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26화 (27/172)

혹성강호. 26. 침을 구하다.

26. 침을 구하다.

해가 질 무렵에 돌아온 온의상회 주인 최창수는 전복을 보고는 눈길 딱 한번 주는 게 전부였다. 전복역시 이렇다 할 말없이 빙글거리는 미소만 지었다. 그런 속에서 최창수는 강흑성에게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건넸다.

“원하는 물건이 맞는지 확인해 봐라.”

전복과 준후가 관심 있는 눈으로 보는 가운데 강흑성은 나무상자를 열었다.장침부터 중침과 단침까지 가지런하게 들어 있다. 정확히 찾는 것이다. 이젠 이런 걸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용케 구했다.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은 그 한마디로 인사를 한 강흑성은 바로 배낭을 풀었다.싸 가지고 온 블루마운틴 가죽을 꺼냈다.제일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전복이다.

“엇? 저거 블루마운틴 가죽이잖아?”

푸른빛의 가죽, 몰라볼 수가 없는 거다. 머리 두 개에 팔 네 개 달린 괴수, 다른 괴수들과 달리 비상한 머리를 가진 놈, 사냥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존재, 무공고수들이나 움바바족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놈의 가죽이다.

“그, 그걸 어디서 난 거냐?”

전복이 놀람으로 물었지만 강흑성은 최창수의 마른 얼굴을 향해 말했다.

“가진 게 이것 밖에 없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가죽을 본 최창수도 눈동자에 서늘한 이채를 품었다. 블루마운틴가죽과 강흑성이란 청년의 위화감이다. 저런 걸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사냥했거나 훔쳤거나.’

최창수가 내렸던 시선을 강흑성에게 올리는 그 순간 전복이 확 다가와 가죽을 잡았다.

“어디 한 번 보자.”

전복의 손이 블루마운틴의 가죽에 닿으려는 순간 강흑성은 살기를 발산했다. 본능적으로, 내 물건에 허락 없이 손을 대는 존재에 대한 반응이다.흠칫, 전복이 움직임을 멈췄다.강흑성의 전신에서 확하고 폭발하듯이 퍼져 나온 기세가, 눈동자에 떠오른 빛이 뭔지를 알기 때문이다.살기.눈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의 표정이 그거다.손을 안 떼면 각오하라는.

‘이놈!’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게 험악한,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렇게 느껴지는 살기다.이대로 손을 더 움직이면 칼부림을 할 기세다.허리에 착용한 저 단도를 뽑아 목을 딸 것 같다. 그걸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위험한 놈이었구나!’

이제 강흑성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한 전복은 손을 놓고 느릿하게 물러섰다. 도둑이 소리 없이 담을 넘어가듯이, 맹독고슴도치 테스라가 잠든 곁을 지나가듯이다. 그러면서 다리에 찬 단검들을 움켜잡고 숨을 골랐다.

“몰라 봤는 걸?”

차가운 미소를 피워낸 얼굴로 전복은 강흑성을 노려보며 뒷말을 냈다.

“브리틀단도를 보자고 했을 땐 선선히 넘겨주더니 그건 그렇게 반응하나? 워, 아주 무서운데? 단도를 뽑아서 내 모가지를 그어버릴 기세야?”

어느새 전복은 양손에 단검을 뽑아 잡았다. 빙글빙글 돌리며 차가운 미소를 피워낸다. 칼질이라면 지지 않는다는 듯, 어디 한번 해보자는 미소다.

“그것과는 다릅니다.”

단도를 건넨 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 그건 강흑성 자신이 전복의 요청을 받아들인 거다. 허락하고 건네준 물건과 지금 이건 전혀 다른 거다.그 의미를 알고 전복이 말하려는 데 강흑성은 다시 말했다.

“원하는 물건을 구해주신 감사인사를 하는 중입니다.”

살기를 차갑게 가라앉힌 강흑성의 담담한 음성.말한 그대로다, 최창 수에게 감사를 표하고 값을 치르려는데, 그러고 있는데 네가 허락 없이 끼어들어 내 물건에 손을 댔다는 이야기다.이런 건 용납하지 않는단 거다.역시 전복은 알아듣고 미소를 흘렸다.

“은원구분은 확실히 한다 이건가? 뭐 좋아, 나도 귀한 물건이라 흥분해서 그랬지.”

차가운 미소를 빙글거리며 전복은 강흑성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놈 뭐지?’

직전에 본 저 놈의 눈과 얼굴표정으로 드러난 흉악한 기세는 무엇인가 전복은 곱씹었다. 그건 인간에게서 느낄 수 없는, 그 이상의 험악함이었다.

‘눈동자로 뿜어내는 기세가 마치······’

다시 등골에 고이는 서늘함을 밀어내며 전복은 미소를 피워냈다.

“장검을 지녔으니 당연히 무공 한가락은 하겠지? 어때, 한번 해볼까?”

단도를 빙글거리며 옆으로 이동한 전복은 평상 위 자신의 짐 속에서 장도를 잡았다. 스르릉 하고 도신이 빛을 내는 그 순간, 최창수가 소리쳤다.

“집어 치워!”

꿈틀하는 반응으로 눈을 치뜬 전복은 최창수를 돌아봤고, 이글거리는 두 사람의 눈동자는 치열한 칼싸움을 하듯이 얽혔다. 그 시간이 약 10여초, 전복은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섰다. 장도를 다시 갈무리 했다.

“그건 필요 없다.”

다시 건너온 최창수의 목소리에 담긴 의지를 강흑성은 읽었다.블루마운틴 가죽으로 침을 구해준 값을 받을 생각이 없다는 소리.받아들였다.더 권한다고 해서 받을 사람이 아닌 거다, 이 상황에선 물리는 게 맞다.

‘저들은 어떤 관계일까?’

온의상회 주인 최창수와 전복이란 사내, 반가운 척도 않고 아는 척도 않는 이상한 사이, 분명 과거로부터 얽힌 사내들이다. 그 과거가 뭔지 모르지만 샹그릴라 사장 박준도 얽혀 있을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준후야, 저녁먹자.”

최창수가 경직해 있는 준후에게 말하며 꾸러미를 냈다.저게 뭔지 강흑성은 안다.고기다, 아까부터 냄새를 맡았었다. 그런데 무슨 고긴지 모르겠다.똥돼지 듀란과 비슷한 냄새 같으면서도 다른, 처음 맡는 냄새다.

“우와 이거 돼지고기네요? 삼겹살이에요!”

꾸러미 안 내용물을 확인한 준후의 감탄성, 냉기를 풍기던 전복도 돌아서 눈을 크게 떴다.

“돼지고기라고? 그것도 삼겹살?”

준후처럼 확인한 전복은 언제 흉한 기운을 풍겼냔 듯이 활짝 웃는다.

“우와 진짜 돼지고기를 먹게 생겼구나! 아하하하!”

돼지고기란 말에 강흑성은 미간을 좁혔다가 꾸러미를 다시 봤다.

‘저게 돼지고기?’

이름만 들어본 동물이다.돼지, 과거엔 사람들이 대량으로 길러 누구나 먹었다는 고기다.육백 년 전 차원전쟁 후 사라진 동물이 바로 돼지다.한 번도 먹어 본적 없다. 도시에 가면 먹을 수 있다더니 오늘 처음 봤다.

“준후야, 솥뚜껑있지? 얼른 세팅하자!”“네, 가져올게요!”

준후와 전복이 신이나 움직이는 가운데 최창수는 말없이 돌아서 들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흑성은 블루마운틴 가죽을 다시 넣었다.

* * *

게틀러에서 내린 브라이튼은 바로 달려갔다.카슨의 숙소다.치안총국 구급비행선에 실려 간 그때 그대로다.아니, 샹그릴라에서 그 지경이 되기 전에 나간 그대로다.주인 없는 그곳을 뒤졌다. 그리고 찾아냈다.

‘크리듐!’

침대 아래 바닥을 파고 만든 비밀공간에서 찾은 박스, 크리듐이 흑청빛을 신비하게 내고 있다. 오늘 주상절리 수림에서 수거한 분량의 절반정도, 삼천가구의 에너지량이다. 역시 카슨은 뒤로 주머니를 챙기고 있었다.

‘이 새끼, 보고도 하지 않고······!’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실려 간 카슨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브라이튼은 새삼 이를 갈았다. 이런 짓을 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침을 뱉었다. 주인 없는 숙소바닥에 연속해서 침을 뱉은 후 이 상황을 정리했다.

‘도시에 팔아넘기면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블랙시티나 화이트시티, 어디든 에너지가 필요하다.화성처럼 크리듐 기반에너지체제로 조성된 도시들에게 크리듐은 절대 필요물품이다.화성과 같은 금액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보고하면 한 푼도 못 받고 손만 빤다.

‘카슨, 네가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지구에서의 생활, 언제까지 이렇게 살순 없다.지구에서 늙어 죽을 순 없는 거다.아무리 데바족이어도 화성을 이끄는 유력가문 출신이거나 거대문파 출신이 아니면 끝은 졸이다.그럴 순 없다.

‘돈, 돈만 있으면 남은 인생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강렬한 눈빛을 풀어낸 브라이튼은 결심했다.크리듐을 차지하는 거다.주상절리 인근 어딘가에 크리듐 광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움바바족은 그걸 지키려는 거고 진실을 안 다른 야수족들이 그걸 차지하려는 거다.

“네놈들이 가질 물건이 아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림을 뱉어낸 브라이튼은 팀장들을 호출했다. 오늘 일을 숨길 수는 없는 터, 정찰대 전원이 가담하고 협력해야 하는 거다.그럴 수 있다. 이등 군대 노릇의 정찰대, 그 설움과 분노를 씻는 거다.

“돈으로.”

소리 없는 웃음을 브라이튼은 진하게 풀어냈다.

* * *

“이······!”

박현은 부들거리는 숨과 몸뚱이를 주체할 수 없어 휘청거렸다.형제들이 참혹하게 널려 있다.퓨리엔트족의 침범을 뒤쫓던 형제들, 소요산에서부터 이곳 주상절리 수림까지 쫓아와 싸웠다.그런데 모두가 죽고 말았다.

‘귀신대가리 놈들이!’

정찰대가 공격했다.수림이 초토화된 흔적은 분명 그들의 중화기다.게틀러가 움직인 흔적이 없으니 강물을 헤엄쳐와 침투한 거다.미니건이 분명하다.그 무기로 쓸어버리듯 공격한 후에 하나씩 사냥하듯이 죽였다.

“모이웡이 죽었다.”

곁으로 다가온 형제, 무슬란이 참담한 얼굴로 전하는 말에 박현은 꿈틀하며 반응했다. 무슬란이 말한 존재, 모이웡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모이웡······”

죽은 형제의 이름을 부르며 박현은 무릎을 꿇었다.다른 형제들처럼, 퓨리엔트족들처럼 머리가 잘린 모이웡, 동강난 칼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다.몸에서 잘려 나와 하늘을 보고 있는 머리의 눈은 분노를 품고 있다.

“이······!”

고개를 숙인 채 온몸을 부들거리는 박현, 그 등에 무슬란이 손을 얹었다.

“돌아가서 족장님께 알려야 해.”

부들대던 박현은 머리를 홱 들었다.그렇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형제들은 퓨리엔트족과 싸우다 정찰대에게 몰살당했다. 퓨리엔트족이 훔쳐가던 크리듐 박스는 없어졌다. 이결과가, 정찰대가 다시 올 것이다.

“가자!”

박현과 무슬란은 미친 듯이 숲을 차며 달려갔다.

* * *

“어디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저녁장사 준비를 하던 박준은 미간을 좁히고 북서쪽을 바라봤다.해가 기울어 가는 수림지대 저편,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피 냄새가 날려 온다.확실하다, 대륙에서도 이런 경험을 했다.그 지독했던 전쟁, 늘 이랬다.

‘현이네 부족마을이 있는 방향 같은데······’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으로 박현은 다듬던 우엉줄기를 내려놨다. 평상에서 일어서는데 명희가 쪼르르 달려온다. 감자가 가득 든 바구니를 내민다.

“사장님, 뒷밭에서 감자를 이만큼이나 캤어요.”“어 그래? 야 많이 캤구나?”

명희 뒤로 샤이닌과 진숙이와 제나도 바구니를 안고와 내민다.

“저도 캤어요.”“제가 더 많아요.”“내가 제일 많죠? 그죠?”

네 여자아이의 경쟁하는 재잘거림 속에서 박현은 어허허 웃었다.바구니에 든 감자가 제법 실하다.혹시나 하고 씨감자를 구해 심었더니 저렇게 수확을 하게 됐다.안 그래도 언제 캐나 했는데 여자들과 애들이 했다.

“사장님한테 일당 달라고 해라.”

언제 나타났는지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처럼 나타난 그렉이 애들을 부추긴다.

“원래 일하면 값을 받는 거다. 정당한 거지. 그걸 거부하거나 안 주는 자는 악덕 고용주고. 사장님은 착하고 정의로운 분이니까 절대 그럴 일 없다.”

씩 웃는 그렉을 보던 명희와 다른 세 아이가 바로 박준을 돌아봤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직전과 다르다. 박준은 그렉을 향해 소리쳤다.

“헛소리 말고 저녁장사 준비나 철저히 해!”

그렉은 입을 비죽거리며 삼백이가 내다보는 주방으로 돌아갔고, 박준은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뭔가를 해야 했다.

“아 얘들아, 저 개 닮은 호랑이놈이 한 말은 그러니까······ 에이.”

쓴 걸 삼킨 얼굴을 한 박준은 애들을 데리고 창고로 향했다. 화성박스를 열어 맥코라인 음료와 초컬릿바를 꺼내 나눠줬다, 애들은 비명을 질렀다.행복한 아이들의 소리.그 소리가 퍼지는 샹그릴라 하늘 위로 바람이 불며 지나갔다.북동쪽에서부터 날아온 바람, 피 냄새를 실은 바람이다.

* * *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돼지고기, 삼겹살은 기가 막힌 맛이었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들게 맛있다. 장작불 위에다 솥뚜껑을 얹고 그 위에다 구운 고기, 강흑성은 체면 차리지 않고 먹었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먹었다.

“야야, 그렇게 먹어대면 우린 뭐 먹냐?”

전복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준후도 옅은 불만이 드러난 얼굴이다.다른 사람들 한 점 먹을 때 강흑성은 두세 점을 먹었다.고기는 어느새 거의 떨어졌다. 그제야 머쓱한 표정을 지은 강흑성은 준후를 보며 말했다.

“이거 살 수 있는 거지? 더 사다 먹을까?”

준후는 반색한 얼굴을 했고 전복이 고갤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되겠네, 블루마운틴 가죽 팔면 돼지 열 마리는 살 수 있을 걸?”

말해 놓고 눈을 반짝인 전복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가자.”

평상에서 일어서며 전복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이왕 사는 거 술도 사다 먹자고.”

최창수는 전복을 응시하다 말없이 시선을 내렸고 준후는 기대하는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 사이에서 강흑성은 배낭을 갖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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