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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55화 (132/210)

155화. 흑사련의 비밀기지 (5)

* * *

“저… 저년이 하필 저곳으로…!”

성직자와 술법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수조를 바라봤다.

내상을 입고 무기 여럿에 당했으니 독 안에 든 쥐새끼 신세인 것은 맞는데, 하필 그 독이 귀중하기 그지없는 주교 재료의 수조라는 게 문제였다.

“술법사 당신들 생각은 어떻소? 내가 수조로 들어가 그년을 잡아 오면….”

“어허, 그런 건 꿈도 꾸지 마시오. 수조 안의 재료는 마치 자궁 속의 태아처럼 불안정하고 연약한 상태라는 말이요. 만약 수조 안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십중팔구 큰 손상을 입을 거요.”

“그런가? 어쩔 수 없군. 쥐새끼가 숨을 못 참고 수조 밖으로 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하지만… 만약 수조 밖으로 나오기 전에 주교 재료를 망가트리기라도 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소. 저년도 지금 자신의 생명줄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재료를 망가뜨리는 순간 자신의 생명도 끝인 걸 알면서 허튼짓을 하지는 않을 거요.”

불안해하는 술법사들을 뒤로하고 성직자는 풀쩍 몸을 띄웠다.

물이 찰랑거리는 수조 입구에 올라선 그는 안력을 끌어올려 물 안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수백 종의 약재가 투입된 액체는 짙고 혼탁해서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흥, 위로 떠 오르기만 해봐라. 고개를 내미는 순간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

한편, 진가린은 수조 바닥에 앉아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등에 꽂힌 단도와 비수 등을 뽑아내고 지혈을 했지만, 물 속이라 그런지 피가 멈추질 않았다.

칫, 이거 곤란한데.

전문적으로 귀식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원래대로라면 숨을 참고 반 시진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공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을 때 이야기.

지금처럼 내상을 입은 데다 출혈까지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길어야 이 각, 어쩌면 그보다 짧을 수도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수조 밖으로 나가는 순간 죽은 목숨인데….

이것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진가린은 손을 뻗어 옆에 둥둥 떠 있는 물체를 만져봤다.

시체처럼 미동도 없는 그것은 알몸의 육체 두 개였는데, 약물을 주입하고 있는지 몸 곳곳에 긴 대롱이 꽂혀 있었다.

비술의 과정 중인 재료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성직자와 술법사들이 공격을 멈출 정도로 매우 귀중한 재료이고, 이대로 놔두면 위험한 무기가 될 테지만 당장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는 존재.

이제 어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매우 고민스러웠지만 진가린은 결심을 했다.

어차피 이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방법은 없으니, 기회가 있을 때 이것들을 망가트려 임무나 완수하기로 한 것이다.

뭐, 내 목숨은 단장이 구해주겠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한 후 재료의 몸에 꽂혀 있는 대롱들을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꿈틀.

대롱을 뽑을 때 시체처럼 미동도 하지 않던 육체가 짧은 경련을 일으켰다.

진가린도 덩달아 흠칫 놀랐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대롱은 모두 제거되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약물이 주입되지 않으니 이 비술은 실패로 끝나겠지?

나도 이제 움직이지 말아야지. 그래야 숨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참을 테니.

진가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기에 그 이후의 일은 볼 수가 없었다.

아니, 눈을 뜨고 있더라도 사실 알아채기 힘든 것이기는 했다.

주교 재료의 육체들은 특수한 약물을 빨아들이고 흡수하는 술법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대롱이 뽑혀 주입이 멈추자 육체는 약물 대신 흡수할 무언가를 찾았다.

수조 속의 물에는 수백 가지 약재의 기운이 넘쳤지만, 그것들을 모두 제치고 육체가 선택한 것은 진가린의 피.

등 뒤의 상처에서 흘러나와 수조 물속으로 퍼져 나가는 피가 대롱이 뽑힌 구멍을 통해 육체 두 개의 몸속으로 스르륵 빨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수조의 물속에 녹아 있는 여러 가지 기운들 중에 혈교의 비술에 가장 적합한 것이 진가린의 피였기 때문이다.

과거 오성상단에서 돼지 혈승의 피를 주입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피와 함께 주입된 혈령의 흔적이 미세하게나마 아직 남아있었고, 비술이 진행 중인 육체들은 그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챈 것.

피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상처에서 흘러나와 재료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수조 밖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성직자와 술법사들은 절대로 알지 못했다.

* * *

성전의 위력은 대단했다.

비록 혈령을 가진 혈승이 직접 선포한 것이 아니어서 최상의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엄청났다.

이백 년 후 미래에서도 단 한 명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이 정도 성전이 선포된 적은 없으니, 강한월 입장에선 영광이라면 영광.

크르르릉….

팔다리가 잘려 바닥을 뒹굴던 전사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처음엔 순교를 부르짖고 기도문을 외웠지만, 점차 눈동자가 붉어지며 짐승의 울음소리를 냈다.

광신도와 야수가 섞여 있는 모습.

강한월이 바라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모습의 적들이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살기를 일으킬 수 있을 테니까.

광포한 울음소리에 걸맞은 거칠고 난폭한 공력을 뿜으며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확실히 더 강하고 빨라진 모습. 게다가 죽음도 두렵지 않기에 일체의 망설임이 없는 과감한 움직임.

슈악, 콰앙, 채채챙.

날아드는 온갖 종류의 공격을 피하며 강한월이 투명검을 만들어냈다.

손바닥에서 쓰윽 솟아오른 투명검은 확실히 무림맹 시설에서 싸울 때보다 더 크고 영롱했다.

진정한 심검을 원하는 강한월 입장에선 물론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시작으로는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커억.

성전 선포로 강화된 전사들의 육체도 투명검의 예리함을 당해내진 못했다.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투명검이 맨 앞에서 달려오던 전사의 머리를 둘로 갈랐고, 피와 뇌수가 튀는 순간 두 개로 분리된 투명검이 뒤따라오던 전사들의 관자놀이에 호두알만 한 구멍을 뚫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투명검은 다시 넷으로 늘어나더니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았고, 순교를 바라는 광신도는 날아드는 검을 피하지 않았다.

샤악, 퍼엉, 크아악.

대학살이 펼쳐졌다.

팔다리는 잘렸을망정 목숨은 붙여 놨던 좀 전과 달리, 지금의 강한월은 오로지 생명을 끊기 위해 투명검을 조정했다.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지만 정옥수와 총관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성전이란 원래 이런 것이기 때문.

순교자의 피가 쌓이고 쌓여 강물을 이룰 때, 신의 분노가 폭발할지니.

콰아아아앙!

그때가 마침내 도래했다.

가장 먼저 폭발한 것은 피와 뇌수를 흘리며 바닥을 뒹굴고 있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머리 하나였다.

폭발의 열기는 정확히 강한월을 향했다.

투명검을 불러들여 막거나 강력한 호신강기로 기벽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강한월은 온몸으로 열기를 맞았다.

자연스레 역근경이 일어나며 큰 부상은 막았지만, 무복 여기저기가 녹아 없어지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타들어 갔다.

무복이 녹아버린 자리엔 피부까지 벌겋게 익었다.

엄청난 고통.

과연 이 고통이 심검을 완성해줄 수 있을까?

강한월이 극심한 고통을 오롯이 담아 살심(殺心)을 일으켰다.

순간 허공을 선회하던 투명검이 붉은빛을 띠더니 수십 개의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막 연속적인 자폭이 시작되던 찰나.

유성비에 휩쓸린 전사들이 자폭도 못 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모두가 유성비에 당한 것은 아니었고, 십여 명의 전사들이 강한월 근처까지 접근하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콰콰쾅, 콰쾅, 콰아아앙!

이번 것은 감히 맨몸으로 부딪힐 수 없었다.

초월경의 우윳빛 호신강기를 두른 강한월이 폭발의 열기를 피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자폭 공격을 무사히 피했음에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어째서…? 살기가 일어나지 않는 거지?’

살기를 자양분으로 하는 심검을 시도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무대를 만든 것인데, 살기가 충분히 일지 않으니 모든 것이 허탕이었다.

적들은 충분히 흉악했고 화상의 고통도 자극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결과.

상심이 큰 탓일까 아니면 심력을 너무 소모한 탓일까, 공중에서 내려서는 강한월의 움직임이 상당히 지쳐 보였다.

“교의 전사들아. 자신을 불살라 교를 구하고 신께 영광을 돌려라!”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총관이 주문과 다름없는 명령을 외쳤다.

전사들의 눈동자가 더욱 붉어지며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었다.

선천지기에 비술의 힘까지 한 번에 불태우는 추진력으로 백 명의 전사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그에 맞서 비행의 속도를 높인 투명검.

쐐액~

퍼억.

폭발을 사전에 막기 위해 두개골을 깨며 날았지만, 모든 폭발을 막진 못했다.

투명검도 연속적인 폭발에 휘말렸고, 지옥 같은 열기가 강한월에게도 몰아쳤다.

콰아앙!

순수한 얼음 같던 투명검은 뿌옇게 탁해졌고, 강한월의 호신막도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역근경이 끊임없이 샘솟은 덕에 힘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문제는 심력.

실망감과 허탈감에 마음이 지치자 결국 투명검이 아지랑이처럼 증발했다.

‘심검을 완성하기는커녕 투명검조차 유지를 못 하는구나….’

한숨을 내쉰 강한월이 허리춤에서 도를 뽑았다.

삼안혈도의 예리함을 앞세워 전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발은 빠르고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보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두세 개씩의 머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성전은 이런 식으로 물리칠 수 없다는 걸 강한월도 알고 있었다.

초월경의 속도로 움직였음에도 미쳐 목을 베지 못한 전사들이 폭발했고, 심지어 베어져 공중으로 날아가던 머리마저 벽력탄처럼 터졌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총관이 전사의 수가 부족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추가로 성전을 활성화시켰다.

수백의 살아있는 폭탄에 둘러싸인 강한월.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평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게 체념의 감정까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전사들.

실핏줄이 모두 터진 눈알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고, 목에서부터 솟아오른 핏줄은 관자놀이를 지나며 쿨렁거렸다.

삼안혈도를 최대의 속도로 휘둘러도 저 중 삼 할은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 손을 놔 버리면… 그러면 편해질 텐데.

강한월이 눈을 감았고 삼안혈도도 아래로 축 처졌다.

지켜보던 정옥수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수십의 폭발에 휩쓸리면 산산조각이 날 텐데… 노예로 만들 기회가 날아가는 것인가?

정옥수가 아쉬운 한숨을 내쉬는 순간, 강한월이 감았던 눈을 떴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

잠시 후 진가린이 이곳에 올 텐데… 이대로면 그녀도 위험해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너무 늦은 것이어서, 이미 몇몇 전사들의 폭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진가린은 살려야 한다.

방법은 없었지만, 강한월은 간절히 그것을 원했다.

그 순간, 막 폭발을 시작하던 십여 명의 전사들이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투명검이 다시 나타난 것도 아니었는데… 아니 투명검을 썼다고 한들 완벽한 동시에 열댓 명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이건… 설마…?

강한월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지만 생각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제이, 제삼으로 연달아 터지는 폭발을 막지 못해 열풍에 휩싸인 강한월이 멀찍이 날아가며 바닥을 굴렀다.

“성전을 종료한다!”

정옥수가 안도하며 크게 외쳤다.

성전 발동에 투입되었던 전사들은 다시는 재사용할 수 없지만, 성전을 종료함으로써 추가적인 폭발은 막을 수 있었다.

이 정도에서 멈춰야 강한월의 육체를 보존하고 노예로 만들 수 있으니까.

흐흐흐, 강한월.

내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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