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화 (6/172)

혹성강호. 5. 새로운 직원.

5. 새로운 직원.

게틀러의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치는 냄새에 카슨은 인상을 찌푸렸다.매캐하고 역한 불내.어제 처리한 놈들의 시체를 태워서 나는 냄새다.그대로 두면 위험하고 흉한 것들이 꼬일 터, 뼈만 남겨 땅에 묻으려는 거다.

‘박준.’

샹그릴라의 사장 박준이 밖에 나와 있다.정확한 나이를 모르지만 마흔 중후반으로 짐작되는 박준은 위험하진 않지만 쉬운 인물이 아니다. 여기저기 떠돌며 온갖 일을 다 겪고 이곳에 정착한, 수완이 좋은 자다.

‘크리듐을 원박스만 받고 거래한 것도 어쩌면······’

크리듐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도 박준 자신이 더 좋은 값으로 거래할 곳을 찾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그러자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감내하는 걸지도 모른다. 궁금한 건 크리듐의 출처가 어디냐는 거다.

‘어딘가 장소를 알고 있거나 그런 곳의 끈이 있다는 건데······’

크리듐은 원래 괴수들의 몸속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그걸 암이나 종양과도 같은 것의 일종이라고 하는 의학적 견해와 내단이라는 무림인들의 주장이 공존했다.그게 뭐든 대전쟁 때의 핵폭발 속에 사라졌다.

‘괴수들이 묻힌 자리, 크리듐이 암석으로 남은 장소.’

그런 곳을 찾으면 금맥을 찾은 것과 같다. 아니 금보다 훨씬 고귀한 거다. 박준이 그런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 끈을 잡아 쥘 필요가 있다.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 우선은 정찰대의 임무를 완수하는 게 먼저다.

“카슨 대장, 다시 온건 볼일이 남아섭니까?”

팀장이라는 말 대신 대장이라고 부르며 미소 짓는 박준, 그에게로 걸음을 내며 카슨은 같이 있는 자들을 응시했다. 그렉이란 이름의 타이그란족 놈과 지구인 남자놈, 아직도 움직이는 게 신기한 x-300 로봇이다.

‘저놈은 누구지?’

처음 보는 놈, 타이그란족 직원놈과 체격이 비슷하다.아니 머리반 정도는 작아 보인다.그런데 그렉이란 놈이 이미터의 거구라서 그렇지 저놈도 한 체구 하는 놈이다.카슨 자신과 거의 비등한 체격을 가진 놈이다.

“설마하니 금화 몇 개 더 주려고 온건 아닐 테고.”

박준이 반가운 척 하는 미소를 짓자 카슨은 냉정하게 물음을 냈다.

“못 보던 자가 있군.”

눈빛의 변화를 찰나에 감추며 박준은 태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새로 일하기로한 직원이야. 알다시피 어제 같은 일도 생기고 해서 말이지.”

무표정한 카슨을 힐긋대며 박준은 계속 말했다.

“아무래도 그렉과 나만으로는 무리다 싶어서 한사람 더 쓰기로 했지. 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어제 일을 겪고 결정했어. 보면 알겠지만 잔류민이야. 나하고는 우연히 알게 됐는데, 이제 한식구가 됐으니 잘 봐달라고.”

부탁하듯이 카슨에게 눈웃음 친 박준은 강흑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인사드려. 정찰대 카슨대장님이다.”

주춤거리던 청년.강흑성은 그렉의 눈과 박준의 눈을 보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받아 들였다.적응.다른 행동이나 말을 할 상황이 아니다.강흑성은 카슨 앞으로 한걸음 나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강흑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삼백이가 박수를 쳤다.난데없는 그 모습에 박준과 그렉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카슨은 기묘한 눈빛을 냈다.정찰대원들도 그랬다.x-300.구시대 유물 같은 로봇이다.초기형에 AI가 장착되어 있단 소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 제작되는 로봇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놈이다.저 박수는 회로가 고장 나서인지 로봇의 자율의지에 의한 건지 모르겠다.

“아 저자식이 정말. 이해해라고, 폐기할 때가 넘은 고물이니까.”

박준이 삼백이의 해골 같은 로봇 팔을 잡아 내리자 카슨은 본론을 꺼냈다.

“추적하는 대상이 있다.”

삼백이의 팔을 잡고 허둥거리던 박준은 미간 좁힌 얼굴로 돌아봤다. 그렉도 호랑이미간을 꿈틀거렸고, 청년 강흑성은 고요한 눈빛을 흘려냈다.

“봤다면 이야기했겠지만, 혹시 하는 마음으로 보여주는 거다.”

싸늘하고 날카로운 카슨의 시선을 받으며 박준과 그렉은 홀로그램을 봤다.카슨의 슈트손목에 장착된 멀티워치 위로 솟아난 입체영상.어린아이 형상이다.깡마른 모습이 애처롭게까지 보이는 아이, 누군지 알고 있다.박준과 그렉이 순간적으로 미간을 경직할 때 카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반화성조직 하나를 격멸했다. 그 조직에서 탈출해 도망한 놈이다. 조직 보스가 이놈을 살리려고 제 목숨을 버려가면서 까지 싸웠지. 그럴만한 이유가 뭔지 알아내야할 대상, 우리 임무의 핵심이자 마지막 마무리다.”

홀로그램은 동영상으로 바뀌었다.‘미래’ 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의 인물들과 정찰대가 싸우는 광경이다.정찰대원들의 바디캠이 촬영한 거다.보스란 자가 정말로 강흑성의 추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무공의 고수였다. 아주 위험한 조직을 찾아내 격멸한 거지.”

이어지는 카슨의 이야기를 박준과 그렉은 침 삼키며 들었다.

“분명 그 조직의 중요 인물이다. 반드시 찾아야 해. 우린 놈의 도주흔적과 예상로를 따라 이동해 왔지. 북쪽으로 간걸로 예측했다. 그런데 종적이 사라졌어. 어딘가에서 구멍이 생긴 거지. 그게 샹그릴라로 추정된다.”

박준이 미세하게 흔들던 눈썹을 고정하며 반발하듯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샹그릴라가 구멍이라니?”

냉정한 카슨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박준은 강하게 뒷말을 냈다.

“우리가 반화성조직과 내통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거야?”“그렇다고는 말 안했다.”“그 말이 그 말이지 뭐야?”

박준이 세게 나오자 카슨의 뒤에서 부팀장 그라울이 성큼 나섰다.

“레드스콜피온 정찰대가 물렁해 보이는 가 본데?”

사자족의 무서운 눈을 부라리는 그가 타이그란족 그렉을 노려봤다.그렉은 슬그머니 눈을 피했지만 박준은 물렁하지 않단 걸 강하게 보였다.

“확실하게 하자고. 나는 샹그릴라 박준이야. 이익이 생기는 일이면 누구하고도 거래하는 놈이지. 그렇지만 바보짓은 안 해. 귀신대가리들이 추적하고 있는 대상을 숨겨준다거나, 반화성조직과 내통하는 멍청한 짓.”

정찰대나 레드스콜피온이란 명칭대신 귀신대가리라고 직접 말하며 강한 눈빛을 뿌리는 박준, 그 눈을 차갑게 응시하던 카슨은 고갤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그놈의 흔적이 사라진 걸로 판단한다. 수색을 해야겠어.”

수색, 샹그릴라 내부를 포함한 것이다. 그건 박준이 결백하든 아니든 상관없는, 지금 상황에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임을 박준은 받아들였다.

“좋을 대로 하라고.”

팔짱을 끼며 박준이 물러서자 카슨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주변을 수색해라.”

귀신대가리 정찰대원들은 샹그릴라 안팎을 뒤지며 수색하기 시작했다.

* * *

“개잡놈들.”

퉤하고 침까지 뱉으며 박준은 정찰대를 욕했다.카슨과 대원들이 탄 게틀러가 눈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다.그렉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섰다.그런데 삼백이가 삽을 들었다. 해골처럼 삐그덕거리면서 구덩이를 판다.

“음, 하던 일이 있지.”

땅 파던 일이 원래 하던 일이군, 하는 얼굴을 한 박준은 불현 듯 인상을 확 구겼다. 그렉을 홱 돌아본다. 왜 보는지 알기에 그렉은 선수를 친다.

“엎어진 물입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야 이······!”“키우는 개가 없다는 건 아실 거고, 사장님 입으로 새로 일할 직원이라고 카슨에게 소개했습니다. 나중에 골치 아플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저 친구가 샹그릴라 밖에서 정찰대에게 잡힌다든지 하는 일요.”“너 이······!”“개는 없다고요.”

난 호랑인데 하는 얼굴을 슬그머니 보이며 그렉은 강흑성에게 눈을 맞췄다.

“너도 냉정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빛을 보이는 강흑성의 눈, 그 속에 든 생각이 뭘까 궁금해 하면서 그렉은 뒷말을 이어냈다.

“정찰대가 잡으려고 하는 마당에 아무리 외모가 달라졌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이야.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다 정찰대 눈에 띄게 되면 골치 아파져. 샹그릴라 직원이라고 이미 말해놨으니까 더 그렇다는 건 잘 알거다.”

그렇게 권유 반 협박 반의 말을 해놓고 그렉은 새삼스레 강흑성을 봤다.

“신기하긴 정말 신기하네. 사장님, 이 친구 좀 다시 보세요. 정말 신기하죠?”

그렉이 하는 꼴을 옆에서 꿈틀거리는 얼굴로 노려보던 박준은 강흑성을 응시했다. 그렇게 그렉처럼 신기함에 빠졌다. 어제의 병약하던 어린아이 모습은 간데없고 한 덩치 하는 건장한 청년으로 변한 서프라이즈다.

“햐, 이거 화성tv프로 마르스서프라이즈에 나가야 될 이야기야.”“그렇죠? 거기 나가면 대박사건이 될 건데 말입니다?”“이야기 값으로 돈을 꽤 줄지도 몰라.”“그럴까요? 얼마나요? 원박스 정도는 줄라나요?”

그렉이 침까지 삼키며 말하는 순간 박준은 확 현실로 돌아왔다.

‘내 돈, 금화!’

정찰대가 샹그릴라 내부를 뒤진 거다.어제 크리듐박스를 넘겨주고 받은 금화가 있다.비밀금고가 발각됐을 리야 없지만 확인해 봐야 한다.

“어, 사장님?”

샹그릴라 홀로 튀어가는 박준을 부른 그렉은 기묘한 미소의 표정을 갈무리했다. 웃음 머금은 그 눈길을 다시 강흑성에게 돌리고 진중하게 말했다.

“내가 무공을 숨기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아줘서 고맙다.”

차가운 눈을 가라앉힌 강흑성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내가 하프타이그란인 걸 말하지 않아줘서 고맙습니다.”

씩 웃음을 피워낸 그렉은 강흑성의 단도를 휙 던졌다.

“사장님,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다. 여기 있기로 한건 잘한 거야.”

있기로 했다는 결정,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렉은 기정사실로 이야기한다. 현재의 처지에서 가장 좋은 피신 방법이란 걸 강흑성 자신도 안다.그렇다, 이건 고민할 상황이 아닌 거다.안전을 도모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지금으로선 샹그릴라가 최선의 구명책이다.

“왜 도와주는 겁니까?”

단도를 허리에 차며 강흑성은 물었다. 피붙이도 아니고 그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고, 단지 하프타이그란이라서라면 그것도 오버스러운 세상이다.지구는 버려진 땅,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글쎄.”

모호한 웃음을 피워낸 그렉이 뭔가 말하려는데 박준이 다시 나왔다.

“뭣들 하고 있어! 삼백이 혼자 일하는 거 안보여!”

어깨를 으쓱한 그렉은 삽을 들었다. 박준의 부라리는 시선은 강흑성에게도 날아왔다. 그건 그렉에게와 다를 바 없었다. 강흑성도 삽을 잡았다.

* * *

-적호비천무량대법이다.

문주 모인걸은 잔혹한 가운데 뜨거운 욕망을 품은 눈알을 번득인다.

-네가 성인이 되는 날, 그 피를 받아서 내가 복용할 것이다. 서러워말고 두려워도 마라. 너는 선택된 존재다. 위대한 적호신군의 부활을 위해 헌신하는 거다. 너는 나와 함께 공존하는 거다. 자, 오늘도 시작하자.

금침을 잡은 모인걸의 손이 다가온다.정수리를 관통하는 그 느낌에 강흑성은 영혼으로 울부짖는다.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한다.전신이 금침으로 뒤덮인다. 마지막엔 눈 밑을 찔러 들어온다.

“안 돼! 하지 마!”

소리치며 강흑성은 벌떡 일어났다. 땀범벅이 된 몸이 후들거린다.

‘꿈이구나······!’

현실을 받아들이며, 위험은 이제 없다는 안도의 숨을 쉬며 강흑성은 침대에서 일어섰다.숙소 문을 열고 게스트하우스의 샤워실로 향했다.찬물을 틀어놓고 뜨거워진 몸을 식혔다. 그렇게 지난 오년을 다시 더듬었다.매일같이 모인걸의 고문 같은 대법을 받아온, 그가 강제로 복용케 한 온갖 약물의 부작용 속에 성장이 멈춰버린, 그 육신의 고통과 영혼의 신음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텼다. 어머니의 말씀 때문이다.

‘어머니······!’

그립다. 지난 오년의 지옥 속에서도 어머니만 생각했다.

‘때가되면 너를 찾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너를 이끌어 주실 것이야.’

그때가 이르면 진정한 강흑성이 누구인지 알게 되리라던 어머니의 유언, 그 말씀의 진위를 떠나서 어머니가 품고 재워주시던 온기를 그리워했다.하지만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그 따스한 품을 느낄 수 없다.죽음이 육신을 갉아먹는 것을 더는 저지하지 못한 어머니는 숲으로 떠나셨다.잠든 강흑성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다가,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가셨다.그길로 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또 다시 말씀하셨다.진정한 나를 찾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그것은 어른이 되는 때다.그 일이 어제 생겨났다.

‘지금 이 모습인가?’

고개 들어 거울을 본 강흑성은 낯선 청년의 얼굴을 응시했다.강흑성 자신의 얼굴, 달라진 모습이다.달라지지 않은 건 눈, 분명히 자신이다.

‘환골탈태라니······’

쾅, 하는 천둥소리가 그 순간 귀를 파고들었다.샤워기 물에 젖어있는 전신을 때린 엄청난 소리, 분명 총소리다.강흑성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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