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양신 1
[제38장] 양신
와아아.
짝짝짝.
계속되는 삼의맹주의 말에 군웅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삼의맹주가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
“영웅 여러분. 이제 무림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정사마를 통합하는 것은 영구적인 무림의 평화를 가져올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삼혈맹 잔존세력을 모두 본맹에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지금 물밑에서 그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 점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삼의맹주가 재차 삼혈맹 세력 흡수를 강조했다.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일까.
처음보다 동요하는 사람이 적었다.
사실 열흘 전 싸움에서 삼혈맹 무사들의 사망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후 삼혈맹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혈교와 사사천교, 대인자문 무사들이 본거지로 돌아갔다고는 하나, 후환이 걱정되는 게 현실이었다.
요컨대 삼혈맹 무사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을 받아들여 통합을 이루는 것이 더 좋은 방책이라는 게 삼의맹주의 논지 같았다.
자신이 나서는 것을 거듭 고민하고 있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수상하구나. 뭔가 모든 것이 저자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다. 정사마를 아울러 무림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면 하루빨리 이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나서서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백자안이 망설였다.
이미 대세는 삼의맹주 쪽에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의 무공이 너무 높았다.
지금 나서게 되면 아마도 싸움을 벌여야 할 상황이 될 텐데 자신이 서지 않았다.
‘차라리 오늘 밤 저자를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 군웅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맹주님. 삼혈맹의 배후라는 중원삼성 그자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말 맹주님께서 신선계로 직접 가서 놈들을 죽이고 삼십만 무사들을 데려오신 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영웅무관장께서 증언해주실 겁니다.”
삼의맹주가 단상에 앉아 있는 위지경덕을 쳐다봤다.
그는 신선계로 끌려갔다가 삼의맹주에 의해 구출된 무사 중 대표 인물이었다.
위지경덕이 앞으로 나왔다.
“아직 그 점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계시는 분이 많군요. 이 자리를 빌려 그때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지경덕이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 천혈곡에서 중원무맹과 마교, 그리고 동방무맹 무사 삼십만이 신선계로 끌려간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불패마왕과 임요요가 말한 대로 그들은 기이한 회오리바람에 의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갔다.
그곳은 바로 신선계 어느 계곡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기억은 그들에게 없었다.
모두 수혈이 찍혀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떴을 때는 자신들을 구하러 온 삼의맹주가 있었다.
물론 다들 그를 백자안으로 알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삼의맹주 앞에 있던 시체 세 구였다. 막강한 장력에 의해 머리통이 터져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으나, 삼의맹주는 그들이 바로 중원삼성이라고 했다.
요컨대 삼의맹주가 자신을 신선계로 유인한 중원삼성을 죽이고 삼십만 무사들을 구해낸 것이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삼의맹주는 중원삼성에게 빼앗은 비급을 통해 특수 이동대법의 요체를 파악했고, 곧장 중원으로 무사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무사들은 삼의맹주를 믿고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 얻은 수확도 있었다.
삼의맹주가 잠시나마 특수대법을 펼쳐 삼십만 무사들의 무공을 수십 배 이상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는 소림사 전투에서 삼의맹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비록 지금은 특수대법의 효력이 사라져 원래대로 되었지만, 삼의맹주는 조만간 또 다른 특수대법을 펼쳐 무공을 고강하게 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번에 가할 특수대법은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라 영구적이라 했다.
위지경덕의 설명이 끝나자 군웅들이 환호했다.
특히 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무공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특수대법이었다.
자신들도 그 특수대법의 효과를 보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삼의맹주가 말했다.
“지금 특수대법을 펼칠 대상을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조만간 삼혈맹 세력을 모두 흡수한 후 모든 무사에게 특수대법을 펼쳐 영구히 무공을 높여드리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엄청난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수가 되는 것은 모든 무림인의 꿈이었다.
하지만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최소 십 년의 무공 연마.
고통스러운 그 과정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고수가 되고 명성을 얻게 된다.
한데 특수대법을 받게 되면 바로 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하니 다들 열광하는 것이었다.
삼의맹주가 말했다.
“영웅 여러분. 제가 모든 무림인의 무공을 높이려는 것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적은 아직 건재합니다. 바로 신선계에 있는 반선들입니다. 중원삼성은 그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신선계 반선들을 이대로 두면 절대 무림의 평화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제가 적지 않은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삼혈맹 세력까지 흡수하려는 것도 바로 그자들 때문입니다. 강한 무사들을 최대한 많이 육성한 후 때가 되면 전 무사들을 이끌고 신선계로 가겠습니다. 제 예상으로 그때 최소 이백만 무사들이 동참하게 될 겁니다. 이는 동방무맹 무사들은 물론이고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 무사들까지 포함한 숫자입니다. 모두 제 뜻을 따라주시겠습니까?”
와아아.
둥둥둥.
북소리까지 울리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속셈을 어느 정도 드러냈구나. 이백만 무사들을 신선계로 데려가 무슨 수작을 벌이려는 것이 확실하다. 무사들을 강시 비슷하게 만들어 자신의 명에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려는 것일까. 굳이 신선계에 데려가는 것 또한 심상치 않구나. 특수대법을 무사들에게 펼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렸다.
그의 직감에 의하면 무림인들이 자신의 행세를 하고 있는 삼의맹주에게 속고 있음이 확실했다.
‘저자의 정체가 무엇일까. 정말 중원삼성이 저자에게 죽은 것일까.’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오늘 밤까지 기다리려 했던 계획을 다시 바꿔 원래대로 지금 삼의맹주의 음모를 파헤치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얼굴을 본 모습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얼굴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적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컸다.
백자안이 역용을 풀고 본 얼굴로 돌아가려 할 바로 그때.
삼의맹주의 말이 들렸다.
“사실 여러분께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드리려 합니다. 조만간 어쩌면 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자는 제 얼굴과 똑같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 또한 저와 비슷합니다. 둘이 싸우게 되면 제가 이길 수밖에 없지만, 저를 제외하고 그자를 상대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겁니다.”
군웅들이 의아해했다.
삼의맹주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에게는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았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역용을 푸는 것을 멈추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는 바로 저의 양신(陽神)입니다. 다시 말해 저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향후 그가 세상에 나타나더라도 그자에게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삼의맹주의 말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양신은 도력의 경지가 극에 달했을 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시전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들어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동시에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양신을 만들어 다른 곳에 보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신이 사람은 아니었다.
본신에 종속된 그림자라고나 할까.
본질적으로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허깨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신에 대한 것은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애초에 양신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신선들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한데 삼의맹주가 불쑥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한 달 전쯤 제 부모님과 동생을 구출하러 총단에 잠입했을 때입니다. 총단 밖에서는 제 여동생과 임 소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저는 조급했었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금마옥에 들어가려 했습니다. 아니 실제 들어갔었지요. 하지만 금마옥에 들어가고 얼마 후 입구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영원히 갇히리라는 것을 느꼈지요.”
삼의맹주가 말을 잠시 멈췄다.
군웅들이 숨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들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한 사람 백자안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저자의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상황을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 모든 과정이 명백했다. 정신도 잃은 적이 없는데, 어찌 내가 양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렸다.
삼의맹주가 자신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심리전을 펼친다고 생각했다.
무형검의 고수에게 있어 약점은 바로 마음이었다.
마음의 평정이 깨어지면 그 무공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과도 같았다.
삼의맹주의 말이 이어졌다.
“금마옥이 무너지고 입구가 붕괴하기 직전 저는 분신술을 펼쳐 금마옥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분신술은 특수 이동 대법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며 순간적으로 깨달은 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능숙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 제 양신을 금마옥에 놔두고 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 역시 양신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는 빈 몸으로 나왔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양신인줄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모든 난관을 이기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맹주님. 그 양신이 무림에 해가 되는 존재입니까?”
누군가의 질문이었다.
그야말로 핵심을 건드린 것이다.
삼의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양신은 결국 악마로 변하고 맙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점점 변해갈 겁니다. 하루빨리 싹을 자르지 않으면 통제가 불가능해질 겁니다. 문제는 양신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본신인 저를 가짜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결국 그는 저를 죽이고 자신이 유일한 존재가 되려 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짝짝짝.
누군가 박수를 보냈다.
비록 삼의맹주의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으나, 핵심적인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그 박수 소리는 점점 커졌다.
함성 역시 쏟아졌다.
와아아.
군웅들은 삼의맹주를 믿었다. 양신 문제 역시 잘 해결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삼의맹주가 말했다.
“양신 문제는 참고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원천적으로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설사 양신이 본신을 죽인다고 해도 그 순간 양신 역시 모든 것이 파괴되며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겁니다. 본신이 없으면 양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저의 양신, 아니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불쌍한 양신이 있다면 조용히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 운이 좋은 경우 악마가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실 오늘 이 말씀을 드린 것은 지금 어딘가에서 제 말을 듣고 있을 그에게 당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계속 즐겨주십시오. 저는 이만 지존각으로 물러가겠습니다.”
삼의맹주가 백소영과 함께 지존각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지휘부 고수들 태반도 뿔뿔이 흩어졌다.
군웅들은 이제 잔치가 시작이었기에 거의 떠나지 않고 술과 음식을 먹기 바빴다.
백자안 역시 별말 없이 술을 마셨다.
‘오늘 밤 저자를 반드시 만나 진실을 확인해야겠구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