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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64화 (141/210)

164화. 짧은 회우 (2)

* * *

강한월은 심검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자 혈승으로서는 흡족한 대답. 그것을 누구보다 더 바라는 것이 바로 그이니까.

하지만 어째서 바라는지는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마치 강한월 스스로가 왜 심검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그래, 그렇게 두드리다 보면 심검의 문이 분명 열릴 것이다. 이 사부가 정확한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도움이 될 심법 하나를 전수하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 인도를 따라 중단전과 상단전의…. 】

자 혈승은 교령통의술을 통해 심법의 요체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고대 바라만교의 사제들이 범(梵)과 아(我)의 합일을 추구할 시 사용했던 수행법에 뿌리를 둔 것으로 원래 의식과 감각을 확장하는 데 탁월한 심법인데, 적절히 응용한다면 생각과 감정을 증폭하는 것에도 활용될 수 있었다.

심검을 발현하는 기가 살기이든 아니면 다른 감정이든, 이 심법을 익히면 분명 더 많은 기를 뽑아 쓸 수 있게 되는 것.

【 심법은 이미 뇌리에 각인되었으니 이제 서너 번 반복해서 운용을 해보아라. 절대로 잡념이 섞여서는 안 된다. 집중하고 또 집중해라. 】

자 혈승의 인도하에 강한월은 강제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강한월은 의식을 놓고 싶지 않았다.

왠지 이대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리면 사부가 떠나고 없을 거라 생각되었기 때문.

그리고 그 걱정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강한월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동안 곁을 지키던 자 혈승은, 그가 무아지경에서 깨어나기 직전 자리를 떴다.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교령통의술이 아닌 실제 만남으로 회포를 풀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이런 감정은 자신의 것이 아닌 신주의협의 것이니까.

심연으로 봉인되기 전 신주의협이 품고 있던 감정 일부가 몸에 남아 쓸데없는 감상을 일으키는 것일 뿐.

‘흥, 육체를 공유했더니 이런 불편함이 있구나.’

혹시나 미련이 남을까, 자 혈승은 나는 듯 빠른 속도로 산에서 멀어졌다.

* * *

강한월이 천천히 눈을 떴다.

굳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사부가 떠나고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대로 바위에 드러누워 석양에 물든 하늘만 바라봤다.

‘고작 이런 만남이라고…?’

그토록 고대했던 사부와의 재회였는데,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이런 것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사부님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지만 사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고, 이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을 기(氣)로 화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심검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던 강한월은 사방에 어둠이 내리고 별이 반짝이기 시작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단장, 왜 이렇게 늦었어요? 보고할 것이 태산인데.”

한밤중이 되어서야 본부로 돌아온 강한월을 향해 제갈윤이 투덜거렸다.

조금전까지의 그이 표정을 봤다면 감히 이런 불평은 할 수 없었을 터인데, 본부로 들어오기 직전 강한월이 표정을 다스린 탓에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보고?”

“아무래도 혈승이 한 명 더 나타난 것 같아요.”

“뭐야?”

강한월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는 데는 일만큼 적합한 게 없으니까.

늦은 밤이었지만 즉시 회의가 소집되었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제갈. 자세히 설명해봐.”

강한월은 제갈윤에게 요청했지만 설명은 진가린의 입에서 나왔다. 직접 겪은 것은 그녀와 곽철이니까.

“곽 오라버니와 저는 오늘도 생명교 포교지사 염탐을 나갔어요. 새로 문을 연 지사였고 역시나 사람들이 넘쳐났죠. 거기까지는 다른 지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런데?”

“거기서 천마신교의 대공자를 만났지 뭐예요.”

“신교의 대공자? 백일청 대공자를 만났다는 말이냐?”

“맞아요. 저한테 천년하수오와 무영보를 가져다준 바로 그 사람이요.”

자신이 직접 본 것은 물론 이후 대공자에게 들었던 것까지, 진가린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마신교도 생명교를 조사할 거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실은 민정화가 일부러 정보를 주면서 그쪽으로 유도한 것이니까.

놀라운 이야기는 극강의 무공을 선보인 중년 남자에 대한 것인데….

“어째서 그자가 혈승일 거라고 판단하는 거지? 챠크라의 기운이나 혈교의 초식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며?”

“주교 일 이호를 알아보더라고요. 기세만 보고 주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게 누구겠어요? 혈승이 분명해요.”

생명교에 나타난 혈승.

뱀, 용, 아니면 호랑이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데, 진가린의 생각은 달랐다.

“그 셋은 분명 아니에요. 몇 마디 나눠본 대공자도 생명교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게다가 그들은 이미 귀빈, 무림맹주, 흑사련주의 지위를 확보했고 얼굴도 드러났는데, 귀찮게 용모를 바꾸고 현장에 나타날 리 없죠.”

“뱀, 용, 호랑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답은 민정화의 입에서 나왔다.

“양 혈승이 분명해요.”

강한월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냥 감인 것이고 민정화는 객관적 근거가 있을 테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민 소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겠죠?”

“주교 일 이호가 그자의 지풍을 막을 때 약간의 부상을 입었어요. 사마 원주님과 광 대원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살펴봤는데, 비술에 의한 것이 아닌 순수한 정통 무공의 흔적이었죠. 혈승 중 무술 계열은 호랑이, 양, 개. 그중 호랑이와 개가 누군지는 우리가 알고 있으니 남은 것은 양이죠. 애당초 십이 혈승 중 밝혀지지 않은 건 자 혈승과 양 혈승뿐이니까 딱 들어맞기도 하고요.”

“자 혈승일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요. 만약 그 중년인이 자 혈승이었다면… 신교의 대공자는 물론이고 저희 대원들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민정화의 똑 부러지는 답변에 강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명의 혈승 중 드디어 열한 번째가 등장했다.

좋은 결말일지 아니면 불행한 결말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혈승 한 명 더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말 일은 아니겠죠? 이 일이 암시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맞아요. 분명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어요. 제갈윤 대원과 함께 분석을 해봤고 세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민정화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고, 첫 번째로 지목한 상황은 생명교 그 자체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회귀한 혈승들이 속한 조직은 혈교. 이름은 바꿨지만 종교의 형태로 세상에 나선 것이라 의미가 컸다.

“교를 내세워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들이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게다가 처음부터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데, 아무리 황금을 쌓아 놓고 있어도 오래 버틸 수 없죠. 즉, 끝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두 번째로 지목한 것은 양 혈승의 등장.

민정화가 주목한 것은 그의 위치였는데, 생명교와 한 편이 아니면서도 생명교 포교지사는 지키려는 듯 모였던 그의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냐는 것이었다.

“생명교가 열두 혈승 공동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면 양 혈승이 그렇게 등장할 리가 없겠죠. 바로 뱀, 용, 호랑이를 찾아가면 될 일이니까요.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 왜일까요?”

“생명교는 십이 혈승의 애당초 계획은 아니었다?”

“맞아요. 뱀, 용, 호랑이의 단독행동, 즉 딴생각을 품었다는 건데…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내부의 반란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핵심은 누구에게 대항해서 반기를 든 것인가?”

“자 혈승.”

“역시 단장도 짐작하고 있었군요. 그래요. 이미 황실과 무림맹 그리고 흑사련을 장악한 그들이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상.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 혈승 밖에 없어요. 그러면 자연스레 양 혈승에 대한 답도 나오죠. 양 혈승은 자 혈승에 속해 있다는 것이.”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를 써야 했을 정도로 강한월의 마음이 뜨끔했다.

매우 불안한,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

지금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강한월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민 소저. 그럼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천마신교에 관한 것이에요. 이번에 신교의 대공자와 양 혈승이 부딪힌 일. 우연이 발생한 이 일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이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민정화와 제갈윤은 광군영과 소영영을 불러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광군영과 소영영의 추론에 따르면 대공자는 대결 중 천마폭기공을 썼고, 그 대가로 무공을 모두 잃거나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종교의 형태로 생명교가 청해와 신강에 진출하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민 소저가 우려하는 것은… 천마가 먼저 생명교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겁니까?”

“맞아요. 절대로 원한을 잊지 않고 되갚아 주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사천당가이죠. 하지만 천마신교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아요. 하물며 천마 후계자인 대공자의 일이니 오죽하겠어요.”

말을 하며 민정화가 광군영에게 눈짓을 했다.

추가 설명을 해달라는 뜻.

“정작 제일 큰 문제는 천마 본인이시지. 아마도… 지금쯤은 마신환의 비밀을 푸셨을 테니.”

강한월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신환을 천마에게 전달하고 그 효용에 대해 알려준 것은 바로 자신이니까.

천마의 능력을 생각하면, 광군영 말마따나 지금쯤 마신강림을 대성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천하에 두려울 게 없을 것이고, 제자를 공격한 생명교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제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중원에 진출할 핑계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이 없으니까.

“꼭꼭 숨어있던 마지막 혈승들이 등장하고, 생명교는 무리수를 두며 속도를 올리고 있고, 천마신교에겐 중원에 진출할 명분이 주어졌다는 거군요.”

“맞아요. 그 세 가지 일은 각기 다른 것이지만 똑같은 한 가지 결론을 향해 가고 있죠.”

“전쟁.”

“그것도 매우 거대한 전쟁이죠. 저와 제갈윤 대원은 이것이 마지막 전쟁이 될 거라 확신해요.”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알았고 매일매일 대비해온 그들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오니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시점은 언제라고 예상합니까?”

“황실, 무림맹, 흑사련이 보유한 자금과 시중에서 융통될 수 있는 자금을 통해 대략의 시점을 예측할 수 있어요. 그리고 천마신교가 전쟁 준비를 갖추는 데 걸리는 시간도요. 빠르면 반년, 길어도 일 년 안에 일이 터질 거예요.”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강한월은 자신의 무능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를 입는 건 무림만이 아니다. 아무 잘못 없는 일반 주민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혈승 하나하나를 미리 제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자책만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니, 척혈단도 대비를 해야만 했다.

“반년이면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군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계획은 지금부터 세워야겠지만, 큰 틀은 단장이 기존에 이미 만들어 놓았잖아요? 가급적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고 혈교의 수장들만 제거할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리고 제일 급선무는 천마신교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고요.”

주저함 없이 계획을 이야기하는 민정화를 보며 강한월은 적잖이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천재인 그녀조차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 혈승.

결국 최후의 승패는 자 혈승을 제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마신강림을 이룬 천마, 힘을 회복한 장학송 문주… 모두 경지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이지만 과연 자 혈승을 이길 수 있을까?

강한월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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