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0. 검의 이름, 패천마혈.
10. 검의 이름, 패천마혈.
“저놈 뭐야!”
카슨은 황당한 충격으로 밖을 봤다.벌컨의 불벼락이 퓨리엔트족과 파이곤족의 형상을 흩어놓은 가운데 샹그릴라의 벽과 지붕도 날리고 있다.우선 제압, 중화기를 사용해 저항조차 못하게 만드는 기본 전술이다.그런데 저놈이, 붉은 엘프가 멀쩡하게 걸음을 내고 있다.아니 그게 아니라 벌컨의 불벼락을 검으로 가르고 있다.저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되고 있다.저런 건 본적이 없다.엄청난 초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혈보검!’
박준이 말한 황당한 이야기, 그것이 실재하는 거다.지금 저것, 붉은 엘프가 게틀러의 벌컨 빔우박을 갈라내는 검이 바로 단혈보검인 거다.그런데 전설로 들은 것과는 달라 보인다.섬뜩한 혈광을 발산하는 검이다.
“팀장님!”
부팀장 그라울의 다급하고 충격에 찬 부름, 이유를 카슨은 경직해 보고 있다.붉은 엘프가 게틀러의 코앞에 다가왔다.혈광을 발산하는 검을 내리친다. 대원들에게 대응지시를 내리기도 전이다.혈광이 파고든다.쉬카악, 면도날로 종이를 가른 것 같은 소리, 아니 느낌.그걸 인지하는 순간 카슨은 결과를 목도했다.혈광의 선이 갈라 들어왔다가 나간자리, 그 궤적 안에 있던 정찰대원들이 갈라졌다.천산마갑슈트가 쪼개졌다.
“나가!”
뒤늦은 외침을 카슨은 터트렸다. 하지만 그것도 늦었다.단혈보검이 만들어낸 혈광의 선이 다시 들이쳤다.부하 넷의 허리를 끊었다.그 순간 게틀러가 폭발음을 내며 진동했다.내부가 불로 채워진 건 그냥 찰나다.뒷문을 열고 나가는 그라울과 대원들과 얽혀 카슨은 바닥을 굴렀다.그 순간 게틀러가 폭발했다.에너지탱크가 갈라졌기 때문, 폭발이 퍼졌다.
“우왁!”
박준의 경악에 찬 비명을 들으며 강흑성은 전혀 다른 경악에 빠졌다.게틀러를 검으로 갈라버린 붉은 엘프, 그는 게틀러의 폭발풍도 개의치 않았다. 마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그의 몸은 폭발의 파워도 갈라져 지나갔다.
‘마검, 패천마혈!’
붉은 엘프가 외친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해 부르며 강흑성은 숨을 떨었다.정찰대원들이 W-2000 돌격소총을 난사하고 있지만 붉은 엘프는 차갑고 섬뜩한 미소를 피워내고 있다.벼락처럼 움직여 검을 친다.
‘천산마갑 슈트를 저렇게!’
정찰대원들이 종이인형 갈라지듯이 갈라진다.저들이 입은 천산마갑 슈트는 엄청난 방어능력을 가진, 일종의 장갑로봇과 같은 거다. 착용자의 파워와 스피드를 올려줘 강력한 신체 능력을 준다.그런데 소용없다.
‘적호문, 그자들도 저걸 구하고 싶어 했는데······!’
천산마갑슈트는 암시장에 나오지도 않지만 어쩌다 나오면 부르는 게 값이다.지닌 능력을 몇 배로 올려주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용지물로 갈라지고 있다.그렇게 만드는 게 붉은 엘프, 패천마혈이어서다.
‘무인은?’
마교의 후예를 찾아 시선을 돌린 강흑성은 숨을 멈췄다.붉은 엘프가 한 것처럼 마교의 후예도 주문을 암송하고 있다.피가 소용돌이친다.
“패천무천, 음양쌍교, 천지무간, 종극무간, 삼천회원십이천래!”
합장하고 주문을 외친 묘진위는 바로 땅바닥에 태극을 그리고 구궁을 밟았다. 손바닥에 피를 낸 손가락으로 진결을 써 하늘과 땅에 내밀었다.
“패천명!”
강력한 외침으로 구궁의 마지막 방위를 밟고 멈춘 묘진위는 피가 소용돌이치며 모여드는 걸 느꼈다.죽은 것들의 피, 지금 죽고 있는 것들의 피다.원통과 절망과 한이 뭉쳐진 피, 그 에너지를 전신으로 받아 들였다.
‘으어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가공할 힘의 충격 속에서 묘진위는 전율의 소릴 질렀다. 최후의 비기를 사용하는 지금 이순간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혼천무상비결의 파도에 올라탔다. 영혼이 불타오른다.
‘이 방법밖엔 없어!’
붉은 엘프가 이미 검의 마성을 깨워낸 터.야수족들을 유인해 온 것은 부질없었지만 이 결과는 원래 바란 것이다.문제는 검이 붉은 엘프의 손에 있다는 것.이제 진정한 주인인 신교의 후예가 잡으면 되는 거다.
‘아직 온전하지 않은 검의 마성! 내가 손에 쥐고 마천을 연다!’
온전해 지기 전에 취해야 한다.혼천무상비결로 원혼들의 힘을 받아들인 이상 가능하다.붉은 엘프와 패천마검이 강해도 지금이라면 된다.진정한 신교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검을 취해 옛 영광을 되살리는 거다.
“패천마천의 영광 앞에 경배할 지어다!”
묘진위가 소리치는 그 순간 붉은 엘프가 돌아섰다.
“미친······!”
땅바닥을 구르다 멈춰 돌아본 카슨은 전신을 부들거렸다.귀신대가리라는 별칭으로 두려움을 뿌리는 자신들, 정찰대 레드스콜피온들이 쓰러져 있다.천산마갑슈트를 입은 모습 그대로 동강 나고 토막 나 흩어졌다.
‘그라울!’
부팀장 그라울이 기어오고 있다.갈기털을 피로 물들인 채, 두 팔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카슨 자신에게 기어오려 하고 있다.그런데 허리 아래가 없다.없는 건 아니다.3미터 떨어진 뒤에 있다.피 웅덩이 속에 있다.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이뤄졌다.게틀러의 폭발 뒤에서 붉은 엘프가 쇄도해 와 혈광의 검을 휘두른 결과다.정찰대원들 중 온전한 자가 없다.
‘피가!’
그라울의 피가 솟구치고 있다. 아니 죽은 자들의 피가 다 그렇다. 비산해 올라 안개처럼 변하며 소용돌이친다. 그 중심에 인간 무인이 있다.
“티, 팀장······”
그라울이 마지막 숨을 뱉어내듯이 부른다.그 소리에 흠칫한 카슨은 오른 팔을 들었다. 지원요청을 하기 위해서다.그런데 멀티폰이 달린 오른팔이 안 보인다.그 이유를 알았다. 부들거리는 다리 아래 떨어져 있다.
“크아악!”
뒤늦은 카슨의 비명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밤을 울렸다.
인간무인, 마교의 후예를 향해 크라폰은 걸음을 옮겨냈다.자신이 레드파운틴족의 비법주술을 펼쳤듯이 저 자도 마교의 비기를 펼치고 있다.아주 흥미롭다. 대단한 에너지도 느껴진다.하지만 마검을 이기진 못한다.
“좋구나.”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피워낸 붉은 엘프 크라폰은 두 손으로 움켜잡은 마검을 마인 묘진위에게 겨눴다. 피의 소용돌이가 방패처럼 막고 있다.
“네 피도 검에 먹여주마.”
크라폰이 정해진 결말을 선고하듯 검을 들었다.같은 순간 묘진위는 언월대도를 내밀었다.그 움직임을 따라 피의 소용돌이가 파동을 일으켰다.
“죽는 건 네놈이다!”
언월대도가 만들어낸 피의 파동을 폭발로 퍼트리며 묘진위는 공격을 펼쳤다.수십 개의 언월대도가 붉은 엘프 크라폰을 후려치는 파동의 폭발이다.
영혼이 흩어지는 것 같은 충격과 혼돈.고통과 분노와 자괴 속에서 카슨은 정신을 집중했다.오른 팔이 사라진 현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밀어내며 움직였다.자신을 향해 기어오던 그라울에게 기어가 팔을 잡았다.
“그라울!”
숨이 끊어지는 그라울을 소리쳐 부른 카슨은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닌 상황, 서둘러 그라울의 왼손을 오른팔의 멀티폰에 댔다. 장착자가 죽은 다음에는 기능을 멈추기 때문이다.
“이런 제길!”
카슨은 그라울의 왼팔을 잡았던 왼손을 떨쳤다.멀티폰에 대자마자 그라울의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봤다.게틀러에서 빠져나와 붉은 엘프의 공격을 받은 대원들 중 아직 산 자를 찾았다.그 순간 엄청난 격돌의 여파가 닥쳐왔다. 그 힘에 밀려 카슨은 굴렀다.
‘저 갈아 마실 새끼들이······!’
구르던 몸을 겨우 수습한 카슨은 다시 경악과 충격 속에 눈을 떨었다.붉은 엘프와 인간 무인이 격돌하고 있다.무시무시한 광경, 저런 건 처음 봤다.붉은 엘프의 검과 인간 무인의 언월대도가 벼락을 터트린다.붉은 벼락.피와 악기(惡氣)를 뿜어내는 지옥의 벽력.그렇게 보인다, 느껴진다.진정한 고수들의 싸움이란 게 저런 거구나 하고 깨달아진다.
‘적호문의 무공을 쓰던 그자도 저 정도는 아니야······!’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카슨은 현실로 의식을 돌렸다. 지금 해야 할 일, 숨이 붙어 있는 대원을 찾아 멀티폰으로 본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거다.그런데 없다. 열둘이 쓰러져있는데, 동강나 있는데, 전부 죽었다.
“이!”
격노를 참지 못해 소리 지르려던 카슨은 고개를 홱 돌렸다.
‘샹그릴라!’
저 안에 통신기가 있다. 박준이 자신에게 연락하던 것이 있다.
“저 괴물 같은 놈들······!”
박준의 떨리는 음성은 눈동자의 흔들림에 비하면 덜 하다. 붉은 엘프와 마인의 싸움은 무시무시하다는 표현으로는 설명 못한다. 피바람 같은 혈광을 터트리며 충돌하는 둘의 주변으로는 온전히 남아 있는 게 없다.
“저런 강자들은 처음······”
자신도 모르게 신음 같은 목소릴 내던 그렉은 자각과 동시에 입을 닫았다. 그런 그렉을 본 강흑성은 다시 접전을 보며 본질의 문제를 파악했다.
‘엄청난······! 하지만 진정한 무공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야!’
붉은 엘프와 마인의 저 싸움은 그렇다.둘 다 지금 무공에 다른 힘을 더해 저런 강력한 무위를 발휘하고 있다.붉은 엘프도 마인도 주문을 통해 비술을 펼쳤다.그 힘, 죽은 자들의 원력(怨力) 에너지를 빌린 힘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피해야죠!”
그렉이 현실을 말하며 일어섰다.박준도 당연히 그래야지 하며 몸을 일으켰다.삼백이와 강흑성도 따라 일어났고, 넷을 홀을 향해 달려갔다.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홀로 들어가던 넷은 카슨이 달려오는 걸 봤다.
“통신기!”
달려오는 카슨의 말을 박준은 알아들었다.이 상황을 정찰대 본대에 알리라는 거다.그걸 제가 하지 왜 저러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카슨의 오른 팔이 잘려나간 걸 봐서다.정찰대 나머지는 다 뒈져버렸다.
“허.”
박준은 황당한 충격으로 헛바람 소릴 냈다.귀신대가리로 불리는 정찰대가, 한 팀 스물이 정말로 순식간에 도륙당한 거다.이런 꼴을 보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다.저들의 무장이 이처럼 하무하게 분쇄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무인이 무섭고 무공이 무섭다는 것이지······!’
새삼 그 의미를 삼키는 박준의 앞으로 카슨이 휘청거리며 달려왔다.
“통신기 어디 있어!”“바, 바 뒤에······”
박준을 밀친 카슨은 잘린 오른 팔을 왼손으로 움켜잡고 바를 향해 달려갔다.그런데 그 순간 엄청난 격돌음이 들렸다.눈을 치뜬 모두가 돌아봤다.마인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있는 광경이다.
“저!”
박준이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를 질렀고, 언월대도를 다시 세운 마인이 소리쳤다.
“네놈은 패천마천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마인은 마기가 흩어진 언월대도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고 갈랐다. 그 피로 물든 언월대도에 주문을 걸자 핏빛 광휘가 다시 어리기 시작했다.
“마의 하늘을 연다고?
차가운 미소를 흘려내며 붉은 엘프는 마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게 이루어져도 너희의 마천이 아니라 레트파운틴 족의 가라레(붉은 하늘)이다.”
남은 말을 뱉어내며 붉은 엘프는 마검을 내리쳤다.같은 순간 마인도 언월대도를 휘둘렀다.두 힘은 그렇게 충돌했고, 마인은 뒤로 날아갔다.
“헉!”
박준이 자신도 모르게 또 숨소리를 낸 순간.마인이 바닥을 세 번이나 튕기고 처박혀 꿈틀거리는 그때, 붉은 엘프가 돌아섰다.샹그릴라를 향해서, 박준과 그렉과 삼백이와 강흑성을 향해서다.그런데 휘청거린다.
‘부상을 입었구나!’
눈썹을 칼날처럼 세운 강흑성은 붉은 엘프의 상태를 직감했다.마인과의 싸움이 안겨준 결과다.마인의 무공과 비술이 어떠했는지를 봐서 안다.힘겨웠던 싸움, 마검의 힘도 제대로 제어하거나 운용하지 못함이다.
‘마검의 기세가······’
흩어지고 있다.검신에 어린 혈광의 기운이 옅어지고 있다.해가 떠올라 안개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이다.붉은 엘프의 힘이 못 받쳐줘서다.
“너희가 남았지.”
붉은 엘프가 걸음을 옮겨온다.그 순간 박준은 소리쳤다.
“총!”
박준과 그렉이 홀 안의 총을 찾아 몸을 돌리는 순간 굉음이 터졌다.엄청난 소리의 총격음, 삼백이다.t-rex, 장총을 연속해서 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