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22. 이종(異種).
22. 이종(異種).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푸른 불을 품은 것 같다.야수족의 눈이야 원래 다 그렇지만 저 눈은 그 이상이다.어두워지는 숲을 뚫고 퍼지는 푸른 안광은 마치 어머니가 이야기 해 주시던 도깨비불, 그것 같다.
‘다른 자들이 있구나!’
피부를 자극하는 기감, 분명히 다른 존재들의 기운이다.괴이한 모습의 캐리언족도 그걸 느끼고 있다.흉악한 적의를 발산하며 털을 곤두세운다.
크르르르.
캐리언족의 낮은 그르렁거림이 퍼져나가는 숲.어둠이 내려앉는 저 안에 기운을 숨기지 않는 자들이 다가오고 있다.칼날 같은 예기를 발산하고 있다.이제 확실히 알겠다. 캐리언족을 쫓아온 자들의 움직임이다.
‘무공을 가진 존재들······!’
본능으로 직감하며 강흑성은 숨을 멈췄다. 각인된 기억처럼 떠오르는 혈도들을 폐쇄하며 귀식대법을 펼쳤다. 최대한 웅크린 채 상황을 지켜봤다.
‘여섯.’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여섯 명이다.하나같이 검을 들었다.검신이 두껍고 날이 긴 장검이다. 검신에는 선명하게 매화꽃 문양이 보인다.
‘매화검문!’
여섯 사내가 그들임을 강흑성은 깨달았다.복장은 제각기지만 검이 정체를 말해 준다.매화검문, 멸문했다가 다시 일어선, 기세를 확장하고 있는 문파다.춘천에 들어왔다는, 박준이 조심하라고 강조한 그들이다.
‘저들이 여기서 뭘?’
뭘은 아니다, 캐리언족을 노리고 있다.잡으려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목표가 캐리언족이었던 거다.캐리언족도 적의를 발산하고 있다. 흉악하게 강렬한 살기와 분노다.저들은 서로 알고 있다.
‘무슨 내막이지?’
호흡과 기운을 감춘 상태로 강흑성은 상황을 지켜봤다.매화검문 여섯 사내가 캐리언족을 둘러싸는 모습, 이를 드러내고 그릉거리는 캐리언 족의 등에서 칼날이 더 크고 흉악하게 돋아나오는 광경, 그리고 찰나의 격돌.흠칫하며 강흑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캐리언족의 비호같은 움직임이 예상을 뛰어넘는다.여섯 사내 중 목표로 한 무인을 칼날 같은 손톱으로 후려쳤다.그렇지만 사내의 반응도 벼락같다. 물러서며 검으로 받아친다.
‘매화일섬!’
본 순간 강흑성은 초식명을 외쳤다.마음속의 외침이지만 강렬한 깨달음과 기억의 재생으로 빚어낸 천둥이다.그 울림의 전율을 삼키며 봤다.캐리언족의 무시무시한 공격과 그걸 여유롭게 받아치는 무인들의 공방.
‘매화검진이구나······!’
여섯 사내, 매화검문의 무인들이 이뤄내는 것은 매화검진이다.중원의 화산파에 뿌리를 둔 무공이지만 세상을 넘고 세월이 흐르며 변화한 검법과 검진이다. 화려한 매화의 꽃잎들이 어우러지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다.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사로잡으려는 거야.’
매화검문 무인들의 대응을 보고 강흑성은 그렇게 판단했다.그런데 직전에 보인 기세와는 달라서 혼란스럽다.매화검문 사내들은 처음 존재를 드러낼 때 살기를 여지없이 발산했다.사로잡겠다는 의지가 아닌 거다.
‘저들은 대체······’
의문으로 미간을 좁히던 강흑성은 그 찰나 경직했다.캐리언족의 몸에서 칼날들이 폭발해 나가서다.마치 번개가 터져나가는 것 같은 광경.매화검진의 여섯 무인들은 당황했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검을 휘둘렀다.동시이며 여섯 번의 충돌음과 불꽃이 숲의 어둠을 흔들었다.매화검문의 여섯 사내는 비틀거렸고, 그 순간 캐리언족이 한명을 노리고 달려들었다.무인이 매화일섬을 내질렀지만 캐리언족은 그 검을 피하지 않았다.콰훅, 검이 캐리언족의 어깨를 파고 들어갔다.그렇지만 캐리언족은 찰나도 멈칫거리지 않았다.어깨를 찌른 검을 움켜잡고 무인의 손목을 강타했다.피가 흩어지는 것보다 먼저 무인의 오른 손목이 잘려 날아갔다.
‘저!’
강흑성은 눈을 부릅뜬 채 전투를 바라봤다.캐리언족이 손목을 자른 무인의 멱에 발톱을 쑤셔 박는 광경, 배후로 달려드는 무인에게 어깨의 검을 뽑아 후리는 모습이다.검과 검이 부딪치던 그 순간 손톱을 날렸다.
‘저럴 수가! 팔이 네 개라서 가능한 움직임이구나!’
바로 직전에 무인의 손목을 자르고 목을 쑤신 캐리언족, 그 손이 아닌 두 번째 팔들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톱이 미사일처럼 튀어나갔다. 불과 일 미터 남짓 거리의 무인에게, 그 가슴에 칼날 같은 발톱을 날렸다.퍼퍼퍼퍽, 하는 소리로 무인은 뒤로 튕겨나갔다.
“죽여!”
남의 사인의 무인 중 일인이 외쳤다.두 명의 희생자가 나오자 태세를 전환하는 거다.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강력한 기세로 살기를 발산한다.완벽하게 죽이겠다는 의지, 원래 그랬는데 바꿨던 것을 바로잡음이다.
‘매화멸진검!’
무인들이 펼쳐내는 검법이 그것이다.멸살을 이루며 전진하는 검, 피와 죽음의 검법이다.선명하게 기억난다.이건 강흑성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억이다.아직은 다 모르지만 저 검법을 뼈저리게 겪었다.
‘저대로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잡은 강흑성은 어깨를 꿈틀거렸다.그물침대위에 놓아뒀던 마검 패천마혈을 움켜잡고 살기를 흘려냈다.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매화검문의 검법을 보고 깨달은 순간부터 불같이 치밀어 오른다.
‘이······!’
귀식대법은 깨진 상황.불길처럼 퍼지는 강흑성의 살기에 그들이 반응했다.매화검문의 네 사내 중 일인이 벼락처럼 돌아서 달려온다.거대수의 몸통을 차고 바람처럼 솟구친 그가 머리 위에서 매화검을 내리친다.
* * *
“사장님 정말로 그리샴 장군을 아세요?”
그렉이 다른 사람을 보는 눈으로 박준을 응시하고 물었다.정찰본대장 브라이튼을 어떻게 물러가게 했는지 봐서다.중부지구사령관 그리샴장군과의 친분을 과시, 그걸 압박의 무기로 활용했다.사실이면 기함할 일이다.
“알긴 내가 어떻게 알아?”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박준을 그렉은 황당한 눈으로 응시했다.
“몰라요? 그럼 뻥카 친 거라고요?”
뽀록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 생각으로 그랬냐는 그렉의 눈 흔들림.
“뻥카는 뭐가 뻥카야? 브라이튼 그 새끼가 중부지구사령관한테 물어보기라도 할까봐?”“당연한 거 아니에요?”“응, 당연한 거 아니야.”“아니 뭐 그딴 소릴······”“그 새끼 위치와 깜냥으로는 그런 짓 못해.”
확신에 찬 얼굴로 박준은 뒷말을 이어냈다.
“그리샴장군 같은 사람이 북부지구 정찰본대장의 연락을 받아줄 일이 없어. 대신 정찰대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다고 알게 되면 가만 안 있겠지.”“그렇다고요? 허, 그리샴 장군이 그런 양반이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아니 그래도 명색이 북부지구 정찰본대장인데 연락도 쉽게 못한다고요?”“군과 정찰대가 견원지간인거 거 모르냐? 게다가 화성이면 몰라도 여긴 지구야. 군대의 힘이 훨씬 세지. 그리샴장군은 정찰대를 안 좋아해.”“그래요? 아, 에, 사장님 말이 다 맞다 쳐도, 음 확실히 정찰대하고 군대는 사이가 안 좋긴 하죠.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확신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그렇게 세게 나간 거죠? 어떻게 그래요? 꼭 군대나 정찰대 사이에 있던 사람 같잖아요? 과거에 그런 일 했습니까?”“시끄러!”
빽하고 소리친 박준은 게스트하우스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 자식은 근데 왜 안 기어 나와? 정찰대 놈들이 간 게 언젠데, 뭐하고 있는 거야?”
성질내는 박준의 뒤로 명희와 샤이닌과 진숙이와 제나가 쪼르르 따라갔다.그렉도 개운치 못한 입맛을 다시며 따라갔다.뭔가 박준의 과거가 드러날 것 같았는데 도로 덮여서다.박준은 지하밀실출구를 열었다.
“현아! 야! 박현!”
큰소리로 동생을 부르며 계단을 내려간 박준은 멍청한 눈을 했다.명희와 다른 아이들이 엄마들 품에 안기는 동안, 불안에 떨던 여자들이 비로소 안도의 미소를 짓는 그 속에서, 박현은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쿠와와아, 피우피우피우.”
괴상한 코골이 소릴 내며 잠든 박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준은 냅다 몸을 던졌다. 커다랗게 잠든 박현의 배위에 올라타고 목을 졸랐다.
“이 캐슈방 샹그릴라야!”“켁! 컥! 혀, 형! 크억!”
박준과 박현이 뒹구는 광경을 그렉과 명희와 다른 여자들이 바라봤다.
* * *
십미터 높이의 거대수 위로 솟구친 매화검문의 무인.그가 내려치는 매화검의 일격이 매화단혈이라는 초식임을 강흑성은 안다.절로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매화검.그걸 펼치는 자에 대한 격노가 마검에 전해졌다.번쩍, 강흑성의 손이 붉은 번개를 터트렸다.마성을 드러내며 붉은 광휘로서 울음을 터트린 마검.패천마혈이 공간을 갈라나가는 일섬이다.
‘무원진격!’
강흑성은 그 비공의 진의를 이순간의 깨달음과 적응으로서 펼쳐냈다.당문의 비전도법인 무원도법을 마검 패천마혈로 뻗어냈다.혈뇌전을 터트렸다.위로 솟구친 번개가 낙하하는 매화검문 무인을 치고 뻗어나갔다.
‘벴다!’
짜릿한 전율 속에 강흑성은 결과를 봤다.둘로 나뉜 매화검문의 무인이 거대수 아래로 추락하는 광경이다.거대한 나무의 몸통에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진다.그 순간 돌아보니 캐리언족의 몸에 검 세 자루가 박혔다.
‘당했구나!’
이유모를 안타까움을 삼킨 강흑성은 흑청빛 눈동자를 번득였다.캐리언족을 쓰러뜨린 자들, 매화검문의 남은 세 무인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달려온다. 그들을 향해 무원신풍류로 몸을 던져 낙하해 마주 달려갔다.
‘죽인다!’
가공할 분노의 살기를 품은 채, 그이유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강흑성은 충돌했다.매화검문 무인들의 합격, 상중하를 노린 검속으로 몸을 던졌다.폭포를 차고 올라가는 잉어의 몸짓처럼 휘돌며 패천마혈을 뻗었다.
‘무원혈.’
심중의 그 득심을 영혼으로 체화하며, 휘돌아나가는 온몸으로 펼치며 강흑성은 공간을 뚫었다. 벼락처럼 지나간 그 자리에 매화검문 세 무인이 멈춰 섰고, 주춤거리며 돌아서는 그들의 심장에서 붉은 피가 터졌다.
‘죽였다······!’
부르르 몸을 떠는 강흑성의 앞에서 매화검문의 세 무인은 허물어졌다.뜨거운 피를 심장으로 뿜어내며 마지막 경련을 멈춘 자들.그 죽음을 바라보다 강흑성은 돌아섰다. 무릎을 꿇고 있는 캐리언족, 그 앞에 섰다.
“나 같은······ 존재들이 있다······”
떨리는 고개를 들어 강흑성을 바라보며, 캐리언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놈들이······ 나를 만들었어······”
강흑성은 눈썹을 확 곤두세웠고 캐리언 족은 피 흐르는 입으로 계속 말했다.
“인간과 야수족들을 사냥해서······ 새로운 이종을······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거야······ 매화검문 저놈들이······ 저 악마 같은 놈들이······ 막아야 해······”
캐리언족은 갑자가 오한 같은 경련을 내더니 고개를 떨궜다.예견된 그 죽음을 응시하고 선 강흑성은 뜨거운 숨으로 심중의 충격을 다스렸다.
‘만들어?’
그렇다는 거다, 캐리언족, 이 약한 야수족 남자를 매화검문이 잡아다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다. 눈이 네 개 팔도 네 개, 등에는 칼날이 돌출한, 칼날 같은 손톱을 체외로 발사할 수 있는, 무서운 생체병기를 만든 거다.
“후우.”
깊은 숨을 몰아 내쉰 강흑성은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거대수 위로 올라갔다. 배낭을 챙기고 로프를 걷어 이동했다. 삼십여미터 떨어진 곳의 거대수 위로 올라 다시 로프로 그물침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켜봤다.숲이 움직여 나왔다.피냄새를 맡은 존재들, 고기를 탐하는 온간 것들이 몰려왔다.그것들이 싸우며 시체를 빼앗는 광경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