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28. 전쟁.
28. 전쟁.
기둥을 부수며 굴러가 박힌 박현은 아찔한 충격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화염이 확산하고 있는 속으로, 족장과 원로들이 앉아 있던 곳으로 움직였다.그런데 휘청하고 몸이 기울어진다. 다시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뭐?’
눈을 치뜬 박현은 다리를 봤다.앞으로 내딛으려 했는데 고꾸라지게 한 왼다리, 없다.무릎 아래로 사라져 안 보인다.시뻘건 피만 흘러나온다.
‘내 다리!’
이제 이유를 안 박현은 뒤늦은 고통으로 입을 떡 벌렸다.왼다리가 잘려 나가버린 고통, 흉악하고 형용하기 힘든 감각이다.그 속에서 상황을 깨달았다.부족회의관이 이렇게 불바다가 된 이유, 이건 하늘상어다.
‘귀신대가리새끼들이!’
그들이다. 놈들이 공격했다.그 옛날 순항미사일이 원형이라는 하늘상어로 폭격했다.족장의 뒤로 떨어졌다.족장과 원로들은 저 불바다 속에 있다.그들을 한순간에 삼켜버린 하늘상어의 칼날이 다리를 자른 거다.
“이······!”
처절한 분노와 절망으로 박현은 경련했다.말로만 듣던 하늘상어, 폭발하는 순간 수십 개의 칼날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폭발과는 별개로 잔혹한 살상을 일으킨다는 무기다. 그것에 당했다.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 개새끼들······!”
악문 이 사이로 피를 흘리며 박현은 몸을 일으켰다. 작두칼을 빼 지팡이처럼 짚으며 일어섰다. 그렇지만 사방이 불바다, 여길 나가기도 어렵다.
“으아아아!”
주체할 수 없는 격노로 박현은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왔다.밖에서부터 빔줄기들이 날아왔다. 불바다가 돼 볼 수도 없는 저 밖에 정찰대가 온 거고 미니건을 발사하는 거다. 벌집이 돼 버릴 순간이다.
‘형!’
빔줄기가 작두칼을 동강내고 팔과 어깨와 오른다리를 스쳐간다.그 화끈한 감각 속에서 최후를 예감한 순간 박현은 형 박준을 떠올렸다.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덮쳤다.같이 바닥으로 굴러 보니 무슬란이다.
“멍청하게 굴지 마! 이대로 죽는 건 아니지 않냐!”
악귀 같은 얼굴로 말한 무슬란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그가 기어가는 방향으로 박현도 기었다.무슬란이 찾아낸 것은 바닥의 덮개, 회의장에서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다.박현도 모르던 것, 무슬란이 들어간다.
“어서!”
재촉하는 무슬란을 보며 박현은 이를 악물었다.족장과 원로들이 한순간에 몰살당한 현실, 저 밖에서 일어나는 살상을 알기 때문이다.마을은 초토화되고 있다.남녀노소 구분 없이 정찰대의 살육에 죽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어!”
무슬란의 강력하지만 숨죽인 외침, 박현은 부르르 진저리를 떨었다.저 말의 의미를 안다.이대로 분을 못 이겨 싸우는 건 개죽음.그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오늘의 이 원한을, 참극을 돌려줄 방법이 아니다.
‘복수한다! 반드시 갚아주고 만다!’
땅에 얼굴을 박고 흙을 깨물어 삼킨 박현은 무슬란을 향해 굴러 들어갔다.
* * *
‘게틀러를 밀고 들어왔으면 좋았을 걸.’
움바바족 마을을 공략하는 광경을 보며 브라이튼은 옅은 감회를 삼켰다. 임진강을 넘는 다리가 하나 남아있지만 게틀러의 주행을 견딜 수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케틀러를 몰고 와 벌컨만으로 끝냈을 텐데. 뭐 됐어. 하늘상어를 사용했으니까 후속 보고서는 더 정확하게 작성해야겠군.’
역시 하늘상어다. 고공에서 송골매가 전해준 위치를 수신해 그대로 낙하해 폭발했다. 움바바족마을 중앙의 회의장 건물을 중심으로 불바다다.그 뒤로 부하들이 진입해 들어가 미니건을 앞세워 나머지를 쓸고 있다.
‘크리듐에 대해 입을 열 몇 놈만 있으면 돼.’
움바바족은 입을 열 놈들이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자백약물을 사용하든지 방법은 많다.중요한건 이 상황을 그대로 유지해 크리듐을 차지하는 거다.크리듐에 대해 알고 있어 몰려드는 놈들까지 다 죽여야 한다.
‘이제 여긴 반화성조직의 거점이야.’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내는 거다.반화성조직 섬멸이란 말처럼 강력한 무기가 없다.도깨비방망이 같은 그것이면 된다.화성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안다. 그 분노 속에 휘말려 죽고자 할 놈은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카슨이 반화성조직 하나를 격멸했지?’
보고서를 봐서 안다,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었다. 그곳에서 도망친 아이놈 하나를 추적 중이었다. 그러다 단혈보검 사건에 얽혔었다.
‘검을 가지고 사라진 놈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찌푸린 미간을 꿈틀거리던 브라이튼은 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크리듐, 그것만 생각하고 집중하자.’
눈동자를 하얗게 빛낸 브라이튼은 도망치는 그림자 하나를 포착했다. 즉각 소총을 들어 조준했다. 숨을 멈추고 셋까지 센 뒤 방아쇠를 당겼다.도망치던 그림자가 쓰러졌다. 그런데 둘로 나뉜다. 아이를 안은 여자다.
“퉤, 움바바족 따위.”
탁한 침을 뱉은 브라이튼은 허리에 찬 수통을 열어 물을 마셨다. 수림으로 번지는 불은 열기를 풀어내며 밤하늘의 별들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 * *
폭발의 바람에 밀려 바닥을 구른 강흑성은 참혹한 광경을 보고 눈을 치떴다.매화검문의 무인들과 노예상인이 불덩이가 되어 구르고 있다.그들 옆의 철창, 노예들이 갇혀 있던 케이지도 불덩이다. 노예들도 불덩이다.
“로켓공격이다!”
전복의 외침으로 깨어난 강흑성은 원인을 봤다. 노예상들이 철창을 동물 전시장처럼 늘어놓은 반대편, 팔호광장의 건너면 건물 위에서 불꼬리가 날아간다. 나머지 노예들이 갇혀 있는 철창을 직격해 화염으로 만든다.
‘저!’
경직과 충격 속에서 숨을 멈춘 채 주저앉아 있던 강흑성은 튀어 올랐다.아니 그러려고 했다.이 순간 치미는 분노와 살기를 이 악물어 붙잡았다.남의 일,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 하는 놈이 나설 일이 아닌 거다.
‘바보 짓 하지 마!’
스스로에게 외치며 강흑성은 움찔거리며 선 몸을 다시 주저앉혔다. 이 세상을 살아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옥상에서 로켓이 날아왔다.
“피해!”
전복의 외침과 동시에 강흑성은 몸을 던졌다. 뜨거운 폭발풍에 휘말려 굴러가다 멈췄다, 몸을 일으키며 보니 옥상의 놈이 이쪽을 보고 있다.
‘웃어?’
로켓을 발사한 놈이 그러고 있다.분명히 노리고 로켓을 발사한 거다.매화검문 무인들과 노예상과 노예들이 목적이지만 즐기고 있다.주변의 강흑성 자신과 같은 이들도 죽이는 유희다.놈의 미소가 빛나고 있다.
‘죽인다!’
강흑성은 제어를 풀었다.내 일이 아니면 끼어들지 말자고, 모른 척 하자는, 심중의 빗장이 풀렸다.자신을 죽이려는 공격을 향해 튀어나갔다.강흑성은 로켓포를 발사한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뒤에서 전복이 소리쳐 부른다.
“뭐하는 거야!”
전복의 외침을 듣지 못한 채 강흑성은 광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5층 건물의 옥상에서 로켓포를 발사하는 자를 향해 도약했다.3층 창문턱을 차고 바람처럼 옥상에 올랐다. 막 로켓이 불꼬리를 내며 날아간다.
“이여어!”
격노한 괴성을 지르며 허공에 뜬 강흑성, 트위스트로 휘돌아 내리는 몸에서 발이 뻗어 나왔다.무원비천류로 펼쳐내는 천지붕각.벼락처럼 찍어 내리는 그 가름이 로켓을 발사한 발사관을 강타했다. 두 동강이 났다.쾅, 강흑성이 발이 옥상바닥까지 찍어 들어간 그 순간.로켓포워드를 버린 남자가 뒤로 물러나며 핸드건을 뽑았다.그 찰나 강흑성은 단도를 던졌다.
“악!”
손목에 단도가 박힌 남자는 휘청거렸다. 그 순간 강흑성은 이미 남자에게 쇄도했다. 전광처럼 나간 움직임은 철퇴 같은 밀어차기를 내질렀다.가슴을 맞은 남자는 획 떠올라 밀려갔고, 옥상문을 부수며 처박혔다.피거품을 뿜어내며 경련하는 남자, 그 앞으로 강흑성은 다가갔다.손목에서 단도를 뽑아냈다.거의 절명 상태에 놓인 남자는 뭘 물어도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그런데 묻고 싶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왜냐? 어째서 죄 없는 이들까지 죽이는 거냐?”
부들거리는 숨으로 강흑성은 물었다.이자가 골동품 같은 로켓포로 노린 건 분명 매화검문과 노예상인들이다.그런데 케이지에 갇혀 있는 노예들까지 해쳤다.공격대상에 구분을 안 둔거다. 잔인하고 참혹한 짓이다.
“넌 도대체 뭐야!”
강흑성은 남자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죽어가는 자는 피거품을 흘려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로 대답하고 싶어도 대답할 수 없는 상태다.
“청부살수다.”
뒤에서 들려온 대답에 강흑성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전복, 그가 자신이 올라온 것처럼 옥상에 올라왔다.역시 예사로 볼 무공소유자가 아니다. 5층 건물을 뛰어오르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 없지만 저 기세는 아니다.
“돈을 받고 한 짓이야.”
다시 강흑성의 의문에 답을 주며 전복은 다가왔다.이젠 머리가 늘어진 자의 품에서 철패 하나를 찾아 바닥에 던졌다.전면에 블랙블러드라고 써있고 뒷면에 칼날에 흐르는 피가 새겨진 철패, 정말로 청부살수다.
‘블랙블러드!’
어머니에게 들은 기억을 강흑성은 떠올렸다.지구가 망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1차대전쟁인 차원전쟁 이후에 생겨났다는 살인자들의 조직이다.중원 무인과 무공이 뿌리가 돼 생겨난, 무서운 청부살수조직이다.
“최하급 살수야.”
철패에 새겨진 핏방울의 개수가 한 개 임을 확인한 전복의 결론.
“최고위 살수는 핏방울이 다섯 개다. 이렇게 한개만 가진 놈하고는 실력이 천지차이지,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어. 이놈은 이렇게 숨어서 로켓을 쏘고 달아나는 게 전부인 놈이다. 살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설명 아닌 설명을 한 전복은 강흑성이 멱살을 풀고 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응시했다. 강흑성이 시선이 광장 저편의 불길로 돌아가자 또 말했다.
“매화검문과 화성연구소에 적의를 품은 자가 한 짓이 아니야.”
강흑성은 전복에게 시선을 돌렸고 전복은 뒷말을 이어냈다.
“그래, 저놈들은 분명히 매화검문이다. 노예를 사서 화성연구소로 데려가는 놈들이지. 짐승 잡듯이 잡아가는 게 주지만 숫자가 모자라면 저렇게 사들이기도 한다. 그걸 못하게 방해한 거다. 이건 자치대가 청부한 거다.”
자치대라는 말에 강흑성은 미간을 거칠게 세웠고, 전복은 광장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우선 여길 벗어나야 해!”
소리치듯 말한 전복은 옥상 뒤쪽을 향해 달려갔다.자살하는 자처럼 몸을 던져 사라진 그 뒤에서 강흑성은 상황을 인지했다.자치대의 게틀러가 출동했다. 드론들이 저편에서 날아온다.여기서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전복이 달려간 방향으로 질주한 강흑성은 어둠 속으로 도약했다.
* * *
“하, 역시 움바바족이야.”
브라이튼은 옅은 감탄을 흘려냈다.생존자놈들을 잡아놓고 자백약물을 주사했다.통나무만한 팔뚝에 주사바늘이 들어가질 않아 제법 고역스러웠다.그런데도 저렇게 버틴다.이마에 핏줄을 돋운 채 부들거리면서다.
“한대 더 줘라.”
브라이튼이 명령하자마자 굵은 주사바늘은 움바바족 생존자들의 팔뚝을 다시 파고 들어갔다. 악문 이사이로 피를 흘리며 버티던 움바바족 생존자 셋은 미친 듯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발작 같은 그 끝에 축 늘어졌다.
“자 이제 된 것 같으니까 물어보마.”
움바바족에게 다가간 브라이튼은 차가운 미소 지은 얼굴로 물음을 냈다.
“크리듐이 어디에 있지? 그게 매장된 정확한 장소가 어디야?”
세 명의 움바바족 중에 가운데 인물이 꿈결을 헤매는 사람처럼 목소릴 냈다.
“소요산······”
* * *
“아 왜 이렇게 뒤통수가 간질거리지?”
뒷머리를 긁은 박준은 아까 봤던 북쪽 하늘을 노려보듯 다시 응시했다.부옇게 밝아졌던 기운이 이젠 사라지고 없지만, 그걸 보고 난 후부터 예감이 안 좋다.뭔지 모를 빛, 분명 임진강 쪽에서 생겨났다 사라졌다.
‘뭔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찝찝한 기분으로 침을 삼키던 박준은 홀에서 주문하는 메브라온족 놈들을 째려봤다.쥐 얼굴에 코끼리코를 가진 놈들, 정말로 말술이다.세 놈이 벌써 화성술통 한통을 다 비웠다. 저 뭣 같은 코로 잘들 마신다.
‘아 저것들, 안주는 안 시키고 술만 디립다 처 마셔대네.’
속으로 욕하며 일어서던 박준은 수림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봤다.
‘어?’
커다란 그림자, 본 순간 알았다.
‘현이구나.’
그런데 현이가 오지 않고 신호를 보낸다. 자신만이 아는 신호, 새소리다.
‘뭐야?’
불안했던 예감이 등골이 엄습하는 가운데 박준은 바로 움직였다.홀에서 나가 샹그릴라라 앞 공터와 숲길을 가로질러 수림으로 들어갔다.그렇게 동생 박현을 봤다.친구 무슬란이 부축하고 있다.왼다리가 없다.
“형······”
창백한 안색으로 부르는 동생 박현을 보고 박준은 이가는 숨을 흘려냈다.
“쓰벌 샹그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