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장] 우담화 1
[제71장] 우담화
“후후후! 충격이 큰 모양이군. 하지만 곧 죽을 놈이 무림 걱정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실 우리는 네 덕분에 무림까지 접수하게 된 것이니 고마운 점도 있다.”
이중마인이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력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던 백자안이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네놈이 감히 우리 마계의 사자를 죽였기 때문에 그 복수의 일환으로 무림까지 접수하게 된 것이다. 네놈이 바로 지존맹주이니까, 너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으면 자연스럽게 무림까지 접수하게 되지 않겠느냐? 다만 천계와의 전면전은 우리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에 대리자를 내세운 것이다.”
“혹시 십만혈군 그자 역시 나로 행세할 계획이오?”
“그렇다. 지금쯤 제남지부에 있던 십만 무림인 모두가 돌이 되었을 것이고, 십만혈군이 네놈 얼굴로 역용했을 것이다. 요컨대 비록 무림인들이 대거 돌로 변했지만 최후의 순간에 백자안 네가 나타나 십만혈군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으니 누가 그 말을 믿지 않겠느냐? 특히 십만혈군은우리 마계의 도움을 얻어 둔갑술 또한 최고의 경지에 달한 상태다. 네놈 행세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지.”
“이전에도 그랬지만 굳이 나로 행세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바로 그게 가장 쉽게 무림을 지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이미 마계를 장악하고 있고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데, 왜 굳이 무림을 장악하려는 것이오? 그렇다고 정심회 반선들처럼 우화등선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백자안의 말은 어느 정도 차분해져 있었다.
나중에 결과가 어찌 되든 일단 시간을 끌면서 여러 가지 의문을 풀고자 하는 의도 같았다.
허공대마신이 말했다.
“그것은 내가 말해주지. 너도 알다시피 무림인들의 무공은 우리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마음만 먹으면 진성마신 십여 명만 있어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지. 하지만 무림은 천계와 마계의 근원이기도 하다. 상고시대 무림인들은 바로 우리 마계와 천계 구성원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지. 따라서 무림을 장악한다는 것은 근원을 장악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언젠가는 벌어질 천계와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지. 무림인들은 비록 허약하나 우리 마계의 특수대법을 거치게 되면 막강한 고수로 거듭날 수 있다. 그 힘은 천계와 우리 마계의 힘에 있어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모르겠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소. 그대들 역시 정심회 반선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더는 무림을 건드리지 마시오. 돌로 변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내가 회복시킬 테니까.”
“후후후! 무슨 방법으로 회복을 시킨단 말이냐? 한번 돌로 변한 사람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지. 이는 중간지대에 돌로 변해 있는 무림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욱더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지성자가 되면 가능하다고 하나, 지성자가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
허공대마신이 껄껄 웃었다.
백자안의 안색이 굳어졌다.
상대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백자안이 천마력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바라던 기의 증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지옥염화지라는 이곳의 특성 때문인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백자안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력을 회복하는 것은 여전히 난망했다.
“후후후! 공력을 일부 회복한 것 같은데 헛수고하지 마라. 시간을 끄는 것도 이제 끝난 것 같군. 이제 정말 죽여주마.”
허공대마신이 눈짓하자 옆에 품자 형태로 포위하고 있던 다른 진성마신들이 우수를 내뻗었다.
허공대마신 역시 합세하자, 그들 마계심판관 세 사람의 장심에서 붉은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휘리릭.
붉은 기류가 백자안의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휘감았다.
“으윽!”
백자안이 신음과 함께 안색이 창백해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애써 모은 천마력 또한 모두 사라졌다.
허공대마신이 검을 뽑은 것은 그때였다.
허공마검(虛空魔劍).
보검의 이름이었다.
이 허공마검은 주 심판관이 갖고 있는 것으로 죄인의 목을 벨 때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검이었다.
다만 백자안의 경우에는 그 전에 진성마신 세 사람의 마력으로 모든 기운을 흩트려 놓아야 했다.
그 때문일까.
백자안은 온몸의 힘이 없어지며 외공 역시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호신강기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대로 끝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이면 굳이 내가 그동안 애를 쓸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백자안은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있는 천계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신분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
‘결국 모든 것은 무(無)란 말인가.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 과연 있고 없음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죽음을 목전에 뒀기 때문일까.
백자안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러 법문의 내용이 조금씩 이해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사천겁이란 것 역시 어떤 깨달음에 도달해야 풀리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무림의 평화라는 외적인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과의 승부가 아닐까. 내가 나를 이기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인 것을.’
백자안은 어느새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허공대마신의 허공마검이 그의 목을 자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죽기 전에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까짓 육체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몸은 없다. 아지랑이와도 같은 것이다. 내 어찌 그런 것에 집착할 것인가.’
백자안이 마음을 완전히 비웠을 때.
허공마검이 그런 그를 비웃듯 목에 닿았다.
백자안의 목이 실제 잘리기 직전.
한 목소리가 지옥염화지 안에 울려 퍼졌다.
“멈추시오!”
허공대마신이 급히 검을 멈췄다.
백자안의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면 실제 목을 자를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백자안이 눈을 뜬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 역시 조금 전 상황에 의문이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기 때문인지 자신의 목이 잘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상황의 변화로 그런 느낌은 다시 사라졌었다.
누군가의 저지로 위기 상황을 잠시 모면했기 때문이었다.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진정한 금강불괴지신이 되었다가 다시 원래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백자안이 속으로 아쉬워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순간적이었지만 지성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는데, 오히려 외부 도움을 받아 그 기회를 날렸구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백자안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앞을 봤다.
이중마인과 마계심판관들 사이에 허깨비 한 명의 모습이 더 보였다.
“호법대마신(護法大魔神)께서 오셨구려. 처형을 멈추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오?”
허공대마신의 물음에 호법대마신이 담담히 말했다.
“마제께서 처형을 보류하라고 하셨소.”
“이유는 무엇이오?”
“나도 모르오. 아무래도 이자의 신분 때문인 것 같소.”
“정말 이자가 천계 태자란 말이오?”
“그런 것 같소. 천계에서 사자가 온다고 하니 그때 확실히 밝혀질 듯하오.”
“으음, 할 수 없지. 다만 이자의 회복력이 뛰어나니 확실한 금제를 하나 더 해두어야 할 것 같소.”
허공대마신이 품속에서 자루 하나를 꺼냈다.
마계의 법보인 마계자루였다.
이 마계자루에 들어가게 되면 그 어떤 운공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공대마신이 마계자루를 던지자, 백자안의 몸이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공대마신이 자루 윗부분을 특수 포승줄로 묶어버린 후 말했다.
“이 정도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군. 혹시 이자를 총단으로 데리고 오라는 마제님의 명을 받지 않았소?”
“받았소이다. 총단으로 직접 데려오라고 하셨소. 모두 가시지요.”
“그럽시다. 오랜만에 천상선녀 그 계집을 볼 수 있겠군.”
“그렇겠지요. 사자로 올 사람은 그 계집밖에 없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잘된 일입니다. 이 기회에 천상선녀 그 계집까지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중마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계자루에 들어있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마계 총단까지 가게 되었구나. 그나저나 내가 정말 천계 태자란 말인가.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 * *
마계 총단.
마계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마제가 총군사 마선생(魔先生)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마제께 아룁니다. 분부대로 백자안 그자를 총단 뇌옥에 가두어놓았습니다.”
“천상선녀는 언제 온다고 하오?”
“내일입니다. 천계에서 우리가 백자안 그자를 체포한 것을 어떻게 알고 풀어달라고 부탁한 걸까요?”
“그들은 오래전부터 백자안 그자를 주시하고 있었소. 바로 생사천겁 때문이지. 이번에 그가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하자 서둘러 내게 부탁한 것 같소.”
“천제의 뜻이겠지요?”
“그런 것 같소. 총군사의 생각은 어떻소? 백자안 그자가 정말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오?”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천계 태자의 행방은 오래전부터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요.”
“으음, 일단 처형을 유보하긴 했는데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백자안 그자가 천계 태자가 맞는다면 이 기회에 천족의 후예를 죽여 그 맥을 끊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말이오.”
“마제께서 이미 수락하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하. 역시 총군사의 예지력은 대단하오. 그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맞혀 보시오.”
“으음, 제 생각에 마제께서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백자안 그자가 천계에서 중요시하는 인물이니, 반드시 풀어달라는 부탁을 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마제께서 이중마인에게 마계환상추포진을 사용하여 백자안 그놈을 체포하게 명하신 것은 천계로서도 뜻밖의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제께서 백자안 그놈과 교환하고자 하는 물건이겠지요.”
“그렇소. 역시 대단하구려. 그 물건이 무엇인지 맞춰보시오.”
“마제께서 바라는 것은 바로 우담화가 아니겠습니까? 깨달음의 꽃이라는 우담화가 만년 만에 필 때가 다 되었지요.”
“하하하. 그렇소. 나는 그 우담화를 원하오. 우담화만 복용하면 지성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천제 역시 우담화를 노리고 있어 그가 순순히 내줄지 모르겠소.”
“아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찌 모른 체하겠습니까? 다만 우담화를 먹고도 지성자가 되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던데 괜찮겠습니까?”
마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그의 우려는 당연했다.
하지만 마제는 태연했다.
“무슨 일이든 모험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소. 우담화를 복용한 후 지성자가 되어야만 우리 마계가 천계를 정복할 수 있소. 그러지 않으면 천제가 먼저 지성자가 되어 우리를 정복할 것이오. 천제가 태자의 생사천겁을 서두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오?”
“설마 우담화 때문입니까? 자신이 실패하고 죽게 될까 봐 서둘러 후계자를 정하려는 것입니까?”
“그렇소. 천계 태자의 경우 진정으로 천제의 후계자가 되려면 반드시 생사천겁을 겪어야 하오. 나는 그 태자가 백자안이라고 확신하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백자안 그자를 주시해왔소. 그 모두가 우담화 때문이었지. 이제 내 뜻을 알겠소?”
“네. 일단 천상선녀 그 계집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우리 마계와 천계의 협정에 의해 천계 인물 중에서 마음대로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그 계집뿐이니까요.”
“그렇게 합시다. 일단 총군사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내게 보고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