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31. 죽이려는 일, 그걸 하자면.
31. 죽이려는 일, 그걸 하자면.
늑대사슴 고기로 만들어낸 전골과 구이요리는 정말로 훌륭하다. 강흑성과 삼백이의 합작품이다. 귀신대가리 놈들 테이블로 내다주는 데 연신 침이 고인다. 그런 그렉 자신을 팀장놈들이 기분 나쁘게 바라본다.
‘새끼들이, 내가 침 바른 걸 아나?’
속으론 욕하면서 겉으론 웃음으로 아부하며 음식들을 놓고 그렉은 돌아섰다. 화성위스키로 이미 취해가는 중인 정찰대 놈들은 웃고 떠들고 기분 최고다. 왜 아니랴, 움바바족의 트리듐을 차지했으니 좋아 죽을 거다.
“갈아 마실 놈들.”
아주 작은 소리의 분노를 숨으로 흘려내며 그랙은 주방으로 들어갔다.늑대사슴 몸통을 발골 중인 강흑성과 고기를 잘게 다듬는 삼백이롤 보고 문득 의문을 품었다. 삼백이는 원래 그렇지만 강흑성은 대체 뭔가.
“흑성이 너 그렇게 발골하는 건 어디서 배웠냐?”
힐긋 그렉을 돌아본 강흑성은 하던 일에 집중하며 덤덤히 대답했다.
“그냥요. 기억이 납니다.”
무슨 소리야 하는 얼굴인 그렉에게 삼백이가 식칼을 탁탁 치며 시선을 돌리게 한다. 다듬어 놓은 고기가 다 됐으니 어서 가져나가란 거다.
“아 이 자식은 증말?”
삼백이에게 화를 내려던 그렉의 뒤로 사장 박준이 들이치듯 들어섰다.
“독, 독을 쓰면 어떻겠냐?”
밑도 끝도 없는 소릴 뱉어낸 사장 박준의 눈동자는 흥분과 긴장으로 경직해 있다. 정확히는 제어하고 있는 분노다.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다.
“그래 맞아, 흑성이 네가 음식에 독을 타면 되잖겠냐?”
그렉은 눈을 번득였다. 지금 사장 박준이 응축된 살기와 긴장으로 말한 내용, 정찰대 귀신대가리들을 독살하거나 의식불명의 상태로 만들거나 운신을 못하게 만드는 거다. 그다음에 잘근 잘근 다져버리면 되는 거다.
“저들이 모를까요?”
강흑성의 대답 아닌 대답, 묵묵한 눈동자에 어린 의미를 박준은 읽었다.조심해야 한다거나 자신이 없다거나의 의미가 아니다. 하자면 하겠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할 수 있냐는 거다.
‘정찰대 본대에 남아 있는 놈들이, 그것들이 전부 들이친다면······!’
박준은 차가운 숨을 흘려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그런 결과가 이뤄지면 샹그릴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니 하려고 한다면 완벽하게 치밀하게 해야 한다.어설프게 했다간 그대로 끝장이다.
“그러네요, 저놈들 슈트에 바이오웨폰 대응기능이 있잖아요?”
그렉의 깨달음으로 나온 말, 정찰대의 천산마갑슈트에는 정말로 그런 기능이 있다.적의 화학무기 공격을 감지하고 방어하는 기능이다.독을 감별할 거다.그런 것까지 있으니 천산마갑슈트를 모두가 원하는 거다.
“안 그런 척 하지만 저놈들 우리가 내주는 음식을 다 검사하고 처먹고 있을 겁니다.”
이어 나온 그렉의 실망과 확신에 박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맞다. 내가 냉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러질 못하고 있어.”
냉철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정찰대 귀신대가리들이 눈앞에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이런 거다.안될 일이다, 분노는 억누르고 냉정하게 죽일 준비를 해야 한다.
“가능할 겁니다.”
강흑성의 덤덤한 목소리, 박준은 내렸던 시선을 홱 들었다.그렉도 호랑이 눈을 움찔하며 강흑성을 응시했다.저 말의 뜻이 뭔지 모를 수 없다.
“가능해? 독으로 저것들을 공격하는 게 가능하다고?”
서둘러 물음을 던진 그렉을 보지 않고 강흑성은 박준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저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독이면 됩니다. 천산마갑슈트에 바이어웨폰 대응기능이란 게 있다면 거기 포착되지 않을 독을 만들면 되겠죠. 됩니다.”
박준은 눈을 치떴고 그렉은 숨을 멈췄다.
“사장님에게 약속드린 독을 그런 독으로 드리겠습니다.”
명료하게 결론을 던진 강흑성은 다시 늑대사슴의 발골로 돌아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썹을 떨던 박준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렇게 지금 현실을 제어하고 받아 들였다.복수는 이제부터 준비해 나가는 거다.
“이봐! 술 가져와!”
홀에서 소리치는 정찰대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박준과 그렉은 바로 주방을 나갔다.
* * *
이젠 점점 더 명료해지는 의식 속에서 박현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다리 잘린 채 누워있는 이 지하밀실 위, 샹그릴라 홀에 놈들이 와 있는 거다.
‘죽일 놈들이······!’
참을 수 없는 격노에 사로잡힌 채 박현은 몸을 떨었다. 당장 뛰어올라가 놈들의 모가지를 날려버리고 싶은 충동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처지, 이제 겨우 의식을 재대로 찾은 병자인 거다.
“참아.”
무슬란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이 전하는 뜨거움은 이어 나오는 목소리에도 느껴진다.
“기회는 온다. 반드시.”
박현은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현실을 받아들이고 삼켰다.형 박준이 한 말만을 되새기며 붙잡았다.때가 되면 백배 천배로 갚아 주리라는, 그 의지로 숨 쉬었다.
* * *
“언니 이제는 안 아파?”
명희가 아직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침대에 상체를 기대고 앉은 카이오는 미소 품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아파. 여기, 가슴이 늘 답답하고 아팠는데 지금은 안 그래.”
명희가 활짝 웃고 그 옆의 샤이닌은 박수를 친다. 진숙이와 제나도 좋아라 웃는다.
“정말로 잘됐어!”“그래그래, 흑성 오빠가 살려줄 거라고 했잖아!”“야호다 야호!”“흑성 오빠 짱이야!”
네 아이가 웃고 까부는 데 명희엄마와 샤이닌 엄마가 주의를 준다.숙소 입구에서 바깥 동정을 살피는 두 엄마, 아이들은 즉각 손으로 입을 가린다.잠깐의 아이다움을 털어낸 생존 본능, 여태 겪고 살아온 세상이다.
‘정찰대가······’
미간을 옅게 찌푸린 카이오는 현상황을 곱씹었다.명희엄마의 말에 의하면 귀신대가리들이 움바바족 마을을 몰살했다고 한다.그곳엔 샹그릴라의 사장 박준의 동생이 있었고, 그가 구사일생 도망쳐 왔다는 거다.
‘박준 사장과 그 동생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정찰대는 술을 마시러 왔고······’
간간히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이야기를 들었다.자신들이 어떻게 구해졌고 어디에 있는 지다.사장형제의 이야기에는 정말로 놀랐었다.움바바족동생와 인간족 형이라는 관계는 들어본 적도 상상도 못해 본 거다.
‘동생과 그 부족을 몰살한 자들을······’
그들을 바라보며 홀서빙을 하는 사장 박준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도 안 간다.참을 수 없는 분노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거다.그렇지만 상대는 정찰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대인 거다.
‘그분, 은인과 힘을 합쳐 복수한다면, 블루마운틴도 잡은 분이니까 가능할 지도 몰라. 그건 아닌가?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겠지.’
차분하게 숨을 내쉬며 카이오는 현재의 긴장 상태를 다시 느꼈다.명희엄마와 샤이닌 엄마를 비롯한 모두가 바깥 동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혹시라도 하는 심정에서다. 흉악한 세상을 사는 약자의 본능이다.
‘하아, 왜 이토록 세상은 가혹한 것일까.’
고개 숙인 카이오는 기억을 떠올렸다.흑랑성 늑대족 무법자무리에게 마을이 습격당하던 기억.그날 남자들은 다 죽고 여자들은 도망쳤다.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결국 츄란족 노예사냥꾼들에게 잡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목숨의 문제가 아닌 남은 생의 문제, 카이오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꿈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꾸기 시작한 꿈, 붉은 마안의 부름.
‘패천마안.’
그 눈의 이름은 분명 그것이다.그렇다는 걸 안다.어떻게 아는지 모른다. 중요하지도 않다.중요한건 그 눈이 카이오 자신을 부른다는 것, 아니 자신을 통해 존재를 알리려 한다는 것이다.그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무녀로 선택받은 걸까?’
그럴 수 있다. 캐리언족 무녀들은 꿈을 꾼다고 했다.선택받는 꿈이다. 누구에게 선택받는지 모른다.신이라고들 말하지만 정확하지 않다.이게 그런 꿈이라면 패천마안은 신인 걸까? 날 통해서 뭘 하려는 걸까?깊고 깊은 생각에 빠진 카이오의 침대 앞에서 네 아이는 강흑성을 이야기 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카이오는 기이한 전율로 소름을 돋웠다.
* * *
“개자식들.”
악의와 살기 가득한 숨으로 욕을 흘려낸 그렉은 정찰대가 사라진 어둠을 노려봤다. 그 시선을 돌려 홀을 보니 사장 박준이 테이블을 치우고 있다. 말없이 무거운 눈빛만 흘려내는 모습, 저 가슴이 어떨지 모르겠다.
“동생한테나 가보세요.”
박준을 밀어내고 그렉은 테이블을 치우기 시작했다.어깨를 떠밀려 주춤 물러난 박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테이블을 응시하다 돌아섰다.동생 박현에게로 가는 뒷모습은 한없이 어두워 보인다. 걸음도 힘겹게 보인다.주방에서 나오는 강흑성을 돌아본 그렉은 참고 있던 물음을 던졌다.
“정말로 그런 독을 만들 수 있는 거냐?”
삐걱거리는 소리로 뒤이어 나오는 삼백이의 붉은 눈을 뒤로 두고 강흑성은 대답했다.
“만들 겁니다.”
홀 입구로 걸어간 강흑성은 어둠이 내리깔린 수림을 응시하며 뒷말을 냈다.
“받은 건 돌려주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한은 피로 갚는 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정찰대와 나는 원한이 없어. 하지만 박준 사장에겐 갚아야 할 게 있지.’
박준이 강흑성 자신을 샹그릴라에 머물도록 해준 빚이 있다.그건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빚을 진 거다.두 번째는 여자와 아이들을 품어준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춘천에서 침을 구하도록 해줬다.
‘거래였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독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어.’
그런 박준이 품은 원한이다. 강흑성 자신도 무관하지 않다.물론 무모한 짓이다.비정한 세상, 냉정하게 계산하고 행동해야 하는 게 맞다.그 계산을 했다, 계획만 제대로 세우면 가능하다. 정찰대를 죽이는 거다.
‘처음부터 날 잡아 죽이려고 한 것들.’
그랬던 자는 카슨이고 그의 팀이지만, 그들은 다 죽었지만, 정찰대는 정찰대다.그 이름으로 다를 게 없는 자들이다.기회만 생기면 죽이려는 자들, 당하기 전에 먼저 죽이는 거다.그게 이 세상을 사는 법이다.
‘죽이는 일, 준비하면 되는 거야.’
어둠이 꿈틀거리는 수림저편을 응시하던 강흑성은 숙소를 향해 걸음을 냈다.
* * *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 무원신공의 운기를 마친 강흑성은 샹그릴라를 나섰다. 필요한 것들을 담을 배낭을 지고 마검 패천마혈을 지니고 수림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삼백이가 장총을 들고 뒤따라온다.
‘무형지독.’
만들어야 할 독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강흑성은 필요한 것들을 떠올렸다.광물독과 식물독과 동물독, 모두 다 필요하다.정교한 배합과 제조과정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선행해서 재료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야무치의 어금니 독이 제일 구하기 어렵겠어.’
그라운드 웜 야무치, 그놈은 거대한 괴수다.블루마운틴 같은 놈도 휘감아 죽여 터트리고 먹어치우는 놈이다.놈의 어금니 독은 뼈까지도 녹여 버린다.바로 그 독이 필요하다. 그러니 수림을 지나 북으로 가야 한다.
‘데빌 그라운드.’
공포의 이름, 온갖 흉악한 것들이 모여 사는 곳, 그곳을 향해 강흑성은 힘차게 걸음을 냈다. 뒤따르는 삼백이는 명쾌한 음조로 휘파람을 불었다.
* * *
“이게 무슨!”
통합데스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브라이튼은 숨을 거친 숨을 뿜어냈다.치안총국에서 보고서를 보고 보내온 답신, 아니 통보서다.감찰관을 보낸다는 거다. 이곳의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조치란 거다.
“빌어먹을!”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반화성조직들의 반란조짐을 사전에 파악해 격멸했다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올렸다.그렇게 결말이 나는 일이어야 하는데 감찰관을 보낸다는 거다.사안의 경중을 더 자세히 살피겠다는 거다.
“에이!”
움켜쥔 물 컵을 집어던지려던 브라이튼은 스르르 팔을 내렸다.
‘대응해야 해. 이미 벌려놓은 일, 감찰관은 피할 수 없게 닥칠 일이야. 침착하고 냉철하게 대응하는 거야. 크리듐 부분만 감추면 보고서대로야.’
뜨거워진 숨을 식히며 뿜어낸 브라이튼은 팀장들을 호출했다.
“팀장들은 전원 내 방으로 모이도록.”
감찰관이 오는 상황에 대한 대응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모두 한배를 탄 처지지만 만에 하나를 모른다. 주변부터 확실하게 정리하고 나가는 거다.
‘어차피 엎어진 물······!’
크리듐을 생각하며, 돈을 생각하며 데스크에서 일어선 브라이튼은 창가로 갔다. 푸른 하늘이 펼쳐진 정찰대 본부 전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수틀리면 죽인다, 감찰관이든 누구든.”
지구의 푸른 하늘은 시원한 바람을 불어내고 있었다.