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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62화 (139/210)

162화. 생명교 (3)

* * *

지루해 죽겠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종오의 눈에 대공자가 들어왔다.

하하, 성과가 있으셨나 보구나.

대공자의 밝은 표정을 보니 종오도 기운이 났다.

어서 이리 오시라고 손을 흔들다가, 종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가 대공자의 앞을 가로막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 저자는…!

객잔에서 이곳까지 길을 함께했던 훤칠한 중년 사내, 바로 그였다.

“젊은 친구. 볼일은 잘 보셨는가?’

불쑥 나타난 양 혈승을 보고 대공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변을 살피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의 등장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사람들로 붐비는 상황이라지만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라면?

“아, 나는 또 누구시라고. 볼일은 아직이지요. 저기 동생이 아직 줄을 서고 있습니다.”

“그런가? 줄을 서서 쌀까지 받아 가려고? 나는 또 품속의 책자를 훔친 걸로 볼일이 끝난 줄 알았지.”

대공자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이 잠입했던 것은 물론 책자를 들고나온 것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이자는 도대체 누굴까?

생명교의 고수인가? 아니면 다른 조직의…?

그가 누구든 위험한 상황은 매한가지. 한시적으로 손을 잡고 있는 강한월의 조직을 제외하곤 천하 모두가 천마신교의 적이니 말이다.

“그런 또 무슨 말씀이신지? 여튼 저는 이만 동생에게 가 보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양 혈승이 다시 길을 막았다.

눈빛과 표정도 어느새 차갑게 변해 있었다.

“자네도 하수가 아니니 이미 알고 있겠지? 나와 싸워 봤자 승산이 없다는 걸. 도망갈 생각 말고 조용히 따라오게. 물어볼 게 있으니.”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요. 당신도 이렇게 교도가 버글거리는 곳에서 싸움 일으켜서 좋을 게 없을 텐데요?”

“좋을 건 없지. 하지만 문제 될 것도 없어. 마교의 첩자를 때려잡았다고 생명교를 욕할 사람은 없을 테니.”

치잇. 역시 알고 있구나.

대공자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성공 가능성이 없었다.

은근히 드러내기 시작한 양 혈승의 기세에 벌써부터 숨이 턱 막혀왔기 때문이다.

이 정도 기세라면…?

천마신교의 이인자인 부교주를 능가하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디서 이런 고수가?

종오만이라도 탈출시킬 방법이 없을까?

“후후,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구나. 하지만 소용없다. 천마가 직접 온다고 하더라도 너를 구해줄 수는 없을 테니까.”

“닥치시오! 감히… 천마님의 이름을 함부로…!”

“호오? 대단한 충성심이군. 천마의 제자라도 되는 건가? 하긴, 네 나이에 그 정도 성취를 이룬 걸 보면 천마의 제자일 가능성이 높겠군. 흐흐흐, 이거 의외의 성과인데.”

양 혈승이 기막을 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가오던 종오가 몇 걸음 남기고 멈춰 섰다.

절박한 대공자의 눈빛을 봤기 때문.

마찬가지로 대공자도 종오를 봤고, 제발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피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용맹하기로 유명한 흑마대 대주 종오가 대공자를 버리고 혼자 도망갈 리가 있겠는가?

“이보쇼,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감히 이분이 누구인지 알고!”

종오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양 혈승이 쳐 놓은 기막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더 이상 다가올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이거 안 치워? 어디서 요사한 사술을!”

급한 대로 소리를 질러봤지만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투명한 올가미에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후, 너는 수행무사인가? 아니면 마교 전대의 대주쯤 되려나? 너한테는 별 관심 없으니 닥치고 조용히 있어라. 여기 천마의 제자와 이야기 중이니.”

종오마저 걸려들자 대공자는 속이 타들어 갔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상대는 강해도 너무 강했고, 상당히 노련해 보이는 것이 협박이나 속임수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둘 다 무사히 벗어나기는 불가능. 둘 중 하나라도 도망쳐서 십만대산에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해야 했는데….

대공자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절대로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긴 했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으니….

그는 명색이 천마신교의 대공자. 한번 결심하면 더 이상 망설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 종오. 잘 들어라. 내가 기회를 만들 테니 너는 탈출해서 여기 상황을 천마님께 알려라.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거야. 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 】

안 돼요! 그럴 수 없습니다!

종오는 마음으로 울부짖었지만 대공자에게 전할 방법이 없었다.

기막에 갇힌 탓에 전음은 무용지물.

대공자는 천마통음술을 익혀 음파 없이 뜻을 전달할 수 있었지만, 종오는 그런 최상급 무공을 익히지 못했으니.

【 뭐야 그 불만스러운 표정은? 결정은 이미 했으니 넌 명령에 따라! 내가 죽는다는 법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

대공자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마기의 개방.

양 혈승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대공자의 하는 양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뻗어 나오는 마기는 평범한 마공이 아니었다.

천마의 제자, 정통 천마신공의 계승자에게는 여러가지 공능과 비술이 부여되는데, 지금 대공자가 절박하게 시전하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바로 천마폭기공. 실은 마신강림을 받아들일 육체와 기맥을 단련하기 위한 수련공인데, 비상 상황에서는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마신강림 대신 자신의 선천마기를 폭발시켜 가상의 접신 효과를 일으키고,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은 평소의 몇 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압!”

우렁찬 기합과 함께 대공자의 몸에서 천마폭기공이 발현되었다.

눈 깜박할 시간에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양 혈승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실은 바짝 긴장하고 제대로 대비를 했어야 하지만, 그러기엔 양 혈승의 자신감이 지나쳤고 결국 대공자에게 기회를 주었다.

쿠웅!

힘차게 내디딘 천마군림보에서 어마어마한 흡인력이 발휘되어 양 혈승의 움직임을 묶었고, 그 순간 내지른 주먹에서 폭포수 같은 경력이 뿜어졌다.

그제야 상대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눈치챈 양 혈승이 몸을 털어 천마군림보의 압력을 헐겁게 한 후 오른손을 뻗어 날아오는 경력을 맞받아쳤다.

콰아앙!

치잇.

양 혈승이 주춤주춤 몇 걸음 물러섰다.

생명의 근원인 선천마기가 천마폭기공으로 증폭된 공격은 절대경을 초월한 그로서도 가볍게 받아낼 수 없었던 것.

생명력을 태우는 자살 공격임은 대번에 알아챘다.

이런 류의 공격은 지속 시간이 길지 않으니, 서너 번만 잘 방어하면 상대는 제풀에 쓰러지게 되는 법.

그러니 사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인데, 주변 상황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쳐 놓은 기막이 공격을 막는 동안 약해졌고 공격에 동반된 폭음을 가리지 못했던 것. 무시무시한 소리가 밖으로 퍼지자 시설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쏠렸다.

자 혈승에게 바쳐질 생명원이 벌써부터 구설수에 오르는 건 좋지 않은 일.

게다가 자신의 본신 위력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는 것도 꺼려졌다. 분명 뱀, 용, 호랑이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그건 여러모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테니까.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대공자의 다음 공격이 몰아쳐왔다.

천마반월참.

천마신공의 여러 무공 중 예리하기로는 첫손 꼽히는 무공.

쭉 핀 손날에서 검푸른 반월형 기세가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무시할 수 없는 위력에 양 혈승이 어지럽게 손발을 놀려 천마반월참을 맞받아쳤고, 경력의 여세에 옷 소매가 너덜너덜해졌다.

얼추 대공자가 양 혈승을 몰아붙이는 모양새였지만, 대공자의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목숨을 걸고 마련한 기회인데, 종오가 빨리 달아날 생각은 않고 머뭇거렸기 때문.

사실 종오는 홀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뾰족한 방법은 없지만, 자신이 대신 목숨을 버리고 대공자를 구할 기회를 기다렸다.

대공자가 불같이 화낼 것을 알았지만 죽고 나면 혼날 일도 없을 것이니까.

“종오! 제발!”

대공자가 참지 못해 육성으로 외쳤다.

하지만 종오는 꿈적하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천마폭기공으로 증폭시킨 선천마기도 서서히 바닥을 보였다.

이제 기껏해야 두세 번의 공격을 가하면 자신은 기력이 다해 쓰러질 상황.

그 방법밖에 없으려나?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종오와 함께 탈출을 시도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뜻대로 안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겠지만,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그렇다면 지금 즉시.

휘이익.

대공자의 몸이 높이 떠올랐다.

이 장 높이에 뜬 그의 양 손날에 천마반월참의 예리한 기세가 맺혔다.

슈아악.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만들어낸 수십 개의 반월형 예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향하는 방향은 양 혈승이 아닌 뒤쪽에서 싸움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

“이런 미친…!”

양 혈승이 경악하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대공자의 승부수가 통한 것이다.

기막을 치고 소리를 막던 것에서 혹시 양 혈승이 생명원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꺼리지 않나 생각했고, 그렇다면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던 것.

“종오. 함께 가자. 뛰어!”

바람처럼 달려오는 종오와 함께 대공자는 양 혈승의 반대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양 혈승은 초월경의 고수라는 것.

양 혈승은 웅혼한 기를 넓게 뿜어내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반월형 예기를 막으면서도 재빨리 손가락을 튕겨 지풍 두 줄기를 발사했다.

핑, 피융~

제대로 겨냥도 안 하고 대충 발사한 것 같았지만 지풍은 스스로 생각이라도 하는 듯 방향을 잡더니 믿기 힘든 속도로 날아갔다.

“크윽.”

막 달려 나가던 대공자와 종오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대공자는 허리에 호두알만 한 구멍이 뚫렸고, 종오는 종아리뼈가 부러졌다.

“대공자님. 일어나세요.”

한 발로 억지로 일어서며 종오가 대공자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허리의 부상도 부상이지만 억지로 천마폭기공을 시전한 여파가 나타난 것.

“나… 나는 틀렸어. 종오… 너라도 어서….”

“그런 소리 마세요! 죽어도 같이 죽습니다.”

그러는 사이, 양 혈승은 쏟아져 내리는 반월형 예기를 거의 모두 걷어냈다.

이제 몸을 돌려 대공자와 종오를 잡으러 오려는 순간, 변수가 발생했다.

“어이, 아저씨. 이것도 막아봐요.”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시커먼 무언가가 모여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왔다.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거 천뢰거든요.”

양 혈승의 안색이 변했다.

미래에서 온 그는 천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만약 천뢰가 여기서 터진다면… 생명교의 포교 활동에는 지대한 악 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했다.

“치잇.”

막 천뢰를 던진 진가린을 노려보며 양 혈승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곽철과 진가린이 바람처럼 몸을 날려 대공자와 종오를 들쳐 업었다.

“가긴 어딜 간다는 말이냐!”

천뢰를 잡으러 몸을 날리면서도 양 혈승은 다시 한번 지풍을 날렸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폭음과 함께 날카로운 지풍이 쇄도했지만, 주교 일호와 이호가 뛰어들어 지풍을 튕겨냈다.

“진가린? 여기는 어떻게…?”

대공자가 놀람과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대화는 나중에. 일단 도망쳐야 해요.”

대공자와 종오를 업은 진가린과 곽철, 그리고 주교 일 이호는 바람처럼 달렸다.

양 혈승이 부드러운 기를 겹겹이 펼쳐 폭발 직전의 천뢰를 받아 든 순간에는 그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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