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35화 (35/250)

< [제12장] 군자환 1 >

[제12장] 군자환

관아 대청.

밤늦은 시각이지만 대청 안에는 백여 명의 수적 지휘부가 모여 있었다.

장강수왕으로 역용한 백자안은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재했다.

그의 옆에는 백풍, 백리설아, 악미미 세 사람이 혈도를 찍힌 채 앉아 있었다.

백자안이 용왕채 지휘막사로 가서 그들을 일부러 제압했던 것이다.

원래는 그들에게 자신이 역용한 사실을 전음으로 알려주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뭔가 어색할 것 같았다.

각 채주들이 의심하게 된다면 계획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의 계획은 다시 수적들에게 자신이 만든 내공환을 복용시켜 내공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리설아가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정말 채주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인가요?”

공식적으로 용왕채주 박무의 여자가 된 이상 공손하게 물을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물론이고 백풍, 악미미 모두 백자안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들 역시 거대한 폭발 소리를 들었다.

막사에 있을 때 그 소리를 듣고 다들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발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때 백자안이 와서 곧바로 혈도를 찍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혈도를 찍은 사람이 백자안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 아쉽게도 박 채주는 백자안 그놈과 동귀어진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 장강수로채의 전통에 따라 너희 세 사람은 내가 보살펴 줄 테니까. 아니지. 이놈은 그냥 죽일까?”

백자안이 짐짓 거만한 태도로 백풍을 가리켰다.

백풍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거짓말 하지 마라. 채주님이 동귀어진했을 리가 없다.”

“왜지? 다른 이유라도 있나?”

“그건······.”

백풍이 말을 얼버무렸다.

자칫 유도신문에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백자안과 박무가 동일인이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수룡채주 수룡객이 물었다.

“총채주님. 저놈을 죽일까요? 이제 박 채주도 없지 않습니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놈이 얼마나 거만했습니까? 성루에 있을 때도 놈이 총채주님의 명을 대놓고 거역하는 것을 모두 봤습니다. 백자안 그놈과 동귀어진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역심을 품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차라리 잘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박 채주가 날 죽이고 총채주 자리를 노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소.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욕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아, 그리고 백풍 저자는 그냥 내버려 두시오. 백리 계집이 아끼는 사람이니 살려둘 수밖에. 그보다 성 밖 토벌군의 동태는 어떻소?”

“외곽에 머물러 계속 주둔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습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너무 늦었소. 내일 아침 마지막 내공환을 복용한 후 총공격을 가할 생각이오.”

“마지막 내공환이라 하심은?”

수룡객을 비롯한 지휘부 고수들이 의아해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천사자분들이 모두 돌아갔소. 하지만 돌발 변수가 염려되어 내게 내공환 삼만 개를 다시 남겼소. 이번의 내공환은 사흘간 내공을 백 배 정도 높여주는 것이오. 그 정도면 우리 힘으로 충분히 무적세가 놈들을 몰살시킬 수 있을 거라 하셨소.”

“아!”

“백배라!”

단 사흘이라고 하지만 백배나 강해진다는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새로 받은 내공환을 보관하고 계신 겁니까?”

“그건 아니오. 녹림왕이 급히 불러 시간이 없는 바람에 삼만 명 분량의 내공환을 만들 수 있는 원액과 그 제조 방법을 가르쳐 주셨소. 오늘밤 내가 직접 제조할 생각이니, 내일 아침 어제와 같은 시각에 모든 병력이 모이도록 하시오. 아, 이번에는 성곽 방어 병력도 모두 소집하시오. 환약을 만드는 데 실패하면 연기로 만들어 흡입하는 방식으로 할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휘부 고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백자안이 말하는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공수나 내공환을 복용하고 큰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의심을 못하는 눈치였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군자산을 만들 수 있는 용독술을 알고 있으니 환약을 삼만 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실패하면 직접 수적들에게 군자산 효력이 담긴 연기를 마시게 해야겠다. 그전에 토벌군에게 연락해 때를 맞춰 총공격하게 하면 되는데, 지금으로선 연락할 방법이 없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사천사자들이 없어서 계획대로 실천만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군자산의 효력이 얼마나 가는 가였다.

보통 일반적인 군자산은 하루 정도 내공 발현을 제한하게 된다.

하지만 수적들은 지금 내공환을 복용한 상태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군자산의 효력이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토벌군의 공격 시기와 군자산을 뿌릴 시기를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내공 제한 시간이 한 시진 정도만 지속하여도 수적들을 모두 소탕할 수 있었다.

‘으음,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급하면 내가 직접 다녀와도 되니까. 아니면 아예 내일 아침에 수적들을 나 혼자 제거하는 수도 있겠군.’

삼만이란 숫자가 주는 압박감이 대단했지만, 내공이 없는 상태가 된다면 혼자서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였다.

수적 한 명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총채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또 큰일이냐?”

“정탐병의 보고에 의하면 뇌옥에 가둬 놨던 놈들이 모두 토벌군 진영으로 갔다고 합니다.”

“뭣이라고? 폭발로 다 죽은 게 아니었나?”

백자안이 놀란 척했다.

“네. 놈들이 비밀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통로가 길고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 성벽 방어 병력이 발견 못 한 것 같습니다.”

“으음, 폭발 과정에 비밀통로가 발견된 것 같군. 나는 간수실 근처에 있어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무공이 약해 변수가 되지 못할 놈들이니까.”

백자안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모두 물러가라. 백풍, 백리설아, 악미미 세 사람은 남고.”

“명을 받들겠습니다.”

수채 지휘부 고수들이 대청 밖으로 빠져나갔다.

백자안이 백풍, 백리설아, 악미미 세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확신을 주기 위해 본 얼굴도 한번 보여줬다. 지휘막사에서 나눴던 대화도 말해줬다.

“아! 정말 자안 오라버니셨군요. 전 돌아가신 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백리설아가 눈물을 흘렸다.

백풍 역시 매우 기뻐했다.

“하하하.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장강수왕이 죽었다고 하니까 속이 시원하구나.”

“흥! 절 또 속였군요.”

악미미가 코웃음을 쳤으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사실 조금 전 그녀는 백자안이 실제 죽었다고 생각해 깊은 슬픔을 느꼈던 것이다.

마치 하루아침에 과부가 된 느낌이었다.

백자안이 세 사람의 혈도를 풀어준 후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그러면 수적들이 의심을 할까 봐 그랬습니다. 이제 한숨 돌렸으니 다음 계획을 실천에 옮겨야지요.”

백자안이 내일 군자산으로 수적들을 중독시킬 계획을 밝혔다.

“그럼 그전에 토벌군 쪽에 오라버니 계획을 알리러 갈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그렇다.”

“제가 가겠어요.”

악미미가 지원했다.

하기야 백자안을 제외하고 가장 무공이 강한 사람이 그녀였다.

“악 소저는 안 되오. 말없이 사라지면 수적들이 의심할 것이오.”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요? 군자산 효력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일단 군자환을 만들어보겠소. 내공으로 만드는 것이라 성공만 한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백자안이 밖에 있는 수적들을 시켜 호리병 백 개를 가져오게 했다.

수적들이 호리병을 두고 나가자, 무명부록 상에 있던 진법 하나를 쳐서 아무도 대청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음파까지 차단해두었기에 대청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무명부록이 도움이 많이 되는구나. 무저곡에 있을 때 재미가 있어서 여러 번 봤던 것이 주효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무명부록에 있는 비술은 신기할 정도로 곧바로 구현되었다.

별 연습이 필요 없었다.

백자안은 백 개의 호리병을 앞에 두고 천천히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가 뿜어내려는 진기는 일부러 혼탁을 가한 것으로 군자산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무명부록에 있던 용독술에 적힌 대로 그가 혼탁진기를 뿜어내자, 호리병 위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끼었다.

그 안개를 가루로 만들면 군자산이요, 환으로 만들면 군자환이었다.

백자안이 만들려는 것은 군자환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내공환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백자안이 다시 양손으로 원호를 그리자, 검은 안개가 물방울처럼 뭉치더니 환을 이루었다.

“성공했다!”

백자안이 양손을 휘젓자 삼만 개의 환이 호리병 속에 각각 삼백 개씩 들어갔다.

투투툭.

“와! 굉장해요. 오라버니는 정말 못하시는 게 없네요.”

백리설아가 감탄했다.

백풍과 악미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악미미는 다시 코웃음을 약하게 한번 쳤다.

그때였다.

밖에서 수적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채주님. 토벌군 쪽에서 특사를 보냈습니다. 성안으로 들이라고 할까요?”

음파를 차단해두었지만, 밖에서 나는 소리는 안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함부로 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기에 수적이 밖에서 알린 것이었다.

백자안이 진법을 해제하고 음파차단까지 푼 후 말했다.

“들여보내라. 성안으로 들어오면 특사를 이곳으로 데려와라.”

“존명.”

* * *

토벌군 쪽에서 온 특사는 놀랍게도 독고준이었다.

그것도 혼자였다.

대청 안에는 특사가 왔다는 소식에 수적 지휘부 백여 명이 다시 모였다.

독고준이 백리설아, 악미미, 백풍 세 사람을 한번 본 후 말했다.

“악 소저와 백리 소저, 그리고 백 표사 세 분을 넘겨주시오. 그러면 병력을 완전히 철수하겠소.”

“하하하.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백자안이 껄껄 웃었다.

독고준의 의도를 아직 모르고 있는 데다가 채주와 장로들이 보고 있어 장강수왕 행세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이오. 그대들의 무력이 너무 강해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소. 하지만 철수에는 명분이 필요하니 저 세 분을 데려가겠소.”

“흥! 말장난하는 것이냐? 썩 돌아가라.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참수하고 싶으나, 혼자 온 것이 가상해서 용서해주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요.”

독고준이 말을 하며 악미미에게 전음을 날렸다.

「악 소저. 지금 내가 장강수왕 저자를 죽일 것이니, 그렇게 알고 나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준비를 하시오.」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보시는 장강수왕이 바로 백자안 공자예요. 뇌옥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나요?」

「못 만났소. 소저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오느라······.」

「그 마음은 감사하게 받겠어요. 하지만 같은 편끼리 싸워선 안 되겠지요.」

악미미가 전음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특히 내일 수적들에게 군자환을 복용시킬 계획을 밝혔다.

독고준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자신이 패했던 박무 역시 백자안이었다는 말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아니었다. 엄연히 그는 토벌군의 총지휘자인 것이다.

「놀라운 계획이군요. 그러면 일이 성사되는 즉시 성문을 열어주시오. 그것을 신호로 총공격을 가하겠소.」

「알겠어요. 잠시 기다리세요.」

악미미가 이번에는 백자안에게 전음을 보내 독고준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해줬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해줬다.

그 모습을 본 독고준이 포권을 했다.

“우리 제의를 거절하다니 유감이오. 이만 돌아가겠소.”

< [제12장] 군자환 1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