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6화 (7/172)

혹성강호. 6. 버려진 땅에 남은 존재들.

6. 버려진 땅에 남은 존재들.

“개자식들아! 또 와 봐라!”

거대괴수전문사냥총이라고 할 t-rex를 겨누고 박준은 섬광을 뿜었다.커다란 총신은 대포소리 같은 격발음을 퍼트리며 탄환을 날렸다.그것이 정확하게 어둠 저편의 존재를 맞췄다.형체가 날아간 놈은 쓰러진다.

“퉤! 여기가 어디라고 네깟 것들이 꼬여들어!”

침을 뱉으며 박준은 다시 커다란 총을 발사했다.형상이 터져 쓰러진 놈의 곁에서 또 다른 놈의 몸통이 박살나 흩어졌다.그렉이 놀람으로 커다래진 눈을 부라리며 다가온다.어둠저편 존재들을 보며 소리친다.

“테스라 놈들이 왜 나타난 겁니까?”

경악스러워 하는 그렉, 그게 약간 오버이기에 확 흘겨본 박준은 버럭 소리친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총이나 쏴!”

어느새 삼백이가 총을 가져왔다. 빔건이 아니라 구시대 화약총, 스나이퍼용 라이플이다. 드라그노프란 이름을 가진 그 총을 삼백이가 던졌다.

“어?”

삼백이는 삐그덕대는 소리로 총 쏘는 시늉을 해 보인다.박준의 호통처럼 어서 쏘라는 이야기다.그런 둘의 곁으로 강흑성이 오자 역시 총을 안긴다.얼떨결에 받아든 강흑성에게 삼백이가 착 붙어서 사격을 알려준다.

“어라, 이 자식 뭐하는 거야?”

그렉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삼백이는 강흑성의 조준자세를 잡아주고 드라구노프 사용방법에 대해 몸짓으로 알려주는 중이다.저 고물로봇이 누군가에게 저러는 건 처음 봤다.게다가 총 쏘는 법이라니.

“뭐하는 거야? 구경하자고 나왔으면 다시 들어가서 처자!”

박준의 격한 호통에 그렉은 바로 반응하며 총을 견착했다.망원스코프에 들어온 놈들을 숨 멈추고 조준했다.테스라, 늑대만한 크기의 고슴도치두더쥐다.저놈들의 가시와 체액에는 맹독이 있다. 거대괴수들도 피한다.

‘저것들이 왜?’

이 밤에 샹그릴라 앞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다.인간들의 자취가 있는 곳에는 출몰하지 않는 놈들이다.그건 인간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본능적인 거다.일부러 인간을 노리지 않는 이상 짐승들은 대개 그렇다.

‘저놈을 그냥 짐승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괴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약한 놈이다.저놈들의 맹독은 무섭지만 흉악한 놈들은 아닌 거다.그저 땅을 파고 그 속에 사는 짐승들을 잡아먹는 게 본능인 놈들이다.그런데 지금 저렇게 수십 마리가 몰려왔다.

‘뭘 노리고? 가만, 파묻은 시체들?’

쾅, 옆에서 터진 총성에 그렉은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삼백이가 박수치는 모습이 보인다.바로 시선을 돌려보니 테스라 한 마리가 쓰러지는 게 보인다.머리통이 날아갔다. 그렇게 만든 게 방금 전 강흑성의 사격이다.

“어, 이······”

뭔지 모를 패배감을 삼킨 그렉은 드라그노프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개조한 저격총은 대구경탄환 스무발들이 탄창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 * *

“뼈다귀들을 왜 노린 걸까요?”

피곤으로 충혈 된 눈의 그렉이 의문을 드러냈지만 박준은 미간만 가득 좁혔다.자신도 전혀 알 수가 없어서다.흑랑성패와 블랙엘프패를 불태워 묻은 구덩이, 파헤쳐진 그 앞에 있다.테스라들이 노린 게 이거였다.

‘이걸 거라고 처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구덩이 안쪽을 보며 박준은 기묘한 한숨을 내쉬었다.불태워 묻은 뼈다귀들이 하나도 안 남았다.그냥 묻으면 이런 일이 생길까봐 태워 묻은 건데, 테스라들이 꼬여들었다.놈들이 이런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살점도 없는 뼈다귀들을, 하, 이거 참.”

이해할 수 없단 얼굴의 그렉은 샹그릴라를 돌아봤다.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은 든든한 믿음으로 눈에 들어온다.테스라들이 땅속으로 파고들어오지 못한 기초공사, 초강화콘크리트의 위력이 지난밤을 버텨줬다.

‘음, 그보다는 테스라놈들이 뼈다귀에만 집중해서 그렇긴 하지만.’

그렉의 상념을 깨는 박수 소리가 저편에서 들렸다.삼백이가 치는 박수소리다.강흑성이 나타난 다음부터 듣게 된 소리, 강흑성과 관계있다.

‘또 뭐······’

짜증 섞인 시선을 돌리던 그렉은 경직했다. 아니 얼어붙었다.

“저, 저거 뭐야? 쟤, 쟤, 어떻게 저래?”

박준의 기함한 음성에 그렉은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경직에서 벗어났다.

“정말 뭐야? 어떻게 테스라를 맨손으로 만지는 거야!”

거듭된 박준의 경악 같은, 아니 발작 같은 외침.그렉은 대답할 길이 없다.자신 역시 황당한 경악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다.강흑성이 테스라의 사체를 맨손으로 잡아 던지는 광경, 저건 있을 수 없는 일이 분명하다.

‘잡자마자 경련 속에 피토하는······!’

테스라의 독은 그렇게 엄청난 맹독이다.그놈들의 장기 중에 독을 만드는 장기가 있어 그렇다고 알려져 있다.그렇다고 독이 공기 중으로 퍼지거나 하진 않는다. 접촉하지만 않으면 무사하다.그런데 강흑성은 뭔가?

“어? 이번엔 뭐야? 배 가르는 거야?”

박준의 경악에 찬 물음, 그렉도 보고 있다.강흑성이 단도로, 그렉 자신과 처음 창고에서 만났을 때 목을 찌르려한 그것으로 테스라들의 배를 가르고 있다.가른 배에 손을 넣더니 피주머니 같은걸 뽑아내고 있다.

“으, 저거······!”

몸서리치는 박준처럼 그렉도 진저리를 쳤다. 그 순간 삼백이가 또 박수를 쳤다.

“아니 저 쇳덩이 새끼! 또 저 자식은······!”

테스라들 사체를 멀찌감치 한곳으로 모으라는 박준의 명령을 받은 삼백이, 그 일을 뒤에서 돕기로 한 강흑성, 둘이 하는 짓이 지금 저거다.

“아우 씨봉봉 샹그릴라!”

박준은 총으로 땅바닥을 쳤고 그렉은 허탈한 시선을 들어 하늘로 한숨을 던졌다.

* * *

테스라들의 사체를 수레에 싣고 가 숲에다 버렸다.불태운 사체들에도 이놈들이 꼬인 마당, 이놈들을 태운다고 해서 달라질게 없다는 판단에서다.그냥 거리를 벌려 버리는 걸로 결정했다. 그 일을 마침내 끝냈다.

“후, 제법 고된데?”

이마의 땀을 닦은 강흑성은 삼백이가 내미는 물통을 받고 미소 지었다.

“고맙다.”

삼백이는 뭘 그런 걸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물을 마시고 테스라들의 사체를 버린 숲의 공터주변을 새삼 돌아봤다.재차 이마의 땀을 닦다가 문득 손을 응시했다.테스라 독주머니를 만진 맨손이다.

‘독에 원래 강했지만······’

강흑성 자신은 태생이 그렇다.맹독을 가진 독사에 물렸어도 멀쩡했고 독거미와 전갈, 온갖 독충도 마찬가지였다.오히려 그것들이 피했다.그런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어머니에게서 들었다.아버지가 그랬단 거다.그런 몸이었는데 ‘미래’에 잡혀있는 동안 복용한 약물들로 인해 더 강해졌다. 아니 더 강해졌다기보다는 내재돼 있던 것이 발현된, 그런 느낌이다.

‘적호문.’

그들의 정확한 정체성은 그것이다.‘미래’ 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있는 동안 알게 된 것은 그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는 거다.모인걸이 이끄는 적호문, 그들 외에 다른 조직들이 더 있음이다.

‘그들의 이름이 미래.’

강흑성은 미간을 확 좁혔다.다가오는 기척, 숨죽인 기운들이 느껴져서다.맹독을 가진 테스라의 사체를 먹을 수 있는 놈들, 치명적인 독은 피하면서 뜯어먹을 수 있는 존재들이 다가오는 거다. 이젠 가야할 때다.

“가자 삼백아.”

강흑성이 부르며 걸음을 내자 삼백이는 박수를 짝하고 치더니 앞서 나갔다.

* * *

“자, 슬슬 저녁장사 시작해 보자.”

손바닥을 비빈 박준은 샹그릴라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밝혔다.붉은 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져 신비하고 도발적인 빛을 발산하는 간판.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일 터다.인간들은 보고 찾아올 테고 짐승들은 돌아갈 거다.

“앗, 손님이다, 손님.”

샹그릴라 앞길 저편으로 정말 손님이 오고 있다.시커먼 흑마인 블랙팬더를 탄 인물이다.길 외에 함부로 주변을 다니지 말라 경고판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어떻게 되긴, 폭발 속에서 산산조각 나는 거지.’

차가운 득의의 미소를 박준은 흘려냈다.원래도 경호와 보안차원의 부비트랩을 설치해 뒀었지만 더 보강했다.크레몬을 여기 저기 매설해 놨다.누구든 경고를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다간 지옥으로 직행할 거다.

“어서 오십시오. 좋은 술과 맛있는 식사가 있는 샹그릴라입니다.”

경고판 앞을 떠나 다가온 손님에게 박준은 환한 미소로 인사했다.그렉이 바로 다가와 블랙팬더의 고삐를 넘겨받았다.시커먼 흑빛 몸통이 강인해 보이는 블랙팬더는 푸릉거린다.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반응이다.

“아, 그래, 미안, 나는 널 쉬게 하고 먹을 걸 주려고 그러는 거다.”

그렉이 최대한 온화하게 말했지만 블랙팬더는 말머리 중앙에 난 외뿔을 흔들며 거부했다. 그러자 후드달린 외투를 벗은 주인이 쓰다듬었다.

“괜찮아, 호로. 적이 아니야.”

자신의 말에게 부드럽게 말하며 긴 목을 쓰다듬는 존재, 레드파운틴 족이다. 이름하여 붉은 엘프, 블랙엘프족과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가 왔다.

‘붉은엘프족의 장검······!’

외투를 벗자 드러난 장검을 보고 박준은 옅은 경직을 삼켰다.블랙엘프족의 레이피어와 달리 이들의 검은 크고 길다.양수검의 형태, 벼락처럼 빠르고 강력하다는 이들의 검술은 일찌기 삼월문의 영향을 받았다.

‘십대문파.’

이젠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가버린, 혹은 과거 역사 속으로 사라져 이름만 남은, 그들을 더듬으며 박준은 레드파운틴족 남자를 다시 응시했다.본능적인 반응으로 환한 미소를 피워내며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샹그릴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박준의 환대미소에 고개를 끄덕인 레드운파틴족 남자는 장검을 풀어 손에 쥐고 홀로 들어갔다. 바로 따라 들어간 박준은 강흑성을 향해 외쳤다.

“손님께 맑고 시원한 물을 드려라!”

있으라고 허락 적 없고 그러겠다고 부탁한 적도 없는, 박준과 강흑성은 암묵의 합의로 현실을 받아 들였다. 처음부터 사장과 직원이었던 같다.물 잔을 내주고 돌아서는 강흑성을 보지 않고 박준은 너스레를 이어냈다.

“샹그릴라의 자랑하면 바로 물이지요,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암반수의 청량함은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맛을 한 번 보시면 정말 감탄하실 겁니다.”

다시 고개를 끄덕하는 레드파운틴족에게서 물러난 박준은 강흑성이 연습한대로 잘 하는지 지켜봤다. 다음 홀서빙 준비를 차분하게 하고 있다.

‘자식, 생각보다 잘하는데.’

흡족한 미소를 피워낸 박준은 바깥의 기척을 느끼고 바로 나갔다.

‘어라, 저놈들은?’

츄란족이다.십여 명이 똥돼지라고 부르는 짐승 듀란을 다고 다가온다.놈들의 냄새를 맡은 레드파운틴족의 블랙팬더가 신경질을 내고 있다.

‘아 저것들은 받기 싫은데.’

진심이 그렇지만 박준은 본능적인 미소가 떠오르는 얼굴을 제어하지 못했다. 저절로 맞잡고 비비는 두 손 역시 마찬가지, 환영하는 말도 그렇다.

“어서 오십시오, 샹그릴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하게 웃는 박준을 째리듯 본 츄란족 놈들은 특유의 흉측한 얼굴을 꿈틀거린다. 기묘하게 늑대얼굴에 뱀을 섞어놓은 것 같은 형상, 징그럽다.

“저 말은 뭐야?”“안장 문장을 보니 레드파운틴족인데?”“붉은 엘프놈이 이런 곳에 왜 얼쩡거려?”

홀 안의 레드파운틴족이 들을까 박준은 얼른 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먼 길을 오신 모양인데 어서들 드시지요. 좋은 술과 맛있는 식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호들갑스러운 박준의 인도를 따라 츄란족 열두 명이 홀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레드파운틴족을 본 그들은 흠칫했지만 개의치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떠들었다. 그들에게도 강흑성은 물 잔을 공손히 내주었다.

‘저 새끼들······’

미소와 달리 짜증을 삼키던 박준은 다시 또 밖으로 나갔다.

‘음, 오늘 장사 좀 되려는 모양인데?’

세 번째 손님들이 오고 있다.캬이엔을 탄 퓨리엔트족이다.늘 그렇듯이 대여섯의 소규모 무리, 흉악한 맹수 캬이엔을 몰고 홀 앞에서 멈췄다.그 바람에 츄란족이 타고 온 똥돼지 듀란들이 두려워 울음을 터트린다.

“뭐야?”

츄란족들이 바로 달려 나왔다.칼을 빼들었다.하지만 상대가 퓨리엔트족임을 알고, 그들이 탄 캬이엔 때문에 듀란들이 반응하는 상황임을 알고 인상을 구겼다.거기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상대는 퓨리엔트족인 거다.

“자자, 어서들 들어가시죠, 식사는 주문하셨습니까? 야, 여기 주문 받아라!”

강흑성에게 소리치며 박준은 츄란족들을 홀 안으로 밀었다. 못이기는 척 돌아서는 그들의 등에 눈으로 욕을 하고 퓨리엔트족을 향해 돌아섰다.

“환영합니다. 좋은 술과 훌륭한 식사가 준비된 샹그릴라입니다.”

캬이엔들을 따로 두기 위해 기다리던 그렉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삼백이가 만드는 음식이 그렇게 좋은 건줄 몰랐네.’

샹그릴라의 간판이 화려한 빛을 발하는 저녁은 그렇게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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