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30화 (31/172)

혹성강호. 30. 살리는 일.

30. 살리는 일.

호흡이 거칠어진 카이오를 내려다보며 강흑성은 침통을 열었다.곁에 있던 명희 엄마와 샤이닌 엄마가 서로 눈짓하더니 움직였다.강흑성이 사전에 지시한대로 카이오의 옷을 벗기는 거다.이내 알몸이 드러났다.성숙한 여체, 야수족이라고 분류하긴 하지만 타고난 미모와 매력으로 탐욕의 대상이 되는 가여운 종족의 여자, 그 아름다운 나신을 강흑성은 돌덩이 보듯 응시했다. 침을 잡고 신중하게 하나하나 혈도에 꽂았다.점점 고슴도치가 되어 가는 카이오.아름다운 얼굴도 가시 같은 침들로 덮여가는 모습을 명희 엄마와 샤이닌 엄마는 침 삼키며 지켜봤다.동시에 강흑성을 평가했다.진실로 고마운 사람이고 정대한 청년이라고.두 엄마의 눈길과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가운데 강흑성은 마지막 침을 시침했다. 당문 비전의 무원의경에 따른 무원신침술, 정확하게 해냈다.

‘됐다. 이젠 경과를 지켜보는 것만 남았어.’

절맥증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무원신침에 의해 타통된 전신혈도의 도도한 흐름 속에 흔적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이오는 건강한 여인이 된다. 병약했던 이전 모습은 이제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의식을 찾게 되면 패천마안에 대해······’

심중의 생각을 강흑성은 바로 밀어냈다.

‘조급할 거 없어.’

강고한 눈빛을 다시 품은 강흑성은 두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한 시간 후정도가 되면 저절로 침이 빠지고 전신에서 탁기가 배출될 겁니다.”

명희 엄마와 샤이닌 엄마에게 강흑성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했다.

“배출되도록 그대로 두고 흘러내는 것만 닦아주십시오. 저녁이면 정신이 들 겁니다. 그때 먹을 수 있게 탕약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앞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한 달, 그 후엔 완치될 겁니다.”

장담하는 강흑성을 명희엄마와 샤이닌 엄마는 어쩔 줄 모르는 미소로 바라봤다. 담담하게 말하는 이 청년의 한마디 한마디가 천근의 무게처럼 신뢰로 가슴에 스미는 걸 느낀다. 자신들을 구해준 청년, 또 구해줬다.

“감사합니다. 카이오도 정말로 감사할 거예요.”“그럼요, 끝날 뻔한 인생을 구해주시고 또 이렇게 죽을병도 고쳐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를 거예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은혜예요.”

두엄마의 진심어린 눈길과 목소리 속에서 강흑성은 일어섰다.

“돌봐야 할 환자가 또 있어서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덤덤한 얼굴로 엄마들에게 당부한 강흑성은 숙소에서 나왔다. 해가 가장 높게 뜬 것을 보고 지하실 쪽을 돌아봤다가 바로 움직였다. 수림에 들어가 탕약을 만들 약초들을 구해야 한다. 필요한 것들은 저기 다 있다.

* * *

“찢어죽일 놈들······!”

홀 밖을 내다보며 박준은 이가는 숨을 흘려냈다.무슬란에게 동생 박현을 맡기고 나온 이유는 저녁장사 준비를 위해서가 아니다.가슴 속의 불을 끄려고다.움바바족 마을을 몰살한 정찰본대를 향한 원한의 불이다.이 불을 이대로 품고 있으면 안 된다.다스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불나방이 되어 타죽고 마는 거다.불을 지키되 차가운 빙벽을 쌓아 제어해야 한다.때가 돼 불길을 터서 용암을 흘려낼 순간까지 지켜야 한다.

‘갚아준다, 반드시 열배 백배로 갚아 준다!’

부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박준은 결의를 삼켰다. 그 순간 그렉이 뒤에서 소릴 냈다.

“어라? 저 자식 저거?”

그렉의 놀란 반응을 따라 박준도 시선을 던졌다.강흑성이 돌아왔다. 그런데 등에 늑대사슴을 지고 온다.제 몸통보다 두 배는 큰 놈을, 사슴이란 말이 붙었지만 뿔이 칼날처럼 위험한 짐승, 맹수인 놈을 잡았다.

“야? 그걸 어디서 잡았어?”

그렉이 강흑성에게 달려가며 묻는 말, 박준의 의문이다.늑대사슴은 이 근방에 없다. 하루거리는 걸리는 북쪽으로 가야 한다.게다가 저놈들은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잡기가 어렵다. 괴수들에게도 덤비는 놈들이다.

“이놈 간이 필요해서요.”

대수롭잖게 말하며 늑대사슴을 쿵하고 내려놓는 강흑성, 박준은 멍하니 바라봤다.

* * *

두 개의 솥단지에 두 개의 탕약을 끓이고 있다. 늑대사슴의 간과 이름 모를 약초들을 넣은 탕약이다. 그렇다는 것만 알지 처음부터 어떤 비율로 무슨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 제조하는 건지 모른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대단한 놈, 놀라운 놈, 기묘한 놈, 괴상한 놈.’

강흑성에 대한 감흥을 삼키며 그렉은 미간을 찡그렸다.저런 식으로 만든 육합신탕이란 걸로 마인 묘진위를 일어서게 한 게 강흑성이다.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걸 의심치 않는다.박현을 진맥하고는 낫게 하겠다말했다.

‘묘진위처럼 일어서겠지.’

확신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렉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리가 잘려 없어졌으니 전처럼 일어서는 건 못하겠군.’

안타까운 일, 박현은 이제 불구자가 된 거다.거구의 몸을 비호처럼 움직이던 움바바족의 운신은 이제 못하게 되는 거다.그런데 그런 불행은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박현의 마을, 움바바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더러운 놈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살기를 발산한 그렉, 뒤돌아보는 강흑성과 눈이 마주쳤다. 탕약의 불을 조절하던 눈은 서늘하게 빛을 내고 있다.

“아 그게, 정찰대 놈들 말이다.”

이해의 눈빛을 반짝이는 강흑성에게 그렉은 이어 말했다.

“사장님 동생은 이제 다리 없는 불구자가 된 거잖냐. 마을 사람들은 모조리 몰살당했고. 사장님은 울화가 터질 거다. 그게 화가 나서 말이다.”

강흑성은 고요한 눈빛을 던지다가 다시 탕약불로 시선을 돌렸다.

* * *

저녁이 되자 정말로 카이오는 눈을 떴다.초점이 분명한 눈동자로 다른 이들을 알아본다.그게 반갑고 기쁘긴 하지만 명희 엄마와 샤이닌 엄마는 강흑성의 지시를 잊지 않았다.곧바로 준비해 놓은 탕약부터 먹였다.

“어서 먹어.”“그래, 이젠 다 나았어. 한 달 동안 탕약만 먹으면 정상이 된대.”

명희엄마에 이어 샤이닌 엄마의 기뻐하는 말에 카이오는 쓴 탕약을 마시며 찡그린 얼굴에 의문을 품었다. 정상이 된다라는 말 때문이다.

‘정상?’

그 말은 명희엄마와 샤이닌 엄마처럼 이란 뜻이 분명하다.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거다.자신은 어릴 적부터 병약했다.그래서 더 예뻐 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처럼 건강한 삶이란 건 꿈일 뿐인 거다.

“그래, 안 믿기지? 은인께서 낫게 해주신 거야.”“그렇다니까? 우리도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저녁에 깨어난다고 그랬는데 정말로 이렇게 깨어났잖아? 가슴은 어때? 아직도 답답하고 무거워?”

역시 명희엄마에 이은 샤이닌 엄마의 흥분한 이야기와 물음.

‘내 가슴······’

카이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어루만졌다.풍만한 가슴융기가 아닌 그 안, 심장과 폐다.언제나 병자임을 인식시켜주던, 아니 화인처럼 상존하던 병증, 그것들이 안 느껴진다.가슴은 시원하고 숨은 아주 가볍다.

“가, 가슴이 안 아파요?”

놀란 눈을 크게 뜨는 카이오를 보며 명희엄마와 샤이닌 엄마는 기쁜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보라고, 은인께서 낫게 해준다고 한 말이 맞다고.

‘은인께서······!’

형용 못할 전율과 기쁨 속에서 카이오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노예로 팔려가던 자신들을 구해준 인간족 남자.그 무서운 블루마운틴을 때려죽인 사내, 그가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준 거다.두 번이나 살려준 분이다.

“아아······!”

카이오는 오열했다. 기쁘고 감사하고 좋아서, 뜨겁게 울었다.

* * *

“이거 마셔라.”

박준은 시커먼 탕약이 든 그릇을 동생 박현에게 내밀었다.움바바족인 박현의 신체와 신진대사 용량에 맞춘 약이 든 커다란 그릇이다.흔들리는 그걸 무슬란이 옮겨 받아 내밀었고 박현은 고통스런 얼굴로 마셨다.

“흐으······ 형······”

빈 그릇을 내리고 부르는 동생 박현에게 박준은 묻지 않은 걸 말했다.

“고열에 정신이 없었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어. 그런 널 살린 게 흑성이다. 내가 말했지? 그놈이 죽어가던 마인을 살려냈다고? 지금 먹은 탕약, 흑성이가 만든 거다. 의식 없던 널 깨어나게 한 것도 그놈이다.”

미간을 찡그리듯 좁히는 박현에게 박준은 계속 말했다.

“네 다리를 잘라버린 하늘상어의 칼날에 독이 있었다는 거다. 의도적으로 만들어 바른 독인지 저절로 생긴 무기기계독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것 때문에 골로 갈 뻔했다. 근데 흑성이가 독 전문가거든.”

그렇게 살아났고 의식을 되찾았다는 형 박준의 말, 박현은 하고자 하던 말을 했다.

“복수해야 해······!”

눈동자에 불을 품는 박현, 그 어깨를 박준이 강하게 내리 눌렀다.

“그래, 복수 하자. 백배 천배로 갚아주자.”“형······!”“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 할 일은 네가 낫는 거다. 한 달, 한 달 동안 흑성이가 만들어 주는 탕약을 먹으면 완전히 나을 거다. 복수는 그 다음이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완벽하고 끝장나게 되갚아 주는 거다.”

자신의 눈동자에 품은 것과 같은 불을 품은 형 박준의 눈, 박현은 고갤 끄덕였다.그 순간이다. 밖에서 삼백이가 보내는 신호가 스피커를 울렸다.

“귀신대가리 새끼들······!”

박준이 살기의 불덩어리가 돼서 일어서는 것과 같이 무슬란은 작두칼을 뽑았다.

* * *

게틀러에서 내린 브라이튼은 샹그릴라의 한적한 정경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흡족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입가에 피어난다.소요산에 크리듐광산을 찾아낸 결과가, 움바바족을 치고 이룬 소득이 정말 뿌듯하다.

‘이런 날은 제대로 한잔 해야지.’

샹그릴라에 온 이유다.작전에 참여 했던 전원을 데리고 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팀장들만 동행했다.이젠 이들과 운명공동체다.배신자가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정찰대 전체를 잘 통제해야 한다.

“왜 이렇게 한가해? 저녁장사 안하나?”

브라이튼은 웃는 얼굴로 사장 박준에게 인사 아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여전히 건방진 놈이다.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가 않다.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선을 안 맞춘다.중부지구 사령관을 거론하며 날을 세워 보인 괘씸한 놈이다.언젠가 손을 볼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크리듐광을 찾아 팔자를 바꾸게 된 기쁨을 만끽하러 온 거니까.’

여전히 웃는 얼굴로 브라이튼은 사장 박준에게 용건을 말했다.

“우리 여기서 한잔 하고 갈 거다. 술은 제일 고급으로 내오고, 안주도 가장 좋은 걸로 푸짐하게 내 와. 돈 걱정 말고, 물론 외상 같은 건 안한다.”

부하에게 지시하듯 할 말을 한 브라이튼은 샹그릴라 안으로 들어가다 미간을 옅게 찡그렸다. 냄새,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괴상한 냄새가 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처음 맡아보는 냄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냄새, 음식냄새는 아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음식냄샌가?”

설마 음식냄새는 아니겠지 하며 돌아보는 브라이튼의 시선에 박준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찰나, 결연한 눈빛으로 태연함을 꾸며내며 대답했다.

“탕약냄샙니다.”“탕약?”“아주 오래전의 의술을 바탕으로 만든 약이죠. 우리 샹그릴라의 동거인들 중에 병약한 이들이 있어서요, 건강을 돕기 위해 만들고 있습니다.”“건강을 위해? 동거인들?”

미간을 깊게 좁혔던 브라이튼은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이군.”

바로 눈빛을 서늘하게 빛낸 브라이튼은 물음을 이어냈다.

“누가 그런 재주를 가졌지? 보약을 만든다면서?”

박준이 대답을 망설이던 그 찰나에 주인공이 나타났다.

“내가 만듭니다.”

샹그릴라 뒤뜰에서 탕약 불을 살피다 온 강흑성, 건장한 체구를 가진 젊은 청년을 브라이튼은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고 강흑성은 다시 말했다.

“늑대사슴 고기가 있습니다. 그걸로 보양식 요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돌아서는 강흑성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는 브라이튼에게 박준이 달라붙었다.

“자 어서 들어가시죠, 일행들이 기다리잖습니까? 좋은 술로 기분 좋게 한잔씩들 하고 계시면 늑대사슴 고기로 훌륭한 보양식을 만들어 올릴 겁니다. 아시죠? 캬이엔 고기처럼 특별한 고기가 늑대사슴고기란 걸요?”

떠밀 듯이 하는 박준의 재촉에 브라이튼과 팀장 열 명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주방에서 바라보던 그렉과 삼백이는 바로 칼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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