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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6화 (26/250)

< [제9장] 내공수 1 >

[제9장] 내공수

악양성. 관아.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이라 그런지 밤이 더욱더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관아 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성벽 방어 병력 일만을 제외한 장강수로채 수적 이만여 명이 교대로 잠을 자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수천 명의 수적이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순찰하고 있었다.

지휘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대청 안에는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동정수로채주 원보가 말했다.

“과연 백자안 그놈이 올까요?”

“물론이다. 놈은 오늘 밤 반드시 옥에 갇힌 정파 놈들을 구출하러 올 것이다. 화약은 모두 설치했지?”

“네. 누구든 뇌옥 안으로 들어가면 즉시 폭발하도록 만들어두었습니다. 정파 놈들 천여 명과 양민 오백여 명, 모두 천오백 명 정도가 몰살당할 겁니다. 물론 백자안 그놈과 함께 말입니다. 후후후!”

원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장강수왕이 뇌옥에 화약을 설치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백자안의 무공이 강해도 관아에는 이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밤에는 낮에 성내 곳곳을 순찰하던 병력까지 모두 돌아와 전력이 강해졌다.

상당수가 잠을 자고 있다고 해도 비상종이 울리면 곧바로 일어나 전투태세를 갖출 것이었다.

반면 백자안은 고작 한 명이었다.

이백여 명의 수적을 일 검에 몰살시켰다고는 하지만 장강수로채의 진짜 고수들은 건재했다.

백여 명에 달하는 각 수채의 채주들과 장로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강수왕은 백자안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고 가장 확실한 방책을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화약이었다.

화약은 조정에서 보유를 금지한 품목으로 많은 양을 지니고 있으면 반역으로 간주할 정도였다.

“후후후! 놈들은 내가 예정대로 내일 저잣거리에서 처형식을 거행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맞춰 구출작전을 펼치려 하겠지. 함정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놈들 천 명보다 백자안 한 놈이 더 위협적이다. 놈은 아마도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화약이 아깝지만, 놈을 제거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장강수왕이 눈을 빛냈다.

백자안이 나타나 이백여 수적들을 몰살시켰다는 보고를 받고 서둘러 사천사자들에게 찾아갔다.

화약으로 백자안을 제거하는 방안은 사천사자들이 추천해준 것이었다.

참고로 이번에 악양에 온 사천사자의 수는 모두 백 명이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내공수를 제공하는 역할만 했다.

아직 자신들이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어 장강수왕은 그들을 극진히 모셨다.

한편 그 시각 백자안은 관아에 잠입하고 있었다.

은잠술을 펼친 상태라 순찰을 하고 있는 수적들에게 전혀 발각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역시 뇌옥이었다.

경계 정도가 어떠한지 점검해 보기 위해서였다.

한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관아 뇌옥은 지하에 있었다. 그 밑으로 내려가는 입구 앞에 간수들이 있어야 했다.

지금 뇌옥 입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혹시 탈옥을 꾀할 것은 눈치챈 걸까.’

백자안이 십장 정도 거리에 은신하며 망설였다.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함정이 있다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간수 십여 명 정도는 보여야 했다.

‘혹시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인가?’

백자안이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꼭 뇌옥이 아니라도 천오백 명 정도면 전각 한 곳을 골라 그곳에 다 가둬둘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정말 비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은잠술을 펼쳤기에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스스슷.

백자안이 뇌옥 입구로 다가갔다.

물론 그의 생각대로 외부에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적들이 먼 곳에서 감시하고 있다 하더라도 눈치챌 수 없는 것이다.

백자안이 지하 뇌옥으로 내려가는 입구의 문을 열려는 순간, 이상한 냄새가 감지되었다.

바로 화약 냄새였다.

내공이 극에 달하게 되자 후각 역시 최고조였다.

그래서 아무리 고수라도 절대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게 된 것이었다.

‘설마 화약을 묻어놨다는 말인가. 냄새로 봐서 엄청난 양이다. 만약 터지면 뇌옥 전체가 박살 날 것이다. 하지만 나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구하기 어려운 화약을 낭비할 가능성은 적지 않을까.’

백자안이 고민에 빠졌다.

화약이 터져도 호신강기로 보호할 수 있어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뇌옥에 갇힌 사람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다.

뇌옥 전체에 연쇄폭발을 일으키도록 기관 장치가 된 것이라면 속수무책인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화약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치밀한 놈들이다. 내가 강력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벌써 파악한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백자안이 신형을 돌려 성주 처소 쪽으로 날아갔다.

성주 처소로 사용되는 전각 일 층에는 회의나 재판이 열리는 대청이 있었다.

지금 그 대청에 장강수왕 등 백여 명의 수적 지휘부가 여전히 회의를 열고 있었다.

전각 주위에는 예상대로 천여 명의 수적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에 고수들이 모여 있다. 작전 회의를 열고 있는 것인가.’

스스슷.

백자안은 유령과도 같은 신법으로 대청 대문에 다가갔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백자안이 연 것이었다. 고도의 은잠술 때문에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마치 바람 때문에 열린 것 같았다.

경계 무사들이 황급히 대문을 닫았으나, 이미 백자안은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이윽고 드러난 광경은 장강수왕과 원보 등 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이 앉아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백자안의 은잠술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은잠술도 단점이 있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을 수 없고 체온 등이 있기 때문에 그 지속 시간이 짧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실제 무공을 사용할 때는 자연스레 은잠술이 해체되기 마련이었다.

살수들은 귀식대법을 사용해 호흡까지 숨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고수들은 간파할 수 있었다.

백자안은 좀 더 숨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가 지금 펼치고 있는 은잠술은 보통 은잠술이 아니라 무명비록에 수록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내공은 외부에서 감지가 되지 않기에 은잠술 역시 위력이 뛰어났다.

백자안은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도 안 되기 때문에 대청 구석에 있는 청동향로 뒤에 숨어 있었다.

은잠술에 은폐물까지 더해진 셈이었다.

‘일각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숨죽이고 있는 순간.

동정수로채주 원보가 다시 말했다.

“총채주님. 폭발 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놈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으음, 사천사자들의 예측이 틀린 것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물론 아직 시간이 있긴 하지만······.”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사자분들이 백자안 그놈을 과대평가한 것 같습니다. 사자분들의 무공은 가공할 정도인데, 사자 열 분이 합공을 가해야 놈을 죽일 수 있다고 했다면서요?”

“그렇다. 우리 장강수로채 무사 이백여 명을 일 검에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그 정도로 계산한 것이지. 방심은 금물이다. 어쩌면 지금 이 안에 와 있을지도 모르지.”

장강수왕이 대청 안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부터 가슴이 조금 답답한 느낌이었다.

사실 그의 무공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절정급 고수가 된 지 오래인데다가 이번에 뛰어난 품질의 내공수까지 마신 덕분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은잠술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었다.

하기야 은잠술을 영구히 지속할 수 있다면 그자야말로 천하무적이 될 것이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보이지 않는 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대청 안에 있는 수적 백여 명을 살펴봤다.

내공수 때문인지 하나 같이 고수였다.

놀랍게도 개개인이 절정고수급이었다.

하지만 다들 미간에 어두운 기운이 조금 느껴졌다.

‘내공수에 마약 성분이 있다고 하더니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군. 내공수를 만든 곳이 어딘지 몰라도 어쩌면 저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느낌상으로는 생강시가 되는 과정과 비슷하군.’

무명부록에는 강시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강시는 크게 생강시와 사강시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사강시 즉 죽은 시체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를 사용하는 것이라 그 위력이 약한 편이었다.

특히 강시의 움직임이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장풍 위주로 공격을 가하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도검불침의 몸을 갖게 되는 데는 사강시가 더 유리했다.

생강시는 사강시와 반대였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특히 본신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도검불침의 상태 역시 사강시보다는 못하지만 웬만한 병장기는 뚫지 못했다.

하지만 생강시라 해도 완전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이미 이지를 상실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생강시 역시 죽은 사람으로 보는 게 더 가까웠다.

한데 무명부록에는 생강시를 치료해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어쩌면 강시술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군.’

강시술은 무명부록 상의 비술로 강시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효능이 있었다.

그 조종은 강시 상태를 해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자안은 그것으로 내공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가설에 불과했다.

게다가 내공수를 먹은 수적이 너무 많았다.

그들 모두에게 강시술을 펼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차라리 지금 바로 장강수왕 저자를 암살하는 게 좋겠다. 놈이 죽게 되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놈들의 수괴이니 암살을 가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백자안이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장강수왕을 가리켰다.

지풍을 날려 머리를 관통시킬 생각이었다.

동정수로채주 원보가 말했다.

“총채주님. 뇌옥에 매설된 화약은 언제 터집니까? 가만히 놔둬도 시간이 지나면 터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후후후! 내일 정오 때 터질 것이다. 그전에 내가 기관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 물론 해제하는 방법은 나만이 알고 있다. 정말 만에 하나 백자안 그놈이 나를 죽인다면 아무도 기관을 해제할 수 없을 것이다.”

“아! 백자안 그놈이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그래야 총채주님을 공격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못할 게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사실 이번에 화약을 대준 것도 사천사자들이다. 기관 역시 마찬가지지. 백 년 간 힘을 비축했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더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데 백자안 그놈 하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잠도 못 자고 기다려야 한다니······ 그건 좀 그렇습니다. 그놈이 뭐라고 대체······.”

“사천사자들의 판단은 정확하다. 그분들이 백자안 그놈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맞지만 신중해서 나쁜 것은 없지.”

장강수왕이 말을 하며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답답한 기운이 계속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살수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대청 안에 있던 중년인 한 명이 말했다.

“총채주님. 이럴 게 아니라 제가 한번 뇌옥에 다녀오겠습니다. 일부러 경계 무사들을 모두 철수시켰다고 하셨는데, 놈이 다녀갔다면 분명 무슨 흔적이 있을 겁니다.”

“박 채주. 그럼 어서 다녀오시오.”

“네. 총채주님.”

박 채주라 불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박무(朴武)라는 사내로 용왕채(龍王寨)라는 수채의 채주였다.

비록 십팔채 안에 들지는 못하지만 신흥 수채로 그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장강수왕을 죽이려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내일 정오에 저절로 뇌옥이 폭발한다고 하니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었다.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군. 차라리 박 채주라는 저자를 따라가 죽인 후 같은 얼굴로 역용하는 것이 낫겠다. 안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강수왕 저자가 눈치챌 것이다. 무공이 대단히 높은 자다.’

백자안이 대청 밖으로 나가는 박무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 [제9장] 내공수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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