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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95화 (95/250)

[제31장] 불패마왕 2

다음 날 아침 백자안이 만박서생을 다시 만나 마교 내부 정보를 자세히 듣고 있을 때였다.

단목수련이 급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총군사님. 큰일 났어요. 아버님 시신이 사라졌어요.”

“맹주님 시신 말입니까?”

만박서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함께 있던 백자안 역시 의외란 표정이었다.

단목군의 시신은 장례 후 아직 땅에 묻지 못하고 있었다.

경황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중원삼성에게 당했다고 단목군이 죽기 전 직접 밝혔지만, 몸에 난 상처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사신의가 올 때까지 시신을 보관해 놓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결정을 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이하게도 시신이 전혀 부패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는 단목군의 생전 내공이 막대했기 때문으로 다들 추정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시신이 사라졌다고 하니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가 매일 아침 아버님 시신 상태를 보기 위해 안치된 방에 들어가는데, 오늘 가보니 관 뚜껑이 열려 있었어요. 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군가 아버님 시신을 훔쳐 간 것일까요?”

“맹주님 시신을 지키던 무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방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고요.”

“주변을 살펴보셨습니까?”

“네. 아무 이상도 없었어요.”

“제가 직접 가봐야겠습니다.”

만박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후 백자안에게 말했다.

“동방무맹주께서는 따라오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이 일은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마교 쪽 동태를 잘 살펴주십시오.”

“네. 그게 좋을 것 같군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만박서생이 단목수련과 함께 총군사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남게 된 백자안은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안심각으로 돌아갔다.

안심각에는 김지혜와 부채도사, 백록공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자안이 만박서생과 면담 후 곧바로 마교 진영이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미리 밝혔던 때문이었다.

“정말 혼자 떠나실 겁니까?”

부채도사의 물음이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알다시피 마교 십만 무사들이 낙양 서쪽 천지곡(天地谷)에 주둔 중이다. 아니 천지산 전체가 현재 마교 세력권이라 할 수 있지. 불패마왕과 귀면탈 소녀가 아직 천지산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내가 가서 두 사람을 만나 향후 일을 의논할 것이다. 천지산을 탈출하는 데 도움을 주면 그들도 우리와 협력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다시 불패마왕이 마교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이전에야 그 명성이 천하제일이었지만 지금은 무공도 거의 잃고 딸에게 의지해 도망 다니는 신세라고 하니까요. 괜히 큰형님만 위험에 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물론 큰형님의 무공을 믿습니다만.”

부채도사가 안색을 굳혔다.

만박서생이 이번에 세운 계획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백록공자가 말했다.

“저도 둘째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만박서생 그 사람은 지금 우리 동방무맹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총단에 남은 이십만 무사까지 이곳 중원에 파견하게 했으며, 이제는 큰형님마저 사지로 몰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물론 만박서생 그분에게 악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번에 해남도 전투가 끝나고 중원무맹에 지원을 요청했을 때 그렇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어요. 한데 상황이 바뀌자 우리에게 전 병력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요.”

“총단에 있는 이십만 무사의 추가 출정은 내가 미리 결정한 것이오. 그것은 세 사람도 알다시피 대인자문을 이번 기회에 제거하기 위해서요. 대인자문 삼십만 명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삼십만의 무사가 필요할 테니까.”

“그렇다면 맹주님께 마교 일을 맡겨서는 안 되지요. 대인자문 놈들을 대적하는 데만 우리 힘을 집중시켜도 모자라는 판에, 맹주님이 혹여 마교 놈들에게 당해 부상이라도 입으신다면······.”

김지혜가 안색을 붉혔다.

그녀 역시 이번에 백자안이 마교 진영으로 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백자안이었다.

“다들 내 걱정을 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오. 더는 그 문제를 언급하지 마시오. 다만 내가 영웅대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둘째가 총지휘권을 가지고 상황에 대처하길 바란다. 알겠느냐?”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부채도사가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총순찰께서도 수고해주시오. 셋째는 지금 즉시 출발해 이곳 낙양으로 오고 있는 이십만 무사들을 마중 나가도록 해라. 그래서 어떻게든 영웅대회 전까지 도착하게 해라. 나의 예상으로는 영웅대회가 끝나고 중원무맹의 새 맹주가 뽑히면 사혈맹과의 전면전이 발발할 것이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합니까?”

부채도사의 물음이었다.

맹주 대행을 맡게 된 그가 유사시를 대비해 물어본 것이었다.

“으음, 어려운 문제다. 모든 작전은 상황에 맞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기응변(臨機應變)의 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지. 만에 하나 내가 돌아오지 못했을 때 전면전이 발생하면 일단 만박서생과 의논해라. 그리고 최대한 대인자문 놈들과의 싸움에 집중하도록 해라. 우리가 대인자문을 맡으면 중원무맹에서는 아마도 사사천교를 맡게 될 것이다.”

“혈교는 누가 막습니까?”

“정의련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련주이자 무적세가주 독고승이 십 년 전에도 혈교를 무찔렀으니까 그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마교겠군요. 혹자는 은자림 쪽에서 마교를 대적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수에서 너무 차이가 나니······.”

“은자림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저력은 무시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은자림이 마교를 막는다고 해도 최고의 결과는 양패구상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원과 동방, 그리고 왜국의 무림 전체 힘이 급속히 약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부지리를 얻는 또 다른 세력이 생겨나겠지.”

“그들이 누굽니까? 혹시 중원삼성이라는 그자들입니까?”

“그렇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원삼성 또한 하수인에 불과할 것이다. 중원삼성의 배후가 진짜 적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다음에 중원삼성과 그 배후를 캐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지. 이제 마교를 우리 우군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지?”

“네. 되기만 한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부채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혜와 백록공자 역시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백자안은 그들 세 명에게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후 중원무맹 총단을 떠났다.

단목군의 시신이 사라진 사건으로 중원무맹 총단 전체가 발칵 뒤집혔지만, 지금 그가 관여할 사건은 아니었다.

사실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단목군의 시신을 그는 보지 못했다.

시신이 사라진 것에 모종의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백자안은 만박서생이 준비해준 말을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두두두.

* * *

천지산.

깊은 동굴 안에 두 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중년인이었고, 한 명은 소녀였다.

한데 그 소녀는 바로 귀면탈 소녀가 아닌가.

귀면탈은 이제 벗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미모 역시 여전했다.

하지만 미모를 뽐내기에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상처도 많았지만, 옷에 묻은 피가 너무 많았다.

한눈에 봐도 치열한 싸움을 벌인 흔적이었다.

핏기 하나 없는 중년인은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귀면탈 소녀, 즉 임요요(林妖妖)가 말했다.

“아버지. 괜찮아?”

“허허. 요요야. 아직도 어린애 말투냐? 나는 괜찮다. 이 아비가 누구냐? 천하제일인 불패마왕이 바로 나다. 조금만 기다려라. 중원삼성 그놈들이 가한 금제만 풀면 날 배신한 놈들을 모두 죽여 줄 테니까.”

중년인, 즉 불패마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실낱같은 피가 입가에 계속 흐르고 있었다.

천룡삭에 묶여 있던 자신을 임요요가 구출한 것은 보름 전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구출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마교 십만 무사들이 이곳 천지산에 본진을 펼쳤을 때 잠시 경계가 허술한 틈을 타 기어코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이들 부녀는 천지산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다만 이곳 동굴에 은신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물론 동굴 입구에 보호진을 쳐두어 외부에서는 동굴이 있는지 모르게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진법의 대가들이 득실대는 마교 고수들의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 지금이라도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야? 갖고 있던 벽곡단도 다 떨어졌단 말이야.”

임요요가 투덜댔다.

그녀는 현 상황이 그렇게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허리에는 천마검이 걸려 있었다.

천마동에서 입수한 천마대장경 역시 조금씩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사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불패마왕을 묶어둔 천룡삭 때문이었다.

천룡삭이 잘릴 때 특수 독이 퍼졌는데 그만 그 독을 마셔버렸던 것이다.

그 특수 독은 중원삼성이 직접 제조한 것으로, 임요요는 내공 소실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마교 무사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천마검 덕분이었다.

물론 천마대장경에서 익힌 무공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뼈아픈 점은 중독 때문에 흡수대법을 펼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불패마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원삼성에게 붙잡힌 후 그 역시 특수 독에 당한 상태였다.

군자산처럼 내공 발현에 제한을 가져오는 그 특수 독은 천하의 불패마왕을 평범한 무사로 만들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중원삼성 그자들의 제의를 받아들일 걸 그랬나.”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그놈들 제의를 받아들였다 해도 결국 놈들에게 이용만 당했을 거야.”

“하지만 부교주가 놈들의 제의를 받고 지금 내 자리를 차지해 교주가 되지 않았느냐? 나를 따르던 교의 고수들은 대부분 숙청되었고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부교주 그 새끼만 죽이면 다시 교주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어서 내공을 회복하라고. 특수 독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래. 요요 너도 그 독에 당하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지만······.”

임요요가 입술을 깨물었다.

부교주, 아니 마교의 신임교주 마혈존자(魔血尊者)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에라도 당장 놈이 있는 지휘막사로 가서 목을 베고 싶었다.

“그래도 요요 네가 천마검을 가져온 것은 다행이다. 천마검이 없었다면 아직도 천룡삭에 묶여 꼼짝도 못 했을 것이다.”

불패마왕이 눈을 빛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역시 천마대장경을 연구하고 싶었다.

물론 임요요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모두 암기는 해두었다.

하지만 특수 독에 당해 무공 연마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독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중원삼성 그놈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놈들이 오면 우리 은신처 역시 곧바로 발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놈들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천룡삭으로 묶어놓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게 아냐?”

“그 이유가 바로 네가 가지고 있는 천마검과 천마대장경이다. 만약 놈들이 지금 이곳에 와서 그 두 개를 손에 쥐게 된다면 우리를 살려두겠느냐?”

“그럼 어떡해?”

“방도를 구해야지. 천마대장경이 열쇠다. 한데 왜 마지막 장은 비어 있는 것이냐? 가장 중요한 무공이 수록된 것 같은데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은데, 천마검으로 건드려 봐도 아무 변화가 없네.”

임요요 역시 안색을 굳혔다.

불패마왕이 말했다.

“천마검을 처음 잡았을 때 아무 느낌도 없었느냐?”

“응.”

“정말 너 말고 다른 놈이 먼저 천마검을 건들지 않았느냐?”

“응.”

임요요가 말을 하며 안색을 굳혔다.

천마검을 먼저 잡은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흡수대법까지 가르쳐준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불패마왕에게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불패마왕이 백자안을 해칠까 우려해서였다.

“이상하구나. 천마검에는 천마께서 남긴 천마력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천마력만 있다면 우리가 당한 특수 독도 해독할 수 있을 텐데······.”

불패마왕이 안타까워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의 목숨은 지금 경각에 달해 있었다.

특수 독도 문제이지만 중원삼성이 가한 금제 때문이었다.

천룡삭을 끊게 되면 금제가 발동해 보름 이상을 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요요야. 만약에 이 아비가 죽게 되면 너 혼자라도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해라. 그리고 영원히 강호에 나오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라. 복수는 원치 않는다. 나는 너만 무사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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