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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79화 (156/210)

179화. 마신강림과 심검 (2)

* * *

천마신교의 야영지에서 삼십 리 떨어진 벌판.

드넓은 그곳에 천마와 강한월 단둘이 마주 섰다.

인적이 없음은 물론 천마가 내뿜는 마기에 놀라 새와 동물들마저 도망쳤기에 비무를 펼치기엔 딱 좋은 공간이었다.

오늘로써 열 하루째.

지난 열흘이 어땠는지는 강한월의 몰골이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몇 번을 터지고 낫기를 반복했는지 입술은 퉁퉁 부었고, 좌우 눈두덩이는 멍이 중첩되어 시커멓게 죽었다.

왼팔은 쭉 펴지도 못하는 것이 근육과 인대에 손상을 입은 게 분명했고, 삐딱하게 서 있는 것이 다리도 편치 못한 듯했다.

옷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온몸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상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곳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 정도랄까.

“쯧쯧, 불문 최고 기공이라는 역근경의 보호를 받는 데다가 자연체까지 이룬 놈이 이렇게 회복력이 약해서야….”

천마는 한심하다는 듯 놀렸지만 이치에 맞는 말은 아니었다.

역근경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서 있기는커녕 벌써 관짝에 들어갔을 테니까.

“겉만 이럴 뿐 속은 멀쩡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오늘도 개싸움 박투술인 겁니까?”

열흘 동안 천마와 강한월은 맨주먹 비무를 펼쳤다. 비무라기보다는 강한월이 일방적으로 구타당한 것이지만.

길림성 투전장에서 눈을 가리고 싸웠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었는데, 이번엔 한 주먹 한 주먹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위험한 대결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역근경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고 자연체의 움직임은 어때야 하는지 처절하게 깨우치게 된 것.

“좀 더 가르침을 주고 싶지만 네가 너무 허약해서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군.”

아쉬운 마음에 강한월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사이 많이 발전하여 오늘부터는 반격을 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박투술이 아니면 오늘은 무엇으로 비무를 하시렵니까?”

“글쎄… 심검은 어떨까?”

기습적인 천마의 대답에 강한월의 눈이 동그래졌다.

뜬금없이 심검이라니? 천마가 심검에 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제 심검은 비무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직 발도 제대로 들이지 못한 데다가 통제할 수 없어서 매우 위험합니다.”

“왜? 나도 호랑이 혈승처럼 팔이 잘릴까 봐 걱정되는 것이냐?”

“무슨 그런 말씀을. 호랑이를 어찌 천마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호랑이가 열두 혈승 중 상위권이라 들었다만 자 혈승과는 차이가 크다지? 내가 호랑이보다 못하진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심검을 펼쳐보거라.”

걱정과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심검.

참오를 거듭하며 갖은 애를 써봤지만 지금 상태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질 못하는 상황.

누군가 물꼬를 터준다면 고맙기 그지없을 텐데… 천마는 그럴 능력이 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심검을 발동할 때 말씀을 드릴 테니….”

“아니, 말은 필요 없으니 제대로 공격을 해봐. 대체 누가 싸움을 하면서 미리 경고를 해준다는 말이냐?”

천마는 진심이었다.

그러니 강한월도 진심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누가 누구 걱정을 한다는 말인가?

상대는 만마의 종주이자 마신강림을 통해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초강자.

강한월이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으며 심공을 일으켰다.

마음이 커짐과 동시에 감정이 증폭되며 화르르 끓어올랐고, 그것을 기세로 바꾸며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검을 만들어 벤다.

샤악.

어떤 기척도 없이 심검이 발동되었다.

느낌으로는 호랑이와 싸울 때보다 더 제대로인 것 같았는데….

“흐음… 이것인가? 과연 대단하긴 하군.”

다행히도, 하지만 심검의 성과라는 입장에선 불행하게도 멀쩡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천마의 무복 앞자락이 한 치쯤 잘려 나갔는데, 정작 천마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를 내지 못한 것 같았다.

역시… 천마.

“부끄럽게도 그것이 제 한계입니다. 심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실력이지요.”

뭐라 위로의 말을 해줄 법도 하건만, 천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하늘만 바라봤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알 듯 말 듯 하군. 다시 한번 해볼 수 있겠지? 이번엔 피하지 않고 받아보겠네.”

“네? 그건 너무 위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을 해야 하는 거냐?”

대답하는 천마의 목소리가 왠지 달랐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강한월은 즉각 알아챌 수 있었다. 천마가 마신강림의 상태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쿠르르릉.

실제로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그런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인세의 것이 아닌 마신의 격이 강림하는 순간.

왜 지금껏 마신강림을 대성한 천마가 그토록 없었는지 느낌이 왔다.

인간의 육체가, 정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이질적인 기운이 사방에 차올랐다.

“너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어서 공격해라.”

멀리를 보는 건지 가까운 곳을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마치 초점이 여러 개인 것 같은 눈으로 강한월을 바라보며 천마가 말했다.

대성하였음에도 마신강림을 유지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는데,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 같았다.

마신의 격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뜻.

강한월이 즉각 심검을 발동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두 번 연달아 시전하는 것이라 무리가 올 법도 했지만, 마신강림에 놀란 마음 때문인지 오히려 더 쉽게 심검이 만들어졌다.

샤악~

두 번째 심검을 날린 후, 온몸의 기가 빠진 듯 지친 강한월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천마를 바라봤다.

심검이 발동되지 못한 것인가?

천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이었군. 오늘은 이만하면 되었다. 들어가자.”

마신강림의 격을 해제하며 천마가 말했다.

* * *

자리를 옮겨 천마의 막사.

탁자에 놓인 술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천마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직접 체험한 심검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은 것 같아 강한월도 묵묵히 기다릴 뿐.

“네가 펼친 심검 말이다.”

드디어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천마가 술잔을 들며 말을 시작했다.

“너도 보았겠지만 두 번째 것은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들였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느껴 보기 위해서.”

역시 천마는 광오했다.

호랑이 같은 초고수도 팔 하나를 날렸던 공격을 일부러 그냥 받다니… 마신강림에 대한 자신감이 그토록 컸던 것이다.

“마신강림 상태에서는 온몸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되지. 그러니 보이더구나. 네 심검이 무엇인지.”

아마도 천마 외에는 누구에게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터였다.

기연과 다름없는 기회를 얻었음을 직감한 강한월이 귀를 기울였다.

“그건 확실히 마음과 감정의 덩어리 같더군. 심검이라는 이름이 매우 적절한 것이었어.”

“하지만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심검은 아니었지요.”

“그래. 만약 전설의 그 심검이었다면 아무리 마신강림의 상태였더라도 나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요?”

“글쎄…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내가 보기엔 심검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것 같았는데. 생각을 거듭하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네 심검엔 문제가 없다. 너는 제대로 참오하고 연마하여 너 나름의 심검을 완성했어. 강호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성과다. 다만 문제는… 네 심검의 위력이 단지 그 수준일 뿐.”

쿵.

강한월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심검을 직접 겪어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가장 절망적인 평가였다.

완성되지 못한 것이라면 희망을 품고 계속 정진할 수 있지만… 완성된 것의 위력이 고작 이 정도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의 평가. 게다가 마신강림 상태의 초감각을 동원해 분석한 것이니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는데.

하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외람되지만 그 말씀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잘못 봤다는 말이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전에 저도 모르게 심검이 발출되었을 때 지금과는 다른 온전한 심검을 성공시킨 적이 있습니다.”

“후후, 그랬다고? 너도 모르게 펼친 것이었다는 말이지?”

강한월을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 아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천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사실입니다. 그 후로는 다시 그런 심검을 펼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네 말을 믿는다. 내가 분석한 것과 일맥상통하거든.”

“네? 조금 전에는 제 심검이 완성되었지만 위력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고 말씀을….”

“들어보거라.”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천마가 설명을 시작했다.

천마가 보기에 강한월의 심검은 틀리지 않았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음양오행의 법칙에 적용을 받지 않는 격이 다른 힘.

하지만 마신강림처럼 이계에서 강림한 힘은 아니고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

바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원천으로 만들어진 공격력.

그것이 바로 심검이고, 강한월이 선보인 것은 그러한 심검의 개념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강한월의 심검은 완성된 것이라는 천마의 평가는 틀리지 않은 것.

“하지만 문제는 그 위력이지.”

천마가 신안을 발동해 살펴본 바로는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큰 원한을 품는다고 한들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기 마련이고, 단호한 결의를 다졌다 해도 조금의 감정 변화만으로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마음이니까.

물론 강한월은 신주의협에게 배운 심법으로 마음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결과로 얻어낸 위력이 바로 현재의 모습이며, 천마의 평가로는 이미 한계점.

“지금의 위력만으로도 전설적인 심검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은 없다. 단번에 호랑이의 팔을 자른 것이 그 증거이지. 현재 네 심검으로 벨 수 없는 사람은 나와 신주의협 그리고 아마도 장학송 문주 정도일 것이다.”

천마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지만, 심검으로 벨 수 없는 사람 중엔 자 혈승도 있었다.

그리고 자 혈승을 벨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잡히지 않는 심검을 붙잡고 고된 노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자 혈승 하나이니까.

“그렇다면 예전에 위력적인 심검이 펼쳐진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지. 여기서부터는 나도 확신하진 못한다. 추측의 영역에 불과하니 알아서 판단하도록.”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강한월의 심검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니 수행 방법을 바꾸고 다시 고된 수련을 한다고 한들 나아질 가능성도 없다.

인간의 마음의 크기와 강도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예전에 더 강력하고 예리한 심검이 펼쳐진 적이 있다면?

“그런 그때 만들어진 심검의 힘의 원천에 마음과 감정 외에 다른 것이 섞여 있었기 때문일 거다. 그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마음이 아닌 다른 것이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만약 나라면 마신강림을 통해 주입된 마신의 격이 그런 원천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너는 내가 아니니 너만의 무엇인가가 있겠지.”

나만의 무엇?

심검을 발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

분명 역근경의 내력이나 근력은 아닐 텐데….

“이만 가보거라. 고민이 필요할 테지만 굳이 내 앞에서 할 필요는 없으니.”

마지막 술잔을 든 천마가 축객령을 내렸다.

자신의 막사로 천천히 걸으며 강한월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에게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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