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09화 (109/250)

[제35장] 중원삼성 3

공무대사의 말에 중원군자가 목함 하나를 가져왔다.

바로 그 안에 지존령기가 있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일방적인 진행이 계속되었지만, 맹의 규율을 어긴 것은 아니라 어쩔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목함이 열린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금빛을 발하는 작은 깃발.

바로 지존령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독고승이 지존령기를 끄집어냈다.

“맹주 취임선서를 대신해 지존풍(至尊風)을 만들어 주십시오.”

지존풍은 지존령기를 흔들어 만드는 바람으로 모든 사마의 기운을 몰아낸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증명되지 않았다.

다만 내공을 담아 지존령기를 흔들면 금빛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는 맹주 취임식의 마지막 절차였다.

일종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었다.

전대 맹주인 단목군 역시 이 지존풍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식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지존풍!”

독고승이 내공을 모아 지존령기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존풍은 불지 않았다.

오히려 독고승의 몸이 벌벌 떨리는 게 아닌가.

“으으······ 어찌 이럴 수가······ 신선단······.”

독고승이 피를 토한 후 단상 위에서 쓰러졌다.

독고준이 급히 그를 부축했으나 주화입마로 인해 이미 무공이 폐쇄된 후였다.

독고준이 급히 치료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독고준이 무공 폐쇄의 충격으로 실신한 부친을 데리고 대회장을 떠났다.

갑자기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지존령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만박서생이 소리쳤다.

“하늘의 뜻이다. 누구든 지존령기로 지존풍을 일으키면 그가 맹주가 되리라.”

군웅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만박서생의 제의는 모두에게 받아졌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장들 역시 모두 찬성했다.

하지만 아무도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고승 같은 고수도 무공 폐쇄가 되는 마당에 누가 감히 시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의논 끝에 공무대사가 도전하기로 결정되었다.

소림방장인 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대표해 지존령기를 들어 올리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존령기를 건드리기도 전에 기혈이 흔들려 포기했다.

이미 지존령기 내부에 있던 기운이 독고승 때문에 충돌해 외부로 발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흡입장력으로 지존령기를 끌어당겨 지존풍을 만든 것은 그 직후였다.

금빛 바람이 허공에 일며 글자를 만들어 냈다.

<무림대의(武林大義)>

와아아.

군웅들이 함성과 함께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맹주님 만세!”

“맹주님 만세!”

* * *

사흘 후.

동방무맹에 이어 중원무맹의 맹주까지 된 백자안은 취의청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인사 단행은 대폭 축소했다.

기존의 지휘부 고수들을 대부분 유임시킨 것이었다.

다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심으로 구성된 장로원과 원로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합의추대를 비롯한 권한들이 너무 과도해 이를 조절한 것이었다.

당연히 반발이 우려되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공무대사를 비롯한 구파일방와 오대세가 수장들의 반발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백자안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아무래도 그가 보여준 무공 때문인 것 같았다.

특히 아무도 하지 못한 지존풍을 일으킨 것이 주효했다.

위험한 상태에서 지존풍을 일으킨 그 자체가 백자안의 무공 수위를 증명한 셈이었다.

맹주 임기 역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먼저 기존대로 종신직임을 확인해주었다.

물론 집단지도체제 주장 역시 쏙 들어갔다.

백자안은 사실 임기와 지도체제 등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의 관례를 따를 것을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삼혈맹과의 전쟁이었다.

총군사 만박서생이 말했다.

“현 상황부터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일단 여기 동방무맹 지휘부 고수분들도 계시지만 동방무맹과의 동맹 관계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동방무맹주께서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당분간 낙양에 오실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그러합니까?”

“네. 맹주께서는 이번 무림대란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잠행 중이십니다. 아마도 중원삼성 그자들을 조사하시는 모양입니다.”

부채도사의 대답이었다.

부채도사 옆에는 김지혜와 백록공자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 세 사람은 백자안이 중원무맹주 자리까지 차지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동맹관계가 훼손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다만 동방 무림의 상황이 문제였다. 여전히 부산성에서 양 진영 간에 대치 중이란 보고를 받고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동방무맹의 호의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우리 중원무맹 역시 이번의 대란이 평정되면 반드시 동방무림의 평화를 지키는데 협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채도사와 백록공자, 김지혜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이 말했다.

“총군사께서는 계속 말씀해주십시오. 삼혈맹이 아직 공격을 가해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보고에 의하면 아무래도 마교의 움직임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마교주 불패마왕이 혈교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북상 중이기 때문이지요. 이미 천지곡에 있던 마교 무사 십만이 혈교 이십만 무사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천혈곡(天血谷)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으음, 마교가 우리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군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참에 우리 중원무맹과 동방무맹, 그리고 마교가 삼각동맹을 맺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자안의 말에 취의청에 있던 삼백여 고수들이 술렁였다.

마교와의 동맹 문제는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태상장로 천수노인이 말했다.

“맹주님. 마교와의 동맹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현 마교주 불패마왕이 전대 교주들과 달리 믿을만하다고 하나, 마교 무사들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천하가 평정된 후 우리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불패마왕이 다시 한번 교주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불패마왕의 진짜 속셈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사실 그의 성격이나 야망 등 자세한 것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직접 만나보고 그자의 성품을 파악했다면 또 모를까 지금 상태에서 섣불리 동맹을 맺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마교는 지금 혈교를 공격하려고 병력을 이동 중입니다. 이때 마교와 동맹을 맺고 우리 역시 무사들을 파견해 돕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마교 쪽에서 동맹 제의가 있었습니까?”

“네. 벌써 오래전부터. 사실 이미 불패마왕과 직접 만났습니다.”

백자안의 말에 좌중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만박서생이 말했다.

“맹주님께서 직접 불패마왕을 만나서 의도를 파악하셨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병력은 삼혈맹에 비해 열세입니다. 이럴 때 마교와 동맹을 맺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우리 동방무맹 역시 찬성입니다. 우리 맹주님께서도 불패마왕을 직접 만났고 동맹을 약속하셨지요.”

“아, 동방무맹주께서도?”

만박서생이 놀라자 부채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중원무맹주님과 불패마왕 두 분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사실 우리 맹주님이십니다.”

부채도사의 말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동맹에 회의적이던 시선이 찬성 쪽으로 바뀐 것이었다.

만박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불패마왕이 다시 교주가 된 것도 동방무맹주님의 도움이 컸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부탁을 드렸었지요. 불패마왕이 그 보답으로 동맹을 찬성한 것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역시 총군사님이시군요.”

부채도사가 시인하며 간단한 설명을 했다.

물론 조금 전 만남 주선 이야기처럼 적절히 거짓말도 가미했다.

하지만 그러한 거짓말은 모두 동맹을 관철하기 위해서로 이미 백자안과 협의한 내용이었다.

천수노인이 말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저 역시 찬성입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찬성하겠습니다.”

공무대사가 급히 의견을 모아 찬성 의사를 밝혔다.

남은 것은 이번에 편입된 풍운회와 정의련 무사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미 중원무맹에 흡수되어 반발이 일어날 소지 자체가 없었다.

참고로 정의련 세력 중에서 중원무맹에서 다시 탈퇴한 곳은 무적세가 한 곳뿐이었다.

무적세가주 독고승이 무공폐쇄와 함께 장기 치료를 요하자, 그의 아들 독고승이 무적세가 고수들을 이끌고 본가로 복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정의련 소속 문파들은 계속 중원무맹에 남기로 했다.

게다가 은자림과 남해무림연합 등 천하 각지의 무사들이 낙양에 도착해 있었다.

그 덕분에 현재 중원무맹 무사들의 수는 여전히 사십만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동방무맹 무사 십만이 합쳐져서 총 무사는 오십만 정도였다.

백자안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만장일치로 마교와 정식으로 동맹을 체결하겠습니다. 체결식은 제가 직접 천혈곡으로 무사들을 이끌고 가서 마교 측과 합류한 후 거행하겠습니다.”

“맹주님이 직접 천혈곡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만박서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리 그와 상의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네. 현재 천혈곡에 있는 혈교 무사는 이십만 정도입니다. 그에 반해 마교 무사는 십만입니다. 현재 마교 총단에서 추가로 십만 무사가 온다고는 하지만 거리가 있어 단기간에 도착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제가 무사 십만을 데리고 마교 측과 합류해 합공을 가해 혈교 세력을 섬멸하겠습니다.”

“혈교 놈들이 함정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인자문 역시 몰래 지원 병력을 천혈곡에 보낼 수도 있고요. 실제로 대인자문 무사 삼십만 중 십만 정도가 북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첩보가 조금 전 있긴 했습니다. 마교와의 동맹은 좋지만 지금 천혈곡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만박서생이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백자안의 뜻은 확고했다.

“이미 결정했습니다. 동맹이란 어려울 때 도울 수 있어야 그 가치가 있지요. 이미 마교 쪽에서 혈교를 공격하려는 것 자체가 성의를 보인 겁니다. 우리 역시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화답해야 합니다. 정예 무사로 십만 정도를 서둘러 준비해주십시오. 다만 대인자문 놈들이 참전한다면 십만으로 부족할 수도 있겠군요.”

백자안이 말을 한 후 부채도사를 쳐다봤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부채도사가 재빨리 말했다.

“안 그래도 우리 맹주께서 대인자문 놈들을 공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동방무맹 무사 십만 역시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총단에 남는 병력은 삼십만 정도 되겠군요. 그 정도면 사사천교 이십만과 대인자문 이십만 병력을 당분간은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수적으로 십만 정도가 모자라지만,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인근에 있던 무림인 십만 정도는 달려와 줄 겁니다. 제가 없는 동안 총지휘는 총군사께 맡기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만박서생이 고개를 숙였다.

동방무맹 무사들이 합류한 이상 백자안의 이번 출정에 대해 그로서도 큰 불만은 없었다.

다만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특히 그 역시 가장 경계하는 적은 바로 중원삼성이었다.

정확하게 말해 중원삼성 배후에 있는 세력이었다.

“맹주님. 중원삼성 그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당금의 무림대란을 조장한 자들입니다. 필시 무림 세력끼리 충돌시킨 후 어부지리를 얻으려 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그들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총군사님 말씀대로 무림세력끼리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승리할 때까지 조용히 있어 준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일이지요.”

“놈들의 계획을 역이용하자는 뜻입니까?”

“네. 무림대란이 평정된 후 제가 직접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가 마무리를 할 생각입니다. 아직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그자들이 원하는 것을 대충 알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요컨대 우리의 목표는 삼혈맹 타도입니다. 어차피 그자들은 무림의 해악으로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입니다. 일단은 뒷날을 생각하지 않고 놈들을 제거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두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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