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추적-189화 (166/210)

189화. 천마 출현 (1)

* * *

민정화가 화급히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점창의 진지를 살피러 간 강한월과 장학송 문주가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회의실에는 척혈단과 무림, 화산, 아미의 장문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장님. 점창은… 무사한가요?”

인사도 건너뛰고 민정화가 다급히 물었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지만 강한월의 표정을 보니 상황은 심각한 것 같았다.

“점창파 진지에 직접 가서 확인했습니다. 점창은 전멸했습니다. 노익찬 장문인의 시신도 찾았고요.”

“천 명이 넘는 점창 무인들이 정말 모두 죽었다고요?”

“네. 안타깝게도요.”

여기저기서 한탄과 깊은 한숨이 터졌다.

점창 제자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아미산을 찾은 것은 지난밤.

적의 습격을 받았으니 도와 달라는 것인데, 말이 횡설수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천 명이 넘게 있던 점창의 진지를 습격한 것이 고작 세 명이라니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거짓으로 단정할 수도 없었기에 지원 겸 조사를 가게 된 것이었다.

단 셋이 습격한 게 맞다면 적은 엄청난 고수일 것이기에, 그에 맞설 수 있는 고수인 강한월과 장학송 문주가.

“적들은 누구인가? 정말로 단 세 명이었던 것인가?”

위무진 맹주가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기색이었다.

점창이 무너진 건 바뀔 수 없는 사실이라 쳐도 적이 단 세 명이라는 건 너무도 큰 치욕이니까.

“살펴본 바로는 세 명이 맞습니다. 각각 수뇌부, 창기병, 사일검수를 상대했더군요.”

“허허, 이런 믿기 힘든 일이.”

하지만 사람들이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이어진 장학송 문주의 말은 정말로 믿기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그것이 다가 아니요. 내가 살펴본 느낌으로는 실은 셋도 필요 없었소.”

“셋도 필요 없다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장 문주?”

“말 그대로지요. 점창파를 전멸시키는 것은 셋 중 한 명만 왔어도 충분했을 거라는 뜻이요.”

“무슨 그런! 혼자서 어떻게 구파에 속한 대점창파를…?”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장학송 문주가 농담을 할 리도 없는 데다가 옆에서 강한월마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을 거요. 창기병들을 상대한 자는 불과 열댓 번의 공격을 펼쳐 오백의 무사와 오백의 말들을 산산조각 냈소. 사일검수들을 상대한 자는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동시에 수십 명의 두개골을 뚫었고. 장문인과 장로들을 상대한 자는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공을 연습한 것 같더군. 점창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자들에겐 이건 전투도 아니었던 게요. 그저 장난스러운 무공 연습이었을 뿐.”

“도대체 누가 그런 신위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요? 신주의협 외에 그런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혹시 장 문주께서는 혼자 점창을 멸하는 게 가능하시겠소?”

위무진 맹주가 물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최고수가 장학송 문주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도… 불가능합니다.”

잠시 망설이던 장학송이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무공만을 논하자면 홀로 점창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창기병 수십을 한 방에 뭉갤 파괴적인 수법이나 사일검수들의 머리를 동시에 꿰뚫을 분신술은 못 했지만 장학송에게는 그만의 무공과 방법이 있었으니 상대가 천 명이건 이천 명이건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패배하는 건 자신임을 장학송은 알았다.

이건 단순히 무공의 문제가 아니니까. 도대체 얼마나 독한 마음이 있어야 한자리에서 수백 수천 명의 생명을 끊을 수 있을까?

장학송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자신이 없었다.

“이거 정말 큰 일이군. 거대한 문파를 혼자서 멸할 수 있는 적이 갑자기 셋이나 나타났으니. 도대체 누굴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강한월의 입에서 나왔다.

“새로운 적은 아닙니다. 뱀, 용, 호랑이… 그들이 분명합니다.”

“무엇이라? 하지만 호랑이는 강한월 자네에게 패해 팔이 베이질 않았나?”

“그것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 이후 어떤 계기로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거라 추측됩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강한월은 확신했다.

피로 물든 전장에서 혈승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으니까.

현재 남은 혈승은 몇 안 되며, 셋이 몰려다닌다면 뱀, 용, 호랑이 그들이 분명했다.

게다가 노익찬 장문과 점창 장로들의 상흔으로 볼 때 흉수를 펼친 적은 외팔이였다.

“당분간 각 문파는 최고의 경계 태세를 취해주십시오. 공간이 비좁아지더라도 가급적 무당, 화산, 아미파가 한곳에 모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원로들과 장문인들을 향해 민정화가 말했다.

* * *

회의를 마친 후 강한월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민정화가 찾아왔다.

“민 소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려고 했는데… 더 급한 일이 있어서요.”

“천마께 연락을 취하고 오시는 건가 보군요.”

“맞아요.”

민정화가 싱긋 웃었다.

강한월과의 대화는 이래서 좋았다.

생각이 통했으니까.

“다시 한번 유선 소저에게 전서를 보냈어요. 천마께서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점창이 당한 것을 크게 보시는 거군요?”

“네, 크죠. 아주 커요. 모든 전략을 모조리 수정해야 할 만큼.”

점창의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민정화는 이번 전쟁의 승산을 높게 보고 있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이 황군의 개입이었는데, 그 위험을 황태자가 막아주니 안심이 되었다.

흑사련과 무림맹이 연합했다고 하지만 무당, 화산 등이 포진한 척혈단이 고수들의 질에선 더 앞섰다.

적들이 다수의 괴인들을 보유하고 있고 각종 비술로 위협했지만, 천마신교가 당도하는 순간 전세는 역전될 거라 믿은 것이다.

하지만….

“뱀, 용, 호랑이가 각각 구대문파 하나씩을 홀로 멸할 만큼 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전략과 전술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물론 우리 쪽에서 고수는 있지만….”

회의 시간에 장학송의 발언을 듣고 민정화는 느낀 바가 컸다.

장학송은 본인은 홀로 점창을 상대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무공의 고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민정화는 간파했다.

정파의 고수라면 당연 그러할 테니 이건 장학송의 마음이 여리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즉, 적들은 거리낌 없이 파괴를 일삼을 텐데 아군은 살생을 꺼린다면 이건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면전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군요?”

“그래요. 적절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제 생각은 오만이었어요. 수많은 생명이 스러질 거지만 승산은 높지 않아요.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전면전을 피하고 적의 머리를 베는 것.”

강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진작에 고민해오던 방법이 이것이니까.

심검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승산이 어떨지는…. 적의 머리는 뱀, 용, 호랑이가 다가 아닙니다.”

“다섯이죠. 드러난 것은 뱀, 용, 호랑이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양도 적이라고 봐야죠. 양의 실력도 다른 혈승 못지않다고 봐야 하고요.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역시 자 혈승이겠죠.”

“그렇습니다. 뱀과 용은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만, 호랑이가 팔 하나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지가 더 높아진 것은 분명 자 혈승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 혈승은 정말 공포스럽죠. 저는 그 경지를 판단할 능력이 안 되니 강 단장님의 의견이 듣고 싶어요. 다섯 혈승과 싸워서 승산이 있을까요?”

강한월로서도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수백 번도 더 상상했던 일이지만 여전히 안개에 쌓인 대결.

“글쎄요. 뱀, 용, 호랑이의 경지가 올라간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초월경에서도 또 경지가 상승했다면 우리 편에서는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습니다. 우선 장학송 문주님이 계신데, 얼마 전 장학송 문주님과 양 혈승이 대치했었죠. 무승부로 끝났지만, 나중에 장 문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붙게 되면 지지는 않을 거라고요.”

“좋아요. 장 문주님이 한 명은 잡아 주실 수 있다는 거군요. 나머지 넷은…?”

“제가 호랑이를 이긴 적이 있지만 그건 이미 지난 일. 다시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소요자 대선배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천마께서는 어떨까요?”

“마신강림을 이룬 천마께서는 분명 강하시죠. 뱀, 용, 호랑이가 아무리 경지가 높아졌다고 한들 천마를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민정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짐작은 했지만 강한월이 말하는 것을 직접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럼 승산이 없는 게 아니군요. 단장님은 자신 없다 하시지만 그렇다고 진다는 것도 아니고… 장학송 문주님과 천마께서는 승리한다고 가정하면….”

민정화는 오 대 오의 싸움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고수들의 싸움이 숫자놀음은 아니지만, 다섯 중 셋이 이기면 승산이 확 올라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 셋을 먼저 꺾고 나머지 둘을 제압하면 되니까 말이다.

“민 소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장 문주님과 천마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지만 그건 상대가 양, 뱀, 용, 호랑이일 때의 이야기. 만약 자 혈승과 붙는다면….”

“어째서 그런 걱정을 하시죠? 자 혈승은 신주의협께서 맡아주셔야죠.”

민정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한월을 바라봤다.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조차 안 한 것인데, 어째서 강한월이 그 생각을 못 한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혹시… 신주의협께서 자 혈승을 이기지 못할 거라 걱정하시는 건가요?”

“그건… 글쎄요.”

강한월은 끝내 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혈승의 실력이 어떠한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니까.

꿈의 형태로 기억된 미래 척혈단의 싸움에서도 자 혈승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의 실력을 모른다는 사실보다도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 사부 신주의협이 자 혈승과 싸워줄 거라는 기대가 들지 않는 것일까?

“역시 승부를 예측하기 힘드시죠? 이해해요. 자 혈승이 실력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죠. 나머지 혈승의 두 배 정도 강할 거라 가정하고 계획을….”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겠네요. 최강의 패 두 개를 모두 자 혈승을 잡는 데 써야겠어요. 신주의협과 천마 두 분이서 함께 자 혈승을 상대하는 거예요. 그사이 장 문주님과 단장님이 각각 한 명씩의 혈승을 제압하시는 거죠.”

척혈단 최고의 두뇌가 짠 계획이라 하기엔 너무 단순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계획은 있을 수 없었다.

“설마 신주의협과 천마께서 연합을 해도 자 혈승을 이기지 못할 거라 걱정하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닙니다. 신이 아닌 이상 두 분의 합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좋아요. 승률을 절반은 기대할 수 있겠네요. 만약 자 혈승과 양 혈승이 뱀, 용, 호랑이와 함께 있지 않다면 승률은 구할 이상으로 올라가고요.”

“뱀, 용, 호랑이를 먼저 칠 생각입니까?”

“그랬으면 해요. 천마께서 빨리 당도하신다면요. 그리고 신주의협도 모셔와야 하고요.”

* * *

강한월과 민정화가 대화를 주고받는 그 순간, 천마는 유선 한 명만 대동하고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굳이 민정화가 전서를 보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신의 힘에 의해 감정이 투명해지고 있다고 느낀 천마 스스로가 시간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청해와 사천의 경계를 넘은 천마는 다음 날 이미 아미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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