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25. 크리듐.
25. 크리듐.
흉악하고 무섭게 전개되던 수림 속의 전투는 일순간 멈췄다.무천신권과 무천도검술로 대적하던 퓨리엔트족도, 팔극권과 작두칼로 무지막지한 공격을 펼치던 움바바족도, 수림에 갑자기 나타난 귀신대가리들을 봤다.그렇다, 귀신대가리, 정찰대다.그 정체를 인지한 순간의 경직과 놀람이 충격의 깨달음으로 변하는 것은 역시 찰나.두 종족은 소리 지르며 물러났다.그렇지만 귀신대가리 정찰대는 미니건들을 앞세워 공격했다.
콰르르르르.
미니건이 에너지 탄자를 발사하는 소리가 숲을 흔들었다.섬광의 불줄기가 거대수를 비롯한 수림의 초목들을 꿰뚫었다.그 안의 생명체들도 흩어졌다.퓨리엔트족과 움바바족의 형상이 진흙인형처럼 부서져 날린다.
“전진!”
브라이튼은 단호하게 소리치며 전진했다.소총을 겨누고 미니건의 불벼락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단발사격, 퓨리엔트족의 머리통을 정확하게 부쉈다.그런데 옆에서 움바바족이 달려온다.
우워어!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작두칼을 내려치는 거인종족의 공격.삼월신보를 펼친 브라이튼은 귀신처럼 피했다.그렇지만 움바바족의 공격역시 예상을 넘는 것, 천산마갑 슈트의 가슴을 스치며, 불꽃을 피우며 내려갔다.콱, 땅바닥을 파고 들어간 작두칼을 부릅뜬 눈으로 응시한 브라이튼은 이 순간의 분노를 전신에 휘돌렸다. 움바바족 따위의 칼에 스친 모욕을 삼월신권으로 펼쳐냈다. 작두칼을 타고 올라가 이기각을 차올렸다.움바바족의 턱에 브라이튼의 두발이 연속해서 박혀 들어갔다.바위도 부수는 삼월신권의 이기각에 천산마갑 슈트의 파워가 더해진 위력이다.머리통이 부서져야 한다, 그런데 움바바족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착지한 브라이튼은 상대가 아직 서 있는 이유를 알았다.이기각을 강타하는 순간에 작두칼을 놓은 움바바족이 두 팔로 막아서다.역시 팔극권이다.흉악한 눈을 부라린 놈은 팔극권의 기수식을 잡고 다시 튀어나온다.
“좋아!”
호기롭게 소리를 뱉은 브라이튼은 소총을 버렸다.움바바족의 팔극권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다.무지막지한 주먹과 휘돌아 나오는 팔꿈치, 벼락같은 무릎치기와 산을 부술듯한 몸통치기, 같이 어우러져 다 받아냈다.
“칼을 잡아라!”
소리치며 브라이튼은 움바바족의 가슴을 발로 찼다.그 반발력으로 허공을 떠서 물러났다.휘청하며 팔극봉추의 공격무산과 함께 균형이 무너진 움바바족은 상대의 의도를 알았다. 데바족 정찰대 대장놈, 슈트의 등에서 대검을 뽑아낸다.
“그래, 네놈의 삼월검법이 어느 정도인지 겪어보겠다.”
가라앉은 숨으로 말한 움바바족은 퉤하고 침을 뱉어 가슴의 답답함을 토해냈다.귀신대가리 놈의 발에 맞아 생긴, 교묘한 그 한수를 막지 못했다.그건 목숨을 노린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 치욕이고 분노가 치민다.옆으로 걸음을 옮겨 땅에 박힌 작두칼을 잡은 움바바족.그 행동을 차가운 눈동자로 바라보며 브라이튼은 전투대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이날까지 수련해온 삼월검법의 정화를 떠올리며 흥분과 전율을 삼켰다.
‘경지에 이르면 세 개의 달을 만들어 내는 삼월검.’
지난한 길이다, 평생 못 이룰 길이다.그래도 꿈을 품고 수련해 왔다.삼월문의 무공이 기본공인 군대와 정찰대를 비롯한 모든 무력기관종사자들이 가진 희망, 궁극의 여망, 언젠가는 달을 그려낼 것이란 의지다.
‘나의 달은······’
아직 하나의 달은커녕 달 비슷한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걸 어떻게 이루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한 검, 브라이튼은 가슴 앞에 검을 세웠다.
‘죽음으로 쌓아 나아가는 검.’
고글 안쪽의 눈동자에 서늘한 달빛이 어른거린 순간.브라이튼은 걸음을 냈다.거의 동시에 튀어나오는 움바바족의 커다란 작두칼을 향해 나아갔다.벼락과도 같은 빠름과 힘으로 갈라 내리는 아래서 검을 쳐올렸다.쩡, 수림을 울리는 파괴음과 함께 움바바족의 작두칼이 동강나 날아갔다.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움바바족의 목 아래로 브라이튼의 검이 나갔다.컥, 짧고 명료한 외마디가 움바바족의 입에서 나왔다.찢어지게 눈을 치뜨고 전신을 부들거리는 움바바족, 그의 가슴 아래서 브라이튼은 검을 뽑으며 물러섰다.푸확, 하며 움바바족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달이 뜨려면 아직 멀었구나.”
밤이 되려면 그렇다는 소리가 아니다, 검의 경지가 그렇다는 의미.중얼거린 브라이튼은 전투대검에 묻은 피를 뿌려내고 슈트에 장착했다. 떨어뜨린 소총을 다시 잡고 돌아섰다. 그 순간 움바바족은 앞으로 쓰러졌다.
* * *
“월경자들이 난동을 부린 모양이구나.”
옆집에서 개가 짖었구나 하는 둣한 소리로 말한 남자, 준후가 전복이라고 부른 사내는 제집인 것처럼 스스럼이 없다. 옥상으로 올라와 평상에 퍼질러 앉더니 준후가 주는 물을 시원하게 받아 마시고 장비를 푼다.
“아저씨는 이 많은 무기들을 다 사용하세요?”
볼 때마다 묻고 싶었던 것, 정말 궁금하단 얼굴로 준후가 물었다.전복이란 사내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씩 웃더니 하나씩 들고 이야기한다.
“이 도끼는 퓨리엔트족놈하고 싸워서 뺏은 거다. 그 후로도 여러 놈의 머리통을 이걸로 뽀갰지. 이 단검들은 츄란족에게서 얻은 건데, 쓸모있지.”
쓸모 있다는 말을 하는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나는 걸 준호도 강흑성도 봤다.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이것처럼 유용한 게 없단 말이지. 이렇게 양쪽다리, 허리와 팔에 하나씩, 총 다섯 개면 정말 든든해. 그래도 이런 것만 가지곤 모자라. 도시 밖엔 정말로 온갖 것들이 있거든? 목숨은 하나고.”
그러니 핸드건과 소총과 장도와 투척용 에너지탄과 연막탄을 비롯한 온갖 것들이 다 필요하고 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소리를 사내는 이어냈다.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강흑성은 사내의 시선을 한 번도 못 느꼈다.
‘여기 온 순간부터.’
마치 준후 외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강흑성 자신이 안 보이는 것처럼 굴고 있다. 그게 의도적인 외면과 무관심이 분명하기에 부러 존재를 드러낼 상황도 아니다. 준후도 굳이 인사시키려고 하는 기색이 아니다.
“사장님은 여전히 여자한테는 관심 없지?”
가죽갑주까지 풀어내며 전복이란 사내는 은근한 웃음으로 물었다. 미간을 찡그린 준후는 늘 받아내는 물음이라 대꾸 안하려다 툭 대답했다.
“손님 물건 구하려고 나가셨어요.”“손님 물건?”
그제야 전복이란 사내는 시선을 돌려 강흑성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안 보이던 사람이 하나 보이긴 하는 구나?”
강흑성을 힐긋 돌아본 준후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전복에게 내막을 이야기 했다. 온의상회 사장과 아는 사람이 부탁해서 온 이가 강흑성이란 것, 그 일로 최창수가 나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 다는 내용.
“흠, 그렇군.”
고개를 끄덕거린 사내, 전복은 강흑성은 똑바로 응시했다. 여태 모르는 척 없는 사람취급이더니 이젠 대놓고 저렇게 본다. 물음도 거침이 없다.
“어디서 왔나?”
담담한 얼굴과 눈빛으로 전복의 시선을 받아내며 강흑성은 대답했다.
“서울지구가 끝나고 북부수림지대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전복은 다소 놀란 표정을 만들며 반응했다.
“허 그래? 거긴 꽤나 지독한 곳인데? 서울은 망해서 없어졌지만 요충지라서 늘 감시경계하는 곳인데, 북부지구 정찰대가 활동하는 곳이잖아?”“맞습니다.”
간단명료한 강흑성의 반응을 전복은 유심히 응시했다. 그렇게 새삼 강흑성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그러다 허리벨트에 착용한 단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단도······ 한번 보여주겠나?”
잠시 전복의 눈을 마주 응시했던 강흑성은 바로 단도를 넘겨줬다.평상에 앉은 채로 단도를 받은 전복은 아주 오래된 가죽재질의 도갑을 살펴보다가 칼날을 뺐다. 역시 오래된 단도의 날, 그러나 예기가 시리다.
“이거······ 브리틀단도 같은데?”
단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전복의 눈은 점점 더 강한 빛을 냈다.
“브리틀단도라고요? 그건 데바족만이 만든다는 거잖아요?”
준후가 아는 체 하며 놀란 얼굴을 했고 전복은 고갤 끄덕였다.
“맞아, 그 악마족놈들의 뿔하고 뼈를 기반으로 만든 합금이지. 헤, 이건 확실한 것 같다. 아주 오래된 거야. 디자인을 보니 수백년은 넘었겠어.”“그렇게나 오래됐어요? 그럼 골동품이네요? 비싸잖아요?”“엄청 비싸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야.”
시선을 강흑성에게 돌린 전복은 내천자를 그린 미간으로 뒷말을 던졌다.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보지를 못해서 그렇지.”
여전히 표정 변화 없는 얼굴의 강흑성은 손을 내밀었다.볼만큼 봤으면 돌려달라는 의미, 전복은 기묘한 눈빛을 흘려내면서 제안을 건넸다.
“팔아, 금화 열 개주지.”
준후가 헉 하고 숨 들이켜는 소리로 눈을 치떴다.금화 열 개, 스몰원박스다.상당한 거금이다. 단도하나에 그만한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소용되면 더 좋을 거야. 그렇지 않은가? 팔겠다고만 하면 금액은 조정해 줄 수도 있어. 어때? 이두마차 한 대 값이야.”
이어 나온 전복의 말에도 강흑성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이두마차 한 대 값, 정말로 그렇다. 블랙팬더 두 마리가 끄는 장갑마차다.누구라도 탐내지 않을 수 없는 물건, 그런데 강흑성은 여전히 손만 내밀고 있다.전복은 미간을 좁혔고 곁에서 지켜보던 준후가 형, 하고 말을 꺼내려다 만다.생각해 보면 저 단도는 골동품, 더 받을 수 있는 지도 모른다.전복은 그래서 사려는 거다. 자신이 가지려는 게 아니라 되팔려는 거다.
“눈을 보니 안 팔겠군.”
강흑성은 담담하고 명료하게 이유를 밝혔다.
“부모님의 유품입니다.”
그렇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유일하게 남겨진 물건이다.이 단도를 적호문의 후예인 ‘미래’ 의 보스가 빼앗아 가졌다.그날 도망쳐 나오면서 이 단도를 되찾았다.다신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면야.”
아쉬운 눈길을 거두고 전복은 단도를 강흑성에게 돌려줬다.
“간수 잘해야 할 거야.”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강흑성은 눈빛을 서늘히 흘려냈다.전복처럼 단도의 가치를 알아보는 자들이 있다면 욕심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오는 거다.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일들이 두렵지 않다.
“보통내기가 아닌 걸로 보이긴 하지만······”
기묘한 눈빛으로 말끝을 흐리던 전복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강도단의 금은방 습격소란이 일어난 거리에 자치대가 나타나서다.완전무장한 게틀러가 멈추고 쏟아져 나온 그들은 대부분 라이피언이다.
“허, 저거 봐라? 천산마갑슈트를 입었네?”
전복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게틀러에서 내린 자치대원들이 귀신대가리 정찰대원들처럼 슈트차림이어서다.흉내 낸 짝퉁이 아니라 진품이란 거다.화성에서 내려오는 군수지급품이라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거다.
“야, 이거 대단한데?”
전복은 정말로 감탄하고 놀람을 드러냈다.
“못 보던 사이 또 변했네? 춘천 자치대 수완이 이 정도인줄은 몰랐는걸?”
강흑성과 준후가 들으란 듯이 전복은 연이어 제가 깨달은 짐작을 내놨다.
“뭐야? 그럼 부시장 쪽은 열세라는 방증인가? 자치대가 여기 출동한 걸 보니, 저 험악한 기세들을 보니 알겠는데? 이건 부시장 쪽 작품인 거야?”
강도단의 분란이 부시장쪽의 계획에 의해 연출된 소란이란 결론.
‘그런 건가?’
강흑성은 고요한 눈빛을 흘려내며 자치대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 * *
“이건······!”
브라이튼은 경직한 채 숨을 멈췄다.퓨리엔트족의 애마, 캬이엔의 사체 등에 매달린 상자들에서 나온 검푸른 광석 때문이다.이건 크리듐이다.
‘이놈들이 싸운 이유가 이거구나!’
이제 이유를 알겠다.퓨리엔트족은 크리듐을 갖고 도망쳐왔고 움바바족은 그 뒤를 추격하고 공격한 거다.그렇다는 건 크리듐이 움바바족에게 권리가 있거나 그런 정황이라는 뜻, 퓨리엔트족은 훔치거나 강탈한 거다.
‘이것 때문인 거야? 야수족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깨달음에 눈 밑을 떨며 브라이튼은 분노를 삼켰다.정찰대인 자신들이 이런 상황을 이제야 알게 돼서다.야수족들이 눈에 띠게 몰려들 정도인데 모르고 있었다.수치스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정말 놀랍다.
‘두 상자, 화성박스로 두 박스 정도 되겠어.’
이 정도면 육천가구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다. 대단한 양이다.
‘이걸······’
미간을 꿈틀거리며 생각하던 브라이튼은 카슨에게까지 이어냈다.그와 그의 팀이 다른 팀에 비해 여유롭던 생각이 난다.그게 괴수부산물들을 취해 그런 걸로 생각했지만, 어쩌면 크리듐이 근원인지도 모르겠다.
‘이 지역은 카슨 팀만 활동했으니까.’
꿈틀거리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 진정한 브라이튼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귀대한다!”
귀신대가리 정찰대 세 개 팀 육십 명은 퓨리엔트족과 움바바족의 머리통을 잘라들고 사진촬영 하다 움직였다. 수림엔 피와 죽음이 흘러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