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8화 (19/172)

혹성강호. 18. 블루마운틴과의 혈투.

18. 블루마운틴과의 혈투.

‘제발!’

그렉은 기원하고 간절히 바랐다.강흑성이 무사하기를, 아무 일도 없기를 간구했다.하지만 그게 부질없는 바람이란 걸 안다.츄란족을 뒤쫓는 강흑성의 뒤로 붙은 게 블루마운틴이다.그 괴수는 끝장을 보는 놈이다.

‘목표로 노린 건 반드시 뭉개버리는 놈······!’

그게 사냥이라는 필요에 의해서든 단순히 짜증을 풀거나 기분전환을 위한 여흥이든, 블루마운틴은 타깃을 정하면 기필코 피와 죽음을 연출한다.그 지독한 괴수의 표적이 됐으니 암담하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하프 타이그란.’

태어나서 그렉 자신도 처음 본 존재가 강흑성이다.인간과 타이그란 족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반은 인간 반은 타이그란이다.타이그란족 내에서도 비현실적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그 특별한 존재와 인연을 맺었다.

‘인간과 타이그란족의 결합으로 2세가 태어난 경우는······’

말로만 있을 뿐이다.그래서 더욱 신비하고 특별한 존재가 하프 타이그란이다.강흑성은 어머니가 타이그란족이라고 했다. 그것이 더 특별한 경우다.인간 여자와 타이그란 남자의 결합이 일반적이고 거의 전부다.

‘강흑성, 그놈이 어쩌면······’

그렉은 기억을 더듬었다.타이그란 족의 전설로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다.말세에 이르러 세상을 포효하고 뒤집어엎을 존재가 나타난다는, 그 존재는 무엇으로도, 누구도 막지 못하고 거스를 수 없다는 전설이다.

‘타이그라툰······!’

자신도 모르게 으르르 어깨를 떤 그렉은 그 순간을 떠올렸다.샹그릴라에 단혈보검을 가지고 나타났던 자들의 싸움.붉은 엘프와 마인 묘진위의 그 무시무시했던 결투, 그러나 마지막에 마검을 취한 건 강흑성이다.

‘그 검을 들고 나갔어······!’

마검의 혈광을 흡수해버린 강흑성, 하프타이그란인 그가 그 마검을 쥐고 간 거다.츄란족들을 치러 갔다. 그 뒤로 블루마운틴이 붙었다.그리고 그 뒤로 그렉 자신과 박준이 가고 있다.이 일은 예측이 전혀 안 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강흑성은 츄란족에게 죽어야 하고 그놈들은 블루마운틴에게 몰살당해야 하지만, 그게 지극히 정상이지만······ 아닐 것 같아.’

상념을 박살내는 차의 요동에 그렉은 손잡이를 움켜잡았다.박준이 괴성 같은 환호를 지르며 개울로 내리닫고 있다.뭐라고 하기도 전에 개울을 차고 달린다. 옆으로 물이 튀고 짚프는 맹수처럼 달려 나가고 있다.

“이 맛에 이 차를 모는 거야!”

도대체 지금 상황 뭔지 알기는 아는 건지, 흥분한 사장 박준을 보던 그렉은 고갤 떨궜다.

* * *

패천마혈의 광란 같은 꿈틀거림, 준동을 강흑성은 밀어내거나 제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직전 같은 무모한 짓을 말아야한다는 자각과 함께 떠오른 무공, 마교의 혼천무상신공을 운기했다. 패천마혈은 공명을 한다.

‘그래!’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강흑성은 무원신풍의 신법을 펼치며 블루마운틴에게 쇄도했다. 놈의 머리 두 개에 달린 눈알 네 개가 시퍼런 안광을 쏘아내고, 네 개의 팔이 각기 몽둥이와 돌도끼를 쥔 채 내리치는 속으로다.

‘무원도법!’

패천마혈의 광포한 마기를 공명으로 제어하며 강흑성은 당문비전의 무적도법을 펼쳤다.대포알 거머리들을 상대로 호미를 가지고 처음 펼쳤던 무공.마구잡이 칼부림에 불과한 것이지만 흐름을 이해하며 올라탔다.

캉!

블루마운틴의 첫 번째 몽둥이를 패천마혈로 비껴낸 강흑성은 휘청했다.당연한 결과다. 괴수의 몽둥이는 거의 사람 몸통만한 것, 그 파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하지만 흘려냈다. 이제 아랫배를 찌르는 거다.

‘무원일격!’

온 힘과 정신을 다해 패천마혈의 찌르기를 펼쳐낸 강흑성.그 머리위로 커다란 돌도끼가 내리 찍혔다.예상을 뛰어넘은 블루마운틴의 반응.강흑성은 본능적으로 펼친 무원신풍의 보법으로 피했다. 간발의 차다.콱! 바닥을 찍은 돌도끼의 힘이 진동을 일으켰다.강흑성이 신형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세 번째 공격이 닥쳤다.또 다른 몽둥이다.무지막지한 그 공격이 닥쳤을 때 강흑성은 알았다.팔 네 개 달린 괴수의 힘을.

‘내가 잘못 가늠······!’

생각을 이을 새 없이 몽둥이를 맞았다.패천마혈로 받아쳤지만 몸이 날아간다.거대수와 충돌해 떨어졌다.우수수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가운데 그 남자의 영상이 보인다.붉은 엘프의 검을 받아낼 때의, 아버지가 다시 춤춘다.

‘뭐······’

감각이 사라진 몽롱한 의식, 자아마저 사라진 환영이라는 걸 강흑성은 알았다.그때처럼, 몸과 마음이 죽음의 위기를 맞은 순간이다.아버지가 온몸으로 무공을 펼친다.천지를 뒤집고 때려 부순다.아아 황홀하다.

“쿠헥!”

토혈을 하며 몸을 일으킨 강흑성은 흑청빛 안광을 뿜어냈다.자신과 같이 날려 와 거대수의 몸통에 박힌 마검 패천마혈이 웅웅대고 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피를 간구하는 그 울음을 무시하고 블루마운틴에게 갔다.쾅, 쾅, 삼백이가 t-rex를 연사하고 있다.그 총격을 돌도끼로 막아내며 블루마운틴은 움직인다.여자들과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저대로면 일분 안에 블루마운틴의 몽둥이와 돌도끼에 고깃덩이로 변할 거다.

‘무원비천류.’

환영 속 아버지가 풀어내고 춤추는 무공.맨손으로, 온몸으로 천지를 뒤집는 박투술이다.그 의미와 깨달음의 폭풍 같은 전율 속에서 강흑성은 달려갔다.삼백이에게 몽둥이를 내려치는 블루마운틴의 등을 향해 도약했다.그 순간 놈의 거대한 몽둥이가 휘돌았다.삼백이를 내리치려던 것이 뒤를 향해 횡격을 뿌린다.점프한 상태인 강흑성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그대로 맞았다. 하지만 맞는 순간 옆으로 휘돌며 몽둥이를 잡았다.휘릭 돌아가는 강흑성의 모습과 더불어 블루마운틴의 몽둥이도 돌아갔다.사람 몸통만한 굵기의 몽둥이는 빨래가 비틀리는 것처럼 비틀려 터졌다. 그렇게 만든 강흑성은 휘돌아 땅을 튕기며 다시 떠올라 회전했다.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떠오른 강흑성.그 형상으로부터 번개의 채찍 같은 발차기가 나왔다.용선풍의 회축, 블루마운틴의 오른 머릴 강타했다.

* * *

쾅, 쾅, 숲을 울리는 총성이 뭔지 모를 수 없다.삼백이가 가져간 t-rex가 불을 뿜는 소리다.정확한 상황이 뭔지 모르지만 위급하다.츄란족과 블루마운틴인데 두말하면 입 아프다.바로 저 앞에서 섬광이 터진다.

“밟아요!”

박준에게 격하게 소리친 그렉은 빔건을 자동으로 조정했다.w-2000 소총의 개조형이다.분당 1000발의 에너지 탄을 퍼부을 수 있다.하지만 이런 무기를 츄란족도 가졌다. 그런데 블루마운틴을 향한 공격이 없다.

‘뭐지?’

어째서 삼백이의 괴수사냥총 소리만 들리는 건지, 저 상황이 뭔지 그렉은 흥분된 의문을 삼켰다. 그 마음을 아는지 박준은 최대로 달렸다.맹수 같은 소리로 달린 차는 관목 숲을 짓밟고 나갔다. 그렇게 봤다.

‘저!’

차 지붕 위로 몸을 세운 그렉은 빔건을 겨눈 모습 그대로 얼어붙었다.블루마운틴과 강흑성을 봐서다.강흑성이 블루마운틴을 발로 후려 찼다.

“저거 뭐야!”

박준이 급정거 하면 뱉은 외마디가 그렉의 심정이다.

* * *

강렬한 감각.발에 걸린 블루마운틴의 안면타격감을 전율로 삼키며 강흑성은 착지했다.새 깃털이 휘돌아 내리듯 땅을 밟은 그 순간 블루마운틴은 휘청거리다 결국 넘어졌다.엉덩방아를 찧은 놈은 격노를 터트린다.

우워어엉!

수림을 뒤흔들며 퍼지는 엄청난 괴성.블루마운틴은 손에 남아 있는 돌도끼 두개와 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땅을 밀며 일어섰다.회축에 맞은 오른 머리의 아래턱은 비틀려 있다. 그걸 돌도끼 잡은 손으로 잡아 맞춘다.부득, 소리와 함께 턱이 맞춰지는 순간에 강흑성은 서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턱을 맞추느라 땅에 찍어놓은 블루마운틴의 돌도끼 자루를 차고 올라갔다.당황한 놈의 눈알 네 개가 파란 빛을 낼 때 주먹을 날렸다.

무원비천일권붕.

미사일이 터져나가는 것처럼 몸통을 비틀어 터져나간 강흑성의 왼 주먹이 블루마운틴의 왼 머리 미간에 꽂혔다.뻑 하는 소리보다 큰 감각을 느끼는 강흑성을 놈의 턱 맞추던 두 손이 강타했다.파리를 잡듯이다.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강흑성은 최선의 방어를 택했다.두 팔과 두 다리를 모아,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공처럼 몸을 만든 상태에서 그 공격을 받았다.형용하기 힘든 충격이 강타했다.블루마운틴의 양 손바닥 힘, 육신이 터질 것 같은 파워다.아찔한 의식 속에서 떨어져 땅을 굴렀다.

‘흐윽!’

직전의 토혈과는 다른 토혈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하지만 강흑성은 삼켰다.흑청빛이 무섭게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블루마운틴을 응시하며 움직였다.왼 머리가 뒤로 넘어간 놈은 고통과 당황으로 휘청대고 있다.

크워어엉!

턱을 맞춘 오른 머리로 괴성을 지르는 놈.그렇지만 합장한 손바닥 공격의 두 손이 아닌 몽둥이를 잡은 두 손이 늘어져 있다.왼 머리의 지시를 못 받는 거다.그러나 그 대신 합장공격 했던 두 손이 돌도끼를 휘두른다.머리 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돌도끼의 벼락을 흑청빛 눈으로 노려보며 강흑성은 무원신풍보를 밟아 나갔다. 왼손바닥으로 돌도끼 날을 치며 반보를 이동하고, 오른손으로 두 번째 돌도끼 공격도 그렇게 흘려냈다.강흑성이 유령처럼 지나간 자리에 블루마운틴의 내려친 돌도끼 두 개가 박혔다.무산된 그 공격에 블루마운틴의 시퍼런 눈알이 흔들렸고, 흐르는 바람처럼 떠오른 강흑성은 블루마운틴에게 무원비천각을 올려 찼다.

콰흑.

기이한 소리가 뒤를 잇는 가운데 파란 피와 살점들이 휘날렸다.블루마운틴의 왼 머리가 박살나서 흩어졌다.거구를 경련하며 물러나는 블루마운틴에게 강흑성은 떠올랐다가 휘돌아 내려앉으며 주먹을 내리쳤다.두 번째 무원비천일권붕.내려박는 그 주먹이 친 블루마운틴의 왼 머리를 오른 머리처럼 터트렸다.삼미터의 거구는 결국 쓰러졌고 경련했다.그 몸통 위에 올라 탄 강흑성은 흑청빛 눈으로 미친듯이 주먹을 내리쳤다.새파란 블루마운틴의 피가 튀고 살점과 뼈들이 부서져 휘날리는 가운데 삼백이와 그렉과 박준이 강흑성을 지켜봤다. 셋 다 넋 나간 눈을 했다.

* * *

“하아.”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는 박준에게 그렉은 위로 아닌 위로를 던졌다.

“고민해봐야 답 안 나옵니다.”

그렉을 확 쏘아봤던 박준은 다시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게스트하우스를 차지한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강흑성을 생각하니 그저 한숨이다.

“저 자식 하는 소리 들었지? 나 더러 방법을 만들라잖아? 아니 내가 신이냐? 겨우 술장사나 하는 놈이 무슨 수로 여자와 아이들을 책임 지냐? 뭐? 그렇게 해주면 대가를 치르겠다고? 어떤 독에도 듣는 해독약이라고?”

웃기는 소리라는 어투지만 박준의 눈동자가 계산으로 빛나는 걸 그렉은 알고 있다. 처음 그 말을 강흑성에게 들었을 때부터 저런 눈이었다.

‘돈 되는 거라면, 으이그.’

속마음을 숨기고 그렉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받았다.

“책임지라는 게 아니잖아요? 안전하게 있을 곳을 찾아보자는 거죠.”“그게 그 말이잖아! 내가 무슨 수로 그렇게 해!”“공짜로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요 뭐.”“아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에, 흑성이가 그 말을 한 데는 아마도······ 동생이 있는 움바바족 마을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요?”“뭐?”“거기로 여자와 아이들을 보내면 되잖습니까? 그들이 보호해주면 되죠. 어떤 미친놈이 움바바족이 보호해주는 여자와 아이들을 노리겠어요?”“어 그건······”

둘이 그러고 있는데 명희라는 여자 아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사장님, 뭐 시키실 일 없으세요?”“엥? 뭐라고?”

놀란 얼굴의 박준에게 명희는 환한 웃음이 걸린 얼굴로 낭랑히 말했다.

“흑성 오빠가 그랬어요, 우릴 진짜로 살려주시는 분은 사장님이라고요. 감사하고 감사해요, 뭐든 할 일이 있으면 시켜주세요. 저 일 잘해요.”

박준은 표정 감추느라 얼굴이 붉어졌고 그렉은 고개 돌리고 큭큭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