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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강호-7화 (8/172)

혹성강호. 7. 단혈보검.

7. 단혈보검.

창고문을 다시 확인하면서 그렉은 쯧하고 혀를 찼다.동시에 기묘한 감정을 삼켰다.강흑성과 만난 인연을 생각해서다.이렇게 자신이 창고안의 물건을 내오며 잠시 문을 열어둔 사이, 그 잠깐의 틈에 침입했던 거다.

‘방심이나 태만해서가 아니야.’

강흑성과의 만남은 정해준 운명 같은 거라고 그렉은 생각했다.하프타이그란인걸 알고 살수를 거둔 자신의 마음은 그 순간 그런 걸 예감한 거다.웃기는 소리라고 하면서도 그렇다는 걸 부정하기 힘든 마음이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하프타이그란.’

죽음으로부터 도망쳐온 강흑성이 탈태환골하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이야기로만 전해지던 환골탈태를 한 존재.강흑성이 보통사람이 아닌 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맹독의 테스라를 가르는 놈이다.

‘환골탈태해서 그런 걸까?’

테스라의 배를 가르고 독주머니를 빼던 강흑성.황당한 그 일이 가능한건 분명 그런 영향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하지만 환골탈태했다고 독에 그렇게 저항력이 생기는 건지는 모르겠다.못 들어 본 일이다.

“아 몰라.”

고개를 흔든 그렉은 창고문을 확실히 단속하고 돌아섰다.주방의 삼백이에게 가져다줄 고깃덩이들을 담은 상자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또 다른 손님이 오고 있다.이번엔 인간이다. 그런데 딱 봐도 무인이다.

‘저 자······’

불안한 예감을 삼킨 그렉은 서둘러 주방으로 갔다. 그러며 보니 사장 박준이 평소대로 웃는 얼굴로 맞고 있다. 그렇지만 눈빛은 평소와 다르다.

‘사장님이니까.’

박준, 한마디로 보통 남자가 아니다.이 위험한 지역에서 샹그릴라를 운영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다.동물 같은 감각과 예감으로 야수족들과 거래하며 웃는 사람이다.지금 저 눈은 위험을 감지했다.

‘무인이 왔으니 그럴 밖에.’

주방 뒷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렉은 무인의 행색을 다시 눈에 넣었다.머리 두 개 달린 흉포한 거대 고릴라 블루마운틴의 가죽으로 만든 피풍의를 걸쳤다. 그 위로 등을 가로질러 착용한 것은 서슬 퍼런 언월대도다.

‘무인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좁힌 호랑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렉은 주방으로 들어갔다.삼백이가 고기상자를 받아 줄 줄 알았는데 본 척도 안한다.주방 칼을 들고 허공에 뭔가를 그리고 있다.아마도 요리법이 잘 생각 안 나는 모양이다.

“얌마 좀 받아주면 덧 나냐?”

조리대 위에 상자를 탕하고 놓은 그렉을 삼백이가 멀뚱히 바라본다.붉은 저 눈이 말하는 건 아마도 이런 것 같다.그 덩치에 고만한 상자를 들고 와서 무슨 헛소리냐고.그렉은 인상구기고 돌아서 홀을 내다봤다.

‘씨부럴 잡것들이 골고루 꼬였네.’

붉은엘프족과 퓨리엔트족에 츄란족, 그리고 무인까지, 좀 체로 보기 힘든 광경이다. 퓨리엔트족과 츄란족은 그렇다 쳐도 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을 보는 건 별스럽다. 게다가 인간 무인의 조합이란 건 구경거리다.

‘엇, 저 인간 한 가락 확실히 하는 자가 분명하구만!’

무인의 벼락같은 움직임을 보고 그렉은 경직했다.박준이 안내한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언월대도를 휘둘렀다.왜 그랬는지 홀 안에 있던 자들은 알았다.파리, 홀을 날아다니던 세 마리를 번개처럼 갈랐다.

‘장병을 저렇게 회초리처럼 다루다니······!’

번쩍하는 섬광이 무인의 테이블을 감싸고 명멸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건 언월대도가 무인을 중심으로 휘돌아서다. 그 결과로 파리들이 갈라져 떨어졌다. 그리고 그건 홀 안의 존재들 모두에게 경각심을 안겼다.

“음식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배식구로 다가온 강흑성의 얼굴을 보고 그렉은 인상을 구겼다.강흑성때문이 아니라 저 말을 전하게 한 놈들, 츄란족 때문이다.저것들은 늘 저런 식이다. 지금도 무인의 한수에 주눅 들지 않았다는 듯 주접들이다.

“바로 나간다고 해.”

짜증스레 말한 그렉을 응시한 강흑성은 그렉이 돌아보는 삼백이에게 시선을 던졌다.이제야 고기를 토막 내고 있다. 음식이 완성되려면 멀었다.엄밀히 지금 막 들어와 주문해 놓고 음식 언제 나오냐는 게 웃기는 거다.

‘저 남자······’

무인을 돌아 본 강흑성은 속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기이한 감정을 억눌렀다.무인이라는 존재를 보니 생겨나는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무엇이다.정확히 흥분과 호승심이다. 그런데 그럴 상대도 상황도 아니다.

“오늘 조심해야겠다.”

곁으로 다가온 사장 박준의 낮은 목소리엔 불안이 담겨 있다.

“샹그릴라는 늘 저런 놈들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그렇게 장사하는 데지만, 뭔가 위험한 일이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 내 예감은 정확하거든.”

표정 없는 강흑성을 보고 박준은 바로 인상을 구겼다.그렇게 촉 좋은 예감인데 강흑성이 굴러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던 거다.그날 블랙엘프패와 천랑성패가 지랄을 할 줄도 몰랐다.그래놓고 무슨 예감타령이냐.

“에, 아무튼, 오늘 각별히 주의해서 영업하자 이거야.”

강흑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을 내며 박준은 입구로 돌아섰다.

“어, 저거? 아씨, 오늘 무슨 날이냐?”

당황한 기색의 박준 뒤에서 강흑성도 봤다.카타나를 착용한 파이곤족 남자들이다.다섯이 다가오고 있다. 특유의 파란 피부와 푸른 눈이 신비하다.파이곤족 여자들은 붉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다, 신비한 종족이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종족.’

파이곤족은 피부색만 아니면 사람과 가장 비슷하다.남자들은 체격이 더 좋고 운동능력이 월등하다.반면에 여자들은 미모가 출중해 주목받는다.신비한 붉은 피부와 푸른 눈은 모든 종족들이 침을 흘리게 한다.

“어서 오십시오, 샹그릴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해진 박준의 환영인사 뒤에서 강흑성은 물 잔을 준비했다.파이곤족 남자들에게 자리를 안내하자마자 물 잔을 들고 가 하나씩 앞에 놓았다.그런데 파이곤족 남자들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잔뜩 긴장해 서롤 본다.

‘무인, 저 자를 경계하고 있구나.’

그렇다는 걸 강흑성은 알았다.파이곤족 다섯 남자, 무공을 익힌 게 분명한 자들은 인간 무인을 의식하고 있다.그건 정체를 인지하고 있다는 소리다. 전부이든 부분이든.정말 기묘한 상황, 사장 박준의 말대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식사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훈제포크요리가 아주 일품입니다만.”

창고에 재고가 가장 많은 걸로 주문을 유도하는 박준도 위험한 예감을 품었다.오늘도 한바탕 일이 일어날 것이 확실한 예감이다.그래서 짜증이 난다.샹그릴라의 뒤를 정찰대가 봐준다는 소문을 내도 이 모양이다.

‘아무튼 무공을 익혔다는 것들은 눈에 뵈는 게 없어, 개잡것들.’

속으로 욕을 하며 박준은 너스레를 떨었다.

“멀리서 오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 초행이시지요?”

파이곤족들은 물론 홀 안의 다른 종족들에게 들으란 말을 이어냈다.

“아 여긴 정말 위험하고 탈 많은 곳입니다. 예, 서울지구를 벗어나 북으로 가는 길목이니까요. 서울지구도 망해서 이름만 남은 곳이라 위험하지만 여긴 곱으로 위험하죠. 그래도 정찰대가 항시 돌봐주기 때문에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샹그릴라만의 특급 서비스라고 할까요?”

박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인이 목소릴 냈다.

“이틀 전 이곳에서 정찰대가 피를 봤다는 말을 들었지.”

식사보다 먼저 나온 맥주를 음미하는 무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용모의 사내가 차가운 미소를 흘려냈다.

“귀신대가리들이 천랑성놈들과 블랙엘프놈들을 떼로 죽였다고 하더군.”

퓨리엔트족들이 눈동자를 빛냈고 츄란족은 이를 드러냈으며 파이곤 족은 카타나를 움켜잡았다. 레드파운틴족 붉은 엘프만이 고요히 술을 마셨다.

“어젯밤엔 테스라들이 날뛰었지.”

이어진 무인의 말에 박준은 미간을 확 좁혔고 강흑성은 서늘한 눈빛을 흘려냈으며 주방안의 그렉은 배식구로 머릴 내밀 듯이 홀을 내다봤다.

“사체들을 태워서 땅에 묻었을 거야, 그런데 테스라들이 들이 닥쳐서는 뼈다귀들을 다 물고 가버렸지. 그것들이 뼈를 탐하다니, 기묘한 일이야.”

마치 다 본 것처럼 말하는 무인사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냐는, 기묘한 불안이 든 눈으로 바라보는 박준에게 무인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숲에 있었다, 테스라들 울음소릴 들었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무인 사내는 뒷말을 이어냈다.

“좀 전에 들어오면서 보니 빈 기름통들이 있더군. 죽은 것들을 태우는 데 사용했겠지. 테스라들이 몰려와서 파헤친 구덩이도 보이더군. 무엇보다 확실한건 테스라들이 뼈다귀를 어디로 가져갔는지 알기 때문이다.”

무인 사내의 말에 홀 안의 모두가 눈동자를 칼날처럼 번득였다.퓨리엔트족과 츄란족과 파이곤족, 저마다 병기를 움켜쥐고 살기를 확 뿜어낸다.

“반년을 추적했어.”

맥주잔을 시원하게 비운 무인 사내는 차가운 미소로 목소릴 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은밀하게 소문이 퍼져서 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지.”

이게 무슨 소린가 박준과 그렉은 물론 요리하던 삼백이도 머릴 내밀었다.

“태백문의 신병 단혈보검, 그걸 갖고 도망치는 놈을 쫓아 여기까지 왔다.”

박준은 눈을 확 치떴고 그렉은 호랑이 눈을 부릅떴다.배식구로 머릴 내민 삼백이만이 멀뚱거렸다.홀 안의 다른 종족들도 저마다 반응했다.그 반응은 박준과 그렉과 같은 놀람이 아니라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다.

‘이것들이 그렇게 꼬여든 것들이구나!’

박준이 눈앞의 현실을 확 체감하는 순간 무인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테스라들을 부리는 능력이 있는 놈이야.”

그게 누군지 물어볼 필요 없다. 태백문의 신병 단혈보검을 가진 자다.

“다량의 뼈다귀들이 필요한 이유가 뭔지 정확히 몰라. 단혈보검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추측할 뿐이지. 그 시간에 인근에서 바로 취할 수 있는 뼈다귀, 그것을 본능적으로 찾은 테스라들이 이곳에 출몰했던 것이지.”

확신어린 추론을 낸 무인 사내는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그 눈길이 가는 곳으로 모두가 시선을 고정했다.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 그에게다.

“파운틴족은 한두 종류의 짐승들과 영성이 통한다고 하던데?”

그런 이야기가 있다.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파운틴족 중에 그런 자들이 있다.모든 짐승들과 통하는 것도 아니다.하나나 두 종류, 그 정도다.

“뼈다귀들을 뭐에 쓴 건지 정말로 궁금해 미치겠어.”

무인사내는 누구에겐지 명확하지 않은 말을 뱉었다.그러나 그대상이 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이라는 걸 모를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화성맥주인가요?”

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그게 무인사내의 도발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물음, 박준을 향해 맥주잔을 들어 보인 거다.

“아예, 기성품은 아니고 수제맥주입니다. 맛이 기막히다고 소문이 났죠.”

습관적으로 손을 비비며 미소 짓는 박준.붉은 엘프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다.그게 박준의 말에 동의해서인지 부정인지 명확치 않은 반응이다.아마 부정일거라고 그렉은 생각했다. 말만 수제맥주지 저건 하품이다.

‘뼈다귀를 뭐에 쓴 거야? 아니 저 자가 단혈보검을 가진 자가 맞긴 한 거야?’

눈에 힘을 준 그렉은 그 순간 강흑성과 시선이 마주쳤다.마찬가지 의문을 품은 강흑성은 붉은 엘프족 사내를 훑어봤다.보검 같은 건 안 보인다.

‘저 장검은 레드파운틴족 특유의 병기인데?’

단혈보검이라는 건 어디에도 안 보인다.그게 정확히 어떻게 셍긴 건지 모르지만 이름을 알고 있다.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전쟁의 이야기, 그 안에 있었다.프락시안족의 침공에 맞서 싸운 태백문의 멸문 이야기다.

‘본래 마교의 마검이었다고 하던데······’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렇다. 단혈보검은 마교의 저주받은 대법을 통해 완성된 마검인데, 태백문이 배출한 최강의 무인 태백천군이 마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마검의 마기를 없애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많이들 궁금한 모양이군.”

붉은 엘프족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궁금해 한다는 게 무인사내가 언급한 내용인지, 박준에게 물어본 맥주의 맛에 대해선지 모호한 말이다.

“맞아, 내가 테스라를 부렸지.”

이어 나온 말, 홀 안의 모든 이들이 반응했다.무인사내는 유성의 명멸 같은 안광을 뿜어냈고 츄란족은 흉악한 눈빛을, 퓨리엔트족과 파이곤족은 차갑게 벼린 칼날 같은 눈동자를 번득였다.박준과 그렉은 기함했다.

‘이자가 테스라들을 부려서 뼈다귀를!’‘단혈보검을 가졌단 말이지!’

붉은 엘프족 사내는 엷은 미소를 피워낸 입으로 다시 맥주를 마셨다.

“수제맥주치곤 맛이 없군요.”

맥주에 대한 평가를 내린 붉은 엘프족 사내는 무인 사내를 향해 몸을 돌리고 눈을 맞췄다.

“뼈다귀를 뭐에 쓰려는지 궁금하다고?”

무인사내의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내는 걸 응시하며 붉은 엘프족은 말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 신선한 그 존재들에게는 생사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특히나 원한과 살기를 품고 죽은 것들은 더 강렬해. 여기서 귀신대가리들에게 죽은 것들은 그렇겠지? 죽이려다 다 죽었으니까.”

붉은 엘프족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확연하게 피어났다.

“그런 게 필요해서 구한 거야. 왜 그게 필요하냐고? 단혈보검이 본래 가진 힘, 흉악한 저주의 마력을 되살려내기 위해서지. 그건 본래 마검이니까.”

강흑성이 소름을 털어내는 순간 무인 사내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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