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장] 서약의 돌 3
‘아! 운기가 된다!’
백자안이 매우 기뻐했다.
품속에 있던 천상여의주에서 나온 금빛이 그의 몸속으로 흡수가 되며 막혔던 혈도가 풀린 것이다.
배에 박힌 비수 역시 그대로 빠져나갔다.
지혈 또한 저절로 이루어졌는데 그에 따라 피가 흐르는 것이 완전히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자안이 흘렸던 피를 회수하려는 듯 천상여의주가 천마검과 지존검을 끌어당겼다.
두 보검을 들고 있던 천마신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천상여의주!”
천마신이 다급성을 지르며 지존검과 천마검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천상여의주에서 흘러나온 금빛의 흡인력은 절대적이었다.
지존검과 천마검을 억누르고 있던 천마신의 절대마력이 사라지자, 곧바로 주인을 찾아 두 보검이 백자안에게 날아갔다.
백자안이 지존검과 천마검을 회수한 후 내공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거대한 검명이 서약봉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는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로서, 천마신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재빨리 지존검으로 서약의 돌을 내리쳤다.
까앙!
순간 금빛 불꽃이 튀며 지존검이 부르르 떨렸다.
지존검에서 장엄한 금빛 광채가 구름처럼 일어난 것은 그 직후였다.
금빛 구름은 금세 신선계 하늘을 덮었으며, 빠르게 그 범위를 넓혀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존검과 서약의 돌이 맞닿으면서 서약의 돌 내부에 잠재되었던 거대한 힘이 검신으로 흡수되었다.
백자안은 지존검을 쥐고 있었기에 그 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증유의 힘이다. 이게 바로 지존검의 각성인가.’
백자안이 당황하지 않고 급히 구중천심공을 운기했다.
지존검의 각성은 지존검의 위력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지존검의 주인인 백자안의 내공 역시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일종의 또 다른 흡수대법이라 할 수 있겠구나. 마교의 흡수대법과 차이라면 지존검의 각성으로 인한 힘을 내가 공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그 힘을 흡수해도 지존검의 위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마치 촛불이 불을 빌려줘도 자신의 밝기가 퇴색되지 않듯이.’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리며 계속해서 구중천심공을 운기했다.
구중천심공은 지존검의 도움을 받아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단계.
즉 구단계가 금세 돌파되었다.
‘아! 구중천심공을 대성했다.’
백자안이 다시 매우 기뻐했다.
천마신을 비롯한 마신들과 정심회 반선들은 상황의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다 죽어가던 백자안이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지존검의 각성까지 이룬 게 아닌가.
무엇보다 지존검과 천마검이 다시 백자안의 손에 들어간 것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자안을 공격할 수도 없었다.
지존검에서 우러나온 금빛 광채가 일시 그들의 공격을 제한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끝이 있게 마련인가.
지존검의 각성이 끝난 듯 금빛 광채가 사그라지자 마신들과 반선들의 움직임이 다시 회복되었다.
천상여의주 역시 자신의 임무를 다한 듯 완전히 녹아내려 백자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로써 백자안은 몸속에 두 개의 천상여의주가 스며든 셈이었다.
“백자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정말 지존검의 각성을 이룬 것이냐?”
천마신이 섣불리 공격을 재개하지 않고 물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런 것 같소.”
“으음, 혹시 너는 천상여의주 두 개를 모두 흡수한 것이냐?”
“그렇소.”
“그랬었군. 역시 천족의 후예답다. 하지만 사실 이 또한 나의 예상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이런 경우를 대비했었지.”
천마신이 품속에서 검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천계에 천상여의주가 있다면 마계에 지옥염라주(地獄閻羅珠)가 있지. 나는 이 지옥염라주로 서약의 돌을 파괴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그렇다. 원래는 불가능하지만 이미 서약의 돌의 힘이 네놈에게 옮아갔다. 따라서 지존검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서약의 돌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막강한 힘이 필요하지만, 지옥염라주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다지 놀라지 않는 것이 그 역시 서약의 돌에 큰 집착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자안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서약의 돌이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것을.
영원한 봉인이 어렵듯이 서약 또한 영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서약의 돌은 자신의 힘을 계승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백자안이 그 힘을 계승했다.
그 때문에 어차피 서약의 돌은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었다.
‘지옥염라주라는 저 법보의 힘이 대단할 것 같으니, 이 기회에 소진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만년서약은 이제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마신들의 봉인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봉인해제가 될 때가 되었을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봉인해제를 막는 것이 아니라 마신들을 영구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여전히 있었다.
구중천심공을 대성했다. 지존검의 각성을 통해 지존검과 자신의 힘 역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다만 아직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백자안은 지금 갈등하고 있었다.
서약의 돌이 파괴되면 천마신 역시 완전히 봉인해제가 되어 그 힘이 강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천마신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주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옥염라주 때문이었다.
사실 지옥염라주는 자신의 비밀무기였다.
그 어떤 적도 죽일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서약의 돌을 파괴하는 것보다 백자안을 죽이는 데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천마신이 망설일 때.
백자안이 일장을 날렸다.
애초 천마신이 지옥염라주로 서약의 돌을 파괴하는 것을 지켜보려 했던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이는 서약의 돌이 파괴될 때의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정심회 반선들을 자유롭게 놔두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최소한 은둔반선들이 지존검 각성을 알고 모여들 때까지 서약의 돌을 보존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결단에는 서약의 돌을 다시 강화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
쏴아아.
백자안이 날린 장력은 매우 평범한 것이었다.
그 속도 역시 매우 느렸다.
“흥!”
천마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좌장을 날려 이를 막았다.
그는 이미 본신 공력 구할 정도를 회복한 상태.
천계를 정복하기 위해 완전 봉인해제를 시도하려 할 뿐 사실 그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었다.
꽈앙.
폭음과 함께 백자안의 신형이 뒤로 퉁겨졌다.
“으윽!”
백자안이 비명과 함께 피를 한 사발 토했다.
“후후후! 별거 아닌 놈이었군. 하기야 아무리 지존검이 각성되었다고 해도 너의 것으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너는 장력이 아니라 지존검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지존검으로 인해 공력 역시 높아졌다고 해도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지. 네놈이 죽게 되면 어차피 지존검과 천마검은 다시 내 수중에 돌아오게 된다.”
천마신이 앙천대소를 터뜨린 후 들고 있던 지옥염라주를 백자안을 향해 던졌다.
쐐액.
빠르게 날아오는 지옥염라주를 보며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내 실수다. 천마신 말대로 아직 미숙하다. 그나마 구중천심공을 대성했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백자안이 지존검으로 원호를 그렸다.
동시에 좌장으로는 다시 장풍을 날렸다.
콰콰콰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다시 비명이 들렸다.
얼마 후 드러난 광경은 놀라웠다.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을 거로 생각되었던 백자안이 담담히 서 있었다.
천마신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네······ 네놈이!”
천마신이 황금빛 가면이 떨릴 정도로 분노했다.
애꿎은 지옥염라주만 날렸다는 생각에 더욱더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상이 깊지는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다른 마신들과 연동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혼자 싸우더라도 다른 마신들의 마력을 끌어모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조금 전 대결에서는 다른 마신들의 마력을 삼할 정도만 사용했다.
그 이상은 마신들의 특수 진법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
천마신이 따로 명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남은 마신들이 그를 둘러쌌다.
휙휙휙.
마신들이 빠르게 회전하자 그 안에 있던 천마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붉은 광채에 휩싸인 그는 순식간에 조금 전에 입었던 내상도 회복한 것 같았다.
“후후후! 백자안 네놈도 이제 끝이다. 마신진법(魔神陣法)을 펼치게 되면 대표 마신의 마력이 순간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지. 너는 절대 이번 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쏴아아.
천마신이 빠르게 장풍을 날렸다.
백자안이 지존검으로 절대검강을 날려 이에 맞섰다.
같은 절대검강이라도 상황보검으로 날렸을 때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게다가 이번 공격에는 그동안 백자안이 연마해 온 무공의 정수가 모두 담겨있었다.
이는 그만큼 천마신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기본적인 무공 수준은 나보다 훨씬 높은 자다.’
꽈아앙.
“으윽!”
비명과 함께 천마신이 무릎을 꿇었다.
그를 지원하고 있던 마신들도 다들 기혈이 흔들리는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백자안이 천천히 천마신을 향해 다가갔다.
정심반선을 비롯한 정심회 반선들은 어찌 된 일인지 백자안을 저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부지리를 노리려는 것 같았다.
“죽이기 전에 천마신 그대의 얼굴을 확인해보겠소.”
백자안이 천마신이 쓰고 있는 황금빛 가면을 천천히 벗겨냈다.
천마신의 목숨이 자신의 가족과 연동되어 있다는 주장도 꺼림칙했으나, 아무래도 가면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죽이기 전에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천마신의 얼굴이 드러난 순간.
백자안이 경악했다.
“아버지!”
그랬다.
천마신의 얼굴은 바로 백자안의 부친인 백청의 것이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너무나 놀라 멈칫하는 순간.
천마신이 우장을 뻗어 백자안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으윽!”
천마신이 자신의 마력을 모두 쏟아부은 장력에 백자안이 다시 피를 한 사발 토했다.
호신강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심장이 터져나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섣불리 반격하지 못했다.
어찌 된 이유인지 천마신이 부친의 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목구멍까지 다시 올라온 선혈을 삼키며 백자안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신이 우수를 뻗어 백자안의 목을 움켜쥐었다.
“애초에 내가 경고하지 않았느냐? 나를 죽이면 내 가족 모두가 죽는다고. 나를 죽이면 내 가족 중 네 아비가 가장 먼저 죽게 될 것이다.”
“으으······ 네놈이 내 아버지의 몸을 빼앗았구나.”
“그렇다. 지존검과 천마검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네 아비의 몸을 취한 덕분에 그나마 지금까지 두 검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었지. 하지만 더는 필요 없다. 널 죽인 후 이 몸뚱이를 버리고 원래 내 몸을 다시 찾을 것이다.”
천마신이 백자안의 목을 세게 비틀었다.
목뼈를 부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구중천심공을 대성한 백자안의 호신강기는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천마신의 압력을 견디며 그대로 반탄강기를 발산했다.
순간,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백자안과 천마신의 몸이 붙었다.
정확하게 말해 백자안의 목과 천마신의 손이었다.
둘이 붙었다는 말은 곧 내공 대결로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백자안은 곧바로 흡수대법을 펼쳤다.
백청의 몸을 하고 있는 천마신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지만 일단 공력부터 빼앗기로 했다.
천마신 역시 잠재마력까지 발산해 이에 대항했다.
나머지 마신들이 일제히 서로 기를 연결해 천마신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래도 막상막하였다.
부르르르.
서약의 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충격파가 서약의 돌 깊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마신이 소리쳤다.
“정심반선! 어서 반선들의 도력을 모아 백자안 이놈의 머리를 박살 내시오. 시간이 없소!”
“으음······.”
정심반선이 갈등했다.
이대로 백자안과 마신들이 양패구상하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그의 마음을 알았을까.
천마신이 다시 소리쳤다.
“상황이 악화하면 마계사자인 구천마녀(九天魔女)께서 오실 것이오. 그대들에게 징벌을 가할 수 있는 곳은 천계만이 아니오. 총회주로서 마지막으로 명한다. 어서 백자안 이놈을 죽여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정심반선이 빠르게 백자안을 향해 날아왔다.
보호진법을 펼친 채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일만여 반선들 역시 서약의 돌 주위로 다가와 서로의 기를 모아 정심반선에게 전달했다.
정심반선은 내상에도 불구하고 일만여 반선의 도력을 합쳐 이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백자안! 잘 가라!”
정심반선이 주먹을 뻗어 백자안의 머리를 후려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서약의 돌이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으윽!”
“크윽!”
수천만 조각으로 쪼개진 파편들이 반선들과 마신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파편은 그 어떤 병장기보다 날카로웠고 강력했다.
그 어떤 호신강기도 이를 막지 못했다.
동시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어나 서약봉을 뒤덮었다.
그 때문일까.
급기야 서약봉 전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