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9. 보검쟁탈전 2.
9. 보검쟁탈전 2.
좁힌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카슨은 그 말을 되뇌었다.
‘단혈보검.’
샹그릴라 사장 박준이 긴급통신으로 알려온 내용이 그거다.샹그릴라에 한 무리의 야수족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노리는 게 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인데, 하는 소리들을 들으니 단혈보검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란 거다.
‘황당해.’
단혈보검은 삼백 년 전 태백문의 마지막 문주 하늘검 이경명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물건이다. 찾기 위해 태백문에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그들은 멸문했다. 문파의 모든 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태백문만이 아니라 십대문파가, 무인들 전부가 찾아 나섰다고 했어.’
그렇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그 후로 단혈보검은 전설이 되어 그 이름과 이야기만이 전해졌다.그런데 샹그릴라에 나타났다고?이렇게 갑자기?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그런데 확인은 해야 한다.
‘인간 무인이 붉은 엘프를 추적해 와서 싸운다?’
진짜 무인이라고 했다, 고수라고 했다.이런 변경에 그런 존재가 나타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그자가 정말로 단혈보검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붉은 엘프를 쫓아와 싸우는 거라면, 이건 대박이다.
‘박준도 말해놓고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황당한 일이다.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진실이라면 팔자를 고치게 될 거다.이건 박준과 크리듐박스를 밀거래 하는 수준이 아니다.
‘화성의 무림문파들이 알게 된다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 일.’
그들에게 돈을 받고 팔수도 있고 거대문파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삼월문이나 백두문, 혹은 천지문 같은 곳······’
머릿속에 갖가지 상상과 계산을 품고 곱씹던 카슨은 문든 미간을 찌푸렸다.
‘그놈을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건 정말 치욕이야.’
‘미래’ 란 조직에서 도망친 어린 놈, 그놈 때문에 밥도 잘 안 넘어간다.정말로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알 수가 없다.이것도 황당 자체다.여태 목표한 사냥감을 놓친 적이 없건만, 다른 팀이 비웃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종적이 끊겼어.’
그래서 그곳으로부터 다시 뒤지고 수색을 넓혔지만 소득이 없다.그 어린놈은 연기가 돼서 사라진 것만 같다.있을 수 없는 일인데 겪고 있다.
‘샹그릴라에서 숨겨주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맹수나 괴수에게 먹힌 거다.그런데 그것도 흔적이 남아야 한다. 먹어치운 놈의 배설물, 흔적과 뼈다귀가 있어야 한다.물론 그라운드웜 야무치 같은 것에 걸리면 뼈도 안 남을 테지만, 야무치는 이 근방에 없다.
‘어린놈은 없어지고 낯선 젊은 놈이 나타났다······?’
샹그릴라에서 새로 일하게 됐다는 젊은 놈.체격이 좋던 그놈이 왜 그런지 신경에 거슬린다.도망친 어린놈과 그 젊은 놈의 얼굴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정확하게는 눈빛이다. 설명하기 힘들게 그렇다.
‘도망칠 때 본 그 어린놈의 눈동자, 눈빛이······’
기묘한 예감을 곱씹던 카슨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밀어냈다.
‘멍청한 생각.’
비교할 수도 없는 대상이다.도망친 어린놈과 샹그릴라의 새 직원 놈은 완전히 다르다.눈빛에서 뭔가 느꼈다는 건 책임감과 분노 때문이다.
“다 와 갑니다.”
부팀장 그라울이 갈기털을 세운 모습을 본 카슨은 지시했다.
“중화기를 우선 사용한다.”
달리는 게틀러의 외부장갑이 열리며 육연장 벌컨 포신들이 튀어나왔다. 스무 명의 정찰대원들은 천산마갑슈트의 전투력을 최대치로 올렸다.
* * *
붉은 엘프는 얼음장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무인 사내를 바라봤다.축골공을 해제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존재.머리 하나가 더 커진 모습이다.그래선지 언월대도가 정말 칼 한 자루 든 것처럼 가볍게 보인다.
“마교의 후예로구나.”
붉은 엘프의 목소리는 스산하게 흘러나왔다.붉은 빛의 얼굴은 더욱 강렬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살기와 전의가 강렬해진 때문.붉은 엘프들이 저런 모습이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안다, 움바바족들도 도망친다.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무서운 붉은 엘프족이라고 해도 상대는 무인.게다가 이제 드러낸 진정한 정체는 마인이다.사라진 마교의 후예다. 무시무시한 마기를 풀어내고 있다.이야기만 들어봤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제기랄······!”
츄란족들이 낭패하고 두려운 반응으로 제일먼저 움직였다.단혈보검을 위해 필요한 피의 제물 역할로 유인됐다는 붉은 엘프의 말을 믿고 안 믿고 간에 이 상황의 위험함이 물러서게 했다.그런데 마인이 돌아섰다.
“움직이지 마라!”
벽력같은 호통과 함께 마인의 언월대도가 섬광의 횡선을 그었다.그렇지만 츄란족들이 서 있는 곳과는 거리가 8m 이상.그런데 츄란족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언월대도의 날이 자루로부터 이탈했다가 돌아갔다.
“으헉!”“키헥!”
놀란 츄란족들은 본능적이고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움직이지 말란 마인의 말을 거부하고 안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본능이 시킨 반응이다.붉은 눈동자를 흉악하게 빛낸 마인이 언월대도를 맹렬히 휘둘렀다. 은섬으로 화한 언월대도의 날은 자루로부터 이탈해 츄란족들을 도륙했다.
부릅뜬 눈의 강흑성은 충격 속에서 죽음이 휘날리는 것을 봤다.마인이 휘두르는 언월대도, 그 칼날은 자루로부터 연결된 은선으로 거리를 무용케 했다.칼을 빼든 츄란족들의 몸통과 목을 가르고 피를 흩뿌린다.
‘저런 무기라니, 아니 무공이라니!’
전율과 충격을 삼키던 강흑성은 그 순간 붉은 엘프의 행동을 봤다.
‘뭐······?’
창고 앞 말뚝에 매어놓은 자신의 말 블랙팬더를 향해 손짓한다.
‘오라고?’
그 옆의 츄란족들 탈것인 똥돼지 듀란들이 지랄발광 하고 있다.제 주인들이 죽어나가서 두렵고 분노해서가 아니라 피 냄새에 흥분해서다.그런 놈들에 반해 블랙팬더는 태연하다.푸릉거리며 입으로 줄을 풀고 있다.
‘저놈!’
말뚝에 매어 놓은 걸 푼 블랙팬더는 제 주인 붉은 엘프에게로 향했다.
츄란족 열둘 중에 남아 있는 자는 넷, 경악과 두려움에 얼어붙은 그들에게서 마인은 돌아섰다. 언월대도로 죽음의 피바람을 일으키던 중에도 의식의 집중을 놓지 않던 대상, 붉은 엘프가 보이는 반응과 행동에게다.
“말을 잡아타고 도망치려나?”
마인의 차가운 조소, 하지만 붉은 엘프는 더 이상의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짙은 붉음을 드리운 얼굴 그대로다. 눈동자는 무겁게 가라앉았다.그래선가, 마인이 오히려 변했다. 얼굴에 두 줄기 혈선이 돋아나왔다.축골공을 해제한 이후에 츄란족들을 도륙하는 무서운 무위를 보인 직후, 양 볼에 출혈이 생긴 것 같은 두 줄기 혈선은 새로운 두려움을 준다.
“네가 죽인 골동품상, 그자의 숨을 다시 이어낸 것이 나다.”
혈광이 번득이는 눈의 마인은 혈선이 그려진 얼굴이 미소를 피워냈다.
“단혈보검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있는데 감정을 부탁한다는 전갈을 받고 그를 찾아 갔더랬지. 그런데 누군가 죽였더구나, 그 정황을 알아낼 비기가 내겐 있었지. 죽은 자의 혼을 불러 듣는, 아주 잠깐이지만 말이야.”
그랬다는 거다. 그렇게 마인은 붉은 엘프의 뒤를 추적해 왔고 야수족들을 선택해 유인했으며 적당한 곳에서 마땅한 때에 본색을 드러냈음이다.야수족들이 서로 눈을 맞추는 그 때, 히히힝하며 블랙팬더가 울었다.외뿔이 멋지게 머리에 솟은 말, 애마의 머리를 붉은 엘프는 쓰다듬었다.그런 붉은 엘프를 모두가 바라봤다.얼어붙은 츄란족 넷 말고도 퓨리엔트족 여섯과 파이곤족 다섯, 충격적인 도살에 경직한 그들의 눈은 꿈틀거렸다.야수족이기에 당연한,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다.
“내가 검을 어디에 뒀는지 모두 궁금하겠지?”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흘러나온 붉은 엘프의 목소리.듣는 모두가 눈을 빛냈다.야수족들과 마인, 샹그릴라의 박준과 그렉과 강흑성, 집중했다.
“이제 검을 꺼내 보여주겠다.”
내 물건은 이런 거야, 라고 말하듯이 붉은 엘프는 담담히 말했다.그 말의 증거를 보이기 위해 움직였다.쓰다듬던 애마의 머릴 양손으로 잡았다.
“욤, 기하무리 트하바춘 브라하잇차.”
주문.붉은 엘프의 입에서 나오는 게 주문이란 걸 모두가 알았다.붉은 엘프족의 주문이다.쉬지 않고 나오는 그 주문과 같이 붉은 엘프의 손에 혈광이 맺혔다.혈광은 블랙팬더의 머리를 감싸더니 몸통까지 물들였다.
“바흐브라 인 훔차.”
주문의 마지막을 맺듯이 붉은 엘프는 손을 떼고 물러섰다.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블랙팬더가 하늘로 머릴 올리더니 꺽꺽거린다.벌어진 입으로부터 붉은 안개 같은 것이 나오더니 뭔가 더 튀어 나온다.검.그것은 검이다.블랙팬더가 토해내는 검이다.바로 단혈보검이다.
‘저것이 단혈보검! 이미 마성을 깨워내고 있구나!’
붉은 안개에 휩싸여 나오는 검을 본 순간 강흑성은 직감했다.붉은 엘프에 의해서 단혈보검은 원래의 마검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란 것을.
‘마기가······!’
피부를 아릿하게 만들 정도의 마기, 단혈보검이 붉은 엘프의 손에 잡히는 걸 보며 강흑성은 전율했다. 몸서리쳐질 정도의 마력이 느껴진다.
‘저자는······!’
붉은 엘프, 저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서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전설의 단혈보검을 찾아 그 본성을 깨워내려는 자, 마검을 가진 자다.
‘마검, 진정한 그것의 필요가 저 자가 가진 본래 의지이며 목적······!’
강흑성이 전율을 삼키고 그렉과 박준이 얼어붙었으며 삼백이가 t-rex 장총을 여전히 겨눈 상황, 그 현장 속에서 붉은 엘프가 소리쳤다.
“패천마혈의 현존 앞에 너희의 피를 바쳐 경배하라!”
두 손으로 마검을 잡은 붉은 엘프는 전신을 붉은 혈기로 물들인 채 걸음을 냈다.그 순간 퓨리엔트족들이 장총을 발사했다.원형이 삼백 년 전 k-1000인 빔건, 개량과 개조를 거듭한 총기의 빔줄기들이 빗발쳤다.
“크하하하하!”
붉은 엘프는 마인이 터트려야 맞을 것 같은 광소를 터트렸다. 검을 토해내고 쓰러진 애마를 뒤로 두고 빗발치는 빔줄기들을 검으로 갈라쳤다.
“크악!”
마검이 그어낸 혈광의 선은 빔줄기만이 아니라 퓨리엔트족도 갈랐다. 동강난 자는 비명조차 못 질렀지만 팔이 잘린 자는 땅을 필사적으로 굴렀다.그런 퓨리엔트족을 두고 파이곤 족은 돌아서 도주를 택했다. 애초에 눈빛을 교환한 반격의 의지는 씻은 듯이 사라진 터,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다.그런데 파이곤족과 츄란족이 도주하는 앞으로 게틀러가 달려왔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멈춘 게틀러의 몸통에 솟은 벌컨들이 불벼락을 때렸다.
“엎드려!”
그렉이 소리치기 전에 강흑성은 몸을 던졌다.그 위로 삼백이가 제 몸을 방패로 삼는 듯이 덮쳤다.그렉이 박준을 잡고 옆으로 구르는 순간 벌컨의 불벼락이 샹그릴라를 강타했다.벽과 지붕이 흩어져 날아갔다.
“크악! 저 시버럴 놈들이!”
엎어진 채 박준은 분노를 발산했다.기다리던 정찰대가 왔다.그런데 불문곡직 벌컨부터 쏴댄다.우선 움직이는 것들은 다 죽이고 보겠다는 거다.거기엔 샹그릴라도 포함이다.이렇게 부서지든 말든 상관없는 거다.
“카슨! 개새끼야!”
박준이 소리치거나 말거나 벌컨의 빔 불벼락은 샹그릴라를 날리고 있었다.
마인, 묘진위는 땅바닥을 구르며 한기를 삼켰다.붉은 엘프가 블랙팬더의 몸통에서 끄집어낸 단혈보검, 저것인 이미 마검이다.자신이 유인한 야수족들의 피와 죽음이 없어도 이미 그 지경이다.붉은 엘프가 했다.
‘저 놈은 대체 누구며 목적이 무엇이야!’
의문을 더듬을 새가 없다.귀신대가리 놈들이 달려와서 벌컨을 무자비하게 쏴대고 있다.야수족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다. 핏덩이로 변해 흩어지고 있다.그런데 붉은 엘프는 아니다. 마검으로 가르고 있다.
‘벌컨 빔을!’
혈광의 방패를 만든 것처럼, 마검을 휘둘러 벌컨의 빔우박을 가르고 있다.튕겨내고 분쇄하며 붉은 엘프는 전진하고 있었다.게틀러를 향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