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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182화 (159/210)

182화. 사천 대립 (2)

* * *

천궁 본부로 오기 전, 자 혈승은 혈교와 척혈단의 진영 모두를 은밀히 살펴봤다.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 보고 필요하다면 균형을 맞춰줄 생각이었다.

양측의 전력은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였다.

당장은 혈교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청해에서 접근 중인 천마신교를 생각하면 또 다른 이야기.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치열한 전쟁이 되게 하려면, 천마신교가 등장하기 전인 지금 당장 싸움이 시작될 필요가 있었다.

즉, 천궁이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는 것.

“좌우호법 두 분이 활약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은밀히 키워온 힘을 사용할 시간이요.”

이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이던가?

좌호법 황우치와 우호법 수인대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궁주님.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궁의 무사들은 강호의 평화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사기가 충천해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임무라도 반드시 성공시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두 분의 의기로운 모습을 보니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번 임무는 일종의 교란 작전이며, 동시에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자 혈승이 설명을 시작했고, 좌우호법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많은 인원을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것이 좋지요. 작전의 핵심은 바로….”

설명은 계속되었고 좌우호법은 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싸움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번 작전은 해볼 만했고 또한 제법 통쾌할 것 같았다.

“작전은 잘 이해했습니다. 궁주님께서 좋은 작전을 짜 주셨으니 저희가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우 호법의 말이 맞습니다. 그간 수련에 몰두하던 천궁 무사들의 첫 임무로 아주 적합한 것 같구요. 그런데… 외람됩니다만… 어째서 변복을 해야 하는지…?”

좌호법 황우치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천궁의 깃발을 높이 걸고 전투에 나서면 좋을 텐데, 궁주는 마치 다른 조직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임무에 나설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작전의 핵심은 ‘교란’입니다. 지금 모두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세상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 양해 바랍니다.”

“존명! 궁주님께서 어련히 잘 판단하셨으려고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좌우호법은 출동 준비를 갖추기 위해 서둘러 암자를 떠났다.

방 안에 둘만 남게 되자 지금껏 조용히 있던 천사장 양 혈승이 입을 열었다.

“자 혈승님. 정말로 용의 조직을 치시려는 것입니까?”

“내가 한쪽 편을 드는 것 같아 걱정되는 것이냐?”

“자 혈승님이 하시는 일인데 제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그저 궁금하여….”

“후후, 양쪽의 균형을 맞출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라. 척혈단을 치는 일은 굳이 좌우호법이 알 필요 없기에 말을 안 했을 뿐.”

“허면….”

“그 일은 너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떨떠름하던 양 혈승의 표정이 대번에 확 펴졌다.

“저야 혼자 움직일 수 있다면 훨씬 편하지요. 누구를 치면 되겠습니까? 명을 내려주십시오.”

“아직은 머리를 칠 때는 아니다. 손가락 몇 개 잘라내는 정도가 적당하겠지. 혼란을 촉발시키기 위한 것이지 전쟁을 끝내려는 건 아니니까.”

자 혈승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목표를 지정했다.

* * *

그 시각.

척혈단 본부에서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다른 이유, 다른 목적으로 시작된 회의지만 어쩐지 천궁의 회의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민 소저. 그러니까 별동대를 조직해서 먼저 적을 치자 이 말인가?”

민정화의 설명은 분명했기에 이렇게 되물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위무진 맹주는 재차 확인했다.

이번 작전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맹주님. 적의 수장인 뱀, 용, 호랑이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가능한 한 적의 수를 줄여 놓을 필요가 있지요.”

“하지만 그러다가 곧바로 전쟁이 발발하면? 천마신교가 사천에 당도하기 전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될 경우 우리 피해가 클 텐데?”

“물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한 목표를 지정해서 그곳만 타격하고 빠지는 겁니다.”

“문제가 없을 곳? 그곳이 어디인데?”

“바로 이곳입니다.”

민정화가 사천의 지도를 펼치더니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동창 사천지부 비밀창고?”

“그렇습니다. 황실에서 비밀리에 제조한 괴인, 귀장, 혈인들이 그곳에 보관되어 있을 겁니다.”

답은 민정화가 아니라 장준검의 입에서 나왔다.

오랜 기간 곽 공공의 오른팔이었던 그가 이렇게 확신하니 신빙성이 높을 수밖에.

“흠… 그럴듯하군. 무림맹이나 흑사련에 속한 문파들이 아니라 비밀리에 보관해둔 괴인들을 처리하는 거라면 적들도 쉬쉬할 수밖에 없겠어.”

“그렇습니다, 맹주님. 이 일 때문에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요.”

“좋아. 아주 좋은 작전이군. 그럼 별동대는 어떻게 꾸릴 계획인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겠지, 강 단장?”

위 맹주가 강한월을 바라보며 물었는데,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자신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것은 이 회의에 참석한 원로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영선곡이 습격을 당한 이후 원로들 모두 분기탱천한 상태였고, 이것은 원한을 갚아줄 좋은 기회이니까.

“신속하게 적을 처리하고 빠져나와야 하니 소수로 움직여야 합니다. 열 명. 그 정도가 적당한 수이지요. 척혈단에서는 저와 광군영, 진가린, 그리고 장준검 천호가 갈 겁니다. 어떤 요상한 괴인이 있을지 모르니 부적술에 능한 위청보도요. 나머지 다섯 자리에 어느 분이 좋을지는 맹주님이 선정해 주시지요.”

진가린이 뽑힌 것이 의외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개인의 무공은 아직 이 자리에 낄 수준은 아니지만 괴인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풍부했고, 경공이 특히 뛰어나 자기 목숨 지킬 실력은 되니까. 게다가 진가린이 가는 곳에는 주교 일, 이호가 묶음으로 움직이니 이 셋을 합치면 원로들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인 것이다.

“후후, 강 단장이 골치 아픈 일을 나에게 미루는군. 선배님들을 지목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당연히 소요자 선배님은 가 주셔야 하겠고, 백응신장 선배님과 수월사태 선배님도 한몫해 주시면 좋지. 그리고….”

원로들이 일제히 맹주에게 눈빛을 보냈다.

나를 뽑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눈빛도 있었고, 제발 나를 뽑아 달라 구걸하는 눈빛도 있었다.

맹주 본인도 갈 것이 분명했기에 남은 자리는 단 하나였던 것이다.

“흠…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청송문의 장학송 문주께서 같이 가시면 좋을 듯하군.”

잔뜩 기대하고 있던 원로들이 한숨을 토했다.

다른 사람이 지목되었다면 강하게 항의를 하려고 했는데 장학송 문주라면 할 말이 없었다.

명색이 정파 최고의 원로들인지라 다들 안목이 뛰어났고, 장학송 문주의 경지가 어떠한지는 이미 느낌이 있었으니까.

“맹주님. 죄송하지만 장학송 문주님 외에 다른 분을 지명해주시지요. 장 문주님은 먼 길을 오시느라 여독이 쌓여서….”

강한월의 말에 위 맹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장학송 문주 정도의 초월경의 고수가 여행의 피로를 느낀다고?

하지만 강한월이 이렇게 둘러대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그렇군. 내가 미처 그 점을 배려하지 못했어. 좋아, 그렇다면 남해의선 선배님을 모시고 가도록 하지. 여차할 경우 우리 목숨을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급조된 십 인의 별동대는 그날 밤 곧바로 출발했다.

본인들은 생각도 못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천궁의 무사들이 출동한 것도 그날이었다.

천궁 습격조가 모두 떠난 후 홀로 은밀히 출발한 양 혈승도 있었고.

* * *

“저곳입니다. 동창의 사천 비밀창고.”

울창한 수풀에 가려진 분지.

그곳에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막힌 건물 몇 채가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 나무 뒤에 숨은 열두 개의 그림자가 안력을 끌어올려 건물을 살폈다.

“거참 요상하게 생긴 건물이군. 동창은 뭐 때문에 저런 건물을 가지고 있는 거지?”

백응신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고, 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장준검밖에 없었다.

“동창은 천하 곳곳에 이런 비밀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은밀하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기 위함이지요. 납치, 고문과 같은….”

장준검의 목소리에는 회한의 감정이 잔뜩 묻어났고, 언뜻 분노도 느껴졌다.

“건물 두 채에 괴인들이 가득하군. 정확지는 않지만 각각 오십씩은 될 것 같은데. 만만치 않겠어.”

기감을 퍼뜨려 건물들을 살피던 소요자가 말했다.

도합 일백 명의 괴인. 만만치 않은 수였다.

죄수들을 재료로 만든 귀장은 보통 초절정이나 절대급의 고수도 있었고, 음양혈인급의 괴인의 무서움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런 괴인이 일백 명이나 있다면 각자가 열 명씩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그러니 오늘 반드시 끝을 내야 합니다. 저들이 전쟁에 투입된다면 저희 피해가 막심할 테니까요.”

소요자와 마찬가지로 기감으로 건물들을 살핀 강한월이 의지를 다졌다.

그가 받은 느낌에 따르면 저기 모여 있는 괴인들은 상당히 위험했다.

다행인 점은 뱀의 혈령으로 활성화된 괴인은 많지 않다는 것인데, 실은 이것이 민정화가 이번 습격을 계획한 이유였다.

괴인들은 혈령을 주입해서 각성시키면 정말 무서운 괴물로 변하니까. 뱀이 나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 미리 제거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용이 등장한 이후에는 이 괴인들이 혈제나 성전의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고.

“진가린. 네가 동창의 무사들을 맡아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단장. 걱정 마세요.”

동창의 무사들은 가급적 살려주라는 뜻이었고 진가린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한때 동창에 몸담았던 장준검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왼쪽 건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원로님들께서 오른쪽 건물을 맡아주십시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준비상태를 확인한 강한월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동시에 열두 개의 그림자가 은신을 풀고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실로 엄청난 속도.

분지의 건물들을 향해 돌풍이 일었다.

“앗? 적의 습격이다! 모두 조심….”

경비를 서던 동창 무사 한 명이 급하게 외쳤지만 채 말을 끝내지도 못했다.

무영보의 경공을 극성으로 펼친 진가린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혈도 세 곳을 짚어버렸기 때문.

그리고는 즉시 몸을 움직여 근처의 동창 무인에게 쇄도했다.

콰아앙!

좌측과 우측의 건물에서 동시에 폭음이 터졌다.

강한월과 위 맹주가 장력을 날려 두꺼운 문짝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틈으로 광군영과 백응신장이 지체없이 뛰어들었는데, 몇 걸음 못 가 다시 문밖으로 밀려 나왔다.

눈이 벌게진 괴인들에 밀린 채.

“손속에 자비를 둬선 안 됩니다!”

위 맹주가 크게 외치며 화산검을 휘둘렀고, 맨 앞에 나오던 귀장의 목이 절반이나 잘리며 뚝 꺾였다.

역시 무림맹주다운 솜씨.

하지만 괴인에 익숙지 않은 원로들은 놀란 숨을 들이켰다.

목이 대롱거리는 기괴한 모습으로 귀장이 반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샤아악!

지체 없이 두 번째 검을 날려 귀장이 목을 완전히 떼어낸 위 맹주가 다시 한번 외쳤다.

“보셨죠? 이들은 괴인입니다. 모두 조심하십시오!”

그제야 원로들도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

원로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후 항상 무의식적으로 손에 사정을 두었는데, 여기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콰아앙! 쐐애액! 퍼엉!

온갖 종류의 폭음이 요란하게 터지면 사천에서의 첫 전투가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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