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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3화 (1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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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흑천방

“언니. 사흘 전부터 봐왔지만, 생각보다 너무 안 먹는 것 같아요. 정말 어떻게 해서 그렇게 찐 거예요?”

식사를 어느 정도 끝낸 백소영이 차를 마시고 있는 설중화에게 물었다.

뚱뚱한 여자에게 이런 질문은 사실 매우 실례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는지, 설중화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오히려 백자안이 무안해했다.

“소영아. 말을 가려서 해야지. 설 대원도 찌고 싶어 쪘겠느냐?”

말을 하고 나서 보니 자신의 말도 조금 이상했다.

백자안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언짢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호호. 아니에요. 사실 제 식사량은 매우 적은 편이에요. 살이 찐 이유는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 보약을 잘 못 먹어서 그런 거예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보다 식사가 끝났으니 이제 지부로 가볼까요?”

“네.”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림맹 무사라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지부에 들러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특히 천년색마와 흑천사걸 문제로 지부에서 백자안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라버니. 나 차 한 잔 마시고 가면 안 될까?”

“그렇게 해라.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라.”

백자안이 다시 자리를 잡는 그때.

객잔 안으로 중년인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점소이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곧바로 백자안에게 왔다.

“백자안 대협입니까?”

“네. 백 무인으로 불러주십시오.”

“아, 네. 정말 백 무인이셨군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저는 흑천방 장사지부 지부장 왕해(王亥)라고 합니다.”

“아!”

백자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상이 좋고 수수해 상인 정도로 생각했었다.

한데 흑천방 사람이었다니.

그것도 장사지부를 책임지는 고위급 인물이었다.

흑천사걸이 그의 밑에서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백자안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했다.

마치 귀한 손님을 대하듯 예를 갖춘 모습이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아, 네.”

백자안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흑천사걸을 죽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차라리 복수하러 왔다면 이 정도로 당황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왕해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역시 듣던 대로 영웅의 풍모를 지니고 계셨군요. 천년색마는 본방에서도 잡으려던 놈이었습니다. 백 무인께서 일 검에 두 동강 내 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으음······ 흑천사걸의 일은······.”

백자안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왕해가 언성을 조금 높였다.

“그놈들 이야기는 듣기도 싫습니다. 안 그래도 놈들이 방규를 어기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다녀 죄를 물으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모르게 착복도 많이 했더군요. 제가 이렇게 직접 온 것은 놈들을 대신 처단해주신 백 무인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백 무인의 어머님께 받았던 이 차용증 원본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찢어버리겠습니다.”

“차용증을 찢는다는 겁니까?”

“네. 알아보니 모친께서 원금은 갚으셨더군요. 그래서 이자는 면제해드리고자 합니다. 흑천사걸 그놈들이 감히 백 무인의 가족을 괴롭혔으니, 그 보상으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게 다 수하를 잘 못 가르친 저의 잘못이니 사죄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왕해가 고개를 숙였다.

오는 말이 고우면 가는 말도 곱다고 했던가.

상대가 예의를 갖추니 백자안 역시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그 문제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더는 거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귀방에서 복수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군요. 혹시 귀방의 방주께서 따로 지시를 내린 겁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낙양에 계신 방주께서 무림맹 군사부로부터 이번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전서구를 보내셨습니다. 백 무인께 직접 사죄하라고 명하시더군요. 이자 면제는 당연하고 반드시 백 무인을 초대해 대접하라고 하셨지요. 오늘 저녁 저희 장사지부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백자안이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리 선의라고는 하지만 흑천방 지부에 간다는 것이 꺼림칙했던 것이다.

왕해가 거듭 간청했다.

“백 무인을 대접하지 못하면 저는 방주님께 문책을 당해 지부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수락해주십시오. 어차피 하룻밤은 보내고 가실 게 아닙니까? 수락만 해주시면 지금 당장 차용증을 찢어버리겠습니다.”

“흥!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귀방 지부에 간다고 약속해야 차용증을 찢겠다는 건가요? 정말 선의라면 그런 조건을 달지 않고 바로 찢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제가 오라버니를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왕해가 손에 들고 있던 차용증을 정말 찢으려 했다.

“잠깐!”

백자안이 저지했다.

사흘 전 흑천일과의 대결에서 놈의 속임수에 당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그였다.

다행히 가죽옷이 비수를 막아줬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었다.

‘실수는 한번으로 충분하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은자 이백 냥이란 금액이 너무 과하고 터무니없기는 하나 흑천일 그자에게 약속했듯이 일 년 안에 반드시 갚겠습니다. 아, 물론 포상금을 받게 되면 한두 달 내로 바로 갚을 수 있을 겁니다. 초대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오라버니!”

백소영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서는 면제될 은자 이백 냥이 무척 중요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포상금을 받더라도 그 중 이백 냥을 흑천방에 갚아야 했다. 그 돈은 아무래도 자신의 몫에서 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안전만 보장된다면 이번 기회에 깨끗이 처리하고 싶었다.

“언니! 언니가 말 좀 해주세요. 지금 보니 저분에게 악의가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보면 서로 화해할 좋은 기회잖아요?”

“글쎄······.”

설중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반적으로 흑도의 초대는 거절하는 게 안전했다.

하지만 흑천방이 무림맹과 척을 지지 않으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괜히 상대를 믿지 못해 은자 이백 냥의 부담을 공짜로 없앨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백자안이 설중화를 쳐다봤다.

그가 무저곡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지만 혼자 생활한 것이라 아직 강호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사실 그 역시 내심 이 기회에 이자를 면제받아 흑천방과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 싶었다.

그 점은 백소영 못지않았다.

그래야 가족들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포상금 은자 천 냥은 확실히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못 받게 되면 그래도 그냥 없었던 일로 하면 되었다.

그때는 백소영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지만, 그 대책도 수립해 놓았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백소영을 무관에 보내주기로 내심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이자는 달랐다.

갚아야 할 이자가 계속 남아있게 되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 대원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제 생각으로는 흑천방주가 정말 그런 명을 내렸는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확인되면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니 초대를 수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 확인은 어떤 식으로?”

“아마 본맹 장사지부장께서 알고 계시지 않겠어요?”

“좋습니다. 지부에 가서 확인한 후 귀방 지부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분명 오시게 될 겁니다. 방주께서 무림맹에도 똑같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왕해가 자신 있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차용증을 백소영에게 주었다.

“백 무인의 여동생 되시지요? 직접 찢어주시겠습니까?”

“좋아요.”

백소영이 차용증을 받자마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백자안이 말릴 사이도 없었다.

“속이 후련하네.”

백소영이 미소를 지었다.

왕해가 포권한 후 말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무림맹 장사지부장님도 함께 오시면 좋겠군요. 그러면 확실할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백자안이 포권으로 답례했다.

왕해가 객잔 밖으로 나간 후 백자안이 백소영을 나무랐다.

“뭐 그리 급하다고 받자마자 찢었느냐?”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내 생각이지만 오라버니가 너무 의심하는 것 같아. 나쁜 놈들이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호의를 베풀 수도 있잖아? 흑천방주가 군사부의 서신을 받고 놀랐던 것이지.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것이지만, 흑천사걸 그놈들이 흑천방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잖아? 내 말은 굳이 복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

“소영이 말도 일리가 있어요.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본맹과 척을 지면서까지 복수할 정도로 흑천방이 의리 있는 집단은 아니에요.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지부로 가요.”

“네.”

백자안이 설중화, 백소영과 함께 객잔을 나와 무림맹 장사지부로 향했다.

가는 도중 그가 생각했다.

‘왕해 그자가 호의를 보인 것 같지만 눈빛이 좋지 못했다. 분명 무슨 함정이 있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조심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겠구나. 함정만 피하면 피해 없이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셈이니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결국은 내 실력이 중요하겠군.’

백자안이 새삼 사흘 전 흑천일과의 대결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무명진기의 양은 지난 사흘간 좀 더 불어나 있었다.

계속해서 연마한 덕분이었다.

극히 미미한 양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십 년간 쌓은 운기토납지기보다 훨씬 더 위력이 있었다.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새롭게 생성한 무명진기의 질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이다. 육합계열 무공과의 연결도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일성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내공 사용이 가능했다. 혹시 내가 잠시지만 무명심법 칠성에 달했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심득이 작용했을지도······ 텅 비어 있어 허공과도 같지만, 오히려 충만한 그 느낌. 아니다. 어쩌면 무명검법을 펼쳤을 때의 깨달음일 수도 있겠군. 나와 검이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무공에 대해 생각하며 걸어가던 어느 순간.

장원 하나가 보였다.

바로 무림맹 장사지부였다.

“이곳이에요. 장사지부는 호남성 총지부의 역할도 하고 있는 곳이지요.”

설중화가 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지부 대문 앞에는 여덟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와룡대원 설중화라고 해요. 여기 이분은 순찰당 소속 백자안 무인이시지요.”

“백자안!”

이미 백자안의 이름을 알고 있는 듯 경계무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리 지시를 받았는지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서 들어가시오. 안 그래도 지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숙였다.

일행은 경계무사 한 명의 안내를 받아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장원은 매우 넓었다.

전각만 수십 채가 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부 무사의 수만 해도 천 명에 가까웠다.

전각 사이사이로 십여 명씩 조를 짠 지부 무사들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 있을 용봉대회 때문인 것 같았다.

“웬만한 중소방파 보다 더 큰 규모군요.”

백자안의 말에 설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요. 이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건물도 많고 무인도 많군요.”

“언제 와 보셨습니까?”

“어릴 때요. 인연이 닿아 구경할 수 있었어요.”

“아, 그랬군요.”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

얼마 후 일행은 전각 한 곳에 도착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지부장님께 말씀드리겠소.”

경계무사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그와 함께 육십 대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나타났다.

건장한 체구에 네모난 얼굴, 그리고 구릿빛 피부.

바로 장사지부장 우문호(宇文護)였다.

그는 무림맹 장로 출신이며 절정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하하하! 어서 오게. 자네가 천년색마를 죽인 백자안인가? 나는 우문호라고 하네.”

“순찰당 무사 백자안입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숙였다.

설중화와 백소영 역시 인사를 했다.

“와룡대원 설중화입니다.”

“저는 자안 오라버니 동생 백소영이라고 합니다. 지부장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 [제5장] 흑천방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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