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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65화 (142/210)

165화. 천마의 결심 (1)

* * *

대공자가 십만대산에 도착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석 달은 필요했다.

최상의 경공을 펼쳐 질주한다면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겠지만, 선천마기를 소진한 상황에선 어림도 없는 일.

하지만 대공자가 천마를 만나기까지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굳이 십만대산의 광명정까지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천마출세 만마앙복!”

청해성 모처의 신교 지부에 머물고 있던 종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를 향해 부복을 하며 외쳤다.

이런 구호로 맞이할 인물은 천하에 오직 한 명.

대공자가 십만대산에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천마가 직접 달려온 것이다.

차원이 다른 거대한 마기가 공간에 가득 참을 느끼며 종오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와 동시에 자책감과 두려움에 몸이 떨려왔는데, 자신이 대공자의 호위 역할을 제대로 못 한 탓에 천마가 친히 십만대산 밖으로 달려오게 만들었기 때문.

“소관이 부족하여 대공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며 어떠한 처벌도 달게….”

호통이라도 크게 쳐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련만, 천마는 부복해 있는 종오를 본체만체 지나쳤다.

“천마님! 부디 제 죄를 벌하여….”

“종오 대주. 천마께서는 당신을 탓할 생각이 없으세요. 그러니 그만 닥치고 나가 있어요.”

뒤따라 들어온 유선이 나직이 말했다.

용서를 받았지만 왜 이리 서운한 걸까?

종오는 민망하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별채 밖으로 나갔고, 그제야 천마는 대공자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대공자라는 놈이 신교 망신을 시키는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습니다.”

천마는 이런 식의 변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는 불같이 화를 내야 했지만, 선천마기가 소진되어 죽어가는 대공자의 모습을 보니 화조차 나질 않았다.

“보고하라.”

“전서로 말씀드린 내용이 답니다. 그 외에 더 보고드릴 것은 없습….”

대공자는 황급히 말을 멈췄다.

보고하라는 천마의 명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마의 이마 부분에서 투명한 거미줄 같은 마기가 뻗어 나와 대공자의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다시 한 가닥 거미줄이 뻗어가 유선의 이마에 달라붙었다.

마령통심술.

상대의 생각과 기억을 읽는 섭혼술의 일종인데 천마신공의 상위 심법인 만큼 위력이 대단했지만,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대상은 물론 시전자 본인도 심령의 타격을 받는 위험한 술법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너무나 쉽게 마령통심술을 펼쳤고, 그것도 대공자 한 명만 연결한 것이 아니라 유선의 머리까지 한데 묶어버렸다.

천마님의 경지가 또 상승했구나.

대공자는 놀란 가슴을 얼른 수습하며 생명교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지사로 잠입하는 과정, 그리고 확보한 책자를 훑어보는 기억에서는 천마는 그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훤칠한 중년 사내와 마주친 부분에선 천마도 관심이 동한 듯했다.

“유선. 이자는 누군가?”

유선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수 대결이 펼쳐지는 장면이 뇌리를 파고들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혈승입니다. 열두 동물 중… 양이 분명합니다.”

“양이라면, 무공 담당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천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대공자가 떠올리는 기억을 끝까지 관찰했다.

진가린이 갑자기 뛰어들었을 땐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주교 일·이호가 양 혈승의 지풍을 막는 장면에선 눈살을 찌푸렸다.

“운이 좋았구나. 그리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했어.”

매우 서운한 말이었지만 대공자는 개의치 않았다.

천마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기대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니까.

“구차했지요. 어쨌든 보고는 해야 했으니까요.”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니 대공자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천마를 대하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진작 이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죽을 때가 되어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다니.

하지만 천마가 있는 이상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유선. 천마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이 있는가?”

천마가 지나가는 말처럼 유선에게 질문을 던졌다.

“절대 없습니다.”

“강제로 시킨다면?”

“죽어도 싫습니다.”

“흥, 귀찮게 되었군. 이공자란 놈은 깜이 안 되고 유선 너는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이놈을 고쳐 놔야 하겠군.”

천마가 커다란 손을 뻗어 대공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크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대공자가 비명을 질렀다.

별채 문밖에 쪼그려 앉아있던 종오가 그 소리를 듣고 파르르 떨었다.

웬만한 고통에는 코웃음을 치고 말 대공자가 이처럼 울부짖다니, 도대체 어떤 끔찍한 형벌을 당하는 걸까?

비명은 무려 일각이나 지속됐고, 듣고 있던 종오가 혼이 다 빠질 정도였다.

역시 천마는 고약한 면이 있었다.

조금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도 대공자에게 선천마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더 아픈 방법을 택했으니 말이다.

* * *

다음 날 아침, 대공자는 천마의 호출을 받았다.

고통이 아직 가시지 않아 단전과 온몸의 기맥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럼에도 힘이 넘쳤다.

“멀쩡해 보이는구나.”

“멀쩡하냐고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부상을 입기 전보다 마공이 두 단계는 더 높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다행이 아닙니다! 저는 천마께서 내력이나 좀 넣어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천마기라니요? 천하 모든 교도들을 돌보시고 중원에 마화의 불길을 일으키셔야 할 천마께서 고작 저 같은 놈 때문에 귀중한 선천마기를…!”

“부상 회복의 부작용인 건가? 말이 많아졌구나.”

“그렇게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천마님의 생명을 나눠 받고 제가 맘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당장 이 선천마기를 회수해 가십시오!”

난생처음이었다. 대공자가 천마를 향해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실제로 대공자는 진작 죽을 각오를 했으니 까짓 고함 못 칠 것도 없었다.

아직까지 천마는 재밌다는 표정이었지만, 저 표정은 언제라도 험악하게 바뀔 수 있었다.

그러니 유선은 대공자가 선을 넘기 전에 말려야만 했다.

“진정하세요, 대공자. 천마께서 선천마기를 나눠 주신 건 사실이지만, 겨우 그 정도로 천마께서 약해지시는 것은 아니니까요.”

“흥,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유선 당신도 선천마기가 무엇인지는 잘 알 텐데?”

“잘 알지요. 그리고 천마께서 마신강림을 대성하신 것도 알고요.”

“뭐? 그게… 정말이요?”

대공자는 실언임을 깨닫고 입을 막았다.

감히 천마가 마신강림을 이룬 것을 의심하다니.

하지만 솔직히 믿기 어려운 말 아닌가? 지난 수백 년간 마신강림을 대성한 천마는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유선이 천마를 앞에 두고 농담을 할 리도 없으니… 믿어야만 했다.

“천마출세 만마앙복! 신공을 대성하시고 마신의 반열에 오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대공자는 즉시 오체투지의 자세로 천마에게 대례를 올렸다.

그만큼 감격적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 치솟았다.

“쓸데없는 허례는 집어치우고 자리에 앉아라. 상의할 일이 있으니.”

상의? 대공자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의자에 앉았다.

마신강림을 이루며 뇌에 이상이 온 건가?

대공자가 그리 생각할 만했다.

천마는 명령하는 존재이지 상의를 청하는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천하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음은 너희도 알 것이다. 각자 의견을 말하라. 신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어떤 의도로 꺼낸 말인지가 짐작이 가서 대공자는 눈을 부릅떴고, 유선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침공.

그 의도임이 분명했다.

천마는 마신강림을 대성했고,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생명교라는 의심스러운 조직이 생겨났음은 물론 신교의 후계자가 공격을 받았다.

비단 천마뿐만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모든 수뇌부가 같은 생각을 떠올릴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마신이 선사한 중원 점령의 기회라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신 겁니까?”

대공자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마가 망설일 리가 없으니까.

“신교의 대공자로서 네 의견을 말하라고 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대공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주저하는 그 모습이 천마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생각 없는 바보로? 혹은 싸움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흥, 기회를 줘도 말을

그럼 유선, 네가 의견을 말하라.”

“저도 대공자와 같은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천마께선 이미 결정을 하신 것 아닙니까?”

“이것들이 말을 맞췄나? 설마 너도 의견이 없는 것이냐?”

“의견은 있지요. 하지만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 천마께서 마가 가주들을 모아 놓고 지시하시는 걸 보았으니까요. 전투가 가능한 모든 교도들의 징병, 최상급의 전투 태세 유지, 각 마가의 곳간을 모두 열어 최대치의 보급품 확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한 것 같은데요?”

유선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대공자의 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

설마 자신이 생명교를 염탐한 일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얼마나 많은 교도가 죽어 나가고, 얼마나 많은 과부와 고아가 생겨날까?

“그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전쟁일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

“그렇군요.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결정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럼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마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지금 당장 출병하여 상대가 생명교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말살하는 것입니다. 중원 전체에 마화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천하는 천마신교가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법 마음에 드는 말이군. 그럼 두 번째는?”

“당장 출병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상대를 생명교 즉 황실, 무림맹, 흑사련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조직들은 굳이 적으로 돌릴 필요 없고 오히려 우군으로 삼는 것입니다.”

“흥, 뭐가 그리 복잡하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본교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겠군.”

“아니요. 실은 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세 번째 방법입니다.”

“그게 무엇이지? 속히 말하라.”

“출병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신강림의 대성은 천마의 성정에도 영향을 끼쳐 외견상 훨씬 부드러워졌다.

지금 제자들과 길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그 증거.

하지만 무공의 완성을 통해 마기의 폭주를 완전히 제어했다고 해서 천마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감히… 나에게 꼬리를 말고 숨어 지내라는 것이냐?”

과거처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검은 아지랑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천마가 분노의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방 전체가 칼날 같은 마기로 가득 찼다.

폐부를 찔러오는 폭력적인 마기에 대공자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하지만 유선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며 할 말을 했다.

“설마요. 절대 그런 의견을 드릴 리 없지요. 이것은 전략일 뿐입니다. 척혈단이 구성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신교가 가만히 있어도 척혈단은 조만간 생명교와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 아주 험한 전쟁이 될 것이고, 양측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겁니다. 진 쪽은 존재가 사라질 것이고 이긴 쪽도 최소 절반 이상의 전력을 상실하겠죠. 바로 그때 신교가 출병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어부지리를….”

“닥쳐라!”

호통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유선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천마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

“어부지리? 전략? 나 천마가 그따위 세속적인 셈법을 하며 몸을 사릴 줄 알았다는 말이냐?”

숨을 몇 번 들이켜 마음을 진정시킨 천마가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 없다. 신교는 즉시 출병하여 생명교를 말살시킬 것이다. 유선! 네가 먼저 척혈단으로 가라. 가서 강한월을 만나 공조를 논의하도록.”

“존명!”

천마의 자존심을 건드려 원하는 결론을 얻어낸 유선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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