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지존력 2
다음 날 아침.
어제 풍운대회 참석 후 중원무맹 총단 안심각으로 돌아온 김지혜는 아침부터 회의를 열고 있었다.
회의 참석자는 그녀를 비롯하여 부채도사와 백록공자 세 사람이었다.
그들 중 동방무맹 이십만 무사들을 마중하러 나갔던 백록공자는 며칠 전 중원무맹으로 복귀한 바 있었다.
동방무맹 이십만 무사들이 대인자문의 공격 사실을 듣고 동방으로 복귀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현재 낙양에 있는 동방무맹 무사는 첫 지원을 온 십만 무사뿐이었다.
하지만 이 병력 역시 동방으로 철수시킬 필요가 있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것이었다.
“총순찰님. 어제 풍운대회에서 뽑힌 풍운회주의 무공이 그렇게 강하던가요?”
“네. 제가 보기에 맹주님과 비슷한 무위 같았어요. 어디서 그런 고수가 왔는지 정말 궁금해요.”
김지혜가 어제 풍운장원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부채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운검객이란 그분 역시 신비한 분이군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바로 맹주님의 행방입니다. 마교로 가신 지 제법 되었는데, 아직 저희에게 소식을 보내지 않고 계시니 걱정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불패마왕이 다시 교주로 복귀한데는 분명 맹주님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조만간 이곳에 돌아오시리라 믿어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전서구에 의해 보내진 소식에 의하면 동방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부산성에서 놈들과 대치 중인데 곧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부산성에 상륙한 대인자문 놈들의 병력이 이십만이라 했던가요?”
“네. 풍류도인께서 이곳에 남은 우리 무사 십만 역시 조속한 철수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문제는 맹주님께서 직접 처리하셔야 해요. 우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2차 지원 병력 역시 맹주님 명 없이 도중에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총군사께서 철수를 결정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어요. 총단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한 조처였으니 맹주님께서도 수긍하실 거예요. 하지만 이곳 낙양에 있는 십만 무사마저도 철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중원무맹과의 신의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대인자문 무사들이 삼십만이나 지금 낙양 인근에 있어요. 우리가 철수하려고 해도 놈들이 길을 막고 공격을 해올 거예요. 그러니 좀 더 기다려보도록 해요. 맹주님께서 반드시 오실 거예요.”
김지혜가 눈을 빛냈다.
2차 지원 병력 이십만을 이끌고 오던 동방무맹 총군사 풍류도인이 철수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낙양에 도착한 지 오래된 1차 지원 병력 십만까지도 철수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백록공자가 말했다.
“총순찰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철수하는 것은 동방에서 실제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놈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 2차 지원 병력을 철수시키는 것이었으니, 현재로서는 부산성에 계속 주둔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총단을 지키고 있는 부맹주께서도 섣불리 공격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면서요?”
“네. 태극검선께서 총군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렇게 조처하셨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현재 부산성 남쪽 지역을 놈들에게 내준 상태입니다.”
“그래도 철수했던 이십만 무사들이 부산성에 도착했다고 하니 대치 상태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을 거예요. 놈들 역시 그 정도 병력으로 우리를 압도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경거망동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긴 합니다. 놈들이 전면 공격을 가해올 것 같았으면 벌써 했겠지요. 하지만 우리 추가 지원 병력의 발을 묶는 데 성공했으니, 이곳 중원 무림의 상황이 무척 걱정입니다. 이제 우리 단독으로 대인자문 놈들을 상대하기 어려워졌으니까요.”
부채도사의 말에 김지혜와 백록공자가 안색을 굳혔다.
백자안이 없는 상태에서 여러모로 어려운 형국이었다.
부채도사가 말했다.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무적세가주 독고승이 은연중 우리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철수하고 싶으면 철수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문대로 그가 맹주가 되면 삼혈맹과 화친을 맺을 것 같습니다.”
“그 문제는 어제 풍운대회에서도 거론이 되었어요. 마침 오늘 정의련 해산 선언이 있으니, 무적세가주의 진정한 의도를 알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조금 있다가 취의청에서 발표가 있다고 하니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오늘 그의 생각을 확실히 듣고 우리 동방무맹의 행보를 결정하는 게 좋겠어요. 물론 최대한 맹주님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긴급할 때를 대비해 부채도사께 지휘를 맡기셨으니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을 거예요.”
“중대 결정은 우리 세 명이 합의해서 결정해야지요. 전투 지휘는 몰라도 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됩니다.”
부채도사가 고개를 젓는 그 순간.
담담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둘째 아우. 좀 더 자신을 가져야지. 자네를 믿고 갔는데 너무 신중한 것 같아.”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금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유령처럼 한 사람이 방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는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물론 동방무맹주 무명객의 얼굴로 다시 역용한 그였다.
어제 풍운회주가 된 그가 정의련 해산 선언식에 참여하기 위해 중원무맹 총단으로 오는 김에 이곳부터 들른 것이었다.
“맹주님!”
“맹주님!”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이 기뻐했다.
“무사하셨군요.”
“하하하. 당연하지. 조금 전 그대들의 이야기는 들었소.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합시다.”
“네. 맹주님.”
* * *
“지금 이 시각부터 정의련을 해산하겠습니다. 앞으로 본 무적세가를 비롯해 모든 정의련 소속 문파 무사들은 중원무맹에 속하게 됩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무림대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겁니다.”
짝짝짝.
중원무맹 취의청에 모인 오백여 고수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해체 선언을 한 사람은 바로 무적세가주이자 정의련주인 독고승이었다.
마침내 그가 정의련 해체 선언을 한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정의련은 중원무맹과 많은 부분에서 겹쳐 있었다. 이는 두 거대단체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물론 정의련이 중도를 지향해 흑도 쪽 인물을 상대적으로 대거 받아들인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흑도 역시 사마의 무리와 관련이 없는 한 무림맹에서 포용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는 더욱 그랬다.
독고승 옆자리에 앉은 중원무맹 총군사 만박서생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드립니다. 독고 가주님의 결단에 전 무림이 환영할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의련 해산은 돌이킬 수 없지요? 내일 누가 새 맹주가 되는지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입니다. 정의련이란 단체는 이제 영구히 사라졌습니다. 저 역시 한 세가의 가주로서 활동할 것입니다. 아, 그리고 물론 내일 제가 맹주가 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수긍할 겁니다. 한데 내일 바로 맹주를 뽑게 되는 겁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내일 바로 팔인 결선이 시작될 겁니다. 팔인 결선에서 1위를 한 분과 독고 가주께서 겨뤄야 하니, 별다른 일이 없다면 모레 최종 맹주 선출 비무가 있을 겁니다.”
만박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이미 그 역시 어느 정도 새 맹주 자리를 독고승이 차지하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로서는 누가 맹주가 되는지보다 삼혈맹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정의련을 해산하고 그 소속 문파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동안 독고승이 모호한 태도를 취해 논란이 큰 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어제는 낙양 무관들을 중심으로 풍운회라는 단체까지 생긴 상황.
물론 풍운회 역시 어제 전격적으로 무림맹에 합류했다.
하지만 삼혈맹과의 화친에 극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만박서생이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봤다.
바로 풍운회주 백자안이었다.
조금 전 전체 통성명을 할 때 풍운검객으로 소개한 그는 화친 반대 세력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 역시 만박서생을 쳐다봤다.
‘드디어 화친 문제를 언급할 모양이구나. 그나마 만박서생이 잘 중심을 잡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한편 백자안 옆자리에는 위지경덕이 앉아 있었다.
어제 풍웅대회를 마치고 급히 인사를 단행했었다. 백자안은 위지경덕을 부회주로 임명했다.
백자안은 회주로서 중요한 일만 처리하기로 하고, 그 외 잡다한 일은 모두 부회주에게 맡기기 위해서였다.
물론 위지경덕은 여전히 백자안의 정체를 몰랐다.
풍운회에서 참석한 인물은 두 사람 말고도 또 있었다.
바로 백소영과 백리설아, 그리고 백리관이었다.
그 외 동방무맹 측에서도 김지혜와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이 참석했다.
그들 세 사람은 조금 전 백자안과 깊은 논의를 한 바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백자안은 그간의 일들을 보고 받았고 앞으로의 행동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다만 상황이 가변적이라 명확히 결론이 난 것은 얼마 없었다.
낙양에 있는 동방무맹 십만 무사의 철수 문제 역시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백자안은 자신이 바로 풍운검객이라는 사실을 밝힌 후 당분간 풍운회주 신분으로 활동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했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자신과 연락이 된다는 것을 밝혀 동방무맹 무사들의 혼란을 방지하도록 했다.
“독고 가주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맹주가 되시면 삼혈맹과 화친을 맺을 겁니까? 아니면 놈들과 전면전을 벌여 박멸하실 겁니까?”
“으음······.”
독고승이 질문이 나올 것을 기다렸다는 듯 안색을 굳혔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취의청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을 비롯하여 많은 고수가 있었다.
하지만 맹주감으로 거론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중원무맹 지휘부에서도 태상장로 천수노인 정도가 전부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맹주가 되더라도 삼혈맹과 화친을 맺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 전에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제가 주장했듯이 저는 비무보다 합의추대를 원합니다. 합의추대로 제가 맹주가 된다면 무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반드시 삼혈맹 무리를 격퇴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 비무로 맹주가 된다면 저 역시 보장할 수 없습니다.”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의련 해산을 무효로 돌릴 수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정의련은 이제 영원히 해체되었습니다. 다만 저는 후유증이 없는 합의추대 방식으로 맹주가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사실 어차피 최종 대결에 누가 올라와도 제가 승리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합의추대야말로 단합을 이루고 저의 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합의추대가 된다면 제 개인적인 고집을 버리고 삼혈맹을 반드시 무찌르겠습니다.”
“으음, 역시 소문대로 삼혈맹과 화친을 맺으려 했던 게 사실이군요.”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놈들의 무력은 매우 강합니다. 섣불리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무림인 중 절반 이상이 사망할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조건을 일부 들어주는 선에서 평화협정을 맺을 것을 내심 검토했던 겁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우려를 했고, 저 역시 합의추대만 되면 고집을 버리겠습니다. 아, 물론 제가 비무를 통해 맹주가 된다고 해도 반드시 놈들과 화친을 맺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럴 경구 미리 약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상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