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추적-148화 (125/210)

148화. 하북 비밀기지 (3)

* * *

“제발 좀 그냥 누워있으라고!”

소영영의 귀면비가 목을 베고 곽철의 천축유가 내가권이 내장을 박살 내도 혈의병들은 꾸역꾸역 다시 일어섰다.

싸우는 입장에선 정말 소름 돋고 힘 빠지는 장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위태로운 쪽은 사마염과 광군영이었는데, 막 전장에 뛰어든 음양혈인들과 맞서기 시작했기 때문.

푸흡.

사마염이 붉은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금빛 검기를 날리며 음양혈인 한 명을 공격했으나 단숨에 역공을 당하여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원주님. 괜찮으십니까?”

광군영이 천마군림보를 펼쳐 괴인들의 발을 잠시 묶고 사마염 곁으로 달려왔다.

“난 괜찮네. 잠시 기혈이 울렁였을 뿐이야.”

사실이었다. 사마염의 부상은 경미했다.

하지만 음양혈인에게 힘으로 밀렸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사마염마저 저들을 당해낼 수 없다면 광군영 혼자서는 얼마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청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귀면비의 날카로움에 의지해 위기를 모면하고 있던 소영영이 외쳤다.

“이제 다 되었어요. 자, 갑니다!”

방금 주문을 완성한 위청보가 양손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여섯 장의 부적을 공중으로 던졌다.

휘리릭 날아오른 부적들이 자연 점화되더니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활활 타올랐다.

눈부신 섬광과 고약한 냄새에 이성이 없는 괴인들마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얇은 종이 쪼가리가 불타는 시간은 잠시 잠깐.

하지만 시커먼 먼지로 변하며 불이 꺼지는 순간, 이매들이 나타났다.

“크르르릉… 쿠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나타난 여섯 마리의 도깨비들이 괴인 무리로 뛰어들었다.

당황한 괴인들이 무쇠 같은 주먹을 날렸지만 반투명한 이매들의 몸에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반면 이매들이 긴 손톱을 휘두를 때면 어김없이 괴인들의 몸에 혈선이 그어졌다.

“나머지는 이매들에게 맡기고 어서 빨리 탈출해요!”

위청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서둘러야 했다.

부적의 효력이 다하지 않는 한 이매들은 죽지 않고 계속 싸울 테지만, 죽지 않는 건 혈의병들도 마찬가지.

게다가 이매의 낮은 공격력으로는 음양혈인들에게는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괴인들이 당황해 있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타압!

광군영이 힘찬 기합과 함께 극성의 마신질풍장을 날렸다.

앞을 가리던 혈의병들의 몸이 으깨지며 뻥 뚫린 길로 돌진하는 광군영.

소영영과 곽철이 광군영을 뒤따라 달렸고, 사마염이 뒤를 엄호하며 날카로운 금빛 검기를 연달아 폭사했다.

“지금이다!”

막 철문을 벗어나려는 순간, 사마염과 광군영이 천뢰를 꺼내더니 이매들과 괴인들이 엉켜서 싸우고 있는 곳으로 힘껏 던졌다.

“뛰어!”

사마염은 소영영의 팔을, 광군영은 양손에 곽철과 위청보를 낀 채로 극성의 경공을 발휘했다.

나는 새처럼 계단을 올라 막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엄청난 폭음이 두 번 연달아 들려왔다.

가루가 되어 폭삭 주저앉는 건물.

막 건물을 벗어났던 사마염 등도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콜록, 콜록.”

잠시 후, 먼지를 잔뜩 들이마신 위청보가 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 무사히 빠져나와서 다행이네요.”

“아직 그런 말 하기엔 이른 것 같아.”

소영영이 앞쪽을 가리켰다.

사마염과 광군영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뭐가 있길래 그래요? 어… 어…? 어… 저 사람은!”

부들부들 떨면서 강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사람.

그건 다섯 명의 음양혈인을 데리고 시설로 달려오던 원숭이였다.

반 각만 빨리 왔으면 시설의 폭파를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열불이 터지는 중이었다.

한편 희열에 들뜨기도 했는데, 드디어 만난 것이다.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원수들을.

“흐흐흐, 이게 누구야? 사마염, 광군영, 곽철, 소영영, 위청보 아니신가? 오랫동안 동거하던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군. 그런데 가장 보고 싶던 얼굴은 보이지 않네. 강한월은 어디 있지?”

“어머, 똥통을 통해 도망갔던 아저씨를 여기서 만나네요. 냄새가 안 나는 걸 보니 그동안 목욕은 열심히 하셨나 봐요?”

“닥쳐라! 강한월이 어디 있는지나 어서 말해!”

“대장은 여기로 오는 중이죠. 곧 도착할 거예요.”

소영영이 흰소리를 섞어가며 시간을 끄는 이유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원숭이 정도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유선이 보내준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뒤에 서 있는 다섯 음양혈인. 이들 역시 소림에서 본 것 같은 위압감에는 못 미쳤지만 좀 전 지하에서 상대한 자들보다는 더 강해 보였다.

천뢰도 다 쓴 상황… 도저히 승산이 보이질 않았다.

“강한월이 여기로 오고 있다고? 후후, 잘됐군. 드디어 그 잘난 면상을 뭉개 줄 수 있겠어.”

“어머? 우리 대장이 최근에 엄청나게 강해진 걸 모르나 봐요?”

“흥, 강한월이 소림에서 초주검이 된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뭐, 그렇게 알고 있는 거면 우리야 고맙지요.”

소영영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마음이 서늘했다.

강한월에 대해선 마음 깊숙한 곳에 원천적인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천인살 대법을 거의 완성한 지금이라면 절대로 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음양혈인이 있지 않은가!

뱀의 혈령이 주입되지 않아 소림에서와 같은 위력을 낼 순 없지만, 그럼에도 다섯의 음양혈인이면 강한월을 열 번은 죽여 놓을 수 있으리라.

원숭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사마염과 소영영은 부지런히 전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혹시 상황을 모면할 만한 계획이 있는 거냐?

—아니요. 적당히 넘어가긴 힘들 것 같아요. 게다가 원숭이도 잔머리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 원숭이의 실력은 어느 정도이지?

—유선이 준 정보에 의하면 최근 엄청나게 강해졌다고 해요. 아마 광 선배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큰일이었다.

어떻게 조합을 짜봐도 답이 안 나왔다.

만약 광군영이 원숭이를 상대하면 나머지 넷이 다섯 명의 음양혈인을 상대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

그렇다면 사마염이 원숭이를 상대한다면? 이 역시 패배가 뻔히 보였다.

—일단 싸우자.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우리를 그냥 보내줄 리는 없으니.

—잠시만요.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어요.

—그게 뭐지?

—위청보가 가진 최후의 수단. 강신술이요. 청보, 할 수 있겠니? 강신 부적은 몇 개 가지고 있어?

전음이란 자고로 은밀히 주고받아야 하는 거지만 순간 위청보의 표정이 흔들렸다.

모산파 제자에게 강신술의 의미는 그만큼 크고 중요한 것.

—두 장이요. 하지만 저밖에 못 해요. 강신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신내림을 하면 힘을 얻기는커녕 미쳐버리고 말 거예요.

—아니, 광 선배는 시도해볼 수 있어. 그렇죠, 광 선배?

—그래. 내가 배운 천마신공에는 마신강림을 받아들이기 위한 심공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산파의 것과는 다르겠지만…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겠지.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위청보는 원숭이가 눈치 못 채게 조심스레 소매 춤에 손을 넣었다.

“나는 강한월이 두렵지 않다! 그놈이 여기로 온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 하지만 그 전에 너희부터 붙잡아… 엇?”

원숭이가 호기롭게 외치던 그때, 위청보가 행동을 개시했다.

혀를 깨물어 피를 잔뜩 머금고 있다가 소매 춤에서 꺼낸 두 장의 부적을 향해 뿜었다.

강신의 예물, 피를 접한 부적에서 환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위청보와 광군영의 천령개로 스며들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음양혈인은 어서 저 연놈들을 붙잡아!”

당황한 원숭이가 몸을 붕 띄우더니 위청보의 목을 낚아채려 했다.

터어엉~

사마염이 급히 검을 뻗어 원숭이의 손을 튕겨냈다.

“자네는 경로사상도 모르나? 당연히 나를 먼저 상대해야지!”

“사마염, 이 주제를 모르는 늙은이가!”

원숭이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절대의 경지 꼭대기에 오른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사마염도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고, 검에 맺힌 금광이 파르르 떨리며 검강이 일어났다.

“흥, 그까짓 강기 따위….”

시커먼 철사장력을 뿜어내며 원숭이가 달려들었다.

콰아앙!

한편 소영영과 곽철은 시작부터 죽을 맛이었다.

다섯 음양혈인의 접근을 막으려고 맹공을 펼쳤는데, 공격은 먹히지 않고 외려 반격에 당했다.

손속을 겨룬 지 오 초도 지나지 않아 소영영의 입가엔 피가 흘렀고 곽철은 어깨 살점이 한 움쿰이나 뜯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음양혈인들이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렇지 않았으면 둘은 벌써 바닥을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멀었어요? 더 이상 못 버텨요!”

소영영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사마염도 철사장에 스치어 얼굴 반쪽이 피범벅이 되었다.

이제 막 대결을 시작했지만, 승패는 벌써 기운 듯했다.

“하하하, 어떠냐 문무대 잡것들아. 예전의 내가 아니란 말이다!”

자신의 실력에 취한 원숭이가 희열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에서 신열에 걸린 듯 몸을 떨고 있던 광군영과 위청보가 눈을 떴다.

“마침 제 몸에 들어온 신이 탁탑천왕이니 제가 원숭이를 맡죠.”

표정과 목소리가 마치 딴 사람처럼 변한 위청보가 망설임 없이 원숭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럼 나는 혈인들을 맡겠다.”

막 소영영의 가슴에 주먹을 뻗고 있던 음양혈인을 향해 광군영이 벼락같은 장력을 날렸다.

쾅, 콰아앙!

순식간에 분위기가 변했다.

더 이상 일방적인 공세는 없었고, 밀고 밀리기가 반복됐다.

우세한 상황에서 원숭이를 몰아붙이는 위청보.

음양혈인 셋을 붙잡고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광군영.

하얀 수염이 피로 물든 채 음양혈인 한 명과 겨루고 있는 사마염.

그리고 나머지 음양혈인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곽철과 소영영.

“이것들이 사악한 잡술을 쓰는구나!”

한 발 한 발 밀리고 있던 원숭이가 분노를 담아 외쳤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답해주고 싶었지만, 실은 누구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우세를 점한 위청보와 광군영도 실은 속마음은 다급했다.

강신술이라는 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부적의 힘이 유지되는 동안 원숭이와 음양혈인들을 처리해야만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크흡.”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참느라 소영영이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혈인의 발끝에 걸린 허벅지가 부러질 듯 아팠지만, 비명을 질러 동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는 없었다.

고통 속에서도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며 슬쩍 주위를 살폈다.

원숭이를 향해 거센 공격을 퍼붓는 위청보. 강신으로 얻은 막대한 힘에 비해 무공의 운용이 너무 쳐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원숭이를 쓰러트릴 수 있었을 텐데.

누가 먼저 쓰러질까?

원숭이일까, 아니면 곽철과 자신일까?

한 명이라도 먼저 쓰러지는 쪽은 오늘 살기는 포기해야 할 터였다.

“이야앗!”

이때 광군영이 변화를 만들어냈다.

신내림을 받은 강신의 힘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순간이었다.

천마군림보를 시전해 순간 모두의 발을 잠시 묶더니, 벼락같은 천마질풍권을 날려 음양혈인 두 명의 머리를 폭파시켰다.

전세가 한쪽으로 기우는 상황.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세를 올렸고, 원숭이는 절망으로 표정이 구겨졌다.

광군영이 여세를 몰아 남은 음양혈인을 몰아붙였다.

조금만 더 힘을 쓰면 이 대결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