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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추적-210화 (완결) (187/210)

210화. 마지막 이야기 (종결)

* * *

“흠… 그러니까 이게 문제의 바로 그것이란 말이지?”

시간의 돌을 들고 요리조리 살피는 송목대사의 눈이 반짝였다.

강한월에게 역근경 내공을 넘겨준 이후 빠르게 늙어가는 중이었는데, 그럼에도 워낙에 수양이 깊은 탓인지 정신은 맑았고 운신에 큰 무리가 없었다.

예전처럼 소림의 절기를 펼칠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깨달음을 얻은 송목에겐 무공 따위는 걸리적거리는 짐과 같은 것.

“예. 이것이 그 시간의 돌입니다. 회귀의 권능을 발휘하는 기물이지요.”

강한월이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금검문에 머물며 매일 사부의 묘를 지켰던 그는, 백 일이 되는 날 시간의 돌을 가지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달려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소림사.

“허허, 참 신기한 물건일세. 그런데 이걸 왜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냐?”

“돌보다는 사실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회귀의 비술에 관한 설명서인데,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요.”

강한월은 품에서 얇은 책자를 꺼내 송목대사에게 건넸다.

회귀의 비술이라니… 송목대사는 조금 꺼림칙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책을 펼쳐 내용을 살폈다.

“그래. 네가 이해하기 버거운 내용이 있긴 하구나. 바라문교보다 더 이전의 것, 북쪽 초원에서 전해진 고대의 문법이.”

“그렇더라도 대사님은 해석할 수 있으시겠지요?”

기대가 잔뜩 담긴 질문을 받은 송목대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껏 쌓은 공부가 얼마인데 이런 비술 하나 풀지 못할까마는… 문제는 ‘가능한가’가 아니라 ‘목적이 무엇인가’인 것이다.

“한월이 네가 왜 이 비술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

강한월의 성품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송목대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비술은 잘못 사용할 경우 너무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기에.

“실은 제가 고민 중인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돌을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인지라… 우선 비술의 숙제를 풀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강한월은 사부 신주의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섣불리 꺼내서는 안 되는 비밀이지만 송목대사에게는 털어놓아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이 계획에 대해 그의 조언을 듣고 싶었으니 먼저 모든 것을 설명함이 옳았다.

찻주전자에 물을 두 번이나 다시 채워야 할 만큼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송목대사는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이제 네가 시간의 돌의 주인이 되었으니, 회귀를 통해 네 소중한 사람들을 되살리려고? 마치 신주의협이 너를 살렸던 것처럼?”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부님이 저 때문에 너무도 많은 악업을 쌓으셨기에, 방법만 있다면 그 업을 씻어드리고 싶습니다.”

백 일 동안 사부의 묘에 기대앉아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무려 삼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비참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혔던 사부. 생전 저지른 악행 때문에 죽어서도 윤회의 수레바퀴에 갇혀 영겁의 고통을 받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방법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설사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자신이 대신 덮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쯧쯧,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만 들어도 회귀의 결과 자신이 소멸되거나 삶이 바뀔까 벌벌 떨 테니. 나야 뭐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라 별 신경 안 쓸 테고.”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뜻은….”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날 찾아와 준 것이 오히려 고맙구나. 그렇다면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회귀의 비술을 연구해볼 테니, 너는 날 도우면서 계속 고민을 해보거라.”

그날부터 송목대사와 강한월은 신주의협이 남긴 책자를 파고들었다.

한 자 한 자 분석하다 막히는 곳이 있으면, 송목대사는 소림의 장경각을 찾아가 천축에서 전해온 고대 경전을 뒤적이기도 했다.

마치 죽기 전 마지막 사명이라도 되는 듯 송목대사는 열정을 불태웠는데, 건강을 해칠까 강한월이 염려할 정도였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하다 보니 차근차근 진도가 나갔다.

회귀를 위한 대법의 큰 틀은 어느 정도 분석이 끝났고, 이제 세밀한 부분 몇 가지만 밝혀내면 되는 상태.

“한월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구나. 너는 어떠냐? 고민은 충분히 한 것이냐?”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 송목대사가 찻잔을 내밀며 강한월에게 물었다.

비술의 비밀을 푸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이제는 강한월의 고민 혹은 결심이 중요한 핵심으로 떠오른 것.

과연… 강한월은 정말로 회귀를 할 생각일까?

회귀 행위 자체를 역천의 악행으로 규정하고 회귀자를 체포하러 뛰어다녔던 그인데….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만,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 무엇이 그리도 혼란스러운 것인데?”

“회귀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악행일까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선하게 활용한다고 해도요?”

송목대사는 답을 하기 전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의견이 강한월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 부담스러웠고, 특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송목 스스로가 바라는 것과 반대의 결과를 나을까 봐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으로 답을 할 수는 없는 법.

“글쎄다. 사람들은 흔히 역천이니 뭐니 하면서 하늘의 규칙을 거스르는 행동이 있다고 말하지. 하지만 하늘이 허용한 일과 금지한 일이라는 구분이 과연 있을까? 시간의 돌이라는 기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하늘이 정말 몰랐을까? 나는 회귀조차도 결국엔 하늘이 짜 놓은 그물을 벗어나지 않는 거라고 본다. 마치 손오공이 아무리 날뛰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인 것처럼 말이야.”

송목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역천 그런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의 기준으로 악하고 선한 일이 있을 뿐, 하늘은 그까짓 것 별 신경도 안 쓸 것인데.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솔직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있다면 너무도 높고 대단해서 우리 미천한 인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하늘을 뭐 신경 써?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살기에도 벅찬 세상인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강한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본인도 같은 생각이기에 유선과 하오문주가 새 삶을 사는 것을 용인했던 거니까.

“제가 만약 과거로 회귀를 한다면, 지금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회귀한 그 시점부터 여러 가지가 바뀔 텐데요?”

“왜?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는 거냐?”

당연히 그런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는 더 행복해지겠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더 불행해질 테니까.

자신이 행동한 결과로 살아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소멸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건 다 쓸데없는 걱정이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어찌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이토록 중요한 문제가….”

“걱정이 쓸모가 있냐 없냐의 기준은 중요하냐 아니냐가 아니야. 결과를 알 도리가 없고 대비책이나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도 전무하니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것이지. 내 생각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걱정과 고민이 많은 사람이 바로 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 인생까지 책임지려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신경 써.”

무책임한 말처럼 들렸지만, 어쨌든 이 조언도 강한월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결국 자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

“사부님의 죄과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칠까 두렵고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산다.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회귀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쯧쯧. 네 문제나 걱정하랬더니 아직도 다른 사람들 이야기구나. 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도대체 언제로 회귀해서 어떻게 사부의 삶을 바꾸려는 것인데?”

강한월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송목대사에게 이실직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검토해봤는데, 이백 년 후 미래에서 회귀해 올 사부를 막을 확실한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신주의협이 강한월이라는 고아 소년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것.

그 시점이라면 미래의 신주의협의 영혼이 회귀해오기 전이니, 이후의 모든 역사를 바꿀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자신은 일곱 살 이전의 어린 자신에게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다.

과거 자신이 사부를 만났던 장소로부터 가급적 먼 곳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나중 다른 시점에서 사부를 만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이 계획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사부를 만나기 전… 자신이 죽는 것.

신주의협의 인생에 절대로 강한월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못하도록.

“허허.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 되었다. 밤이 깊었으니 잠이나 자자. 내일도 할 일이 많으니.”

* * *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날 밤 이후로는 강한월과 송목대사는 회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누지 않았다.

마치 학문을 연구하듯 비술의 비밀을 푸는 것에만 열중했고, 드디어 결실을 얻었다.

“드디어 비밀이 모두 풀렸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건 순리에 역행하는 비술이 아니었어. 그야말로 시간 법칙의 정화가 담긴 정명한 대법이구나.”

암자 뒷마당에 방위에 맞춰 설치된 시간의 돌을 바라보는 송목대사는 감격에 겨운 듯했다.

강한월도 감격스럽긴 매한가지였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최종 결심을 해야만 할 시간이 된 것이다.

“하하하, 정말 어려운 숙제를 해냈어. 오늘같이 즐거운 날을 그냥 넘길 수 없지. 내 꽁꽁 숨겨두었던 술단지를 꺼내야 하겠다.”

강한월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목대사는 환한 얼굴로 술단지를 들고 왔다.

한 명은 기쁜 얼굴, 다른 한 명은 고뇌에 찬 모습이었지만 둘 다 술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갔고, 절반쯤 단지가 비었을 때서야 송목대사가 질문을 던졌다.

“어떠냐? 마음은 정한 것이냐?”

“네….”

“그렇구나. 그게 무엇이든 난 네 결정을 존중한다.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 안 했던 것이 있는데, 실은 이 대법을 연구하는 동안 한 가지 추가로 연구한 것이 있다. 시간의 돌을 파괴하는 방법이지. 네가 대법을 시행하던 아니던, 난 내일 시간의 돌 모두를 없애 버릴 거야.”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회귀의 대법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좋겠지요.”

이백 년 후의 신주의협이 놓쳤던 부분을 송목대사는 꼼꼼히 챙기고 있었고, 그것이 강한월의 마지막 우려를 덜어주었다.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간.

술잔을 내려놓으며 강한월이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송목대사가 먼저 선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 그건 그렇고… 동료들에게 인사는 잘 한 거지?”

“네…?”

“너를 믿고 목숨을 맡겼던 동료들. 네가 사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듯, 너를 위해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그… 누구더라? 전에 소림에 함께 왔던 처자….”

“소영영입니다. 그리고 광군영도 있고요. 그 둘은 천마신교의 마인이지만 저를 위해 기꺼이 무림맹으로 와주었지요. 제가 너무 심하게 부려 먹은 제갈윤,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지만 자기 몫은 제대로 한 위청보. 그리고… 저 때문에 평생의 꿈인 청룡대를 포기하고 문무대에 들어온 진가린.”

한 명 한 명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강한월의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억지로 꾹꾹 눌러 놓았던 기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래? 친구가 참 많기도 하구나. 허허, 아는 사람이라고는 까까머리 중들밖에 없는 나보다 훨 나은데?”

강한월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 송목대사의 농담에도 웃을 수가 없었다.

“너의 인생에 신주의협이 중요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 친구들 인생에 네가 중요할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뭐… 이제 다 쓸데없는 생각이지. 자, 남은 술이나 어서 마시자. 이 술독이 비면 이제 이별인데.”

* * *

오후의 따뜻한 햇빛과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북실북실한 누렁이 털도 제법 쓰다듬는 맛이 있었다.

역시 낮잠은 이렇게 야외 평상에서….

“휴우, 사부님. 제자들은 이렇게 열심히 수련 중인데, 사부라는 분이 그렇게 퍼져 계시면 어떡해요?”

영근의 검술을 지도하고 있던 진가린이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나에겐 낮잠을 자는 것도 수련이라는 말을 도대체 몇 번을 해야 믿겠냐? 너도 나중에 내 경지에 오르면….”

“네. 어련하시겠어요. 마신강림의 천마가 언제 이성을 잃고 중원 침공을 할지 모르는데, 유일한 대항마라는 분이 이렇게 늘어져서 낮잠이나….”

“낮잠하고 천마가 무슨 상관이라고! 게다가 내가 왜 유일한 대항마냐? 나보다는….”

어떤 이름을 언급하려다가 장학송 문주는 급히 입을 닫았다.

다 큰 제자가 질질 짜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됐다. 잔소리 그만하고 마을 입구에나 나가봐라. 내 천기를 보아하니 조만간 귀한 손님이 찾아올 것 같구나.”

“또요? 요즘 하루건너 한 번씩 귀한 손님 이야기를 하시는데, 찾아오는 건 순 보부상 잡상인들밖에 없잖아요.”

“보부상이 어때서? 물건 좋다고 제일 많이 산 건 가린이 바로 너이지 않느냐?”

“사기는 뭘 많이 샀다고 그러세요?”

얼핏 보면 싸우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정이 넘치는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마을에 나갔던 송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부님! 대사저!”

“왜? 무슨 큰일이라도 났느냐?”

“왔어요! 손님이 왔다고요!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요!”

송윤이 달려온 그 길 저편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서서히 비쳤다.

그 순간, 진가린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다 큰 제자가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장학송 문주였지만, 이런 울음이라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도대체! 뭐 하다가 이제야 오는 거예요!”

진가린이 눈물을 훔치며 달려 나갔다.

“미안하다. 더 빨리 왔어야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

《회귀추적》 완결

K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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