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63화 (163/250)

[제53장] 복사천회 1

[제53장] 복사천회

사천성 성도 사천당문.

오대세가 중 한 곳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그곳은 지금 서장무맹의 임시 총단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한 달간 서장무맹의 공세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초반 백자안에 의해 선발대와 괴수부대가 전멸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서장무맹주 불사대불의 결단에 의해 성도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천무림연합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성도가 함락될 위험에 처하자 사천성 각지에 있던 무림인들이 대거 모여들어 그 수가 삼십만에 육박했다.

하지만 기본 무력에 있어서 서장무맹 무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전투 중 들려온 소식은 그들을 절망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 소식은 바로 사천성을 향해 오고 있던 삼의맹 무사 백삼십만이 습격을 받아 궤멸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죽을 각오를 했던 무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한번 떨어진 사기는 다시 높아지지 않았다.

사천무림연합 무사들의 단결력이 약해지자, 전력은 더욱더 약해졌다.

연전연패.

결국 사천무림연합 무사들 역시 시체가 산을 이루고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는 서장무맹 측의 일사천리였다.

사천성 각지에서 무림인들이 대거 모여드는 바람에 각 지역의 방어력 또한 약해진 상황. 그 틈을 타 사천성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맹주님. 이제 사천무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서장무림의 한 지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든 면에서 본맹이 장악을 했습니다.”

서장무맹 총군사 만통자의 말에 서장무맹주 불사대불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총군사 덕분이오. 전략을 잘 짠 덕분에 사천성을 점령할 수 있었소. 하지만 아직 놈들의 잔당이 남아있는 게 걱정이오. 놈들을 아직 찾지 못했소?”

“사천무림연합 잔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직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최근 우리가 받아들인 흑도 무림인들에게 명을 내려 놈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도록 했습니다.”

“으음, 강남무림을 공격하기 전에 놈들을 제거해 화근을 없애야 하오. 비록 수백 명에 불과하다 하나 우리 주력이 사천성을 비우면 놈들이 다시 나타나 성도를 탈환하려 할 가능성이 크오. 좋은 방도가 없겠소?”

“있긴 있습니다. 뇌옥에 가둬놓은 포로들을 공개처형한다고 하면 놈들이 나타날 겁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군. 어서 실행하시오. 언제가 좋겠소?”

“내일 당장 처형식을 저잣거리에서 연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겠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 포로 천 명 정도를 옥사에 가둬뒀는데, 요긴히 사용하게 되는군요.”

“하하하. 역시 총군사는 선견지명이 있소. 한데 천축무맹과의 관계 정립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형식적으로는 동맹이지만 아무래도 나중에 우리를 배신할 것 같아서 묻는 말이오.”

“바로 보셨습니다. 놈들은 양 맹이 중원무림 전체를 장악한 후 필시 우리를 제거하려 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놈들이 독차지하려는 것이지요.”

만통자가 눈을 빛냈다.

불사대불의 집무실로 오기 전부터 그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려 했던 그였다.

불사대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나 역시 놈들과 사이좋게 중원을 나누어 가질 생각이 전혀 없소. 굳이 분할을 원한다면 그들에게 동방무림 정도를 내줄 생각이오. 하지만 문제는 마신들이오. 우리를 봐주고 있는 서불마신님과 천축무맹을 봐주고 있는 반야마신의 사이가 너무 좋은 것 같소. 같은 백대마신이라 그런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기야 아직 확인이 덜 되었지만 백대마신 모두가 생명이 연동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마신 중의 마신이라는 천마신을 말하는 것인가?”

“네. 서불마신께 이야기를 조금 들은 바 있습니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천마신에게 마신들의 생명을 맡겼다고 하더군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나도 듣긴 들었소.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선계 동향이 아니라 무림이오. 두 분 마신 역시 양 맹의 경쟁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있으신 듯하니, 천축무맹 놈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책을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오. 아시겠소?”

“물론입니다. 이미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좋소. 일단 사천무림연합 잔당 제거에 집중합시다. 나 역시 내일 공개 처형장에 직접 가보겠소이다.”

“맹주님께서 오시면 더욱더 좋을 겁니다. 가능성은 적지만 뜻밖의 고수가 나올 수 있으니, 맹주님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소. 어서 공포부터 하고 오시오.”

“존명!”

만통자가 집무실에서 나갔다.

홀로 남은 불사대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 가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백자안인가 하는 놈이다.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무척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구나.’

* * *

해 질 무렵.

백자안은 계속해서 객잔에 앉아 있었다.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점소이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 되었다. 가장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뇌옥에 갇혀 있는 무사들이었다.

주로 사천무림연합 무사들로서 필요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으음, 예감이 좋지 못하구나. 언제든 그들을 처형할 수 있는 놈들이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돌아온 이상 그분들을 구하는 일에 가장 먼저 힘을 써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은신해 있다는 무림인들의 거처를 알아내는 것인데, 그래야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한 후 그분들에게 인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상황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했다.

한 달 동안 성도에 피바람이 불어 많은 무림인이 학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천무림연합 역시 따지고 보면 중원무맹 소속이었기에, 그들 모두 맹주인 백자안 자신의 수하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감이 서서히 분노로 변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 길로 놈들이 총단으로 삼고 있다는 당문으로 쳐들어가는 게 어떨까?’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이렇다 할 묘책이 없다면 오히려 정공법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리 계획을 세운 후 행동에 옮겨야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은신해 있는 무림인들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면 놈들 역시 무슨 수를 쓸 것이다. 내일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백자안이 울적한 마음에 술을 한 병 시켰다.

점소이가 저녁 식사까지 주문받아 주방으로 달려갔다.

오늘 밤 묵을 객방까지 돈을 치른 백자안은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주위를 둘러봤다.

손님 대부분을 차지한 흑도인들 역시 약간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성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당장 서장무맹에 투신하는 것보다 좀 더 경과를 지켜보자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삼의맹주인 그가 다시 복귀하면 전황이 바뀔 수도 있으니, 중립을 지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였다.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서장무맹 무사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스무 명 정도로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손님들의 안색이 다들 굳어졌다.

대부분 흑도인이라 하나 아직 서장무맹에 투신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서장무맹 무사들은 따로 흑도를 구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죽였다.

실제 행동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목을 베는 것이 서장무맹 무사들이었다.

뚱뚱한 체구의 객잔 주인이 급히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퍽!

주인의 턱이 돌아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서장무맹 무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우리가 못 올 곳을 왔느냐? 잠시 검문이 있겠다. 죽립을 쓴 자는 모두 벗어라.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복사천회(復四川會) 놈들 중 한 명이 이곳에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어서 벗어라.”

우두머리 무사의 호령에 죽립을 쓰고 있던 서너 명이 급히 벗었다.

하지만 맨 구석에 있던 한 명이 끝까지 벗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한 몸매가 아무래도 여자 같았다.

“저년이다!”

우두머리 무사가 죽립인을 가리키자, 서장무맹 무사들이 재빠르게 포위를 했다.

“어서 벗지 못할까?”

우두머리 무사가 고성을 지르며 눈짓했다. 수하 한 명이 검을 들어 죽립인의 목을 찔러갔다.

슈우욱.

“흥!”

죽립인이 탁자를 들어 올려 검을 막은 후 죽립을 벗었다.

“아!”

“아니!”

놀라움과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죽립인의 정체는 바로 소녀였던 것.

그것도 보통 소녀가 아니라 죽은 당문주 당길중의 금지옥엽 당기(唐奇)였다.

당문이 멸문에 가까운 참화를 겪을 당시 그녀는 부친의 명을 받아 사천성 각지를 돌며 지원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도 점령과 함께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돌아왔던 것이다.

복수심에 불탄 그녀는 비상 연락망을 가동해 흩어진 사천무림연합 무사들을 모았다.

그 결과 오백여 명을 은밀한 곳에 모아둘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서장무맹 쪽에서 찾고 있는 무림인들이었다.

은신해 있던 무림인들은 저항을 체계화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했고, 그 조직이 복사천회였다.

하지만 서장무맹의 감시망은 점점 좁혀왔다.

이를 견디기 힘들었던 당기는 직접 밖으로 나와 다시 지원병력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당기 네년이구나!”

우두머리 무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아느냐?”

“그렇다. 네년이 복사천회의 회주를 맡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네년도 이제 마지막이다. 지금 네년이 기다리고 있는 자는 이미 우리 손에 죽었다.”

“아!”

당기가 탄식했다.

그녀가 이곳 객잔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그녀와 함께 사천성 각지를 돌며 지원병력을 모으던 당문의 호법이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앞으로의 계획을 의논하려 했었다. 한데 이미 놈들의 감시망에 걸려 죽은 것이었다.

“계집! 어서 말해라. 복사천회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실토하지 않으면 네년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사지를 잘라주겠다.”

“이놈들!”

당기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친분이 깊었던 호법의 죽음으로 인해 분노한 상황에 모욕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문을 피하고자 수중에 병장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였다.

사실 무공 역시 높은 편이 아니었다.

금지옥엽으로 귀여움을 받고 자라 무공 연마에 게을리한 탓이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자 피하지 않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다.

“네놈들 손에 죽을 내가 아니다!”

당기가 우수를 들었다.

독장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당문 직계라면 누구나 배워야 하는 독장.

그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무공이었다.

“저년을 죽여라!”

우두머리 무사가 명을 내렸다.

수하 한 명이 즉시 검을 찔러 들어갔다.

슈우욱.

지독한 쾌검식이었다.

일개 말단무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당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준비하고 있던 독장을 날렸다.

그녀의 오른 손바닥에서 붉은 기류가 동심원 모양으로 뻗어 나왔다.

놀랍게도 그 기류는 날아드는 검을 옆으로 튕겨낸 후 그대로 상대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으윽!”

서장무맹 무사가 쓰러졌다.

객잔 안의 사람들이 급히 보니 이미 입에 거품을 품고 죽어있었다.

가슴과 얼굴이 모두 시퍼렇게 변한 것이 극독에 당한 게 분명했다.

“제법이구나. 당문 계집답다!”

우두머리 무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무리했는지 당기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이미 기혈이 흔들려 곧바로 독장을 날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아까 말한 대로 네년의 옷을 모두 벗겨버리겠다.”

“죽일 놈!”

당기가 모욕감에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무사의 말 그대로 이미 기혈이 흔들린 상태였다.

그제야 다른 복사천회 사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혼자 은신처에서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아, 애초에 무공을 열심히 연마했더라면······ 이렇게 아버님 복수도 못 하고 죽어야 한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