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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53화 (130/210)

153화. 흑사련의 비밀기지 (3)

* * *

주위를 둘러보는 강한월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눈빛과는 다르게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제대로 진영을 갖춘 호교전사.

실제로는 처음 마주하는 것이지만, 꿈속에서는 수도 없이 맞대결을 펼쳤던 혈교의 주력군.

얼마나 많은 정파의 무사들이 저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던가.

고수 중의 고수인 척혈단 단원들조차도 최후에는 자폭해버리는 저들에게 운명을 달리했었다.

꿈속의 일이지만 그래도 원수라면 원수.

저들이라면… 거리낌 없이 살수를 펼칠 수 있을 듯했다.

“하하하, 쥐새끼가 숨어들었구나.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어느새 달려 나온 총관이 호교전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강한월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잘 알고 왔소.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지도 모르고.”

“닥쳐라! 네놈이 무림맹 시설을 파괴했다고 기고만장이구나! 이곳도 무림맹처럼 녹록할 줄 알았느냐?”

“설마. 영생궁이라는 사교를 만들어 생명원 간판을 걸고 활동했던 곳인데, 분명 무림맹 시설보다는 몇 단계 위겠지.”

감히 겁도 없이 생명원을 언급하다니!

분노를 참기 힘들었는지 총관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이로써 분명해졌군! 역시 너는 생명원주 형님을 헤친 놈이구나. 내 오늘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생명원주를 죽인 게 나라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강한월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굳이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형제의 원수라고 생각하던 부모의 원수라고 생각하던, 적들이 더 분노하면 할수록 자신도 살기를 생성하기에 유리해질 테니까.

“당신은 말이 많군. 생명원주는 죽을 때도 말이 없었는데 말이요.”

“이… 이 자식이! 언제까지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지금부터 지옥을 경험하게 해줄 테니까!”

삐리리이이익~

총관의 호각이 기이한 음율을 뿜어냈다.

그에 맞추어 호교 전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챠챠챠챠창.

비술로 탄생한 호교 전사들은 가장 약한 자도 일류 이상.

일류에서 초절정까지의 백여 명의 무사들이 단 한 명을 향해 검을 겨누는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사악하고 배덕한 적으로부터 신성을 지키는 호교 전사들이여! 진리를 외면하고 악에 퍼뜨리는 적을 섬멸하라!”

호교 전사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원래 이런 거창한 말을 내뱉어야 하는 건가?

강한월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사이 날카로운 검기가 사방에서 몰아쳐왔다.

총관의 명령어는 웃음을 자아냈지만, 전사들의 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샤악, 쿠르르릉, 쌔애액.

호교전사가 되기 전엔 각자 다른 무술을 익혔기에 날아오는 검기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오히려 강력한 상승 효과를 만들어 냈는데….

콰콰콰쾅!

온갖 검기가 쏟아진 자리. 강한월이 서있던 그곳이 폭탄이라도 맞은 듯 쑥대밭이 되었다.

물론 강한월은 이미 자리를 옮긴 후였고 말이다.

“저… 저기! 머리 위다! 다들 조심해!”

총관이 다급한 경고를 발하는 순간, 공중에 떠 있던 강한월이 전사들의 중앙으로 떨어져 내렸다.

샤각.

발이 땅에 닿기도 전, 가장 가까이 있던 전사 둘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목을 칠 수도 있었지만 일부로 팔을 자른 것인데… 성전이 선포될 때까지 목숨은 붙여 놓으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샤각, 샥.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몰려 있는 전사들 사이를 누비는 강한월은 양 떼 사이에 풀어놓은 호랑이 같았고,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검을 한 번 놀릴 때마다 어김없이 팔다리 몇 개씩이 떨어져 내렸다.

마불진경의 무공도 아니었고 금검문의 절학도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꼭 필요한 정도의 힘만 담고 거침없이 흘렀다.

물론 상대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일단 자연체의 경지가 익숙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흐음… 저 자식이….”

예상을 뛰어넘는 강한월의 무위를 보고 총관이 탁한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한숨과는 달리 그다지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는데, 지금 강한월과 맞서고 있는 호교전사 일백이 다 쓰러지더라도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호교전사는 일천 명이나 있었고, 실력도 가장 떨어지는 병졸에 불과하니까.

그래,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해줘야 하겠군.

하지만 지옥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삐이이익~

다시 한번 귀청을 찢는 호각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뒷줄에서 오십 명의 붉은 두건을 쓴 무사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이 누군지는 강한월도 알고 있었다.

성전사(聖戰士).

머릿수로 우위를 점하고 자폭으로 마무리 짓는 호교전사들과 달리 성전사는 진짜배기 고수들.

강한월이 꿈속에서 봤던 장면들에 따르면, 구파일방의 정예들에게도 밀리지 않고 접전을 펼쳤고, 결국 전멸하긴 했지만 무당파 검수 칠십이 명에 맞서서 그 절반을 한 줌 혈수로 화하게 만든 자들인 것이다.

콰아아앙!

핏물의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붉은 장력이 휘몰아쳤다.

혈교를 수호하는 핵심 전력답게 성전사들의 실력은 월등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상황일 때 그렇다는 말이고, 절대경을 넘어 자연체를 이룬 강한월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샤악.

역한 비린내를 풍기며 날아드는 장력을 가볍게 베더니 내친김에 성전사의 팔까지 베어버렸고, 옆구리를 노리고 쇄도하던 장력은 왼손으로 맞받아쳤다.

장력이 충돌하는 폭음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마치 봄바람이라도 가르는 것처럼, 강한월의 왼손은 붉은 장력을 가르고 성전사의 가슴을 가볍게 가격했다.

퍼억.

타격음은 작았지만 성전사는 그대로 무너지며 붉은 선지피를 꾸역꾸역 게워냈다.

강한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궁극적으로는 심검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만, 그 외의 이런 박투도 연습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기대만큼 자연스레 움직여지는 몸, 공력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이 스스로 반응하여 힘을 보태는 역근경 공력.

투전장이나 혈랑대와 싸울 때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무르익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마불진경 무공을 잃은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고, 남은 것은 역시나 심검인데….

한편, 강한월과 마찬가지로 총관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애써 제조하고 훈련시킨 호교전사와 성전사들이 연달아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데도 웃음이라니?

왜냐하면 성전을 선포하기 위해선 피 흘림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지옥문을 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한월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기 때문.

그러니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수밖에.

‘후후후, 그래. 그렇게 조금만 더 칼춤을 춰봐라. 네가 날뛰면 날뛸수록 더욱 강력한 성전이 발동될 테니까.’

총관이 생각도 못 했던 것은 강한월이 본인보다 성전에 대해 더 많이 겪어봤다는 것.

물론 장무영의 기억이 꿈의 형태로 보여진 것에 불과했지만 성전에 대한 척혈단의 정보는 매우 구체적이었고, 수십 번의 대결을 펼치며 얻은 정보이다 보니 실전 경험이 전무한 총관보다 못할 게 없었다.

어쨌든 결론은 강한월도 그리고 총관도 성전의 발동을 위한 사전 작업을 차근차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전각의 꼭대기에서 대결을 지켜보며 성전 발동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도 했고 솔직히 성전 발동 이전에 나서기엔 겁이 나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그런 정옥수의 눈빛이 전각 창문 안쪽에서 싸늘하게 빛났다.

그녀의 눈길은 강한월의 허리춤을 향해 있었다.

‘흥, 강한월 저 자식이 나를 놀리려는 건가? 감히 내 삼안혈도를 가지고 이곳을 습격해?’

소림사에서 단전이 아니라 심장을 찔렀어야 하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금방 생각을 바꿨다.

새옹지마랄까… 오늘의 작전이 성공하기만 하면 왜려 잘된 일.

싸늘한 시체로 만드는 것보다는 평생 부려먹을 노예로 만드는 게 더 이익이니까.

콰아앙!

샤각, 퍼억.

정옥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강한월의 검과 주먹은 더 많은 피를 만들어냈고, 모두의 기대처럼 성전이 발동될 조건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었다.

* * *

‘호호, 역시 기다리지 않고 먼저 오기를 잘했네.’

진가린은 여유 있게 시설 내부로 침투했다.

모두의 이목이 강한월과 전사들의 대결에 집중된 데다가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폭음과 고함소리 덕에 소리를 낼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보아하니 강한월이 여유 있게 적들을 밀어붙이는 듯했고, 그사이 자신이 시설을 망가뜨리면 임무 완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천뢰를 강한월이 가지고 있다는 점인데… 만약 자신이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콰콰쾅!

아, 아닌가? 시설만 폭파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구나. 괴인들도 함께 폭파시켜야 하니까.

흠… 그럼 한 개씩 나눠서 가져와야 하는 건데 그랬네.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는 것은 그만큼 침투가 수월했다는 뜻.

어쨌든 시설의 지하까지 무사히 들어간 진가린이 하나하나 방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에서는 붉은 바람막이를 걸친 술법사들이 열심히 약물을 제조하고 있었다.

굳이 뒷수습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황.

진가린은 바람처럼 쇄도하여 백학을 휘둘렀다.

경지에 오른 무영보는 술법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였고,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세 명의 술법사가 피를 뿌렸다.

살인을 꺼려하는 그녀 입장에선 정말로 과감한 한 수.

사람을 재료로 괴물을 만드는 술법사들 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방안의 약병과 도구들을 모조리 박살낸 후, 진가린은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에는 사람은 없었고 온통 붉은색 표지의 책들과 양피지가 가득 차 있었는데, 백학이 검기를 몇 번 뿌리자 모조리 재가 되어 사라졌다.

호호, 이거 순조로운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긴 복도 끝에 앞의 방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큰 공간이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무언가 중요한 장소임이 분명했다.

진가린은 은신술을 최대한 발휘해 조심스레 접근했다.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왔는데, 꽤나 여러 명이 내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문 앞에 도달한 그녀가 청력과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려 안쪽을 살폈다.

먼저 느껴지는 기운은 열두 명.

좀 전에 해치우고 온 자들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것으로 보아 술법사들이 분명했다.

그리고 매우 강렬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는 두 명.

호흡이 이질적이면서도 극단적인 음기를 담고 있는 것이 호위를 맡은 괴인이 분명했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은 마지막 세 개의 기운.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한 것인데, 살아있는 생명체인지 아니면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요상한 기운이 아주 미세하게 그녀의 기감을 자극했던 것이다.

불분명한 것이 있으면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을 밀어붙여서 모조리 파괴하고 볼 일.

머릿속으로 수 계산을 끝낸 진가린이 과감하게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콰앙!

나무 문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는 사이, 진가린의 그림자는 이미 첫 번째 호위의 눈앞에 도착했다.

어… 어…?

술법사 몇몇이 당황한 소리를 채 내뱉기도 전에 첫 번째 호위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쌔애액~

그 순간 진가린이 던진 백학이 가공할 속도로 두 번째 호위를 향해 날았다.

검사가 검을 던진다는 건 이 한 수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

과연 백학은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듯 두 번째 호위의 심장 앞에 나타났다.

푸욱.

살가죽이 꿰뚫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 여유 있게 술법사들을 정리하면 되겠다 생각하던 진가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당연히 심장에 박혀 있어야 할 백학이 호위 무사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이다.

비록 호위의 손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지만, 그가 자신의 회심의 일격을 막아낸 것은 분명했다.

혼신의 공력을 담아서 던진… 천하제일의 명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백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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