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 주점 샹그릴라.
1. 주점 샹그릴라.
“사장님 아무래도 일 나겠는데요?”
호랑이 눈을 부릅뜬 그렉이 긴장한 숨을 감추지 못 한 채 홀을 가리킨다. 이미터 가까운 체격을 가진 타이그란족 주제에 왜 이리 겁이 많은 걸까.
“그렉아, 한때 지구에 살았다는 호랑이들도 너처럼 겁이 많았을까?”“예?”
뜨악한 눈으로 돌아본 그렉은 한심하단 표정의 사장 박준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지금 저게 안 보이십니까? 흑랑성패거리들하고 검은 숲 요괴들이 한판 붙게 생겼는데요? 일 나면 가게부터 작살납니다? 제가 주인인 건가요?”
그렉의 흥분한 눈을 응시하며 작게 한숨 쉰 사장 박준은 홀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터지기 직전은 두 패거리 너머 시간을 확인했다.고물이지만 시간만은 정확하게 보여주는 벽시계는 오후 3시 정각으로 바늘이 갔다.
“올 때 됐어.”
너무나 느긋하고 태연한 사장 박준, 그 얼굴에서 뭔가 읽은 그렉은 호랑이 무늬가 들어간 얼굴을, 정확하게는 두 눈 사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뭡니까? 누가 온다는 겁니까?”“응, 와.”
그게 그러니까 누구냐고 화를 내려던 그렉은 이어 나온 박준의 말에 경직했다.
“정찰대.”
딸꾹질이 튀어나오려는 걸 그렉은 가까스로 참았다.사장 박준이 말한 정찰대, 그들은 화성에서 파견한 군인들이다.군부의 군인들과는 궤가 다른 치안군인들, 일명 ‘대가리 귀신’이라고 부르는 무서운 자들이다.그렇다, 그들은 적들의 머리를 자르는 걸로 유명하다.
‘레드스콜피온!’
정식부대명칭인 그 이름보다 대가리 귀신으로 부르는 무서운 자들.그들이 온다는 거다.그럼 저렇게 으르렁 거리는 두 패거리 따위는 깨갱이다.샹그릴라가 부서질 일도 없다.그런데 사장 박준은 어떻게 아는 걸까?
“정찰대가 올 걸 사장님은 어떻게······”
그렉이 어깨를 꿈틀거리며 그걸 묻는데 일이 벌어졌다.흑랑성패가 먼저 흉악한 칼을 뽑고 공격했다.얼굴을 맞대다시피 하고 있던 검은 숲 요괴들도 특유의 쇠꼬챙이 같은 검을 뽑아 대응한다.테이블들이 날아간다.
“엇! 저, 저놈들!”
박준은 창백해진 얼굴로 허둥거렸다. 먹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은 늑대족속과 암흑으로만 숨 쉰다는 블랙엘프들이 홀을 작살내고 있어서다.
“사, 사장님!”
바 뒤로 몸을 숨긴 그렉, 체격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 그 모습을 박준은 볼 상황이 아니다. 그야말로 순식간, 온다던 정찰대는 아직인데 저놈들은 다 때려 부순다. 그들이 왔으면 저런 놈들쯤 싸그리 아작인데.
“뭐야? 왜 안와? 3시 넘었잖아! 아이 케서방 샹그릴라!”
사장 박준의 절박한 분노와 욕을 보고 들으며 그렉은 몸을 움츠렸다.
* * *
해가 떠 있는 방향과 그 아래 지형을 눈에 넣으며 카슨은 심호흡을 했다.서울지구의 북쪽, 분명히 저 방향으로 놈은 이동했다.위성을 이용할 수 있으면 추적이 쉬울 텐데, 지구의 위성들은 삼백년 전에 사라졌다.
‘어린애 한 놈, 그래도 마무리는 확실히 해야지.’“보스, 어떻게 할까요?”
곁으로 다가와 묻는 라이피언족 그라온, 사자족 특유의 갈색 갈기 같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눈은 쉬자고 말하고 있다. 하긴 그럴 만 하다. 반화성조직 하나를 찾아내 치른 전투가 만만찮았다.
“부상이 다섯인가? 현재 상태는?”“예, 대부분 골절인데 조치를 끝냈습니다. 내상을 입지 않아 다행입니다. 치료제의 약효 때문에 다시 전투를 하겠다고 흥분한 상태입니다.”
카슨은 푸른 눈동자를 번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장을 쓰는 고수가 있었을 줄은······’
고수의 손에 팀원 둘이 나가 떨어졌다.즉시 카슨 자신과 그라온이 나섰고 팀원 스물 중 열이 가세했다.슈트의 전투력을 최대치로 올린 상태로 싸웠다.위험하고 짜릿했다. 근래에 이처럼 치열하게 싸운 적이 없다.
‘삼합장은 십대문파 중 한곳인 적호문이 뿌리.’
적호문은 사라진 곳이다. 삼백 년 전 지구대전쟁 당시 멸문했다.그렇지만 이렇게 뿌리가 남아 있었던 거다.오늘 격멸한 반화성조직인 ‘미래’를 이끄는 수장이 그 후계자였다.이자들은 적호문의 무공을 사용했다.
‘천산마갑슈트가 없었다면······!’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보호색을 띄는 장갑계열 전투슈트.이것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스물이란 숫자로 삼백이 넘는 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그냥 떠돌이나 잔류인간들이 아니라 무공을 익힌 자들인 것이다.새삼스럽게 착용한 슈트를 응시한 카슨은 늦은 대답을 냈다.
“샹그릴라에 가서 우선 쉰다.”
웃는 얼굴을 한 그라온이 돌아서 팀원들에게 전하는 동안 카슨은 북쪽을 응시했다.‘미래’ 란 이름의 반화성조직에서 혼자 살아남아 도망친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열두어살 정도의 어린놈, 놈을 살리려 수장은 죽었다.
‘살리려고 했다기 보다는 뺏기지 않으려고 한 것 같은······ 그래, 눈알이 그랬어. 그래야 했던 이유가 뭔지 모르지만, 너까지 죽여야 끝나는 거지.’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카슨은 전투대검을 슈트 등에 꽂았다.어느새 이동준비를 마친 팀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 후 게틀러에 올랐다.지상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시속 백키로를 달리는 대형장갑차는 맹렬히 질주했다.
* * *
바 뒤쪽의 주방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그렉은 기울어가는 오후 해를 찡그린 눈으로 응시했다.샹그릴라 내부에서 우당탕쿵탕 난리치는 소리가 요란하다.정찰대를 말하던 사장 박준의 해쓱해진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정찰대하곤 언제부터 뭘로 붙어먹기 시작한 거야?’
박준이니까 그런 일이 가능하겠지 란 생각을 하며 그렉은 창고로 향했다. 나란히 붙은 창고 두 동, 1창고가 목적지다. 그곳에 쉼터를 마련했다.‘2창고엔 고물차를 보물단지처럼 숨겨두고 하는 짓은······’
새삼 사장 박준의 능력을 그렉은 곱씹었다.
‘우습게 볼 사람이 아니지.’
허술한 것 같아도 감탄스러운 면이 있다.위험하기 그지없는 서울지구의 북쪽 이곳에서 주점 샹그릴라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탁월해.’
적을 만들지 않는다.그 누구하고도 친화력을 보인다.온갖 위험한 종족들과 웃고 술잔을 나누며 거래를 하고 이득을 취한다.샹그릴라는 일종의 합의된 버퍼존, 이곳에서만큼은 무기를 내리고 모두가 술잔을 든다.
‘어디서 뜨내기들이 와설랑.’
오늘 같은 일은 흔하지 않다.흑랑성패거리 늑대인간 놈들과 검은 숲 요괴들로 불리는 블랙엘프 무리가 끝내 충돌했다.샹그릴라를 잘 모르는, 멀리서 온 놈들이다.요즘 저런 무리가 부쩍 늘었다. 이유가 뭘까.
“아 몰라, 싸움 끝날 때까지 잠이나 자자.”
1창고 문을 열고 들어간 그렉은 디리릭 하는 잠김음 소리를 들으며 안심했다.창고철문의 보안 도어락은 자신과 사장 박준의 바이오인식이 안되면 안 열린다.이 안에 간이침대를 놔뒀다. 사장이 찾을 때까지 휴식이다.
“늦어도 그놈들이 온다고 했으면 오겠지.”
정찰대, 그들이 오면 소란은 끝난다.그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은 그렉은 간이침대에 누웠다.모포를 끌어올려 덮으며 스르르 잠기는 눈에 미소를 품었다.이 나른한 피로감, 휴식을 취하는 이순간이 제일 행복할 때다.
‘응?’
눈감던 그렉은 미간을 확 좁혔다.서늘한 기운, 분명 숨결이 느껴져서다.누군가 창고 안에 있는 거다.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여긴 사장 박준과 자신만 들고날 수 있다.하지만 창고 안 공기는 분명히 누군가 있다.
‘나 말고 숨 쉬는 다른 존재.’
호랑이가 털을 곤두세우듯 머리카락과 수염을 세운 그렉은 호흡을 다스리며 털도 제어했다.간이침대에 누운 그대로 잠이 드는 척 연기했다.잠시 후 코까지 골았다.자신이 듣기에도 드르렁대는 소리가 그럴듯하다.
“크워어어······ 피우우우······ 쿼우우······ 피우우우.”
쩝쩝대는 소리까지 내며 연기하던 그렉은 기척을 확실하게 포착했다.술과 음식들이 든 화성박스 뒤에서 누군가 은밀하게 다가오고 있다.숨소리와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오는 기척이 마치 타이그란족의 걸음 같다.
‘이 새끼, 날 죽이려는 거구나!’
상대의 의도가 그러하다고 확신한 그렉은 품고 있던 핸드건을 움켜잡았다.떠돌이 퓨리엔트족 사냥꾼에게서 한달치 월급인 금화 세 개를 주고 산 무기다.아직 쏴 본 적 없지만 에너지탄창의 눈금은 확실히 차있다.
“우왁!”
괴성을 터트리며 그렉은 간이침대에서 튕겨 일어섰다.동시에 핸드건을 겨눴다.그런데 눈앞의 검은 그림자가 비호처럼 움직인다.섬뜩한 은빛이 목으로 찔러 들어온다.그 손을 움켜잡았다.그 순간 상대를 알았다.
‘이놈?’
어린애다.열두서너살 된 것 같다. 시퍼런 눈에 불꽃이 넘실거린다.손을 잡힐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 분노와 적의로 타는 눈동자가 당황했다.그러나 당황은 찰나, 잡힌 손의 나이프를 떨어드려 반대손으로 잡는다.
‘어?’
당황은 그렉의 몫으로 돌아왔다.어린 침입자는 다시 목으로 칼을 쑤셨다.그 빠르고 정확한 살수를 그렉은 피하지 못했다.아니 안 피했다.콱, 그렉의 목에서 쇠가 돌을 친 것 같은 소리가 났다.장발의 어린 침입자는 다시 당황했고 그렉은 남은 손마저 움켜잡았다.나이프가 떨어졌다.
“윽!”
어린 침입자의 입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나왔다.양손이 잡혔다. 우왁스러운 타이그란족의 손힘을 감당하기 어려운 거다.그래서 발이 솟구쳤다.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한 그렉은 굵은 다리로 어린 다리를 쓸어 찼다.휘릭, 두발이 떠 균형을 잃은 어린 침입자, 하지만 그렉이 양손을 잡고 있는 터라 쓰러지진 않았다. 마치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휘청거리는 모양새다.
“너 뭐야?”
그렉은 호랑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당연히 바로 대답을 하진 않을 거란 예상 하에 어린 침입자를 자세히 살펴봤다.작은 키에 바싹 마른 몸, 어지간히 못 먹은 모양이다.넝마 같은 옷을 봐도 한눈에 알겠다.
“잔류유랑민이냐?”
잔류민, 화성으로 가지 못하고 지구에 남은 인간들을 일컫는 말.그 말이 가진 구분과 차별과 악의를 그렉은 새삼스레 삼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여길 어떻게 들어왔어?”
두 번째 물음을 던지고 난 후 그렉은 깨달았다.어린 침입자에게서 아무런 냄새가 안 난다는 거다.타이그란족인 자신이 냄새를 못 맡고 숨결만 느낀 거다.이 상황은 어린 침입자에게 특별한 노력이 있었다는 거다.
‘숨결마저 못 느꼈다면······!’
그렉은 바닥에 떨어진 나이프를 힐긋 봤다.날이 시퍼런 것이 예사무기가 아니다.유랑민아이가 가질만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그걸 떠나서 저게 목에 박혔으면 황천행, 철갑기공을 익히지 않았으면 호생 종쳤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이 어린놈에게 들킨 거네.’
무공을 익힌 사실, 그건 사장 박준도 모르는 거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됐다.어린 침입자의 놀라운 공격을 방어하느라 드러냈다.이 어린놈은 무공을 제대로 익힌 놈도 아니다. 그런데 타이그란족인 자신처럼 빠르다.
“너 뭐야? 어떻게 여길 들어왔어?”
그렉은 분노를 발산하며 어린 침입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강철바이스 같은 그 손아귀 힘에 어린 침입자의 얼굴은 붉어지다가 창백하게 변했다. 그렉의 손을 잡아 뜯고 할퀴며 허공에 뜬 두발을 차며 몸부림친다.그 순간 그렉은 봤다. 어린침입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선들을.
‘어!’
타이그란족의 무늬, 호랑이무늬, 그것이 어린 침입자의 얼굴에 생겨났다.
* * *
샹그릴라의 문을 열고 들어간 카슨은 주저하지 않았다.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흑랑성늑대족들과 검은 숲 블랙엘프들을 향해 달려갔다.슈트의 등에서 전투대검을 뽑아내는 것과 동시에 흑랑성늑대족을 갈랐다.섬뜩한 기음을 내며 둘로 나뉜 흑랑성늑대족.그게 시작이었다.이십 명의 정찰대 팀은 샹그릴라 안으로 바람처럼 밀려들어가 살육을 시작했다.무시무시하고 무자비한 전투와 살육.샹그릴라는 술이 아닌 피로 젖었다.
‘미친······!’
박준은 충격과 소름을 삼키며 바 뒤에서 머릴 내밀었다.카슨이 마지막 놈, 블랙엘프의 머리를 수박처럼 쪼개는 광경을 봤다.그렇게 끝이 났다.흑랑성늑대족 스물셋과 검은 숲 요괴 블랙엘프 스물이 전멸했다.
‘악귀 같은 놈들······!’
새삼 대가리 귀신의 위명을 절감하며 박준은 일어섰다.전투대검을 슈트 등으로 밀어 넣은 카슨이 그 순간 돌아보며 눈을 맞췄다.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든다.지금 처리한 이일에 대해서 따로 값을 치르라는 표시다.
‘더러운 새끼.’
속으로 욕하며 박준은 환하게 웃음을 피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