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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강호-4화 (5/172)

혹성강호. 4. 어른, 환골탈태.

4. 어른, 환골탈태.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시며 카슨은 전투대검을 내렸다.표범과 퓨마를 섞어놓은 형상의 퓨리엔트족 놈들, 이제 더는 없다.지금 막 마지막으로 목을 자른 놈까지 합하면 여든 셋이나 된다.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있다.

‘대여섯이 몰려 사냥하는 수준이 아니야.’

퓨리엔트족은 원래 그런 놈들이다.캬이엔이라는 괴수와 맹수의 중간쯤에 있는 짐승을 타고 다니는 놈들이다.캬이엔은 한마디로 거대한 퓨마다.퓨리엔트족과 친척이나 형제라고 불러야 할 것, 하지만 짐승이다.

‘이런 식으로 숫자가 불어나면 일이백이 일이천이 되고 조직이 정비되면 강력한 저항세력이 될 거야. 화성입장에선 전혀 반갑지 않은 현상.’

왜 이렇게 되고 있는 걸까 생각하던 카슨은 부팀장 그라울의 시선을 받았다. 전투를 끝냈으니 이젠 휴식해야 한다는 눈길, 고갤 끄덕여 지시했다.

“여기서 야숙한다.”

카슨의 한마디에 맞춰 스무 명의 정찰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여든셋이란 숫자의 퓨리엔트족과 싸웠지만 천산마갑슈트덕분에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퓨리엔트족이 노린 것은 분명 천산마갑슈트다.

‘여든 셋 중에 몇몇만 살아남아도, 그렇게 슈트를 차지하면 승리.’

그들의 입장에선 그렇다. 그래서 지독하게 공격해왔다.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했고 스물이 따로 숨어 있다가 기습했다. 하지만 다 죽였다.

“캬이엔을 해체해서 구울까요?”

부팀장 그라울의 제안에 카슨은 바로 끄덕였다.게틀러 안에 전투식량이야 충분하지만 현장야숙의 묘미는 이런 거다.특히 캬이엔 고기는 별미로 소문나 있다.어떻게 저런 맹수가 맛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사실이다.

‘화성에서도 고급식당에서만 요리해 판매하는 고기.’

새삼 캬이엔의 의미를 생각하며 카슨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그렇게 불을 피우는 대원들과 주변을 돌아봤다.치열한 전투로 퓨리엔트족의 시체가 널린 현장, 바로 이곳에서 레드스콜피온은 먹고 휴식을 취하는 거다.

‘우린 귀신대가리니까.’

시선을 돌린 카슨은 잘라낸 퓨리엔트족의 머리통을 차갑게 응시했다. 그 눈길을 다시 돌려 별이 보이기 시작한 수림 북쪽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흔적이 없어.’

이번 임무의 종결점, 반화성조직 ‘미래’에서 도망친 어린 도망자 놈의 흔적이 없다.북쪽으로 도망친 게 분명한데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분명 어디선가 구멍이 생겼다. 그게 어딘지를 빨리 찾아야 한다.

“대장, 맥주 하나 하시겠습니까?”

그라울이 은근한 기대를 품은 눈으로 묻는다. 왜 저러는지 알기에 카슨은 대답했다.

“한 캔씩이다.”

그라울은 헤벌쭉 웃는 얼굴이 돼서 대원들에게 알렸다.게틀러에서 맥주를 꺼낸 대원들은 캬이엔 고기를 구우며 맥주를 마셨다.정말 아끼면서다.맥주야 샹그릴라에 가면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은 한캔 뿐인 거다.그라울이 건넨 맥주, 개봉하면 썩는 재질로 만든 화성캔을 흔들며 카슨은 생각했다. 도망자의 종적이 어디인지, 구멍이 어디서 생겼는지다.

‘어린놈이 도망쳐봐야······’

차가운 눈빛을 흘려낸 카슨은 맥주를 입에 대고 벌컥거렸다.

* * *

“이러다 송장치우는 거 아니야?”

말해놓고 박준은 스스로를 황당해 했다.송장이라면 흑랑성패와 블랙엘프패를 이미 치웠다.수십 구의 시체에 기름을 뿌리고 불태우는 중이다.그 냄새와 연기가 게스트하우스 안까지 들어와 코를 찌르는 중이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그렉은 걱정과 불안이 든 눈으로 혼절한 청년을 다시 유심히 살폈다.경련을 멈추자마자 의식을 완전히 잃은 청년, 어린아이 같은 몸은 정말로 가벼웠다. 가끔 손님을 받는 게스트하우스 안 침대의 반만을 차지했다.

“그렉, 너 왜 그렇게 별스럽게 구는 거냐?”“예?”“이 어린 놈, 아니 열여덟이라고 했으니까 어리진 않지. 아무튼 이놈하고 언제부터 알았다고 그렇게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눈인 거야? 어떤 사정을 가졌는지는 나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러는 건 아주 오버 같은데?”“뭐가 오버예요?”“아니냐? 평소의 너를 아는데?”“평소의 내가 어떤데요?”“하 얘 봐라? 그래 말 나온 김에 다 까자, 너로 말할 거 같으면 겁 많고 소심하고 남의 일에 무관심, 아니 외면하는 게 장기이자 살아가는 가치관인 놈 아니냐? 그런 네가 이놈에게는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건데?”

박준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 청년이 가지고 있는 폭탄 크레몬을 힐긋 응시한 그렉은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진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청년이 반화성조직에세 잡혀 산 이야기 말고 하프타이그란이란 진실이다.

“할 말 없지?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인상을 찡그리는 박준에게 그렉은 짧고 강하게 한마디 했다.

“불쌍하잖아요!”

박준이 눈을 크게 뜨고 뭐? 라고 반응하려던 찰나다.청년이 갑자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사지와 전신을 부러뜨릴듯 비틀며 침대를 출렁댄다.

“헉! 뭐야!”“얘 왜 이래!”

박준과 그렉의 놀람으로 부릅뜬 눈 아래서 청년은 쉼 없이 요동쳤다.이것은 환골탈태.몸이 재구성되는 경이롭고 신비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그렇지만 그렉과 박준은 그걸 모른다.놀람과 당황한 눈으로 볼뿐이다.

* * *

“흐아암.”

하품을 연신 하며 박준은 로봇을 응시했다.삐그덕거리는 소릴 내는 저놈은 치워야 할 뼈다귀들과 다를 바 없다.x-300이라는 모델명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젠 없다.외피가 떨어져 해골 같지만 아직 움직인다.

“야 삼백아! 더 넓고 깊게 파야지!”

삐그덕거리는 소리로 고개 돌린 삼백이, 해골 같은 머리에 붙은 붉은 눈을 번득인다. 알았다는 소린데 저 모습은 제법 기분 나쁘기 그지없다.

‘에이. 저러니 홀 서빙을 못시키지.’

삼백이가 들을까 속으로 불만을 투덜거린 박준은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봤다.샹그릴라 홀과 창고의 사이로 보이는 그곳에 놈이 있다.어젯밤을 뜬 눈으로 새우게 한 놈, 밤새 지랄발광하는 몸짓을 해댄 재수덩이다.

“으유, 꿈자리가 사납더니만.”

그제 밤 정말 거지같은 꿈을 꿨다.블루마운틴과 맞짱 뜨는 움바바족의 뒤를 밟아 황금동굴을 발견하는 꿈이었다.엄청난 황금덩이를 뿌리면서 좋아하던 그때, 황금덩이 속에서 개가 나왔다.그 놈이 확 물었다.

“퉤, 개한테 물리는 억수로 재수 없는 개꿈을 꿨더니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 움바바족이 현이 놈이었던 같긴 한데, 아닌 것도 같고, 에이.”

침 뱉은 입을 소매로 닦은 박준은 미간을 확 좁혔다.게스트하우스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나와서다.하나는 몰라볼 수 없는 존재 그렉,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남자다.그렉보다 약간 작은 체구를 가진 젊은이다.

“뭐야? 저건 또 누구야?”

황당한 눈을 한 박준의 곁으로 삼백이가 삐그덕대는 소릴 내며 다가왔다. 붉은 눈동자를 번득이며 삽을 든다. 그 삽을 떨어뜨리고 손을 흔든다. 마치 오랫동안 떠나가 있다가 돌아온 형제를 반기는 환영인사 같다.

“어랍쇼? 얘는 또 왜 이래?”

황당한 아침을 맞으며 박준은 황당해 했다.

* * *

밤새 몸을 받아준 키 낮은 야전침대를 분리해 백에 넣으며 카슨은 사방을 예리하게 살폈다.수림의 사방에 존재하는 생명들의 기척과 숨결은 그대로다.그렇지만 그 어떤 존재도 접근하지 못한 밤이었다.

‘퓨리엔트족과 같은 꼴이 될 테니까.’

시선을 하늘로 올린 카슨은 해가 올라가는 동쪽을 응시하고 다시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밤을 보내며 생각한 결론을 확신으로 품었다.

‘그 어린놈은 북쪽으로 도망간 게 아니야.’

어디선가 생긴 구멍, 그것은 샹그릴라다.분명 그곳으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작은 흔적들이 있었다.부러진 나뭇가지와 누워 있는 풀잎들이다.

‘천랑성늑대족속과 검은 숲 블랙엘프들을 처리하느라고 신경이 분산됐어.’

당연히 북쪽으로 도망갔을 거라고, 시간을 허비했다고 서두른 게 지금 현재 상황이다. 어린 도망자의 종적은 찾지 못했고 퓨리엔트족만 죽였다.

‘샹그릴라, 거기서부터 다시 훑어야 해.’

야전침대백을 게틀러 안에 장착한 카슨은 팀원들에게 명령했다.

“샹그릴라로 돌아간다.”

카슨과 정찰대원들이 탑승한 케틀러는 왔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장 박준을 보며 그렉은 난감함을 삼켰다.옆에 선 건장한 청년이 어제 그 어린아이 같던 청년과 동일인이라고, 진실이라고 말했지만 믿기 힘든 일이란 걸 안다. 자신도 같은 심정인 거다.

“그러니까, 내가 나가고 나서 새벽에 이렇게 됐다는 거지?”

박준은 하나하나 따져보자는 듯한 눈빛과 어투다.

“그렇다니까요, 사장님도 나가기 전까지 보셨잖아요? 이 친구가 어땠는지요?”

박준은 새삼스러운 황당의 눈으로 청년을 봤다. 전신을 비틀고 경련하면서 강흑성이란 제 이름을 흘려내던, 그 꼴을 못 보겠어서 새벽에 나왔다.

‘그러다 죽을 줄 알았더니······!’

그렇게 되길 바란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의사를 갖다 붙일 수도 없는 터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저렇게 살아난 거다.

“이게 무슨······”“환골탈태라는 겁니다.”

비수를 찌르듯 입을 연 그렉에게 박준은 눈을 홱 돌렸다.

“뭐?”“환골탈태요.”

그게 뭔지 안다.이 세상을 구한 무림인들로부터 무공이 세상에 퍼졌듯이 그 용어도 퍼졌다.말 그대로 뼈를 바꾸고 껍질을 벗는 거다.이전의 육신에서 완전히 다른 육신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그냥 전설이다.

“너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눈썹을 확 세우는 박준에게서 그렉은 한발 물러나며 받아쳤다.

“눈앞에 증거가 있는데 믿고 안 믿고가 뭔 소용입니까?”

이미터 거구 그렉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이락도 할 기세던 박준은 멈칫했다.증거가 눈앞에 있다, 정말이다.저놈이 달라졌지만 눈은 그대로다.차갑게 가라앉아 번득이는 반골의 눈, 틀림없이 어제 그놈의 눈이다.

‘진짜라고?’

환골탈태, 신선이 우화등선 한다는 것과 거의 같은 소리다.신선이니 우화등선이니 하는 말도 이젠 아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떠돌이 장사꾼들이 유적지에서 캐낸 과거의 유물영상과 책들에서 봤기에 아는 거다.

“너, 정말로 그놈이야?”

박준은 청년, 강흑성이란 제 이름을 신음처럼 흘려내던 존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청년이 아닌 삼백이가 한다. 옆에서 손을 흔들어 댄다.

“야, 너는 대체 뭐하자는 거야?”

마치 청년 강흑성과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옆에 붙어 선 삼백이, 붉은 눈빛이 이전처럼 무섭게 보이지 않는다. 거짓말 보태 웃고 있는 것 같다.

‘에이 정말!’

확 치미는 짜증을 발산하려던 박준은 청년의 목소릴 들었다.

“갈 겁니다.”

어, 하는 표정의 박준에게 청년 강흑성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했습니다.”

박준은 곤혹과 난감함으로 경직했다.감사하다는 이 인사는 분명 지난밤의 일을 말하는 거다.어쨌든 청년을 돌봐준 결과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직전 감사하다는 말과 인사를 받으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돌려주십시오.”

청년 강흑성이 손을 내밀며 요구하는 것이 뭔지 박준은 알았다.크레몬, 폭탄을 돌려달라는 거다.제 것이니 돌려달라는 데 왜 말문이 막힐까.

“야, 어디 갈 데가 있는 거야? 아니잖아? 어딜 간다는 거야?”

그렉이 나섰다. 그런데 청년 강흑성은 그렉에게도 손을 내민다.

“단도 돌려주십시오.”

그렉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그까짓 단도 돌려달라면 돌려주겠지만, 청년 강흑성의 달라진 기세 때문이다.말하는 것부터가 다르다.

‘이놈, 어제는 싸가지 없이 말하더니만.’

이미터신장의 거구인 그렉 자신보다 머리 반 정도 작은, 185정도의 체격의 존재가 됐다. 그 체격도 체격이지만 풍겨 나오는 기태가 달라졌다.

‘환골탈태로 모든 게 달라져서냐?’

말하는 것도 눈빛으로 풀어내는 기세도 몸가짐도 신중하고 육중하다.

“야, 줘 버려, 가라고 해.”

박준이 결정을 내리고 야멸치게 말하던 그때였다.괴수의 으르렁거림 같은 울림을 내는 소리가 다가왔다.게틀러, 정찰대가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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