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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59화 (136/210)

159화. 삼혈승 비상 회동

* * *

황궁 후원의 아름다운 정자.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토닥여주는 정취가 풍기는 곳이었지만, 귀빈을 이곳으로 안내 중인 궁녀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손님의 몸에선 저승사자와 같은 무서운 분위기가 쉼 없이 뿜어져 나왔고, 정자 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오줌을 지리려는 순간 다행히 정자에 도착했고,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어 손님을 안으로 모신 궁녀는 귀신이라도 쫓아오는 듯 뛰어서 그곳에서 멀어졌다.

“용, 어서 오게. 잘 지냈냐는 인사는 차마 못 하겠군.”

“다들 마찬가지 아닌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어.”

탁자에 놓여있던 술잔을 비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용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자,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지. 모두 다 습격을 당했으니 창피할 것도 없지. 각자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먼저 공유를 해보세.”

뱀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창피할 것 없다고 한 것은 자신이지만, 말을 하면서 점점 창피해졌고 그것은 분노로 이어졌다.

채 끝을 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자 이어서 용이 이야기를 했다.

실은 더욱 면이 안 서는 것은 용이었다.

혈승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면 교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는 성전. 그 성전을 발동하고도 단 두 명의 습격을 막지 못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명에 나선 호랑이.

“무림맹의 시설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네. 완성을 목전에 둔 혈주들이 모두 파괴되었어. 다행히 우리 남궁세가를 비롯한 오대세가의 무인들은 무사했지만… 그것 또한 문제더군.”

“어째서?”

“기지를 습격했던 놈이 혈교에 대해 떠드는 걸 그들이 들었으니까. 수습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오대세가와 무림맹 내부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네.”

“흥, 소문은 무슨. 그게 진실인데.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고.”

“물론 그렇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게다가 습격자의 입을 통해서 밝혀지는 건 더더욱 싫고.”

“그럼 고민할 필요 없겠네. 오대세가 무인들… 입을 다물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이미… 조치를 취했네.”

이 회동에 참석하러 오기 전, 기지에 있던 무사들을 모두 모아 모종의 장소로 보냈다.

습격자의 본부 위치를 알아냈으니 체포하러 간다는 것인데 당연히 거짓이었고, 오대세가 무사들은 모두 전투 중 사망으로 처리될 예정.

상황 공유가 끝났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술만 들이켰다.

답답했던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건지.

“원숭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있나?”

“시체를 가져와 살펴봤지. 형편없이 망가지고 녹아내려 분석이 어려웠지만 결국 밝혀냈네. 구유탈혼총에 당한 것이었어.”

“구유탈혼총? 그건 이 시대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잖아. 우리가 찾으려고 눈독 들이던 것 아닌가?”

“맞아. 이상하지? 그리고 이상한 일이 하나 더 있네. 원숭이의 혈령은 어디로 갔을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북경 근처에서 벌어진 일이잖아.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던 뱀 자네에게 흡수된 것 아니었나?”

“그게 아니니까 하는 소리지. 나는 원숭이의 혈령을 흡수하지 못했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유탈혼총, 사라진 원숭이의 혈령… 왠지 다른 혈승이 개입했을 것 같은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

“혹시… 자 혈승?”

“말도 안 되는 소리. 자 혈승이 원숭이를 죽이려 했다면 구유탈혼총이 필요했을 리 없어. 손가락 한번 까닥하면 될 일인데 뭐 하러 그런 기물을 써?”

“그건 그렇군. 그럼 누굴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동료는 양, 개, 소, 말인데… 양은 말할 것도 없고 개도 구유탈혼총 따위를 쓰진 않을 거야.”

호랑이의 말이었고, 무공 담당 혈승의 자부심을 담고 있었다.

조금 재수 없긴 했지만 뱀과 용도 반박하진 못했다. 무공에 특화된 혈승이라면 암기를 쏘는 총통을 경원시한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 소나 말이란 이야기인가?”

“모르지. 어쨌든 자금 담당이라면 별문제 없어. 그들이 모아 놓았을 자금이 필요하긴 하지만 황실을 장악한 이상 한동안은 돈 걱정은 없으니.”

“하지만… 만약 그들이 자 혈승의 지시로 움직인 거라면?”

만약 그렇다면 그건 정말 큰 일.

물론 유선에게 속은 것이지만 그들은 천마가 자 혈승이라고 믿고 있었고, 최강의 무력 집단인 천마신교를 차지한 자 혈승이 막대한 자금력까지 확보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양, 개, 소, 말은 모두 자 혈승 밑에 있는 게 아닐까?”

“알 수 없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맞겠지.”

황실과 무림맹 그리고 흑사련을 장악한 후 그들은 세상을 다 얻었다고 자신했었다.

자 혈승이 두렵긴 했지만 나머지 혈승 모두를 규합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자신감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어쩌면 좋겠나? 뱀 자네라면 분명 계획이 있겠지?”

“당장 자 혈승을 이길 수 있는 계획 같은 건 없어. 하지만 차근차근 우리 힘을 키워갈 계획은 있지.”

“그게 무엇인가? 빨리 이야기해보게.”

“교를 키워야지. 아주 빠르게 중원 전체에 교세를 퍼트려야 하네.”

“교? 다시 혈교의 기치를 내걸자는 말인가?”

“혈교는 자 혈승의 것이니 우리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겠지. 어쨌든 교는 필요하네. 천하 만민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우리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게 만든다면 자 혈승도 어쩌지 못할 거야.”

용과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 년 후 미래에서 실패를 맛봤기에 찜찜하긴 했지만, 수백 수천만의 민초들을 세뇌하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교세를 빠르게 확장할 계획도 있겠지?”

“그게 좀 아쉬워. 결국은 돈이거든. 자금 담당 혈승들이 합류한다면 쉬웠을 텐데… 아쉽지만 우리가 가진 자금으로 실행에 옮길 수밖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용과 호랑이의 머릿속에 몇 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전생에서 이미 써먹은 방법이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쌀을 풀어 배고픔을 잊게 해주고 약재를 써서 병을 치료해주면 되는 일. 그렇게만 하면 별다른 포교 활동 없이도 믿음이 생겨나고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엔 확실히 더 수월할 거야.”

명망 있는 도교와 불교 문파들이 대거 참여해 있는 무림맹에서 교의 창립을 선언하고, 황실에서 적극 지지하여 국교로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흑사련의 악인들마저 교리에 감화되어 입교하는 모양새를 꾸민다면….

역사상 그 어느 종교보다도 더 빠르게 교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점이 있어. 현세의 자 혈승은 천마, 곧 마교의 수장이지. 자 혈승이 우리를 적대시한다면 사람들은 악한 종교인 마교가 선한 종교인 우리를 탄압한다고 생각할 거야. 선과 악의 대립구조가 만들어지면… 민초들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는 뻔한 일이니까.”

어느새 혈승들의 표정과 눈빛이 변해 있었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신감과 야욕이 가득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해볼 테면 해보자,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

그런 마음이 불끈 치솟았다.

“아주 좋군. 그럼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교의 이름을 정하고, 조직을 구성해야….”

교의 이름은 생명교로 하기로 했다.

이름이 쉬우면 쉬울수록 민초들에게 쉽게 각인되기 때문인데, 용이 운영하던 영생교와 생명원의 교리와 교재를 차용하면 쉽게 종교의 틀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주를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교의 성지로 알려진 공동파나 청성파에서 적당한 인물을 찾아 혈노로 만든 다음 교주 자리에 앉히면 될 일이었다.

두 시진 가량이 흘렀을 때 교의 모습이 갖춰졌다.

전생에서 한번 해봤던 일인 데다 현생에서도 거대 조직을 이끌고 있는 그들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

구체적인 것 몇 가지를 더 점검하고 협의된 내용을 모두 종이에 적자 공식적인 회동은 끝났다.

“홀가분하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어. 자, 이제 술이나 마실까? 생명교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그래야지. 그런데 한 가지 놓친 이야기가 있네.”

“그게 뭐지? 협의가 필요한 일인가?”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추며 호랑이가 물었다.

머리 쓰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의 입장에선 이미 피곤한 상태. 더 이상 무언가를 협의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협의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네. 이번에 우리를 습격한 놈에 대해서.”

“그건… 구 무림맹의 잔당들 아닌가? 그게 어때서?”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우리 시설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호랑이는 뱀의 문제 제기가 귀찮은 표정이었지만, 용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말을 받았는데….

“정보만이 아니야. 그자의 무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네. 성전의 잔해를 조사했는데 매우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네.”

“요상한 투명한 기운을 이기어검처럼 사용한 걸 말하는 건가? 나도 그건 조사했지만 굳이 우리가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 그게 다가 아니야. 무림맹 시설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 흑사련 시설에는 특이한 흔적을 남기고 갔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하북의 시설은 강한월이 아닌 사마염의 일조에 당한 거라 뱀은 이 논의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저 도도한 용이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질 정도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사망자의 사인을 확인한 조사관들이 믿을 수 없는 의견을 냈네. 일부 사망자들은 어떤 한 수법에 당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심검인 것 같다는.”

“뭐?”

뱀과 호랑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호랑이는 특히 그랬다. 무(武)를 담당하는 그에게 심검이란 단어가 주는 충격은 더욱 컸으니까.

“지금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고 하는 건가?”

“물론 나도 믿지는 않아. 하지만 조사관들이 허튼소리를 할 리도 없으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하지만 습격자는 젊은 놈이라고 하던데? 자 혈승이나 신주의협이라면 몰라도 젊은 놈이 심검을 펼쳤을 리는 없어!”

“무공에 대해서라면 호랑이 자네 생각이 맞겠지. 하지만 왠지 찜찜해서 말이지. 정말로 심검을 쓰는 적이 있다면 큰 변수가 될 수 있으니까. 내 묻겠네. 호랑이와 뱀 자네들은 심검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나?”

“나… 나는….”

호랑이는 머뭇거렸고 뱀은 아예 입을 다물었다.

본 적도 없고 심지어 상상해본 적도 없는 전설의 무공을 상대로 무슨 승패를 논한다는 말인가?

“용 자네 때문에 술맛만 떨어지는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야. 만약의 사태에 미리 대비함이 옳지만, 그래도 심검은 너무 나갔네.”

“아니, 나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확인하는 게 맞다고 봐. 물론 심검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젊은 놈에 대해선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어. 아무래도… 소림의 그놈 같거든.”

뱀의 촉이 발동했다.

하북의 시설에 오지 않았기에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용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습격을 주도한 것은 강한월 같았다.

몇 번이나 자신의 일을 망쳤던 그놈.

심검이고 뭐고를 떠나 만약 그놈이 살아있다면 붙잡아 복수를 해주는 게 맞으니까.

“강한월. 또 그놈이란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넓고 인재는 많다지만, 경지에 오른 젊은 놈이 많을 리는 없지. 교를 창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놈은 반드시 잡아야 해.”

혈승들이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

강한월을 잡을 별동대 조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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