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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74화 (74/250)

< [제24장] 해신 3 >

해신 미야모토.

그는 지금 벅찬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백자안의 내공을 흡수한 지 한 시진 째.

하지만 아직 끝날 줄을 몰랐다.

해신흡결이 흡수대법보다 아무리 흡수 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내공의 양이 아니었다.

‘스미치카 이놈의 내공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지금 보니 나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다면 자칫 주화입마될 뻔했다.’

미야모토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계속 내공을 흡수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흡수한 내공은 무려 삼갑자 정도.

미야모토 자신의 내공과 비슷한 양이었다.

사실 삼갑자 정도면 무림 최고 수준이었다.

한데 백자안의 내공은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끝없이 샘솟는 샘물과도 같았다.

미야모토는 기쁘면서도 덜컥 겁이 났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내공을 흡수해도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었다.

‘벌써 삼갑자를 흡수했으니, 이제 나의 내공은 육갑자가 되었구나. 삼갑자 이상부터는 내공의 양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공은 다다익선이지.’

미야모토가 자신의 내공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을 깨닫고 다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래 걱정할 게 뭐가 있나. 이놈은 지금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데······ 다만 왜 이렇게 내공이 강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구나. 죽은 고래의 내단이라도 복용한 것인가.’

미야모토가 마음을 다스렸다.

그 순간에도 내공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수하들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엄명을 내렸지만 벌써 한시진 째였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한 사람 정도 들어올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안 되겠다. 조금 쉬었다가 하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를 한 번 더 주면 안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미야모토가 백자안의 정수리에서 손을 떼려 했다.

그때였다.

망부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던 백자안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이후부터는 미야모토에게 악몽이었다.

손이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내공이 오히려 백자안의 몸속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신이 흡수한 속도보다 수십 배는 빨랐다.

“으으······.”

온몸의 피가 모두 빨려 나가는 느낌에 신음도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한번 역류한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금세 백자안의 몸에서 빠져나갔던 내공이 모두 회수되었다. 이제부터는 미야모토의 내공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급살을 맞은 듯 미야모토의 전신이 떨렸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야모토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흡수대법이다.’

미야모토가 절망적인 심정이 되어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아아악!”

비명이었다.

순간, 방문이 열리며 해신방 고수들이 일제히 들어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총책사 노부야스였다.

“해신님!”

노부야스가 급히 다가왔으나, 미야모토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마지막 비명은 그의 유언이 되었다.

그는 마치 해골처럼 가죽만 남았다. 한눈에 봐도 백자안에게 모든 내공을 빼앗겼음을 알 수 있었다.

“놈!”

분노한 노부야스가 검을 뽑아 백자안의 목을 쳤다.

깡.

마치 무쇠를 친 것처럼 쇳소리가 났다.

백자안의 목은 멀쩡했다.

“금강불괴!”

노부야스가 놀랐다.

하지만 백자안이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미야모토에게 갔다.

다시 한번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총책사님! 정말 해신께서 돌아가신 겁니까?”

“그렇다. 돌아가셨다.”

노부야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나 해서 살폈지만 숨은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지금 즉시 신호탄을 쏘아 올려 전 방도에게 해신님의 죽음을 알려라.”

“본토로 철수하실 겁니까?”

“아니다. 본토가 아니라 이곳 해남도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남해검파로 진격 중인 오만 무사에게도 전서구를 보내 즉시 이곳 해남도로 오라고 하라. 수백 년의 전통을 어길 수는 없으니 일단 대륙의 점령지를 모두 버린다. 이곳 해남도에서 해신님의 장례를 치른 후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공격한다. 어서 연락하라. 다른 방도에게도 총소집령을 내려 한 명도 빠짐없이 포구에 모이게 하라.”

“알겠습니다. 총책사님. 스미치카 저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놈 때문에 해신께서 돌아가셨으니, 복수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해신께서 운송대주에게 신공을 사용하시다가 주화입마되어 돌아가신 것 같다. 일단 여전히 정신이 없으니 그대로 둔다. 장례식장에서 해신님의 존체를 수장시킬 때 불에 태워 제물로 바칠 것이다.”

“존명!”

* * *

사흘 후 해남도 포구.

사흘 전보다 두 배 늘어난 이천여 척의 배가 포구 앞바다에 떠 있었다.

바로 십만 왜구, 즉 해신방 무사들이 탄 배들이었다.

사흘 전 해신 미야모토의 죽음은 왜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남해검파 총단으로 진군하던 왜구 오만 명이 해남도로 모두 복귀했다.

그들은 해남도에 남아 있던 본진 오만 명과 합류해 미야모토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오늘은 장례 마지막 날로 미야모토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날이었다.

그런 후 이번에는 전 무사들이 배를 타고 복주에 가서 남해검파 총단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야모토의 수장을 앞두고 지휘부 고수들 간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중원 무림 정복도 중요하지만, 전통에 따라 본토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해신방 십대전투부대 중 한 곳인 흑수대(黑水隊) 대주가 말했다.

“총책사.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되오. 지금이라도 해신님의 시신을 모시고 본토로 돌아가야 하오. 왜 총책사 마음대로 하는 것이오?”

“흑수대주! 방주 대행은 본인이오. 내 어찌 전통을 무시하고 싶겠소? 하지만 지금 본토로 돌아가면 다잡은 승기를 놓칠뿐더러 우리 병력 모두 대인자문주에게 바치는 꼴이 되오. 그래서 절충을 하여 이곳 해남도를 우리 본토로 생각해 모든 병력을 집결시킨 것이오. 사실 내륙에 나가 있던 오만 병력을 이렇게 철수시킨 것도 우리에게는 큰 손실이니, 이 정도면 전통을 지켰다고 할 수 있소.”

“오만 병력을 이곳까지 돌아오게 한 것은 육상 공격보다 해상 공격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오? 남해검파 총단 서쪽에 견고한 장벽이 세워져 공략이 어려워졌다는 보고를 본인 역시 들었소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소. 아무튼 이 문제는 다수결로 이미 정해졌소. 대주 자리가 공석이 된 해신대를 제외하고 일곱 대주가 찬성했으니, 이쯤 하시오. 게다가······.”

“또 무엇이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도 적들이 오히려 우리를 선공하려 할 것이오. 놈들은 해신님이 돌아가신 것을 기회로 여길 테니까.”

“놈들이 이곳 해남도까지 올 것이라는 것이오?”

“그렇소. 어쩌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수도······.”

총책사 노부야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오만 왜구를 해남도로 복귀시킨 것은 그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실제 남해무림연합과 정의련, 무림맹 병력 오만이 지금 함대를 꾸려 해남도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왜구들의 함선은 공격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장례식이 거행되는 대장선을 중심으로 길쭉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장례가 끝난 후 곧바로 복주 쪽으로 나아가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탐 무사의 보고가 전달되었다.

“놈들 함선 천여 척이 복주 근해에서 출발해 지금 우리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해상전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 시진 후면 이곳에 당도할 것 같습니다.”

정탐무사의 보고에 대장선에 탄 천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였다.

노부야스가 말했다.

“이래도 본토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소? 사실 놈들은 우리가 지금 총지휘관을 잃고 허둥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소. 하지만 오히려 놈들이 우리의 유인작전에 걸려든 것이오. 다들 알다시피 해전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오. 전투선의 역량 또한 우리가 월등하오. 놈들을 몰살시킨 후 육지에 상륙하면 그날로 광서, 광동, 복건 세 성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오.”

와아아.

짝짝짝.

대장선을 에워싸고 있던 전투선들에 타고 있던 왜구들이 일제히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노부야스는 왜구들 사이에 나름대로 신망을 얻고 있었다.

죽은 미야모토와 달리 공포 통치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만 각 전투부대 대주들은 그를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실제 전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신들 중에서 방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노부야스는 총책사 자리를 걸고 방주 선출은 이번 전쟁이 종료된 후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

사실 노부야스는 자신이 방주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만한 무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는 총책사가 제격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대주 중 자신의 마음과 맞는 사람을 한 명 골라 방주로 밀어줄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전의 전투에서 승리해야 했다.

“모두 들으시오. 조금 전 들었듯이 놈들이 감히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오고 있소. 아마도 우리가 본토로 철수한다고 생각한 때문인 것 같소. 한 시진 후 놈들이 이곳 해남도에 도착하기 전 해신님의 장례식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소.”

“놈들을 격퇴할 작전은 무엇이오?”

“장례를 마치고 모든 함선은 일단 본토로 돌아가는 시늉을 할 것이오. 그러면 놈들은 이곳 해남도 포구로 몰려올 것이오. 놈들은 우리 전력이 막강한 것을 알고 있으니 해남도 수복을 핑계로 그쯤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소. 그때 우리가 배를 돌려 이곳을 총공격한다면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소. 이곳 해남도 포구는 폭이 좁고 도망할 곳이 없소. 화공에 매우 취약할 것이니, 우리는 일자진을 펼쳐 놈들의 도주로를 막고 불화살을 퍼붓기만 하면 될 것이오.”

“놈들이 우리에게 밀리면 해남도에 상륙하려 하지 않겠소?”

“하하하. 그 점 역시 걱정할 필요 없소.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포구에 화약을 매설해놨소. 인근이 불바다로 변한다면 화약 역시 터질 것이고, 그때는 모두 숯덩이가 될 것이오.”

“하하하. 역시 총책사요. 이번 작전은 나 역시 찬성하오.”

조금 전 반대의견을 개진했던 흑수대주가 껄껄 웃었다.

그만큼 노부야스의 계략이 치밀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반시진 후 작전을 개시할 것이오. 그때까지 장례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오. 여봐라. 스미치카 그놈을 대령하라. 감히 해신님을 돌아가시게 했으니 피의 율법에 따라 화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노부야스의 명에 따라 왜구 무사 두 명이 들것에 실린 백자안을 데려왔다.

대장선 위에는 화형을 위해 큰 철통이 하나 준비되어 있었다.

철통 안에는 장작이 있었다. 장작더미 위에 백자안이 놓여졌다.

“놈의 몸에 병장기가 들어가지 않으니 부득이 불로 태우기로 했소이다. 놈을 제물로 바친 후 해신님을 수장시켜 영원히 넋을 기릴 것이오.”

노부야스가 손짓하자 장작에 불이 옮겨졌다.

화르르.

미리 기름을 부어놓은 터라 금세 불이 활활 탔다.

백자안은 뜨거움도 모르는 듯 그대로 있었다.

한데 노부야스가 우려한 일이 또 발생했다.

설마 했지만 백자안의 몸에 불이 붙지 않았다.

아니 육신 위에 얇은 보호막이 있는 듯 옷깃 하나 태우지 못했다.

그 광경은 오히려 왜구들에게 강한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불에 타지 않는 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신의 풍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불이 전혀 붙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불은 붙었지만 백자안의 몸이 타지 않을 뿐이었다.

“정말 독한 놈이군. 좋다. 어차피 수장시킬 생각이었으니까. 놈을 끄집어내어 바다에 빠트려라. 아니 철통을 통째로 수장시켜라.”

“존명!”

왜구들이 지렛대로 철통을 들어 바다에 밀어 넣었다.

푸시시식.

불이 꺼지며 연기가 치솟았다.

바로 그때였다.

경악할 일이 발생했다.

정신을 잃고 있었던 백자안이 눈을 뜨고 철통에서 신형을 솟구친 것이었다.

그의 몸에는 여전히 불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옷깃 하나 태우지 못했다.

마치 불의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염이 그의 혼을 건드린 것일까.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는 않은 듯 두 눈에서도 강렬한 화염이 이글거렸다.

불이 붙은 채로 대장선 위에 다시 올라온 백자안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우우우!”

< [제24장] 해신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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