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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5화 (25/250)

< [제8장] 절대 내공 4<1권끝> >

복악양파 무인들의 본거지는 어느 한 장원 지하였다.

그 장원은 옛날 황족이 살던 곳으로 비상시를 대비해 지하에 대피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장원의 소유자는 무림명숙으로 무림맹 장로 출신인 동정어옹(洞庭漁翁)이었다.

그는 나이가 백 살이 넘었다. 오래전 무림에서 은퇴한 후 동정호에서 낚시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악양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어 하는 그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낚시하러 갈 때도 늘 죽립을 쓰고 다녔다.

그러던 차에 수적들이 도시를 점령하자, 그 역시 분노했다.

게다가 수적들 때문에 낚시를 자유롭게 못 하게 되자 그 분노는 더 했다.

그래서 수적들에게 저항하는 무림인들에게 이 장원을 제공했다.

지하 대피 공간은 매우 넓어 수천 명도 수용이 가능했다.

먹을 것이 문제였지만, 무인들은 비상시를 대비해 벽곡단을 며칠 분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지난 사흘간 비밀리에 모인 사람들의 수가 천여 명이었다.

이들은 내부 회의를 열어 악양을 수복한다는 의미로 복악양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무슨 문파가 아니라 그만큼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적들의 무공이 높아져 큰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본거지마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수적들이 집마다 수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양민으로 위장해 성내 정보를 계속 수집했다. 그러다가 마침 백자안과 설중화 두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동정장원(洞庭莊園) 지하 광장.

복악양파 수장으로 추대된 동정어옹이 천여 명의 무인들과 함께 백자안과 설중화를 반겼다.

먼저 백자안과 설중화, 그리고 동정어옹을 비롯해 복악양파 주요 고수들의 소개가 있었다.

동정어옹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백 대협과 설 대원께서 이렇게 와주셨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오. 특히 백 대협께서 성에 들어오자마자 놈들 이백여 명을 일 검에 쓸어버렸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소. 가히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할 것이오. 성 밖 토벌군의 병력은 어느 정도 되오?”

“장사성 관군 이천과 무림맹 장사지부 무사 천, 모두 삼천 명입니다.”

“아!”

“으음······.”

지하 광장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 숫자였다.

설중화가 물었다.

“수적들이 삼만 정도 되나요?”

“그 정도 될 것이오. 정보에 의하면 녹림칠십이채와도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니, 그놈들까지 오게 된다면 십만도 훌쩍 넘을 것이오. 다행히 녹림칠십이채의 수장인 녹림왕(綠林王)이 망설이고 있다 하오. 놈들이 합류하기 전에 수적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오.”

“놈들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우리도 완전히는 모릅니다.”

설명을 해준 사람은 무림맹 악양지부 무사인 두기봉(豆基奉)이란 자였다.

외부 지원 요청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실패해 이곳에서 은신 중이라 했다.

참고로 악양지부는 지부장을 비롯해 삼백여 지부 무사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대패했다고는 들었으나 그 정도까지인지는 몰랐던 백자안과 설중화가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본 곳은 무림맹 지부 무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십 곳이 넘는 정파 무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양민들까지 합쳐서 지금까지 사망자가 삼천 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관아에 잡혀 있는 정파 무인들의 수는 천여 명이며, 양민들도 오백여 명이 갇혀 있습니다. 문제는 내일 저잣거리에서 정파 무인 천여 명을 모두 공개 처형할 예정이란 겁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처형장으로 가서 그들을 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두기봉의 말에 백자안과 설중화 두 사람이 안색을 굳혔다.

공개 처형을 시키는 것은 본보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함정의 성격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놈들의 함정이란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형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두기봉이 입술을 깨물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동정어옹이 말했다.

“백 대협의 의견을 듣고 싶소. 우리는 이제부터 백 대협의 지휘를 받을 것이오. 나는 너무 늙어 무공도 많이 약해졌고 정세에도 어둡소. 맹주 자리를 맡아주시겠소?”

동정어옹이 품속에 있던 패를 하나 꺼냈다.

그 패는 임시로 만든 것이긴 하나 복악양파 수장인 맹주를 증명하는 지휘패였다.

수장을 장문인이라 부르지 않는 것은 복악양파가 단일 문파가 아니라 맹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제가 감히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일개 무림맹 무사에 불과합니다. 대협으로 불러주시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어찌 맹주 자리까지······.”

백자안이 사양했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복악양파 무인들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동정어옹 역시 그들의 의지를 읽고 맹주 자리를 내놓은 것이다.

“백 대협. 맹주 자리는 악양이 수복될 때까지 임시로 맡는 것이니 더는 사양하지 마시오. 이 늙은이의 무공이 이전 같았다면 내 어찌 이곳에서 숨어있기만 하겠소? 이렇게 부탁하오.”

동정어옹이 백자안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무림명숙이자 원로로서 파격적인 일이었다.

천여 명에 달하는 복악양파 무인들 역시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이 황급히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더는 사양하기 어려웠다.

“좋습니다. 수적들을 몰아낼 때까지만 잠시 맡기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복악양파 역시 그때는 자연스럽게 해체될 겁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복악양파 무인들이 일제히 포권하며 예를 표했다.

설중화가 말했다.

“맹주라는 호칭은 자칫 무림맹 총단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회주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복악양파라는 이름도 복악양회(復岳陽會)로 바꾸는 게 좋겠네요.”

“좋은 생각입니다. 무림맹주님이 계신데 제가 맹주가 될 수는 없지요. 설 대원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백자안이 설중화의 의견을 받아들여 호칭 정리를 했다.

설중화는 수적을 몰아낸 이후의 일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사실 가뜩이나 텃세가 심한 무림맹 지휘부에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회주님을 뵙습니다.”

“복악양회 만세!”

복창 몇 번으로 사기가 다시 올라갔다.

조직이 재편된 셈이었다.

백자안은 복악양회의 군사로 설중화를 임명했다.

또한 동정어옹을 부회주로, 두기봉을 총관으로 임명했다.

일시적인 조직이라 하나 수적들의 수가 너무 많아 언제 성을 수복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지휘부를 꾸린 것이었다.

설중화가 말했다.

“시급한 것은 내일 있을 처형식을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에요. 지금처럼 아무 준비 없이 처형장을 기습하려는 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두 번째는 놈들의 전력에 타격을 주는 일이에요. 듣자 하니 수적들이 내공수라는 약물로 무공이 고강해졌다고 하던데 그것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두기봉이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 내공수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매일 수적들에게 제공되는 그 물을 차단하게 되면 놈들의 전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니까요.”

“누가 그 내공수를 수적들에게 제공하고 있나요? 장강수왕 그자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 못 하고 있습니다. 다만 추측건대 놈들의 배후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성 밖에 있는 토벌군이 공격하기 전에 반드시 내공수 공급을 끊어놓아야 해요. 그래야 승산이 있어요. 지금은 내일 처형될 분들을 구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 같군요. 회주님 의견은 어떠한가요?”

설중화가 백자안을 쳐다봤다.

복악양회 무인들 역시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 생각으로는 오늘 밤이라도 그분들을 구출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설중화가 안색을 조금 굳혔다.

백자안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이만에 가까운 수적들이 있는 관아를 공격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 보니 이곳에 있는 복악양회 무인들 역시 성한 사람이 얼마 없었다.

수적들과 싸우다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오늘 밤 저 혼자 관아에 들어가 놈들의 동태를 살펴보겠습니다. 뇌옥에 갇혀 있는 분들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겠지만, 무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구출에 실패한다면 내일 처형장에서 구하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주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설중화가 백자안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백자안이 이미 결심을 굳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백 무인의 무공이 놀랄 정도로 높아졌으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공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복악양회 무인들이 함께 가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설중화가 눈을 빛냈다.

백자안이 말했다.

“여러분은 내공수의 출처에 대해 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출처를 알게 되면 제가 처리를 하겠습니다. 설 대원은 지금 상황을 성 밖에 있는 토벌군 지휘부에 보고해주십시오. 내공수 공급을 차단하기 전까지는 공격을 유보해 달라고 하십시오.”

“네. 어차피 원래 계획대로 지원군이 올 때까지 공격을 감행하지 않을 거예요. 문제는 군량미가 부족하다는 건데 따로 대책이 마련되고 있을 거예요. 그럼 저는 바로 성 밖에 갔다 오겠어요.”

“조심하십시오.”

“네. 그럼.”

설중화가 지하 광장에서 빠져나갔다.

백자안은 두기봉 등 내상을 입지 않은 백여 명으로 하여금 장원 밖으로 나가 내공수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도록 했다.

그동안 그는 복악양회 무사 중 상처를 입은 자들을 치료해주었다.

내공치료였다. 백자안의 내공이 막강한데다가 질까지 좋아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전면전을 대비해 복악양회 무인들의 무력을 높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치료하는 것만으로 수적들의 상대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 장강수왕을 제거해야겠구나. 수장이 죽게 되면 놈들도 당황해 처형 일정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내공수 문제를 해결한다면 토벌군과 합동작전을 펼쳐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다.

아직 설중화는 돌아오지 않았다.

백자안은 걱정이 되었지만 예정된 관아 정탐을 미룰 수 없었다.

동정어옹 등 복악양회 고수 여러 명이 함께 가겠다고 했으나, 백자안은 정중히 이를 거절하고 장원 밖으로 나갔다.

그의 품속에는 복악양회 측에서 확보한 관아 지도가 있었다.

관아 내부 건물의 구조와 뇌옥의 위치 등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백자안이 유심히 본 것은 비밀 통로였다.

뇌옥 근처에 다행히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뇌옥에서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다면 스스로 대피하게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상황을 봐서 행동한다. 가능하다면 이 기회에 관아에 있는 수적들을 몰살시키는 것도 고려해봐야겠구나. 내 능력이 그 정도까지 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내 한 몸 지킬 자신은 있으니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경공을 펼쳤다.

휙휙휙.

깊은 밤 허공을 날아가는 그의 신형이 어느새 한 점으로 변했다.

<제1권 끝>

< [제8장] 절대 내공 4<1권끝>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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