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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81화 (158/210)

181화. 사천 대립 (1)

* * *

청해성 천마신교의 군진을 떠난 강한월은 곧바로 사천으로 향했다.

전례 없는 규모의 무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민간에도 퍼져서 강한월이 거쳐 지나가는 청해성 마을들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천마신교의 진군 경로로 예상되는 마을들은 피난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사실 이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천마가 민간에 피해를 주면서 진격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강한월이 나서서 설명할 수도 없는 문제여서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빠르게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사천.

청해에서 들어오는 모든 도로의 경계가 삼엄했다.

무림맹과 흑사련이 공동으로 설치한 초소가 여러 개였고 철저한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오문의 요원을 통해 미리 위장 신분 패를 전달받은 강한월은 무사통과할 수 있었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체험하며 강한월은 아미산으로 향했다.

척혈단의 임시 본부가 설치된 곳으로.

“드디어 오셨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모두가 강한월을 반겼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할 기회를 얻은 것은 민정화와 제갈윤이었다.

보고하고 상의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으니까.

“수고랄 것이 있겠습니까? 조직을 이끌고 사천으로 이동한 여러분들에 비하면….”

“저희도 고생한 것은 없어요. 아미파에서 거처도 마련해주시고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셔서요.”

“감사한 일이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한월과 민정화 모두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천으로 이동하고 자리 잡는 것이 수월했음이 의미하는 것은 척혈단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고, 이것은 전쟁을 목전에 둔 입장에선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사천의 형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예상과 다르지 않아요. 혈교 측은 청성 인근에 진을 치고 있는데, 청성, 공동, 해남, 개방, 오대세가가 모두 모였고 거기에 흑사련이 합류했죠. 동창과 금의위 고수들도 집결했고요.”

“중원 무림의 칠 할이 모였군요. 우리 쪽은 어떻습니까?”

“이곳 아미파에 무당, 화산, 점창이 모였고 그에 대해 척혈단의 원로들이 다예요. 초고수의 수에서는 뒤지지 않지만… 전체 인원에서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소림은…?”

“소림도 도우러 올 거예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봉문한 상태라 얼마나 많은 인원이 올 수 있을지는….”

민정화의 말이 맞았다.

천마신교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핑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소림 전체가 움직일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소림은 소림.

단 한 명의 소림승만 오더라도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남다른 것이다.

소림의 합류까지 염두에 두고 강한월은 머릿속으로 전력을 비교해보았다.

사천에 모인 전력만 비교하면 절대적인 열세.

하지만 천마신교가 도착하는 순간 상황은 뒤바뀐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은 황군이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최악을 가정하자면 최근 들불처럼 세가 번진 생명교 교도들이 성전을 부르짖으며 나서는 것.

강한월은 묵묵히 생각에 몰두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단장. 보아하니 머릿속으로 세력을 비교하고 있는 듯한데… 중요한 것 하나를 잊은 거 아닌가요?”

“중요한 것이라니? 아…!”

제갈윤에게 되묻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중요한 것을 어찌 빼먹고 생각했다는 말인지….

“천궁 말이구나.”

“그래요, 천궁. 신주의협께서 운영하시는 조직인데 어떻게 까먹을 수가 있어요? 민 소저와 저는 천궁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보고 매일 연구 중인데.”

“천궁도 사천에 왔나?”

“그게 좀 애매해요. 사천으로 온 것은 분명한데 공식적으로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저희야 원로원주님께 들은 정보도 있고 해서 옥룡설산 인근에 사람을 풀어 예의주시한 탓에 겨우 알아냈지만.”

상당히 불만스러웠던 것인지 제갈윤이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신주의협의 조직이니 같은 편이 분명한데도 천궁은 협력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은밀히 단독행동을 하고 있는 거였다.

“대략 어디에 모여 있는지는 어찌어찌 알아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도무지 만나주지를 않으니….”

모습을 감추고 있는 천궁에 공식적으로 만남을 청하는 것은 여의찮았다.

대리 천룡사와 나름 친분이 깊은 점창파의 인사를 통해 은밀히 연락을 넣어봤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같은 편이 맞나 싶을 정도의 완벽한 무시.

“그래서 사마염 원로원주님이 천궁을 찾아가려던 참이죠. 전쟁이 코앞인데 협력 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강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왠지 소용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천궁을 찾아간다면 그건 사마염이 아니라 강한월 자신이 가는 것이 맞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천궁이 아니라 신주의협이니까.

* * *

인적이 드문 산속에 천왕사라는 낡았지만 거대한 절.

이곳이 천궁이 사천에 마련한 임시 본부였다.

대대로 대리 천룡사와 깊은 관계가 있던 곳이라 손쉽게 본부로 꾸밀 수 있었는데, 천룡사의 고수들이야 원래 승려이니 자연스레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만검산장의 고수들은 향배객으로 위장하고 절 안에 거하고 있었다.

천왕사 뒤쪽 봉우리의 암자.

천궁의 수뇌부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회의였는데, 오늘은 특별히 중요한 사안도 있는 듯했다.

“… 이렇듯 각각 청성과 아미를 거점으로 전력의 집결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중원 전체의 이름있는 고수들은 거의 모두 모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정보원들을 관장하고 있는 좌호법 황우치가 현황을 설명했다.

우호법 수인대사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천사장 양 혈승이 듣고 싶은 정보는 없었다.

“좌호법. 혹시 황실의 귀빈과 무림맹주, 흑사련주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조직의 최고위층에 대한 것은 우리 정보원들의 수준으로는 빼내기 어려운 터라… 하지만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그들은 사천에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양 혈승이 고개를 모로 꼬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좌우호법에게 다 설명해줄 수는 없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혈승들의 상태이니까.

자 혈승이 혈경을 준 탓에 그들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 것을 모르는 양 혈승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호의 모든 무사들이 사천으로 몰려온 상황에 정작 조직의 수장이란 자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군요. 좌호법께서는 그들의 행적을 밝혀내는 데 노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천사장. 더 많은 정보원들을 투입하도록 하지요.”

이것으로 일상적인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늘의 특별한 행사.

오랜 기간 밖으로 돌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자가 드디어 복귀한 것이다.

“밖에 대기하고 있느냐? 어서 안으로 들라.”

우호법 수인대사가 외치자 암자 밖에서 대기하던 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승 옥룡,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했습니다.”

천사장과 좌우호법을 향해 정중히 합장을 하는 자는 옥룡이었다.

장백산 청송문에서 시간의 돌을 탈취하려 했던 바로 그 옥룡.

“옥룡, 수고가 많았네. 그래, 이번에는 성과가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천사장님과 호법님들이 지원해주신 덕분이지요.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결국 물건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옥룡이 품속에서 시간의 돌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피처럼 붉게 빛나는 돌.

실제로 많은 피가 묻은 돌이었다.

옥룡이 말한 사소한 문제는 실은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돌을 보관하고 있던 남만의 무녀(巫女) 가문 일백 명이 옥룡 일행에 의해 몰살을 당했으니까.

좌우호법은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지만, 천사장 양 혈승은 격동을 참기 어려웠다.

이것으로 열두 개 시간의 돌 중 열 개가 확보된 것이며, 시간의 돌이야말로 회귀를 거듭하여 영생을 살 수 있는 열쇠이니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옥룡. 자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군. 궁주님과 우리 천궁을 위해 정말 큰 일을 해주었어.”

“별말씀을. 신주의… 아니, 궁주님이 도모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 확보하지 못한 마지막 두 개는 어떻게 할까요?”

“장백산 청송문이 보관하고 있는 것 말인가?”

“네. 지난번 실패한 그것 말씀입니다.”

옥룡이 민망한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장백산에서의 일은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실로 망신스러운 일이었다.

웬만하면 다시 추진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그날 본 장학송 문주의 수준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 두 개를 확보하여 제 임무를 완수하고 싶지만, 청송문 문주의 경지가 워낙 높아….”

“그래, 그렇게 보고 했었지. 옥룡 자네의 실력으로는 무리라고. 그럼 좌 호법이나 우 호법이 가면 되겠나?”

옥룡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천사장이 질문했으니 답을 안 할 수가 없지만, 천룡사의 큰 어른인 우호법 수인대사를 자신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영 불편했다.

“제 수준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감히 의견을 말씀 올리면… 천사장님이 직접 움직여 주시는 것이….”

“후후, 자네는 청송문 문주를 꽤나 높게 평가하는군. 설마 그자가 우리 천궁의 호법보다 더 고수라는 말인가?”

“그, 그런 뜻은 아니옵고… 보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

쩔쩔매는 옥룡의 모습이 재밌는지 천사장 양 혈승이 피식 웃었다.

더 골려 줄 말이 뭐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양 혈승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암자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송문의 물건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다네.”

옥룡은 물론이고 좌우호법까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놀란 표정에 더해 기쁜 기색이 감도는 것이 이 급작스러운 방문자를 꽤나 반기는 모습.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천궁의 궁주이자 신주의협인 자 혈승이니까.

“궁주님! 지금 복귀하신 겁니까?”

“허허허, 그렇소. 중요한 시기에 오래 자리를 비워 죄송하오.”

황공해하는 좌우호법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눈 자 혈승이 옥룡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옥룡. 그동안 은밀한 곳에서 중책을 수행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청송문이 보유한 두 개는 굳이 찾을 필요가 없어. 시간의 돌을 확보하는 임무는 이제 그만해도 되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궁주님.”

“허허허, 그동안 일이 힘들었던 것인가? 일이 끝났다니 기쁜 표정이군?”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천마신교가 중원을 침공하는 상황이라, 시간의 돌 임무 때문에 저만 마교와의 싸움에서 빠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던 탓에….”

옥룡이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마교와의 싸움에서 한몫을 하고싶다는 의지가 절절했다.

중원의 무인, 특히나 옥룡과 같은 정파의 무인에게 있어 마교와의 대결은 평생을 꿈꾸어 오던 것. 전 무림이 참여하는 전쟁에 자신만 소외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의지가 굳건하군. 옥룡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조만간 기회가 올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수련하며 준비를 갖추도록.”

격려받은 옥룡은 기쁜 마음으로 암자를 나갔다.

이제 다시 수뇌부의 시간.

상석에 앉은 자 혈승이 천사장과 좌우호법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전 옥룡의 모습을 보니 천마신교와의 대결에 얼마나 기대가 큰지 잘 알겠소.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자 혈승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아쉽게도 우리 천궁의 첫 상대는 천마신교가 아니오.”

“예? 마교보다 먼저 쳐야 할 적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천마신교가 사천에 발을 디디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소. 그 일이 무엇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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