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27. 야시장.
27. 야시장.
온의동에서 후평동까지 이르는 길에 들어선 각종 노점과 상점들의 불빛은 블랙시티 춘천의 진면모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별의별 물품이 다 있고 별의별 음식들이 다 있었다. 그곳을 강흑성은 홀린 듯 걸어갔다.
“얼마 생각하고 있냐?”
전복이 돌아보며 묻는 말에 강흑성은 현실로 돌아왔다.블루마운틴 가죽 값을 말하는 거다. 지금 그걸 팔러가는 길, 하지만 시장가격을 모른다.
“모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은 전복은 손가락 세 개를 펴보였다.
‘금화 세 개.’
강흑성의 눈동자를 웃는 얼굴로 응시한 전복은 다시 앞서 걸어갔다. 후평동 고갯마루를 넘어가자 나오는 광장으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광장 중앙에 대형상점이 있는데, 각종고기를 판매하는 곳이다. 그곳을 지나갔다.
‘가죽을 먼저 팔아야 하니까.’
춘천피혁, 간판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점 앞에서 전복은 멈춰 섰다. 고개 돌려 시선을 한번 맞추더니 안으로 들어간다.그 뒤를 따라 강흑성은 들어갔다. 전복은 주인남자와 흥정을 시작했다.
“물건부터 봅시다.”
주인 남자의 깐깐한 눈빛요구에 강흑성은 얼른 배낭을 열고 가죽을 꺼냈다. 이채를 번득인 주인 남자는 가죽을 세심하게 뒤집어가며 살폈다.
“신선한 가죽이긴 한데, 손질이 영 엉망이군.”
전복은 바로 입을 열었다.
“손질이야 여기가 전문인데 뭐 그런 소릴 하셔? 자 보시라고, 이만한 가죽은 요새 찾기 힘들걸? 대가리만 자르고 샥 벗겨낸 거란 말이지? 어디 한군데 손상된 곳이 없잖아? 이렇게 잡아온 가죽은 거의 없을 걸?”“에 뭐, 그렇긴 한데······”
보통 놈이 아닌데 하는 눈으로 전복을 보며 입맛을 다신 주인남자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금화두개에 은화 다섯 개.”
가격이 나오자마자 전복은 가죽을 챙겼다.
“날로 먹으려고 하시네. 다른데 가서 팔지 뭐.”
서둘러 가죽을 챙기고 돌아서는 전복을 주인사내는 당황한 눈으로 보다가 팔을 잡았다.
“아아, 흥정은 이제 시작인데 왜 이러셔?”“무슨 흥정?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놓고 흥정이 되길 바라셔?”“아참, 그러지 말고 원하는 값을 불려보쇼.”“어 참 주인사장님 이상한 소리 하시네, 파는 사람이야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소? 그렇다고 되도 않는 값을 부를 순 없는 거고 말요?”“그러니까 적당한 선에서 거래 합시다.”“그 적당한 선을 사장님이 제시하셔야지.”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인정한 주인남자는 침을 한번 삼키고 답을 냈다.
“금화 세 개. 그 이상은 나도 안사.”
전복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장사 잘하슈.”
강흑성을 밀며 전복은 춘천피혁을 나왔다. 당황한 주인은 밖으로 쫓아 나왔고, 갈등으로 흔들리던 눈을 한순간 고정하더니 최후 값을 던졌다.
“금 셋 은 다섯!”
전복과 강흑성은 걸음을 멈췄다.
* * *
치안총국으로 보내는 보고서를 마무리한 브라이튼은 다시 한 번 내용을 살펴봤다. 임진강변을 따라 수상하고 불의한 무리들이 모여들어 범죄를 획책하고 있는 정황을 발견, 완벽한 섬멸작전을 벌일 것이란 보고다.
‘됐어.’
통합데스크의 아이콘을 터치해 전송까지 마치고 돌아선 브라이튼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대기중인 팀장들, 십인의 형형한 눈동자를 응시했다.상부 몰래 크리듐을 차지하기로 합의한 부하들, 저마다 각오한 얼굴이다.
‘발각되면 끝장이니까.’
절대로 비밀에 부치고 치밀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화성에서 안다면, 정찰대 총본부인 치안총국에서 인지하게 된다면 사형을 당할 거다.그런데도 이렇게 결정했다. 남은 인생을 이렇게 안 살기 위해서다.
‘지구로 배치된 건······’
유배당한 거나 같다.다들 지구로 올 때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그 분풀이를 하듯이 적들을 잔인하게 섬멸했다.그래서 귀신대가리라는 별명이 붙은 거다. 그 별명대로 끝나진 않을 거다.
‘절대로.’
새삼 부하들과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 이가는 숨을 악물어 삼킨 브라이튼은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강한 눈빛으로 시선을 던지는 팀장들, 십 인의 부하들을 일일이 응시하며 브라이튼은 경고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나온다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움찔하는 팀장들의 눈을 더 강하게 응시하는 브라이튼의 목소리는 살기로 이어졌다.
“처절하게,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야. 내 호의를, 이 비루한 처지를 다 같이 벗어날 길을 망쳐버린, 그 대가를 반드시 줄 거다.”
팀장들은 뜨거운 숨을 소리 없이 흘려냈다.정찰본대장 브라이튼의 저 겁박을 이해한다.예상치 못한 크리듐의 발견, 이건 황금 동아줄을 거머쥔 기회다.그걸 정찰대 전부가 나눌 것을 브라이튼은 제안한 거다.아니 행운을 나눠준 거다.카슨처럼 혼자 먹으려다가 뒈진 놈과는 다르다.그렇게 결정한 배경은 크리듐의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 그러니 북부지구 정찰본대 전체가 참여해야 가능한 일이란 판단인 거다.
“우리만 잘하면 된다. 크리듐에 대해선 이미 배경을 보고했다. 움바바족의 거점 마을을 중심으로 규합하는 야수족들의 움직임은 분명 발란의 조짐이라는 것, 크리듐 대한 헛소문을 퍼트려 진실을 은폐한다는 것.”
강렬한 안광을 뿜어내며 브라이튼은 결론을 말했다.
“움바바족 마을을 타격해 섬멸한다. 크리듐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내 확보하고 말한 대로의 결과를 퍼트린다. 크리듐은 없으며 반화성반란거점을 격멸한 결과인 거다. 카슨, 그놈이 살아 있다 해도 발설하진 못할 거다.”
그래도 옅은 불안을 보이는 팀장들에게 브라이튼은 알아낸 것을 말했다.
“카슨은 화성연구소로 후송된 걸로 파악됐다.”
팀장들은 눈썹을 곤두세우며 서로 돌아봤다.화성연구소로 실려 갔다는 것, 그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살 가망이 없는 존재로 결론 난 거다.
“카슨은 연구실험대상으로 인생 마감할 거다.”
다시 입을 연 브라이튼은 뜨거운 욕망이 이글거리는 음성을 토해 냈다.
“그런 꼴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러지 않을 방법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다. 오늘밤에, 우리 인생을 바꾸는 거다.”
이글거리는 브라이튼의 눈동자와 같은 눈으로 팀장들은 환호를 지르며 일어섰다.
* * *
“정말로 준다고?”
은화 다섯 개를 손에 쥔 전복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같은 눈빛, 강흑성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싫으면 그만 두죠.”
건네준 은화 다섯 개를 다시 내놓으라는 손짓, 전복은 얼른 손을 돌렸다.
“아니, 누가 싫대나?”
쩝하고 입맛을 다시는 전복의 눈길이 강흑성에 품에 넣는 금화 세 개를 쫓았다. 그것으로 확실하게 전복의 마음을 안 강흑성은 먼저 돌아섰다.
“아아, 고기는 내가 사지.”
전복이 앞서나가며 고기판매점으로 들어갔다. 휘적대는 걸음이나 고기는 내가 산다는 말에 감정이 엿보인다. 블루마운틴 가죽을 팔아준 대가로 은화 다섯 개를 받은 건 별로 기쁘지 않은 거다. 은보단 금이 좋으니까.
“돼지고기 좀 주슈. 아 삼겹살하고 뒷다리 살로다가 넉넉히.”
전복이 돼지고기를 사는 동안 강흑성은 주변을 돌아봤다.대낮처럼 환하게 조명이 밝혀진 광장엔 사람들이 흥청댄다.블랙시티라곤 하지만 도시의 삶이다.도시민들은 각종 상점과 식당과 술집을 드나들며 웃고 있다.
‘도시 밖은 지옥 같은데······’
가늠이 어렵게 복잡한 감정을 삼키던 강흑성은 기운을 감지했다.자신을 향해 꽂히는 기운, 뒤에서 날아온다. 그렇다고 말하듯이 누군가 부른다.
“거기!”
소리엔 반응하며 강흑성은 돌아섰다. 그렇게 부른 자가 누군지 봤다.천산마갑슈트를 입고 w-2000소총을 지닌 자치대원이다.세 명이 한 조로 다가온다. 기찰중이다. 강흑성 자신을 수상히 여기고 검문하려는 거다.
“도시민인가?”
강흑성은 대답대신 들어올 때 발급받은 방문자카드를 내밀었다. 받아든 자치대원은 차가운 눈길로 카드를 살피고 강흑성을 응시했다. 위아래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허리에 찬 단도를 주시한다. 바로 손을 내민다.
“단도.”
내라는 소리, 무기를 패용하는 게 불법은 아니지만, 블랙시티에선 누구나 그러지만, 그래도 자신은 자치대원이고 너는 방문자이니 보겠단 거다.강흑성은 미간을 찌푸렸고 자치대원은 그 표정을 봤다.
“뭐야 그 얼굴은? 거부하겠다는 거냐?”
자치대원은 확 다가서며 총구로 강흑성의 가슴을 밀었다.
“간이 부은 놈이구나? 도시민도 아닌 놈이 자치대원의 검문을 거부해?”
w-2000총구가 다시 강흑성의 가슴을 밀려는 찰나, 전복이 밖으로 나왔다.
“뭣들하자는 거냐?”
칼날처럼 시린 안광을 발산하는 전복, 몸에 착용한 무기들이 심상치 않다. 그를 보고 자치대원은 흠칫했지만 즉각적인 반응으로 총을 겨눴다.
“넌 또 뭐야? 손들어!”
소총을 바로 발사하려는 기세, 그 순간 다른 대원이 표정을 경직하며 전복을 응시했다. 짧은 순간 인지가 돋아난 눈, 재빨리 동료를 잡았다.
“죄송합니다. 일행이신 줄 몰랐습니다.”
총을 겨눴던 자치대원은 동료가 잡아끄는 이유를 몰라 뿌리치려했다.
“어 뭐야? 왜 이래?”
또 다른 동료가 제압하듯 총 겨눈 자치대원을 뒤로 끌고 물러났고, 끼어들어 전복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자치대원은 거듭 사과하며 부탁했다.
“기찰임무에 배치 된지 얼마 안 된 친구입니다. 행정근무만 하던 터라 현장 돌아가는 걸 잘 모릅니다. 모르는 척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전복은 다른 대원에게 붙잡혀 설명 듣는 자, 강흑성에게 총을 겨눴던 자치대원을 서늘하게 응시했다. 그러자 부탁한 대원이 거듭 간청한다.
“자치총령께서 아시면 요절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꺾어가며 간청한 자치대원은 고기판매점 안을 힐긋 보더니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과 고기 값이 얼마인지, 자기에게 달아놓으라고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전복이 다시 들어가 주문한 고길 들고 나온다.
“살펴 가십시오!”
자치대원의 과한 인사를 받으며 전복은 고기집 앞을 떠났다. 그 뒤를 강흑성은 말없는 눈길만 던지다가 따라갔다.
* * *
유난히 천장을 높게 지은 집, 족장이 회의를 진행할 때 모두가 모이는 마을 회관에서 박현은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마을의 용사들 절반이 어떻게 몰살을 당했는지, 누구 소행인지,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크리듐입니다. 귀신대가리 놈들은 그걸 차지하기 위해 다시 올 겁니다.”
단호하고 뜨거운 박현의 주장은 마을 원로들을 술렁거리게 했다. 이어지는 무슬란의 이야기와 주장도 같은 것, 정찰대의 공격이 임박한 것이다.
“풍전등화의 처지가 됐구나.”
족장의 탄식이 깊고 무겁다. 젊어서 인간친구를 사귀고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어른이다. 그래서 어렵게 내는 말은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 탄식은 절대적 위험을 절감한 것이다.
“우선 여자와 아이들을 피신 시켜야 한다. 그 다음에 싸울······”
족장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족장의 뒤에서 엄청난 섬광과 화염이 폭발해 나와서다.그 충격파에 밀려 박현과 무슬란은 낙옆처럼 날아갔다.
* * *
후평동 광장을 벗어나 전복을 따라가던 강흑성은 온 길이 아니란 걸 알았다.좁은 길을 지나니 또 광장이 나왔다.팔호광장이란 푯말이 세워져 있는 작은 광장이다.그런데 불이 환하다.그 환함 속에 노예들이 있다.
‘저!’
걸음을 멈춘 강흑성은 이제 이유를 알았다. 조금 전부터 가슴을 저미어 들어오는 비통함과 슬픔, 이류가 뭔지 알 수 없더니 저것이 원인이다.노예들.철창 안에 짐승처럼 갇혀 있는 저들이 숨소리와 기운이다.누구보다도 저 신세와 절망을 잘 안다.이곳이 블랙시티 춘천의 참 얼굴이다.
“뭐해?”
전복이 돌아서 멈춰선 강흑성을 불렀다. 강흑성의 눈길이 노예들이 갇힌 케이지를 향해 가는 걸 봤다. 순간적으로 안광을 발산한 전복은 모르는 척 다시 돌아섰다. 그 뒤를 강흑성은 쫓아갔다. 그리고 그들을 봤다.
‘매화검문.’
그들이다.매화검을 착용한 무인들, 그들이 흥정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타났다.노예상들과 이야기를 나눈다.저 광경을 보니 그가 떠오른다.녹수계곡에서 만난 캐리언족, 이종이란 말을 한 죽음.
‘노예들을······’
강흑성의 생각과 감정을 끊는 폭발이 그 순간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