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8. 보검쟁탈전 1.
8. 보검 쟁탈전 1.
강흑성은 얼어붙었다.번개에 맞은 것 같은 이 순간의 충격, 인간무인과 붉은 엘프의 충돌이 심장을 멎게 했다.쫘르르한 것이 영혼을 강타했다.형용할 수 없는, 희열을 안겨주는, 저들의 칼부림에 피가 끓는다.
‘엄청나게 빠르고 강하다!’
인간 무인, 그는 움직이는 순간 언월대도를 붉은 엘프의 목에 쑤셨다.형용하기조차 힘든 스피드와 강력한 파워의 일격.그런데 붉은 엘프는 장검을 뽑아 후려쳤다.검병을 잡는 순간 발검과 반격을 이뤄냈다.쾅, 박준사장이 쏘던 거대괴수사냥총의 총성 같은 충돌음이 터졌다.그 소리를 느림보로 만들며 무인과 붉은 엘프는 무섭게 얽혔다.여름하늘에 터지는 뇌우처럼 대도와 검을 부딪치며 홀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아이고 씨부앙!”
사장 박준의 앓는 소리 속에서 강흑성은 홀의 접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이미 충돌을 피해 물러난 다른 야수종족들도 병기를 빼들고 나간 상황, 전후내막을 안 그들의 눈은 흥분과 탐욕으로 번득인다.그렇다, 저 무시무시한 격돌을 보고 두려움을 품는 동시에 발산하는 욕망이다.
“내가 저것들을!”
박준이 t-rex 장총을 꺼내려하자 그렉이 말렸다.
“죽여 달라고 손 흔듭니까!”“야 이······”“개새끼는 없다고요!”
총을 잡고 자신의 팔을 잡은 그렉을 보며 박준은 목구멍까지 치민 말을 삼켰다.
‘개만도 못한 호랑이는 있지, 으이그.’
삼백이가 나와 주방용 칼을 들고 제 쇠머리를 긁을 때, 강흑성은 홀 입구에 서서 접전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옆으로 그렉과 박준이 붙어 섰다.
“저 시버럴 놈들이 손해배상 같은 건 안 해주겠지?”“두 번째로 손 흔드는 거죠.”
인상 구긴 박준은 바로 돌아섰다. 바 뒤의 통신기로 정찰대에 알리려는 거다. 그 모습을 돌아봤던 그렉은 그러거나 말거나 싸움구경에 집중했다.
“어디서 저런 자들이 몰려온 거야?”
감탄과 흥분이 밴 목소리, 그렉의 반응에 십분 공감하며 강흑성은 싸움에 빠져들었다.무인의 연환공격은 정말 격류가 흐르는 것 같다.산사태를 몰아와 덮치는 것만 같다.그런데 붉은 엘프의 검은 그걸 다 가른다.
‘저것이 삼월문의 삼월검법.’
붉은 엘프가 펼치는 검술이 그러함을, 그것이 수련하고 깨우치기에 따라서 어떠한 경지를 보여주는지 강흑성은 새삼 깨달았다. 붉은 엘프의 검이 그렇다. 단순하고 널리 퍼진 삼월검법의 초식만으로 대응하고 있다.
‘저자, 인간 무인의 무공은······’
연원을 모르겠다.현묘한 기운은 느껴지진 않지만 강하고 빠르며 효율적이다.그런데 그렇다는 걸 강흑성 자신이 어떻게 아는 걸까?저들의 싸움을 보고 평가할 절도로 무공에 대해 알고 있나?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어머니에게 들은 옛 이야기가 전부다, 무공과 무인들에 대해서 그 이상 아는 게 없다.직접 겪은 거라면 자신을 잡았던 조직이다.‘미래’ 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적호문이 뿌리인 그들에게서 무공을 봤고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저 싸움을 평가 해?’
그게 아니다.강흑성 자신이 달라져서다.환골탈태해서다.어머니가 말씀한 진실한 나를 찾을 때, 그때가 도래해서다.그때가 되면 모든 걸 알게 되고 깨우치게 될 것이라던 어머니의 말씀, 그 의미가 뭔지 알 것 같다.
‘아버지가 알려주는······’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모호한 모습을 그리는 강흑성의 귀에 그렉의 외마디 반응이 파고들었다.
“어라?”
그렉의 당혹처럼 강흑성은 눈동자를 응축했다.끝없이 얽혀 돌아갈 것 같던 싸움이 멈췄다.무인과 붉은 엘프가 서로에게서 떨어져 노려보고 있다.느릿하게 언월대도를 돌리다 세운 무인의 피풍의는 걸레가 됐다.
“쯧, 블루마운틴 가죽이라 귀한 건데, 이렇게 버리게 될 줄은 몰랐는 걸?”
푸른빛의 가죽피풍의를 몸에서 뗀 무인은 땅에 버렸다.
“필요하면 또 장만하면 되지.”
블루마운틴정도는 언제라도 잡아 가죽을 벗길 수 있다는 미소.
“그런데 단혈보검 같은 신병이기는 정말 때가 아니면 손에 넣을 수 없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피워내며 무인은 주변으로 물러나 있는 자들을 돌아봤다.퓨리엔트족 육인과 츄란족 십이인, 파이곤족 오인, 모두 눈동자를 강렬하게 빛내고 있다.단혈보검이란 말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삼백 년 전 대전쟁 때 사라진 단혈보검, 태백문의 마지막 문주 하늘 검 이경명이 죽음으로 가져갔다는 전설의 검, 그걸 가진 자가 존재하는 거지.”
무인의 낭랑한 목소리는 어두워져 가는 샹그릴라를 맴돌며 퍼졌다.
“단혈보검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화성으로 옮겨간 십대문파의 후예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에게 판다면 얼마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무인의 목소리는 강렬한 자극으로 이어 나온다.
“그들 말고도 화성의 부자나 유력가, 흑은 기업이나 각종 세력집단 중에 가지고 싶어 할 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단혈보검은 부르는 게 값이겠지?”
귀를 파고드는 무인의 목소리에 듣는 자들은 몸을 꿈틀거렸다. 탐욕과 흥분으로 눈매를 비틀었다. 뜨거워지는 그 숨결에 무인은 불을 질렀다.
“그러나 단혈보검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것이 아니지. 대전쟁보다 더 아득한 옛적에 만들어진 마교의 마검, 그것을 태백문의 최강고수 태백천군이 신물로 아우른 힘, 태백문과 태백천군의 무공정화가 깃든 물건이지.”
누군가의 입에서 꿀꺽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천둥처럼 퍼진 그 소리는 모두의 것, 한결같은 마음이다.바로 그러한 내막을 알기에, 단혈보검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그 목표가 눈앞에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지.”
무인의 입에서 나온 그 소리는 각기 다른 반응들을 만들었다.파이곤족은 미간을 좁히며 동료들끼리 눈을 맞췄고, 퓨리엔트족은 무슨 의미지 하는 눈으로 무인을 강하게 응시했으며, 츄란족은 뭔 소리냐는 반응이다.
“무슨 수작이야!”
쯧, 하고 혀를 찬 무인 대신에 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딛고 있는 땅, 이 자리에 존재하던 나라의 속담이다. 너희들과 손을 잡고 나를 잡고 싶다는 제안이지. 우선은 그렇게 해서 단혈보검을 확보한 뒤에, 최종 주인을 다시 가리자는 말인 거다. 차도살인지계라고 하지.”
뱀혓바닥을 날름거린 츄란족은 흉악한 눈을 빛낸다.
“그게 그 소리라고?”
파이곤족 리더가 카타나의 손잡이를 움켜잡은 채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에선 취할만한 방법이지. 방금 본 것처럼 저 인간 무인은 강하지만 붉은 엘프를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합세하면 달라지지. 그러니 방법은 방법인데, 그다음에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
퓨리엔트족 리더가 그 말을 받듯이 목소릴 냈다.
“맞아, 그 다음엔 누굴 대상으로 정해놓고 같은 말을 할지 알 수 없지.”
무인 사내는 대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
어둠이 내리는 저녁하늘을 흔드는 웃음 뒤에 무인 사내는 강렬한 안광을 냈다.
“그게 께름칙한가? 어째서? 너희가 여기 몰려든 목적이 무엇이야?”
야수족들을 싸늘하게 응시하며 무인 사내는 뒷말을 뱉었다.
“서로 보고 웃으며 인사하자는 거야? 아니면 단혈보검을 가지기 위해 피 흘릴 각오인 거야? 그걸 누가 웃으면서 줄 거라고 생각하나? 손 내밀면 가질 거라고 생각해? 천만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가지는 거야!”
야수족들은 무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봤다.반박할 수 없는 말, 현실이다.단혈보검을 차지하자면 이 자리의 다른 대상들은 죽어야 한다.그 일을 우선 하자는 소리다.검을 가진 붉은 엘프를 먼저 죽이는 일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담담히 흘러나온 붉은 엘프의 음성.
“도대체 어디서 단혈보검의 정보를 들었는지, 알게 됐는지, 그걸 따져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어디에서도 들어 본적 없던 그이야기를 듣게 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의 면면이 그런 것 같아?”
미간 좁힌 야수족들은 이내 찌푸렸다.과연 이상한 면이 없지 않아서다.단혈보검과 같은 물건이 불거졌다면 이정도 상황은 넘어야 정상이다.지구에서 활동하는 무인들이 다 몰려들어야 맞다.그런데 그건 아니다.아니 앞서 인간 무인이 말한 대로 화성에서도 우주선을 날려 와야 맞다.물론 그 정도로 퍼진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니 상황이 더 커지기 전에 차지해야 하겠지만, 지금 모인 자들 면면이 괴이하다.
“아마 도시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을 거야.”
다시 목소릴 내는 붉은 엘프 사내를 모두가 주시했다. 야수족과 달리 차가운 안광으로 인간 무인도 바라봤고, 강흑성과 그렉과 박준도 그랬다.
“숙소근처에서, 혹은 술집에서, 사창가에서, 우연인 것처럼 귀에 들려왔거나 누군가 알려줬겠지. 그 소문을 쫓아 여기까지 온 거고. 근데 정말 이상하잖아? 그런 정보가 우연하게 내게만 알려진다는 게 가능할까?”
맞는 말이다.
“왜 소문은 더 퍼지지 않은 건가? 정보를 알려준 점원과 창녀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다른 누가 더 알게 되기 전에 죽이려 했는데 누가 먼저 죽였나? 맞아, 바로 그거야. 여기 모인 자들만 알도록 누군가 손썼지.”
단호한 붉은 엘프의 결론에 야수족들은 눈동자를 팽창했다.
“단혈보검의 정보, 그 진위를 파악할 방법이란 없지. 부딪쳐 알아내지 않는 이상 삼백년 전의 일을 어떻게 알아낼까? 그런 일에 움직인다는 게 맞을까? 까짓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하고 어디든 가는데 왜 안 될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정말이면 팔자를 고치게 될 일인데 말이야.”
붉은 엘프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걸렸다. 차가운 조소가.
“단혈보검,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바다건너 사라진 일본이란 옛 땅에서 골동품상인이 살해된 사건,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그 사건의 내막을 아는 자만이 진실을 알고 있음이지.”
붉은 엘프는 자신을 응시하는 모든 존재들의 눈을 향해 진한 미소를 던졌다.
“맞아, 내가 골동품 상인을 죽였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강흑성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줬다.
‘정말로 단혈보검을 가지고 있는 거구나!’
옆에 선 그렉의 숨소리도 경직하는 걸 뒤늦게 느끼는 그때 사장 박준이 다가왔다.
“씨부러질 야수족놈들, 정찰대가 오면 다 뒈졌어······!”
들을세라 숨죽인 음성, 하지만 결과를 의심치 않는 눈이다.사장 박준은 정찰대를 불렀다.부른 다고 냉큼 올 그들이 아니지만 분명 그렇게 할 만한 말을 했을 거다.단혈보검, 그 말을 들으면 누구든 달려 올 거다.
“사장님, 저 붉은 엘프족 남자가 정말 단혈보검을 가진 모양인데요?”
그렉의 말에 박준은 무슨 헛소리냔 표정이다.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게 언제 적 물건인데······”
그 순간 박준은 경직했다. 붉은 엘프 사내가 낸 말 때문에.
“검은 분명히 내가 가지고 있다.”
붉은 엘프족 사내를 보는 야수족의 눈들이 흉맹한 빛으로 확 팽창했다.명확한 시인, 단혈보검을 가지고 있다는 자백, 그런데 뒷말은 결이 다르다.
“단혈보검은 본래 마검, 그것의 마성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하지. 신선한 피, 죽음, 다른 생명들을 빼앗아 원기가 영혼에 배인 존재들의 피, 그것이면 정말로 더할 나위없지. 그래, 바로 너희들의 피 말이야.”
서늘한 웃음을 흘려낸 붉은 엘프 사내는 마지막 남겨둔 말을 뱉었다.
“너희들을 선택해 이곳으로 이끌어 온자가 바로 저자다.”
붉은 엘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존재, 인간 무인은 커다랗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무인사내의 웃음을 듣는 순간 강흑성은 머리털이 쭈뼛하고 서는 걸 느꼈다.
‘저자, 마기를 숨기고 있었구나!’
본능으로 안다, 무인 사내가 지금 막 풀어내는 기운이 마기라는 것을.그것은 육백년 전 태백천군과 십대문파에 의해 멸망한 자들의 힘이며 저주받은 악마의 힘이다. 악마족이란 데바족과 프락시안족도 두려워했다.
“헛, 저 자가 뭔가 달라졌다!”
사장 박준도 본성으로 마기를 느끼고 뒷걸음질 했다.살아 있는 존재라면 당연한 반응이다.그렉도 경직한 눈과 표정으로 내력을 일으켰다.무공을 드러낼 지도 모를 상황, 의식치 못하는 무조건적인 반응이다.그런데 그 순간 강흑성의 앞으로 삼백이가 나섰다.어느새 가져온 건지 사장 박준의 t-rex장총을 겨누고 있다.박준은 황당한 얼굴을 만들었다.
“야 너 뭐하는······”
뒷말을 이어내지 못한 채 박준은 무인 사내에게 시선을 홱 돌렸다.
“저, 저건 또 뭐야?”
언월대도를 움켜쥔 모습의 무인사내가 변하기 시작했다.우두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신이 꿈틀거린다.마치 강흑성이 탈태환골 할 때 같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른 거다.축골공으로 폐쇄했던 신체를 복원함이다.
‘정말 마인이구나!’
강흑성은 강렬한 전율을 삼켰다.무인사내가 지금 펼친 것은 마교의 비전이다.적호문주놈이 자신을 실험쥐처럼 괴롭히면서 저런 것에 대해 말했다.축골공, 마교의 그 비기를 강흑성으로 인해 그 자신도 하게 될 거라고.
‘정말 무서운 싸움이 시작되겠어······!’
전율과 흥분으로 몸을 떠는 강흑성의 앞에서 삼백이는 삐그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