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장] 우화등선 2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고독반선이라고 했소?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정심반선의 말에 백자안이 흠칫한 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조금 전에 현 무림을 다스리는 사람이 바로 반야마신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곧 신선계 문이 다시 열리고 우리 반선들과 마신들이 중원 무림에 진출하게 될 것인데 반야마신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반야마신이 여전히 천마신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겁니까?”
“그 점에 관해 물어올 줄 알았소. 다들 궁금해하는 것이니 설명해주겠소. 사실 이 문제는 앞으로 우리 정심회의 입지와도 관련이 깊소.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만년서약 때문에 직접 무림을 다스리지 못하고 최종대리자를 선정하려 노력을 해왔소. 그 일을 위해 수고를 한 반선 중 대표적인 분들이 바로 중원삼성이었소. 하지만 그들은 백자안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소. 천족의 후예로 추정되는 그놈은 그야말로 우리의 숙적이었소. 하지만 놈 역시 중간지대로 빨려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몸이 되었소.”
정심반선이 말을 잠시 멈춘 후 반선들을 둘러봤다.
일만여 반선들이 모두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심반선이 말을 다시 이어갔다.
“반년 전 무림에서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을 여러분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백자안 그놈 손에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이 궤멸되었소. 게다가 우리 정심회와 백마회의 비호를 받고 있던 새 황제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소. 하지만 반야마신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소. 당시 반야마신은 천마신의 부름을 받아 이곳 신선계로 들어와 있었소. 나 역시 반야마신과 함께 천마신을 만나고 있었소.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림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을 알았고, 나는 즉시 신선경으로 모든 상황을 볼 수 있었소. 반야마신이 무림으로 돌아가 개입을 하려던 때는 바로 백자안이 서장무맹주와 천축무맹주, 그리고 황제와 겨루려 할 때였소. 한데 그때 천마신이 저지를 했소. 예지력을 통해 살펴보니 백자안이 결국 중간지대로 들어가게 된다는 말이었소. 그래서 반야마신은 때를 기다렸다가 백자안이 사라진 후 그로 역용해 무림을 접수한 것이오. 지금 반야마신은 지존맹주가 되어 무림을 완전히 장악했소. 우리의 목표인 무림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오.”
“그렇군요. 한데 앞으로도 반야마신의 지위는 변함이 없는 겁니까? 우리 정심회와 백마회 고수들이 나타나면 무림인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 점은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무림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테니까. 우리 정심회 반선들과 백대마신은 지존맹과 정식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본격적인 이상향 건설을 시작할 것이오. 이게 다 반야마신이 지존맹주가 된 덕분이니, 결국 천마신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오. 다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천계의 움직임이오. 만약 천신들 일부라도 내려온다면 큰 싸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오.”
“천신들이 내려온다는 말씀은 천계에서 이곳 신선계로 온다는 뜻입니까?”
“어디 신선계뿐이겠소? 서약의 돌이 파괴되면 천신 역시 무림으로 올 수도 있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불리해지는 게 아닙니까? 천계의 힘은 상상초월로 알고 있는데······.”
백자안이 짐짓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이야기를 끌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천계의 힘은 정말 가공하다고 할 수 있소. 솔직히 우리 정심회 반선들의 힘만으로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벅찬 게 사실이오. 그 때문에 아까도 말했듯이 백마회와 동맹을 맺은 것이오. 천신들이 우리를 건드리면 백마회가 나설 것이오. 천계가 백마회 마신들까지 공격하면, 마계 역시 움직일 것이오. 천계 천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마계 전체와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오. 따라서 우리가 신속하게 무림을 장악한다면 천계 역시 어쩔 수 없이 묵인할 가능성이 클 것이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천계의 묵인하에 무림을 다스리는 것이오. 이제 알겠소?”
“아직은 이해가 다 되지 않습니다. 무림을 어떤 식으로 다스린다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무엇보다 서약의 돌이 깨어져 만년서약이 무효가 되면 우리가 직접 무림인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오. 이미 백마회 쪽과 이야기가 다 되어 있소. 예를 들어 반선 한 명이 무림인 백 명이나 천 명씩 이렇게 할당을 받아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오. 우리 반선들과 마신들은 공식적으로 무공 사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니, 무공 지도를 통해 그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오. 이후 그들의 몸과 마음을 개조해 이상적인 상태로 바꾼 후 각 반선의 기운과 연동을 시키게 되오. 그다음은 연동된 무림인들의 기를 받아들여 우화등선에 이용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무림인들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닙니까?”
“하하하.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오. 하지만 마교 흡수대법처럼 무작정 기를 흡수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다만 우화등선에 실패하면 부득이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무림인들을 실험 도구로 전락시키는 셈이군요.”
“우화등선을 위해서라면 희생이 필요하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오.”
정심반선의 말에 반선들이 웅성거렸다.
정심반선을 비롯해 정심회 지휘부 반선들이 주장한 수행법의 자세한 내용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그 요체를 보면 결국 무림인들의 선천진기를 흡수해 도력을 높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들 우화등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들이라 별다른 반박은 없었다.
백자안이 속으로 분노했다.
‘지금 보니 정심회 반선들 대부분이 우화등선에 미쳐 호생지덕을 도외시하고 있구나.’
백자안이 문득 옆에 있는 와룡반선을 쳐다봤다.
그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무림인들을 희생시키는 방안에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백자안을 제외한 모든 정심회 반선들은 지금 정심단을 복용한 상태였다.
정심반선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참고로 정심반선 역시 정심단을 복용했다. 그가 먹은 정심단은 대왕정심단(大王正心丹)이란 것으로 나머지 정심단을 먹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특히 배신하게 되는 경우 의념만으로 고독을 발동시켜 죽일 수 있는 효능이 있었다.
‘우화등선이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다들 미쳐 날뛴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이들은 이미 입마(入魔)된 상태라 할 수 있겠구나. 구제할 수 있는 반선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 같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정심회 반선들에게 느껴지는 집단광기가 심각했다.
문제는 그들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해결방법은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뿐일 것 같구나. 하지만 과연 지금 내 실력으로 이 많은 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백자안은 마음이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정심반선을 죽여 회주 자리를 빼앗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정심회 반선들을 지휘해 마신들을 상대한다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명분 없이 정심반선을 공격할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다. 명분은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
백자안이 말했다.
“회주님. 모레 열릴 천마신과의 승부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천마신을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반선을 내보내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고독반선!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려. 그러니까 그대가 회주 자리를 넘보는 것이오?”
정심반선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은연중 시비를 걸어오는 이유를 그는 회주 자리를 노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면 저의 도전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물론 안 되오. 아직 신입이라서 모르는 모양인데 정심회주 자리는 종신직이오. 무림맹주 자리처럼 십 년이나 이십 년마다 비무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오. 오히려 나는 그대가 은둔회 소속 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오.”
정심반선의 말이 떨어지자, 백대반선 중 십여 명의 반선이 백자안을 향해 날아왔다.
품자 형으로 포위를 한 그들은 당장에라도 출수할 것 같았다.
백자안이 난감해한 것은 물론이었다.
천음반선의 권고도 있었지만, 아직 정심회 측과 정면으로 싸울 시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반선 중 누구도 백자안을 돕지 않았다.
혹시나 해 와룡반선을 쳐다봤지만, 그 역시 안색을 굳힐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심회주가 와룡반선을 향해 물었다.
“아까 보니 두 사람이 제법 친한 것 같던데, 그대가 보기에 고독반선 저자에게 수상한 점이 없었소?”
“그게······.”
와룡반선이 얼굴을 붉혔다.
“어서 말해보시오. 말하지 않으면 그대 역시 고독반선과 한패로 생각하겠소.”
“수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고독반선 이자가 간자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와룡반선의 말에 반선들이 술렁거렸다.
백자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와룡반선과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거리가 다시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회주 자리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조용히 있겠습니다. 다만 저는 간자가 아닙니다.”
“으음, 알겠소. 아직 명확한 증거가 나온 것은 아니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소. 하지만 한 번 더 회주 자리를 노리면 그때는 간자로 간주해 회칙에 따라 벌을 가하겠소.”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숙였다.
그를 포위했던 반선들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대회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그 핵심 내용은 정심반선을 중심으로 단합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레 열릴 선마대회에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때 오늘 미진했던 부분도 많이 밝혀지리라 봅니다. 특히 백마회 마신들도 모두 참여하니, 그때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정심총관의 말을 끝으로 정심대회가 끝났다.
백자안은 와룡반선과 함께 거처로 돌아왔다.
“그럼 편히 쉬시오. 아, 그리고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시오. 정심단 때문에 겁이 나서 한 말이었지 내 진심은 아니었소. 이해를 바라오.”
“알겠소. 마음에 두지 않겠소.”
“그럼.”
와룡반선이 옆 동굴로 들어가자, 백자안 역시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가부좌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간 그가 오늘 일을 떠올렸다.
‘결국 선마대회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반선들에 이어 마신들까지 상대해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승산이 없을 듯하다.’
백자안이 복잡한 심사를 달래며 조식을 계속했다.
그러자 아까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 맞다. 중간지대에 있는 망부석에 관해 물어본다는 것을 깜박했구나. 하지만 과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의심을 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