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3화 (14/172)

혹성강호. 13. 당문의 비기.

13. 당문의 비기.

“그런 거라고?”

박현은 움바바족 특유의 표정 찡그림을 만들어냈다.뭔가 놀라고 당혹감을 느꼈을 때의 표정이다.그런데 다른 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냥 흉악한 표정이다.그게 확실히 다르다는 걸 같이 자란 박준은 알고 있다.

“그래, 반화성조직 이름이 ‘미래’ 라고 하더라. 그놈들한테 잡혀서 제물이 될 뻔했다가 살아난 거야. 햐, 생각할수록 기구하고 기묘한 운명이지.”

콩나물을 다듬으며 박현은 눈을 더 찡그렸다.

“그놈들이 하프타이그란 인걸 알고서 그랬다는 거잖아? 열여덟 생일이 되는 날 잡아먹으려 했다고?”“넌 사람 말을 어디로 듣냐? 야! 콩나물을 다듬는 거야 뭉개는 거야!”

버럭 소리친 박준은 머쓱해 하는 거대한 동생 박현을 보고 한숨 쉬었다. 저 큰손으로 해장국 해 먹을 콩나물을 다듬겠다고 한 것부터가 문제다.

“그놈들이 흑성이를 잡아먹으려한 게 아니고 대법에 사용할 제물로 쓰려고 했다잖아. 그놈들 뿌리가 적호문인데, 실전된 절기를 복원하기 위해서 말야. 그러니까 하프타이그란이란 존재가 필요했던 게 확실하지.”“어, 그놈들이 적호문이라서, 그게 그렇다는 말이 되긴 하는데······”

언제부턴가 돌기 시작한 소문이다. 호랑이인간의 피와 영혼을 제물로 바치면 적호문이 부활할 거라는 소문, 근거 없는 헛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아 이거 정성을 들였더니 콩나물이 아주 잘 자랐네, 그지?”

박준이 콩나물의 크기와 모양에 흡족해 하는 동안 박현은 흉악한 민대머리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삼켰다.

“흑성이란 놈이 원래 엄마하고 숲에 살았다는 거 아냐? 엄마가 죽자 그놈들이 접근해서 돌봐주겠다 하고 잡아 간 거고? 그렇게 오년동안 성년 생일이 되는 날을 기다린 거고? 그럼 그놈들이 처음부터 노렸던 거지?”

처음부터, 숲에서 강흑성이 엄마와 살던 어린 시절부터.

“왜 아니겠냐? 귀신대가리들이 뭉개버린 그놈들, 적호문이 정말 뿌리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악한 주술에 물든 개잡것들이 분명하다. 너도 알지? 주술사라는 것들이 얼마나 교활하게 사람들을 등쳐먹고 해치는지?”“그럼그럼.”

커다란 머리를 끄덕이는 동생 박현에게 박준은 조금 다른 표정으로 은밀한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런 일들이 다 개소리고 헛지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전설로나 전해지던 일들을 직접 겪으니까 생각이 완전 달라졌다.”“단혈보검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고 정찰본대가 출동했다는 내막을 박현은 어제 들었다. 정말로 놀라고 충격을 먹었다. 그래서 눈빛과 숨이 신중하게 나온다.

“그것도 그거지만 흑성이 걔가······”

말하려던 박준은 머뭇거렸다.단혈보검이 어디 있냐는 동생 박현에게 칙칙한 철검이 된 걸 보여줬다.강흑성이 마기를 먹어서라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이제 그 얘기를 할 참이다. 탈태환골 한 것까지 포함해서.

빠라바라밤!

갑자기 울리는 소리에 박준은 흠칫하며 눈썹을 세웠고 박현은 눈을 부라렸다.

“이건 무슨 소리야?”

연속해서 울리는 빠라바라밤, 원인을 박현은 찾았다. 자신에게 괴수사냥총을 겨눴던 골동품 로봇, 삼백이가 샹그릴라 앞을 달리며 내는 소리다.

“저 쇳덩이 새끼가 뭐하는······”“야! 빨리 지하실로 들어가!”

평상에서 벌떡 일어선 박준의 다급한 떠밀림에 박현은 어어 하며 움직였다. 거구의 움바바족이 인간에게 떠밀리며 가는 모습은 영 이상하다.

* * *

게틀러의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브라이튼은 미간을 좁혔다.샹그릴라의 숙소 앞, 젊은 놈이 불을 지피고 있다.저걸 아마도 가마솥이라고 하는 것일 텐데, 뭘 끓이려는 건지 그 앞에 붙어서 불을 보고 있다.

‘저놈.’

뭔지 모를 기묘한 느낌을 주는 인간, 그 모습을 잠시 동안 응시하던 브라이튼은 게틀러에서 내렸다. 두 손을 모아잡고 다가오는 사장 박준의 비굴한 미소를 보며 주변을 돌아봤다.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건 없다.

‘여길 다시 온 이유가······’

분명치 않다.뭔지 모를 모호한 예감이 자꾸만 입안의 모래처럼 지금거려서다.그보다 더 분명한 이유라면 단혈보검을 가지고 도주했다는 무인의 행방을 찾지 못해서다.수림 어느 방향으로도 그놈의 종적은 없다.

“정찰대장님 수고가 정말 많으십니다. 대원들에게 음료라도 대접할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박준이 두 손을 비비며 말하자 브라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반응으로 박준은 바로 그렉에게 손짓했고, 창고문을 연 그렉은 화성박스를 꺼냈다.락을 풀자 냉기가 빠지고 뚜껑이 열렸다. 맥코라인이 한 가득이다.정찰대원들이 맥코라인을 받아 마시는 걸 보던 브라이튼은 입을 열었다.

“여기 출몰했던 놈들 말고 다른 놈들의 조짐이나 동태는 없었나?”

반짝이는 눈빛을 숨기며, 이 물음의 근원이 뭔지를 헤아리며 박준은 대답했다.

“글쎄요. 워낙 경황없이 벌어졌던 일이라서요, 외부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무리의 수상한 동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샹그릴라 주변으로는요. 수림과 그 외지역이야 아시다시피······”

브라이튼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박준의 말을 잘랐다.

‘그래, 언제나 온갖 것들이 득시글대지.’

물어본 이유도 그거다, 숲에서 퓨리엔트족의 흔적을 발견했다.대여섯씩 무리지어 사냥하는 종족, 그런데 요즘엔 수십의 무리로 뭉치고 있다.그 경향과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

‘여기서 뒈진 퓨리엔트족놈들이 수림에서 이동한 흔적의 무리와 연결된 거라면? 그래서 그놈들의 흔적이 주상절리에서 끊어진 거라면? 그 무리가 앞서 카슨팀이 박살냈다는 무리와 이어진 연장선의 일이라면?’

주상절리, 고대에 생긴 임진강가의 절벽이다.퓨리엔트족무리의 흔적은 거기서 완전히 사라졌다.기왕의 흔적도 유능한 사냥꾼종족인 그놈들이 거의 지웠었지만, 그레도 찾아내 거기까지 추적했는데 결국 놓쳤다.

‘그놈들이 단혈보검을 가진 놈을 사로잡아 간 거라면?’

가능성이다.붉은 엘프 레드파운틴족과의 싸움으로 그로기 상태였다는 놈, 부상으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을 그놈을 퓨리엔트족이 잡았을 수 있다.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지금으로선 그것 밖에 잡을 것이 없다.

‘송골매와 진돗개도 소용없으니······’

퓨리엔트족이 주상절리에서 어디로 이동한 건지를 생각하던 브라이튼은 다시 시선을 샹그릴라 숙소 앞으로 돌렸다. 젊은 놈을 무심히 바라봤다.

* * *

“당신이 마교의 후인이라고?”

물음을 던지는 존재, 움바바족의 거대한 체구를 묘진위는 새삼스레 바라봤다.다행히 일어서도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는다.박준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거다. 움바바족 동생이 불편하지 않도록 깊고 넓게 만들었다.

‘세상엔 정말 예상치 못할 기묘한 일들이 많구나.’

박준과 눈앞의 움바바족이 박준이란 이름으로 형제라는 현실을 묘진위는 기묘한 숨으로 삼켰다. 어젯밤에 들었고 보기도 했지만 정말 새삼스럽다.

“저 검을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다 그렇데 됐다고 들었지만, 헤, 저건 그냥 고철 같은데? 아무리 봐도 특별한 물건이라고 생각되는 구석이 없잖아?”

구석으로 밀어놓은 테이블 위에 놓인 검.칙칙한 철검이 된 패천마혈을 보는 묘진위의 눈은 미세한 떨림을 만들어 냈다.자신도 이 결과를 이해하기 힘들어서다.강흑성이란 청년이 검의 힘을 흡수한 건 괴사다.

“아, 저것들 싹 쓸어버렸으면 좋겠구만.”

지상의 기척을 감지하며 박현은 짜증과 살기를 드러냈다.움바바족이기에 태생적인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모습, 묘진위는 절로 침을 삼켰다.

“어떠셔? 몸만 괜찮으면 귀신대가리 저것들 쓸어버릴 수 있으셔?”

다시 돌아온 박현의 시선과 물음에 묘진위는 미간을 찌푸리듯 좁혔다.

“싸움이 정말 대단했다던데? 마치 십대문파의 고수들이 싸우는 것 같았다고 그러던데? 맞아, 그런 싸움을 형이 어디서 봤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태어나서 그런 싸움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르더라니까? 물론 원래 뻥이 센 사람이긴 한데, 이건 진짜 같더란 말이지.”

묘진위는 시선을 내리고 기억을 더듬었다.붉은 엘프와 싸우던 순간, 치열하고 처절했던 싸움이다.반드시 이겨야 했기에 대법의 힘을 빌렸다.

‘혼천무상대법.’

완벽하게 전해지지도 않았고 완벽하게 익히지도 못한 그 대법의 힘으로 겨우 싸웠다.천지간에 퍼진 원혼들의 힘을 끌어들이고 본원진기를 사용했다.그렇지만 졌다. 패천마혈의 마성을 깨운 자를 이길 수 없었다.

‘붉은 엘프, 그 역시도 레드파운틴족의 비기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런 싸움이었다.서로가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던진 싸움.그 싸움은 다른 자의 눈에는 절정고수들의 싸움으로 보였을 것이다.그런 싸움을 다시 하기도 힘들지만, 이제 망가진 이 몸으로는 걷기도 힘들지 모른다.

‘기경팔맥이 엉켜버린 내상을 다스리지 못하면······!’

새삼 처지의 암울함을 자각한 묘진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묘진위를 바라보던 박현은 민대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불만을 중얼거렸다.

“암말도 안하네. 아무튼 인간 놈들 중에 친절한 놈이 없다니까. 우리 형만 빼고.”

말해 놓고 박현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형이 친절해? 그거 아니잖아?”

혼자서 중얼거리고 불퉁거리는 박현을 두고 묘진위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 * *

“저것들 때문에 맥코라인만 뽀갰네요.”

그렉이 멀어져가는 정찰대를 보며 인상을 썼다. 손에는 맥코라인캔을 들고서다. 입에 대고 벌컥대며 마신다. 그걸 본 박준이 차갑게 선고한다.

“월급에서 깔 거다.”“에?”

그게 무슨 소리냔 표정의 그렉은 바로 험악한 표정을 만들고 캔을 우그러뜨렸다. 부라린 그 눈을 똑바로 받아내며 박준은 야멸치게 지시했다.

“창고 단도리 잘해!”

돌아서는 박준의 뒤에서 그렉은 욕을 했다, 아주 작게.

“좀생이 수전노.”

귀를 쫑긋한 박준은 바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너 뭐라고 했어!”

그렉은 강흑성 쪽으로 가며 귀를 후볐다.고리눈을 한 박준이 바로 따라가는데 강흑성이 일어섰다.가마솥에 끓이던 걸 옮긴 그릇을 들고서다.

“어, 다 된 거냐? 그런데 그게 뭐냐?”

그렉이 묻자 강흑성은 그 뒤의 성난 얼굴인 박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탕약입니다.”“탕약? 무슨 탕약인데? 보약 같은 거냐? 정력에 좋은? 누구 주려고?”

연이어 물음을 던지며 그렉의 앞으로 나선 박준의 눈은 기대로 반짝였다. 그렉을 쫓아오며 팰 것 같던 성질난 얼굴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아 김칫국.”

그렉의 한마디에 박준은 고개를 홱 돌리며 직전 얼굴을 했고, 강흑성의 대답이 그때 나왔다.

“내상 치료에 복용하는 탕약입니다.”

눈싸움하던 그렉과 박준은 다시 강흑성에게 눈을 돌렸다.

“내상 치료?”“마교무인 줄 거구나? 그거 만들려고 아침 일찍 숲에 갔다 온 거냐? 약초 캐러?”

이제 답을 알았다는 그렉의 뒤로 박준이 의문을 드러냈다.

“그랬다고? 그런 약을 만들 줄 알았냐? 그게 정말 약효가 있는 거야?”

묘진위의 상태가 대단히 위중한데, 그런 걸로 치료가 되겠냐는 의구심.

“육합신탕이라는 겁니다.”

강흑성은 담담한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 했다.

“당문의 비전비술로 만드는 탕약입니다. 이걸 만들려고 테스라의 독주머니를 거의 썼습니다. 독과 어우러질 약초들을 넣어서 약효를 내는 겁니다.”

황당한 눈빛의 박준이 바로 물음을 던진다.

“당문의 비전비술 탕약? 그런 걸 네가 알아? 테스라의 독주머니로 만들었다고? 약초를 뭘 어떻게 넣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독약 같은데?”

그렉도 비슷한 눈, 박준은 심중에 들어찬 본질적인 의문을 또 던졌다.

“뭐 하러 이러는데? 그 마교 무인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강흑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하게 대답했다.

“탕약이 듣는지 안 듣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그렉과 박준은 미간을 좁혔다가 서로를 돌아봤다.강흑성의 대답, 품은 의미를 이제 알았다.묘진위를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확인하려는 거다.만들어낸 탕약이 효과가 있는 지다. 한마디로 묘진위는 몰모트인 거다.

* * *

탕약이 든 큰 그릇을 받아든 묘진위는 잠시 동안 아무 반응도 내지 않았다. 흑색의 약물만 응시했다. 그러며 강흑성이 말한 내용을 곱씹었다.

‘당문의 육합신탕.’

그 이름을 들은 것도 놀랍고 황당하지만 약을 만들어 준 존재는 더 놀랍고 황당한 것이다. 그러니 이 약이 무엇이든 의심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어차피 화성의 의료진에게 가지 않으면 자신은 폐인이 될 것이다.

‘이대로 먹고 죽는 다 해도······!’

눈동자에 돋아난 흔들림을 묘진위는 조소로 밀어냈다.절로 입가에 피어나는 자괴의 미소다.이 마당에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을 거리낄 것인가.천천히 시선을 든 묘진위는 강흑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고맙네.”

진심을 전한 묘진위는 육합신탕을 벌컥 대며 마셨다. 그 모습을 강흑성은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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