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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49화 (126/210)

149화. 혈승 대 혈승 (1)

* * *

광군영의 주먹에서 파지직거리는 광권이 쏟아졌다.

퍼엉!

또다시 음양혈인 하나의 머리가 폭발했다.

이제 남은 음양혈인은 단 두 명.

원숭이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반대로 척혈단은 얼굴에는 환희가 떠올랐다.

단 한 명, 위청보만 빼고.

—광 선배, 그러면 안 돼요! 신력을 그렇게 몰아서 쓰면 안 된다고요!

위청보가 다급하게 전음을 날렸다.

강신 부적을 쓰기 전 미리 경고하지 않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부적을 통해 소환하는 강신의 힘은 총량이 정해져 있었다. 인간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신력도 뻔한 것이고.

그걸 저렇게 한 번에 폭발하듯 사용하면 금방 바닥이 드러날 터였다.

그 순간 광군영은 천마신풍보의 고절한 신법으로 이동한 후 소영영과 곽철을 몰아붙이던 음양혈인을 향해 장력을 때리고 있었는데….

퍼엉!

이번에도 어김없이 머리가 날아갔다.

그런데 좀 전과는 어딘지 달랐다.

폭탄이 터진 듯 머리가 가루가 되었던 것과 달리 그저 잘 익은 수박이 쪼개지듯 쩍쩍 금이 가며 깨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힘이 빠졌다는 것을.

“조심해요!”

위청보가 외치는 순간 광군영은 이미 비틀거리고 있었다.

강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 엄청난 피로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강력한 마기가 남아있었지만, 신력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체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지를 상실한 괴인이지만 그래도 분노할 줄은 아는지, 마지막 음양혈인이 동료들의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광군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마염은 사력을 다해 광군영의 앞을 막아섰다.

그 역시 여기저기 부상을 당하고 공력도 슬슬 바닥을 드러내던 중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으로 일으키는 검강이 될 터.

콰아앙!

금빛 검강과 음양혈인의 극음 장력이 충돌했다.

공력을 소진한 사마염의 검이 뚝 부러지며 폭포수처럼 피를 토했고, 음양혈인의 손도 뼈가 다 드러나도록 너덜너덜해졌다.

양패구상.

하지만 똑같이 손해를 봤다면 결과는 음양혈인의 승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통을 모르는 괴인이니까.

크르르릉.

딱 부상당한 야수가 낼 법한 신음소리를 내며 음양혈인이 반대쪽 손을 들었다.

저 손이 내리쳐진다면 사마염도 그리고 광군영도 끝장이 날 것인데….

“어딜!”

뒤에서 기회를 엿보던 곽철이 개구리처럼 뛰어오르며 음양혈인의 팔에 매달렸다.

음양혈인이 귀찮은 파리를 쫓듯 팔을 휘둘렀고 곽철은 버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샤악.

그 순간 소영영의 귀면비가 음양혈인의 발목 인대를 갈랐다.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귀면비라서 강철 같은 음양혈인의 힘줄에도 상처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번째 발목을 가르기 전에 멱살이 잡혀 멀리 던져졌다.

곽철과 소영영을 떨쳐낸 음양혈인이 사마염과 광군영을 노리고 다시 손을 들었다.

“안 돼!”

원숭이와 겨루고 있던 위청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민한 보법으로 원숭이의 장력을 피한 후, 음양혈인을 향해 대포알 같은 기탄을 날렸다.

슈우우웅~

엄청난 위력이 담긴 기탄이 날라오자 음양혈인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양팔을 가슴 앞에 모아 기탄을 막았는데, 강신술의 위력을 제대로 담은 공격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았다.

콰아앙!

음양혈인이 뒤로 서너 장 튕겨 나며 시커먼 피를 토했다.

분명한 위청보의 우위.

하지만 지켜보던 사마염 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광군영도 신력을 몰아 쓰다 쓰러졌는데, 위청보는 무사할까?

그런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위청보의 몸에서 탁탑천왕의 신력이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숨 몇 번 쉴 시간이면 그 역시 물에 젖은 솜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기력을 짜낸 위청보가 경공을 펼쳐 사마염 뒤로 몸을 옮겼고,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광군영이 믿을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 순간부터 위청보가 쓰러질 때까지.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

원숭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두 발로 버티고 선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허허, 이것 참. 뭐 이런 황당한 일이….”

말은 황당하다고 했지만 실은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까운 혈인을 여럿 잃었지만… 그러면 어떤가? 결국 문무대 저 썩을 것들을 잡게 되었고, 자신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

문무대 놈들을 단숨에 때려죽일까, 아니면 생포해서 두고두고 괴롭혀줄까 고민하던 원숭이가 더 급한 일이 있는 듯 쓰러진 음양혈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강한월이 여기로 올 거라던 소영영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빨리 대비하는 것이 옳았다.

원숭이가 검지 끝을 깨물더니, 음양혈인의 미간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그저 한 방울의 피 같았지만 사실은 그 이상.

핏방울에는 원숭이의 혈령 한 줄기가 담겨있었다.

음양혈인의 각성을 일으켜 힘을 증폭시키려는 것인데, 자신의 생명력이나 다름없는 혈령까지 투자하는 것을 보니 평소 강한월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게 분명했다.

“후후, 너희는 잠깐만 기다려라.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혈령이 녹아들기를 기다리며 원숭이가 음산하게 말했다.

‘제발 오래 걸려라.’

소영영이 속으로 빌었다.

중상을 입은 사마염은 어쩔 수 없다지만, 광군영은 단지 신력이 빠져나가며 진공상태에 빠졌을 뿐 특별한 부상을 입지 않았다.

만약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하지만 이건 소영영의 착각이었다.

실은 광군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내상을 입고 기절해 있는 것이었다.

천마신공의 공능으로 강신에 성공했지만, 모산파 부적이 불러오는 천신과 천마신교의 마신은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

억지로 강신의 힘을 쓰면서 정신에 심대한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깨어나요, 깨어나라고요, 광 선배!

창백했던 음양혈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강렬한 기세가 뻗기 시작하자 소영영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광군영은 깨어날 기미가 없고, 다른 방법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반쯤 포기할 때, 갑자기 팔 안쪽이 화끈거렸다.

이… 이건…?

말과 원숭이가 근처에 있음을 알려주는 붉은 점이 생겨난 것이다.

아까 원숭이가 올 때는 탐색이 안 된 걸로 봐서 공력이 강해지면서 비술을 극복한 것 같았고, 이건 분명 말이 근처로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

말은 분명 그분과 동행하고 있을 테니….

“대장! 빨리 오세요! 원숭이가 저희를 죽이려고 해요!”

소영영이 남은 기력을 모두 쥐어 짜내 크게 외쳤다.

당연히 강한월을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근처에 있을 민정화의 아버지, 하오문주에게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

원숭이는 그런 소영영을 가소롭게 쳐다봤다.

하지만 말리지는 않았는데… 음양혈인의 각성도 끝났겠다, 강한월이 제 발로 나타나준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과연, 잠시 후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소리로 보아 두 명이 오고 있군. 강한월과 제갈윤인가? 아니, 진가린 그 아이면 좋겠군. 걔는 가끔 보고 싶었거든.”

원숭이는 잔뜩 기대한 표정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이제 곧 나무숲 속에서 나타나려는 순간, 원숭이의 표정이 급변했다.

설마? 이건… 누구지?

혈령의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일단 강한월이 아닌 것은 분명했기에 원숭이는 잔뜩 끌어 올렸던 공력을 풀며 손님을 맞았다.

“야심한 시간 이 외진 곳을 방문하신 형들은 뉘시오?”

원숭이가 외쳐 묻는 순간,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자네, 벌써 나를 잊은 건가? 이거 서운한데.”

“어? 너는… 말이구나! 하하하 잘 지냈나? 그런데 같이 오신 분은…?”

사실 묻지 않아도 원숭이는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천마신교에서 직접 만난 자 혈승을 포함하여, 물론 그가 속은 것이지만, 상당수 동료들의 정체를 파악했고, 남은 것은 양 혈승과 소 혈승 정도.

자금 당당인 말 혈승과 동행했으니 보나 마나….

“자네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이분은 소 형님이시네.”

“아이고, 이거 소 대형이셨군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부티가 줄줄 흐르는 걸 보니 대단한 거부가 되셨나 봅니다.”

원숭이가 환한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자금 담당 혈승들은 혈교 내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 편이지만, 어쨌든 소 혈승은 자금 담당 중 수장이고 적당한 예우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마침 뱀, 용, 호랑이가 자금 담당 혈승들을 애타게 찾는 상황.

소 혈승을 데리고 가면 오늘 제조 기지와 음양혈인들을 잃은 실책을 덮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원숭이 너야말로 신수가 훤하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 황궁을 장악한 것이 맞았군.”

“하하하, 어디 황궁뿐이겠습니까? 천하의 중요한 곳은 모두 우리 손에 들어왔지요. 그런데… 소 형과 말은 어떻게 이곳에…?”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당연히 복수를 하러 온 거지.”

말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깊은 원한이 담긴 목소리였다.

물론 복수의 대상은 원숭이였지만, 원숭이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이 문무대 놈들의 뒤를 쫓던 거였군. 소 형님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야.”

상당히 공교로웠지만 특별히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문무대에 대한 원한은 말이나 자신이나 마찬가지. 함께 잡혀 있었고, 함께 더러운 배수구를 타고 탈출했으니까.

“그래, 어쨌든 이렇게 원숭이 자네를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일세.”

“하하하, 다행이고말고. 얼른 복수를 끝내고 다른 형님들을 만나러 가세나.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모두들 엄청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거든.”

원숭이와 말이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영영과 민 문주는 몰래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전음을 보내기도 조심스러워 민 문주 스스로 상황을 파악해 주길 바랐는데, 하오문주이자 민정화를 키워낸 문주라면 분명 두뇌가 비상할 것이라고 소영영은 믿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 이상으로 민 문주는 영민하고 눈치가 비상했다.

대략 어떤 상황인지 이미 간파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해결책까지 찾아낸 건 아니었다.

솔직히 골치가 아팠다.

자신과 말이 돕는다고 한들, 힘의 열세가 너무나 분명했다.

일단 원숭이의 기세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공력은 회복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가공할 수준에 도달했을지는 몰랐다.

게다가 음양혈인… 혈교의 수많은 비술 괴인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어쩐다… 구유탈혼총의 탄환은 오직 한 개뿐인데….’

다행히 원숭이가 의심하지 않는 것 같으니, 방심한 틈에 구유탈혼총을 쏘면 둘 중 하나는 잡을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방법이 없다.

보아하니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 문주 자신뿐인데, 상대가 원숭이든 음양혈인이든 채 십 초를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구유탈혼총의 탄환이 하나 더 있었더라면….

“이보게, 말. 그래 자네는 누굴 죽이겠나? 우리 둘 다 문무대에 원한이 있으니 내 특별히 몇 명 양보해주지.”

“고맙군. 안 그래도 부탁을 하려던 참이네. 나도 나름 열심히 추적해왔는데 원숭이 자네에게 선수를 빼앗겨서 아쉽던 참이거든.”

“하하하, 설마 나 혼자 재미를 보겠나? 걱정 말고 먼저 골라보게. 하지만 잊지 말라고. 나중에 강한월을 잡게 되면 그놈만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야.”

문주에 미치지 못할 뿐, 말도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정확한 상황이 파악된 건 아니지만 뭔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분명히 알았다.

자신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누굴 죽일지 고르는 척하는 이것이 시간을 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대형. 제발 좋은 방법을 찾아내십시오.

말은 문주에게 눈빛을 보내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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