾸를 한 것은 곽철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이 이상 은밀히 침투할 방법은 없었던 건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청보. 가지고 온 것 꺼내.”

“이거 꼭 써야 하는 거예요? 아무리 중급 부적이라지만 한 번에 다섯 장이나….”

“다섯 명이니까 그러는 거야.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발각되기 더 쉬우니까. 그리고 청보 너… 지금 동료들 목숨보다 부적이 더 중요하다는 거니?”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위청보는 울상을 지으며 품속에서 은형부(隱形符)를 꺼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부적을 붙여주자 동료들의 모습에 어두운 그림자가 덧씌워졌다.

“그것참 대단하구나. 역시 모산파야.”

위청보를 달래주기 위해 사마염이 짐짓 놀란 척 감탄사를 던졌지만, 그리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준비를 갖춘 다섯 명의 척혈단원이 다시 계곡 깊숙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 * *

‘후후후, 황제의 스승인 황사(皇師)라. 특명어사보다는 이게 훨씬 더 멋지군.’

원숭이는 새로 얻은 직책이 마음에 들었다.

십만대산의 일을 마치고 복귀했으니 더 이상 특명어사라는 직책은 쓸 수 없었는데, 천마신교에서 가져온 정보가 맘에 들었는지 뱀이 멋진 직책을 만들어준 것이다.

정식 품계가 있는 관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왠지 황제보다도 한 끗발 더 높은 인상을 주는 데다 어감도 좋아서 원숭이의 맘에 딱 들었다.

“황사 어르신. 이런 누추한 곳까지 귀한 걸음을 해주시고. 모시게 되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황실 뇌옥의 옥장이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생각 같아서는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는데, 이런 음침하고 위험한 곳에 고관대작이 찾아올 일은 없으니 황제의 스승은 그가 평생 만나보기 힘든 높은 양반임이 분명했다.

“자네가 수고가 많네. 미리 기별을 넣은 것처럼 수감된 재료, 아니 죄수들을 확인하러 온 것일세.”

“네, 황사님. 이미 준비를 갖춰 놓았습니다. 원하시는 조건에 해당하는 죄수가 세 명이 있습니다.”

말은 정중하게 했지만, 옥장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원숭이가 특별히 요구한 조건이란 음양인(陰陽人), 즉 한 몸에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천인살 비술의 마지막 수련을 위한 조건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옥장 입장에선 황사라는 양반이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졌다고 오해할 수밖에.

“세 명씩이나? 매우 좋군. 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한 명뿐이니 직접 보고 고르겠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참고삼아 말씀을 드리면 셋 중 한 명이 특별히 용모가 곱습니다. 다른 한 명은 미색은 좀 떨어지나 색기가 넘치고요. 마지막 한 명은 추천 드리기가 영… 헤헤헤.”

어쭈, 이놈 봐라?

원숭이는 옥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욱하는 마음에 한 대 때릴까 고민하다가 꾹 참았다.

천인살 비술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변태 성욕자로 오해받는 것 정도는 일단 감내하고 볼 일.

“말로 설명하는 게 무슨 소용 있겠나?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거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준비되어 있으니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옥장이 밖으로 나가더니 세 명의 죄수를 데리고 돌아왔다.

셋 다 지하 뇌옥에 수감된 죄수답지 않게 깨끗이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단장한 모습이었는데, 어이없게도 곱게 분까지 바르고 있었다.

준비되어 있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원숭이는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이들이 바로 그…?”

“헤헤헤, 맞습니다. 황사께서 원하시는 조건을 갖춘 자들입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으니 틀림없습니다만, 원하시면 여기서 곧바로 확인을….”

옥장이 눈짓을 보내자 죄수들이 바지를 벗으려고 했고, 식겁한 원숭이가 급히 손사래를 쳤다.

“눈으로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 다들 가만히 있어라! 옥장 자네도 더 이상 나서지 말고!”

인상을 찌푸리고 호통을 친 후에야 원숭이는 제대로 죄수들을 살필 수 있었다.

첫 번째 죄수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눈빛과 표정에서 욕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레 사내의 마음을 흔들었다.

보나 마나 색공을 익혔을 것이고, 색마로 명성을 날리다 뇌옥에 붙잡혀온 것이겠지.

어쨌든 원숭이가 찾는 자는 아니었다. 분명 양기보다 음기가 월등히 강할 것이고 천인살의 마지막 제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두 번째 죄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찌 보면 귀여운 여자 같고, 어찌 보면 잘생긴 남자 같은….

독특한 취향을 가진 변태라면 분명 눈이 돌아갈 구석이 있었다.

흠… 어쩐다. 첫 번째 죄수보다는 훨 좋지만 그래도 제물로서 완벽하진 않은데….

원숭이가 세 번째 죄수로 눈길을 돌렸다.

앞선 두 죄수와는 달리 격한 분노와 경멸이 담긴 눈빛을 이글이글 빛내고 있었다.

여성스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입가엔 거뭇거뭇 솜털마저 보였다.

원숭이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게 역겨웠는지, 퉤 하고 바닥에 침까지 뱉었는데….

“헉, 이런 미친놈이! 뉘 앞에서 감히 그따위 짓을!”

화들짝 놀란 옥장이 곤봉을 들고 달려가자 원숭이가 급히 말렸다.

죄수의 성격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도를 보니 화가 사라졌던 것이다.

딱 절반씩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기와 양기.

천인살의 마지막을 장식할 최상의 제물이 눈앞에 있었다.

“옥장. 저기 저자로 하겠네.”

“네? 하지만 황사님… 저자는 용모도 볼품없고 성격까지 더러운 자인데 어째서…?”

“내가 그런 것까지 자네에게 설명해야 하나?”

옥장은 실수를 깨닫고 급히 입을 닫았다.

아마도 이 황사라는 거물이 주지육림에 빠져 놀다가 극단적인 변태 성향이 된 것 같은데, 그가 못난이를 선택하든 미친놈을 선택하든 자신은 점수만 따면 그만.

“알겠습니다, 황사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럼 이 자는 얼른 꽃단장을 시켜 황사님의 숙소로….”

“필요 없네. 내 당장 데려갈 테니 그리 알게.”

“아, 벌써 황궁으로 복귀하시는 겁니까? 제가 제대로 대접도 못 해드렸는데….”

“황궁은 아니고… 이 뇌옥 근처에 새로운 기지가 하나 생겼지 않나? 거길 시찰하러 갈 걸 세.”

옥장이 흠칫 놀랐다.

새로 생긴 기지. 그곳은 그야말로 금지였고, 이 뇌옥의 책임자인 자신조차도 정확히 아는 것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기지의 무사들이 찾아와 수감 중인 죄수들을 데려갔는데, 무사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눈빛이 살벌하던지….

그 무서운 곳을 시찰하러 가다니 역시 황사는 대단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황사님. 짧게나마 모실 수 있었던 걸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내 자네의 호의는 잊지 않겠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야. 허허허.”

옥장의 얼굴에 감격한 표정이 번졌고, 원숭이는 죄수를 끌고 방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비술 제조시설로 갈 계획.

보안이 철저한 곳이니 천인살 비술의 마지막 단계를 실시하기에 딱 적합한 장소인 것이다.

뱀, 용, 호랑이… 조금만 기다려라. 천인살 비술을 대성하면 내 힘도 당신들 못지않아질 테니. 흐흐흐.

* * *

원숭이가 음양인 죄수를 끌고 시험장으로 이동하던 그 시각.

사마염 일행은 비밀 제조시설의 담을 넘고 있었다.

네댓 명씩 짝을 이뤄 순찰을 도는 경비 무사들이 있었지만, 은형부로 기척을 감춘 일행은 소리 없이 기지 깊숙한 곳으로 침투했다.

“이거 꽤 넓은 데요? 건물도 여러 개고. 어느 건물에서 괴인을 제조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소영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소곤거렸다.

가지고 온 천뢰는 단 두 개. 이걸로 모든 건물을 폭파시킬 수는 없으니 정확히 어디가 괴인 제조시설인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각자 흩어져서 확인하면 어떨까?”

“그건 위험해요. 원로원주님과 광 선배를 제외하면 우리 실력으로는 무리예요.”

“그럼 어떡하지? 모두 함께 움직여서 확인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곽철의 눈길이 사마염에게 향했다.

어찌하는 게 좋을지 결정을 내려 달라는 뜻.

하지만 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광군영이 갑자기 일어선 것이다.

“광 선배. 어딜 혼자 가려는 거예요?”

“기다려 봐. 금방 돌아올 테니.”

일각쯤 흐른 후 광군영이 돌아왔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혼절한 경비 무사 한 명을 둘러업고 온 것이다.

“아! 이 사람한테 물어보려는 거군요. 근데 순순히 알려줄까요? 고문을 해야 하나?”

위청보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고문 이야기가 나오자 광군영이 피식 웃었다.

“고문은 무슨. 소 사매가 있잖아. 이럴 때 써먹어야지.”

광군영의 말이 맞았다.

고문은 필요 없었다. 소영영의 장기가 섭혼술이니까.

적당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고, 소영영은 즉시 혼절한 무사를 깨워 섭혼술을 걸었다.

다행히 무사는 고수가 아니었고 정신력도 굳건하지 못했다.

섭혼술을 방어할 힘이 없는 것은 당연.

불과 반각도 지나지 않아 아는 것을 술술 불었는데….

“적운각… 거긴 너무 위험하다. 근처만 지나가도 기분이 나빠… 그곳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상태도 이상하다. 모두들 넋이 나간 듯하고, 밤에 악몽을 꾼다고….”

“그렇군요. 적운각이 위험하군요.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지켜줄 테니. 그런데… 그 적운각은 어디에 있나요?”

“적운각은… 내원 높은 담장을 지나 금줄이 쳐진 곳… 항상 붉은 안개가 끼어 있고 피 냄새가 가득한 곳….”

이 정도면 충분했다.

소영영이 섭혼술을 풀고 무사의 혼혈을 짚었다.

“적운각이란 곳이 틀림없겠죠? 내원 담장 안쪽이라… 이제 어디인지 알겠어요.”

“그럼 빨리 서둘러요. 은형부 부적의 효능도 이제 한 시진밖에 안 남았어요.”

“좋아. 신속하게 그 적운각이란 곳을 폭파시키고 여길 뜨자. 가자!”

사마염이 앞장서 달려갔다.

그들이 숨어있던 바위 그림자 속에는 혼절한 무사만 달랑 남겨졌다.

광군영이 꾀를 내어 무사를 잡아 온 것까지는 잘한 일이지만, 뒤처리는 어설픈 감이 있었다.

적운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일행은 무엇을 실수한 것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 * *

“황사님, 오셨습니까?”

비밀 제조시설의 책임자인 수석 술법사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숭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물론 회귀자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실질적인 황제인 귀빈의 동료이고 엄청난 무공과 비술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 비술 제조는 어떤가? 아무 문제 없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재료와 도구를 모두 최상으로 지원해 주셔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귀빈께서 기대가 크시네. 무림맹이나 흑사련의 제조시설보다 절대 뒤처져서는 안 될 거야.”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술에 관한 한 단연코 저희가 최고입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혈교 비술의 왕은 용이나 호랑이가 아닌 바로 자신들이니까.

“좋아. 나는 중요히 할 일이 있으니 적운각 시설은 내일 살펴보도록 하지. 오늘 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방해하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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