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2화 (3/172)

혹성강호. 2. 어린 침입자.

2. 어린 침입자.

“체한다, 천천히 먹어.”

그렉은 어린 침입자를 보며 기묘한 감정을 삼켰다. 방금 전 자신을 죽이려고 목에 칼을 쑤신 놈, 단도대신 먹을 걸 쥔 손을 입에 밀어 넣고 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런데 이놈은······’

얼마를 굶었길래 저럴까, 먹으면서도 그렉 자신을 계속 경계하고 있다. 타이그란족의 표상인 호랑이 무늬는 다시 씻은 듯 사라진 얼굴이다.

“얌마,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어떻게 할 것 같으면 네가 지금 그러고 있겠냐? 니눔 양손에 움켜잡고 있는 훈제포크하고 치킨을 누가 줬어? 그거 얼마나 고급음식인지 알아? 화성에서 배양육으로 만든 거라고?”

반은 으스대는 말투인 그렉을 힐긋거린 어린 침입자는 쌓여 있는 박스들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그렇게 열려고 노력했지만 열수 없었던, 이름 하여 화성박스, 사람하나는 들어갈 크기의 저 안에서 음식이 나왔다.

“아 그래그래, 화성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고급요리는 배양육이 아니라 진짜 짐승 고기지. 그런 건 버려진 지구에 널렸잖아? 다 괴물이라서 그렇지만. 너 그런 건 먹을 생각도 못해봤지? 에, 나는 먹어봤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 라고 스스로 느끼던 그렉은 창고 밖 소음에 긴장했다.으르렁거리는 괴수의 울음 같은 엔진소리, 이건 게틀러다.레드스콜피온 정찰대가 타고 다니는 전술전투차량, 그게 드디어 온 거다.

“야, 조용해 해야 돼, 알았지?”

어린 침입자에게 긴장한 얼굴로 주의를 준 그렉은 창고문에 붙어 바깥 동정을 살폈다.뜨거운 침을 삼키며 창고문을 살며시 열고 봤다. 역시 대가리 귀신들이 왔다.게틀러에서 내리자마자 검을 뽑아들고 들어간다.

‘다 죽었구나!’

샹그릴라 홀을 박살내고 있던 놈들, 흑랑성 늑대족속과 검은 숲 블랙엘프들의 최후가 눈에 보인다. 뜨내기에 불과한 그것들이 정찰대를 당할 순 없다. 앞으로 길어야 몇 분, 전부 시체가 돼서 밖에 버려질 거다.

‘검만 쓰는 모양인데.’

샹그릴라 창문 밖으로 빔건의 섬광들이 안 보인다.레드스콜피온의 기본무장인 에너지빔 소총과 권총, 전투대검, 그 중에 검만 쓰는 거다.실내가 백병전상황이기도 하지만 총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대상인 거다.

“어?”

그렉은 흠칫 놀라며 등에 붙은 어린 침입자를 바로 밀었다.

“뭐하는 거야 자식아!”

소리죽여 성을 내며 그렉은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손에 잡은 고깃덩이들을 우적거리면서 등 뒤로 다가와 자신처럼 바깥동정을 살피는 어린 침입자,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동자는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어린놈이······ 에이 그래, 보통 놈 아니니까 지금 이렇겠지.”

그렉 자신을 죽이려 했고 그 이전에 창고에 숨어 든 존재.

“어린놈 아니다.”“어?”

그렉은 조금 열었던 창고문을 확 닫으며 호랑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자식 말할 줄 아는 구나? 그런데 왜 아까는 대답 안했어?”

아까, 그렉 자신이 어린침입자의 목을 움켜잡아 숨이 막혀 죽기 일보직전이던 상황, 어린 침입자의 얼굴에 드러난 타이그란족의 무늬를 보고 손을 놓았다. 놀라고 당황한 마음을 다스리며 타이그란족이냐고 물었다.아니 그건 물어보나 마다한 물음이었다.타이그란족이 아니면 호랑이무늬가 생겨날 이유가 없다.정확히 하프타이그란이다.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이 타이그란인 거다. 그러면 자식은 호랑이무늬가 체내에 숨는다.그런데 하프타이그란이 생겨날 확률은 거의 없다.수인족과 인간 사이에서 후손이 생겨나기 힘든 까닭이다.그렉 자신도 여태 살면서 하프 타이그란을 본적이 없다. 오늘 처음 본거다.그래서 정말인지 반신반의다.

“난 올해 열여덟 살이다.”

다시 귀를 파고든 어린침입자의 말에 그렉은 막 입을 열려다 멈칫했다. 그렇게 지금 들은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열여덟, 그 나이를 더듬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열여덟 살이라고? 네가?”

황당한 눈을 한 그렉은 이리저리 상대를 훑어봤다.아무리 봐도 열두서너살, 그 이상은 봐줄 수 없는 외모다.피골이 상접한 얼굴과 몸은 애처로울 정도다.그런데 눈만은 다르다.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 깊다.

“못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나도 정확히 왜 이런지 몰라.”

대수롭잖게 말하며 어린 침입자, 아니 열여덟 살이라고 말한 마른 청년은 닭다리 뼈를 창고안쪽으로 휙 던졌다.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쪽쪽 빨더니 눈으로 말한다. 이왕 안 죽이고 먹을 걸 줬으면 확실하게 달라고.

“어 뭐 이런 자식이······”

호랑이 얼굴을 꿈틀거린 그렉은 으이그 하는 한숨으로 화성 박스를 다시 열었다. 투명포장지에 진공돼 있는 햄버거를 꺼내 맥코라인 음료수와 줬다. 화성에서 제일 잘 팔린다는 음료수, 지구에선 먹기 힘든 거다.

“음음, 맛있네.”

받자마자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열여덟 침입자에게 그렉은 물었다.

“나한테 죽을 뻔 했는데 지금 그게 그렇게 잘 들어 가냐?”

입에 소스를 잔뜩 묻힌 침입자 청년은 맥코라인 용기를 따서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눈을 감는다. 부르르 진저리로 음미하고 눈을 뜨더니 대답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살아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든 먹어 둬야지.”“뭐? 아뭐 이런······”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짓는 그렉에게 물음이 돌아왔다.

“왜 안 죽였는데? 내가 하프타이그란이라서?”

그렉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정말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지금 이 물음을 던진 상대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현재 외모를 바꿀 수 없으니 당연한, 타이그란인 걸 알면서도 그런 거다.그랬는데 자신은 안 죽였다.

“그러는 너는 날 정말 죽여 버릴 생각이었냐? 동족애 같은 건 없는 거냐?”

그 순간 열여덟 청년은 웃었다. 소리 없이 차갑게 웃음을 흘려냈다.그 미소에 든 정확한 모든 걸 알진 못해도 그렉은 한 가지는 읽었다.이 청년에게는 그런 믿음이나 기대가 없다는 것을, 그것이 경험이라는 것을.

‘내가 밖을 보느라 등을 보인 그때 날 죽이······’

그렉의 생각을 읽은 청년이 말했다.

“외가기공을 익힌 대상에게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 오히려 당했겠지.”

맞는 말이다.그렉 자신의 등 뒤에서 공격을 해왔다면 아무리 하프타이그란이라고 해도 참지 않았을 거다.그 위험을 알고 있고 어쩌면 유인이라고 생각해 하지 않은 거다.그렇게 보면 참 냉철한 놈이다.

“너 어디서 온 뭐하는 놈이냐?”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렉은 물었다.현실을 반영한 무거운 눈빛.그 시선을 받는 존재, 열여덟 청년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품고 대답했다.

“정찰대, 저들은 날 쫓아왔어.”

* * *

“카슨 팀장, 약속시간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내가 제법 손해를 봤어.”

박준은 일부러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엉망이 된 샹그릴라 홀을 둘러보면서다. 하지만 카슨은 역시 냉혈한이다. 차가운 눈빛으로 반응한다.

“이런 일이 생길 걸 내가 예상했어야 하나? 샹그릴라의 안전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보호계약이라도 맺은 건가? 여기가 대체 어디야?”

여기, 잔류민들이 퍼져 살고 있는 서울지구의 북쪽이다. 이종족 범죄자들이 활개 치는 곳이고 괴수들도 출몰하는 위험지역, 누구나 아는 일이다.

‘제기랄, 카슨 저 놈은 정말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이야.’

거래 전에 부담을 지우려던 생각을 박준은 깨끗이 버렸다.

“아, 그래그래, 본래 목적에만 충실하자고.”

카슨을 향해 박준은 눈짓했다.알아들은 카슨은 부팀장 그라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그라울은 홀에 남아 있던 팀원들에게 지시했고 즉각 모두가 나갔다.그때까지 박준을 응시하던 카슨이 생각난 듯 물었다.

“타이그란족 직원 하나가 있지 않았나?”“아 그놈, 겁이 많아서 문제지, 지금 창고에 숨어 있을 거야. 아마 정찰대까지 다 가고 나면 얼굴을 내밀겠지. 에이, 갈아치우든지 해야지 정말.”

짜증을 내는 박준을 무심히 응시한 카슨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실물을 봐야겠어.”

다시 카슨의 눈을 바라본 박준은 속으로 욕을 했다.

‘개자식,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나까지도 죽일 놈, 그러고도 남을 자식이지.’

문득 카슨의 이름이 카슨 맥브라이어인지 맥그리거인지 헷갈려한 박준은 이 순간 아무 쓸데없는 생각이란 걸 깨닫고 돌아섰다. 그러다 물었다.

“화성엔 맥그리거 햄버거 매장이 계속 늘고 있다면서?”카슨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 서늘한 시선을 느낀 박준은 더 자극하면 안 되겠군 하며 바 안쪽의 상자를 꺼내왔다.

“자, 감정해 보라고.”

화성박스, 견고한 그 실체를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한 카슨은 바로 손을 댔다. 상자를 개봉하자마자 퍼져 나온 서늘한 빛에 순간 멈칫했다가, 손을 내밀어 물건을 잡았다. 눈앞으로 들어 올리고 계측기를 갖다 댔다.멀티워치, 슈트 손목에 장착된 그것이 에너지 계측치를 보인다.

‘80······!’

카슨은 놀람과 환희를 삼켰다.손에 잡고 있는 암석덩어리, 검푸른 빛을 무겁게 흘려내고 있는 이것은 크리듐이다.에너지의 결정체다. 이건 거의 순정이다.이만큼의 수치를 가진 물건은 정말로 구하기 힘들다.

“워우, 80이네.”

박준은 환히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마구 비볐다. 이제 자신이 돈을 받을 차례여서다.

* * *

그렉은 놀라서 입을 헤벌리고 있는 것도 몰랐다.침입자, 청년이 말하는 내용이 그렇게 만들었다.정찰대가 자신을 쫓아왔단 말, 반은 아니지만 반은 맞다.반 화성조직이라고 부르는 잔류민 조직하나를 까부순 거다.도깨비방망이 같은 호칭 반화성조직.그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눈앞에 그 증거가 있다.열여덟 청년은 그 조직에서 도망쳐 왔다는 거다.귀신대가리들이 다 죽였다는 거다.그런데 정말로 도망쳐왔다는 말이 진실인 것은, 청년이 그 조직에 잡혀 있었다는 거다.그들의 사악한 대법에 희생될 운명이었는데, 정찰대가 와서 죽이는 바람에 도망쳤다는 거다.이 기묘한 상황을 뭐라고 할까.

“그것들이 ‘미래’ 라는 조직이라고? 거기 어떻게 잡혀 있었던 건데?”

맥코라인 음료수를 다 비운 청년은 아쉬운 입맛을 다셨지만 그렉은 호랑이 눈만 번득였다. 얘기를 다 듣기 전에 뭘 더 안줄 기세, 청년은 말했다.

“어머니하고 숲에 살았어.”

이어지는 청년의 이야기에 그렉은 호랑이 눈을 수시로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로 기구한 이야기여서다.타이그란족 어머니와 숲에서 살던 아이, 그런데 어머니가 죽자 친절하게 대하던 이들이 변한 거다.‘미래’ 란 이름을 사용하는 반화성조직.그렇게 부르는 게 정확한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은 안면을 바꿨다.숲에서 맺은 인연의 웃음으로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산거다.그런데 그건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사육이었다.

“그들은 적호문의 후예들이야. 적호문의 절기를 복원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고 했지.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인데, 그들이 무공을 사용하긴 했어. 정찰대도 보스와 싸우느라 애를 먹었지. 수가 적었으면 당했을 걸?”“뭐? 그 정도라고? ‘미래’ 란 조직의 보스가 고수였다는 거잖아?”“삼합장을 사용하는 고수지.”“정말이냐? 삼합장을 썼다고? 그럼 적호문이 확실한데?”

그렉은 정말 놀라워했다.눈앞의 청년은 그런 곳에서 오년을 지냈다는 거다.감금돼 짐승처럼 사육된 거다.대법을 실시할 날을 기다리면서다.그날은 청년이 성년이 되는 날, 열여덟 생일날, 죽기로 정해진 날이다.

“내일이 생일이라고?”

정말 황당하고 기묘한 놀람으로 그렉은 거듭 물었다.

“오늘 정찰대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죽을 운명이었잖아?”

청년은 안쓰럽게 마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안 죽었지. 난 안 죽어. 앞으로도 그럴 거다.”

청년의 말에 그렉은 기묘한 소름 같은걸 느꼈다.저렇게 담담하게 안 죽는다고 말하는 눈동자가 샛별처럼 빛나서다.절대로 변하지 않을 절대진리를 품은 눈, 진리는 자신이 안 죽을 거라는 거다.저건 오만이 아니다.

‘이놈······!’

여태 죽을 곳에 있었던, 오년이란 시간동안 죽을 날만 기다리던 존재가 청년이다.열여덟이라고 말했으니 알지 저 외모는 어린 아이다.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으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텐데, 저 눈은 강철 같다.

‘내 손에 죽을 뻔했던 놈이 눈깔로 풀어내는 기세는······’

기묘한 느낌을 밀어내고 그렉은 바로 드는 의문을 물었다.

“그런데 너 말이야······ 내가 물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가 뭐냐? 내가 정찰대에 넘기면 어쩌려고 그러는데?”

스산한 눈빛을 일부러 내는 그렉을 청년은 무시했다.

“안 그럴 걸 알아.”“뭐? 야 너 눈빛이······”“숨기고 있는 사정이 있는 자라는 걸 못 알아보면 그게 바보지.”

그러니 못한다는 소리, 맞는 말이다.여태 그렇다고 행동으로 보여줬다.하지만 그렇다고 단박에 알아차릴 것도 아니었다.역시 보통 놈 아니다.

“아 뭐 이런 자식이 굴러 들어왔냐?”

확 짜증을 드러내던 그렉은 흠칫했다. 게틀러 엔진소리가 다시 들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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